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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대륙은 말 그대로 대륙이다.
큰 땅덩이니 만큼 그곳에 서식하는 몬스터도 다종다양했다.
그중 최약체를 찾으면 레벨 100 근처에 놓인 몬스터도 있었다.
도진은 그림자 공국에 머무는 며칠 동안 그것들을 사냥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했다.
<거대 설원 독거미 - Lv.105>
공격력과 방어력이 높고, 독이라는 특수 능력을 졌으나 낮은 마법 방어와 생명력 수치가 약점인 몬스터.
도진은 놈들이 서식하는 지역 상공을 카린에게 붙잡혀 날아다니며 일방적으로 「흑룡의 독니」를 이용해 한 마리 한 마리 처리하는 방식으로 레벨업을 했다.
심한 레벨 차이로 인해 경험치 페널티가 붙어서 엄청난 속도로 레벨업이 되진 않았지만, 멍하니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도진 님! 오늘도 열심히 날아다녔으니까 원래 살던 세계 이야기 좀 해 주세요!”
그 외의 시간도 대부분 카린과 함께 보냈다.
그녀는 궁금한 게 얼마나 많은지 틈만 나면 이것저것 묻고는 했다.
질문을 하고, 대답을 듣고, 도진에 대해 아는 점이 늘어갈수록 카린은 매우 좋아했다.
인간, 다른 세계, 리제니안…….
카린은 도진에 대한 걸 열심히 듣고 일기장에 적어 기록했다.
그렇게 그림자 공국에서의 일주일이 흘렀다.
여느 때처럼 정해진 시간에 수면 상태에서 깨어난 도진은 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렸다.
항상 같은 위치에서 자신의 기상을 기다리는 카린을 보기 위해서.
“왜 그래?”
그런데 오늘따라 카린의 기색이 이상했다.
해맑은 웃음은 온데간데없고 눈썹이 축 처진 게 마치 버려진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버지가 부르셔요.”
그 말을 듣자마자 도진은 그녀가 왜 이렇게 풀이 죽었는지 알았다.
‘보상이 준비된 건가.’
도진이 이곳에 머무는 이유는 티룬드 대공이 보상을 준비할 때까지 머물라 했기 때문.
그 보상을 받고 나면 더 이상 여기에 머물 이유가 사라지고, 이는 예정된 이별을 의미했다.
카린도 그걸 알기에 아쉬워하고 있는 것이고.
“아쉬워?”
도진이 묻자 카린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그를 봤다.
툭 건드리면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눈.
뱀파이어가 아니었다면 벌써 눈물을 펑펑 쏟았을지도 모른다.
“…….”
카린은 차마 말도 못 하고 고개만 끄덕거렸다.
‘도진 님에게 더 있어 달라고 하고 싶어요. 하지만 그러면 안 돼요. 인간인 이분에게 그림자 공국은 살기 좋은 곳이 아닌걸요.’
그게 안 된다면 따라나서는 건 어떨까? 그것 또한 처음부터 고민했던 카린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오랜 세월이 흘러 많이 희석되었다 해도 인간분들에게 있어 뱀파이어는 끔찍한 괴물이자 포식자예요.’
뱀파이어가 중앙대륙을 활보하고 있다는 걸 제국과 성황청에서 알게 되면 보통 큰일로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도진 님에게 너무 큰 폐를 끼치게 될 거예요. 그럴 수는 없어요.’
붙잡지도, 따라갈 수도 없는 이유를 곱씹으며 카린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런 그녀의 머리에 도진의 손이 올라왔다.
“나한테는 해야 할 일이 많아. 그래서 계속 있어 줄 수가 없어.”
“…알아요.”
대답하는 카린의 얼굴은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 같았다.
“그렇다고 너무 상심할 거 없어. 너도 알다시피 내가 하는 일이 모험이잖아? 언젠가 내가 충분히 강해지면 부유대륙을 모험하러 돌아올 거야. 그때 다시 만날 수 있어.”
그러나 이어지는 말을 듣고는 희망을 찾은 얼굴이 됐다.
“정말… 정말 돌아오실 건가요? 여긴 아무것도 없는데도?”
아무것도 없긴.
부유대륙은 천 년이 넘게 주인 없이 방치된 땅이다.
온갖 영약과 보물, 유물 등이 잠들어 있는 노다지인 것이다.
‘전생에는 발만 붙였다 하면 엘더가 죽여 대서 몇 번 왔다가 포기했지만, 이번에는 그럴 걱정도 없으니 바로 와서 싹 쓸어 담아야지.’
도진은 부유대륙을 털어먹을 조건이 갖춰지면 바로 닥닥 긁어서 독식할 계획이었다.
“없긴 왜 없어. 내 입장에선 부유대륙은 모험할 가치가 충분한 땅이야.”
그래서.
“남들이 밟아 보기 전에 빨리 돌아올 생각이고.”
카린의 표정이 밝아졌다. 울적했던 적이 없는 것처럼 격한 변화였다.
“정말이죠? 정말 부유대륙을 모험하러 돌아오시는 거죠?”
카린은 ‘언젠가 만나러 올게’ 같은 기약 없는 약속이 돌아올까 무서웠다.
그녀가 읽었던 책에서 그런 약속이 지켜진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진이 한 약속은 달랐다.
구체적인 목적이 있는 약속이었다.
“다음번에는 훨씬 편하게 날게 해 드릴게요! 지금부터 날기 연습을 매일 할 거랍니다!”
그럴 필요까지는 없는데. 도진은 조용히 말려 보았으나 소용없는 일이었다.
* * *
“카린이 많이 아쉬워하더군.”
일주일 만에 만난 대공의 첫마디는 딸에 대한 걱정이었다.
“자기가 얼마나 사랑받고 있었는지 깨닫게 되면 금방 괜찮아질 겁니다.”
“…해 봐야지.”
자신 없는 투로 말한 대공은 옅은 한숨을 뱉었다.
그것으로, 딸을 걱정하던 아비의 모습이 사라지고 대마법사이자 흡혈귀의 왕이 돌아왔다.
“그럼 약속한 보상을 보여 주마.”
티룬드 대공이 손을 펼쳤고, 기하학적인 피의 기둥이 드러났다.
기둥은 수많은 선과 도형으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얼핏 보기에는 DNA처럼 보이기도 했다.
“지난 일주일간 내가 직접 만든 마안(魔眼)이다.”
마안.
단 두 글자에 도진의 심장이 뛰었다.
차라리 진귀한 아이템이었다면 이렇게까지 흥분하지는 않았겠지만, 이건 단순한 아이템과는 결이 달랐다.
‘마안 계열은 특성 중에서도 최상급 특성.’
소유자의 능력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종류의 보상인 것이다.
“마안이라면… 대부분 부작용을 동반한다고 알고 있는데요.”
그럼에도 확인은 철저해야 했다.
만에 하나라도 잘못될 일을 방지하기 위해서.
대공도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사란 그렇게 신중해야 하는 법이지. 실제로 오랜만에 마법사 시절로 돌아가서 작업을 했더니 나도 모르게 과하게 손을 쓸 뻔했으니 말이야. 마법사는… 항상 신중해야 해.”
마치 자신의 과오를 되짚는 듯한 말이었다.
“경험에 비추어 하는 말이니 새겨듣는다 하여 썩 손해가 되지는 않을 거다. 늙지 않는 괴물로서 하는 말이 아닌 오래된 마법사로서 하는 충고이니.”
“…마법사는 신중해야 한다. 명심하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대공이 손가락을 비틀자 DNA를 닮은 마법진이 확 하고 펼쳐졌다.
“이 눈의 재료는 ‘나’다. 진혈을 사용해 나의 유전 정보 토대로 마법적 가공을 하고, 열화에 열화를 거쳐 인간에게도 이식할 수 있게끔 다듬은 물건이지.”
뭐라고요? 그게 님 눈알이라고요?
도진은 하마터면 있던 눈알이 빠질 뻔했다.
이 노인네, 도대체 뭘 만든 거야?
“조금 놀란 모양이군. 하지만 그럴 필요 없다. 인간에게 부작용 없이 이식 가능한 수준까지 열화시키는 과정에서 오리지널리티는 거의 없어지다시피 했으니. 그냥 평범한 마안과 다를 바 없다. 안정성을 위해 이것저것 덜어 내다 보니 기능이 얼마 안 남게 됐다.”
대공이 ‘평범한 마안’이라 주장하는 마안의 능력은 대략 이러했다.
1. 마나의 새로운 저장고 - 마나 저장량이 대폭 늘어난다.
2. 추가적인 마법회로 - 말 그대로 눈의 형태를 한 마법회로의 추가다.
3. 영구적인 암시(暗視) - 어둠을 꿰뚫어 보는 암시 주문이 패시브화 된다.
4. 새로운 시야 - 마나 그 자체를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된다.
첫 번째와 두 번째 기능밖에 없는 진짜 ‘평범한 마안’조차 얻으려면 돈이 어마어마하게 든다.
재료값에 제작비용, 수술 비용, 이런저런 리크스 비용까지 감안하면 억 단위가 깨지는 건 일도 아닐 정도였다.
그런데 티룬드 대공이 준비해 준 마안은 무려 추가 기능이 두 가지나 더 붙어 있으니, 몇 배의 돈을 내도 얻기 힘든 기연의 산물이라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또 하나…….”
심지어 그게 끝이 아니었다.
워낙 귀족적인 인물이라 그런 걸까?
받은 만큼 돌려주려는 대공의 집착은 그야말로 ‘귀족적’이었다.
그래서 기분이 나쁘냐면… 당연히 아니었다.
“마안 안에 작은 수수께끼 하나를 숨겨 놨다. 지금의 너는 그게 무엇인지도 알아보지 못하겠지만, 마법사로서 성장하다 보면 내가 숨긴 게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더 성장하고 성장한다면 그것을 해석할 수도 있겠지.”
“마지막 선물이 뭔지는 문제를 풀어서 알아서 알아내라, 이런 말씀이시군요. 꽤… 마법사다운 선물이군요.”
“어쨌든 나도 마법사라는 소리겠지.”
대공이 손을 내밀었다.
“어떻게 할 거지? 나는 충분한 설명을 했으니, 이제 결정을 내릴 시간이다.”
후우. 심호흡을 한 도진은 당당하게 티룬드 대공을 응시했다.
“분명 마법사는 신중해야 하지만, 동시에 과감하기도 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받겠습니다.”
대공의 손 위에 놓여 있던 마안의 코드가 도진의 왼쪽 눈으로 날아가 흡수됐다.
“이 눈에 내가 붙인 이름은 「적야(寂夜)」다.”
고요한 밤.
영원히 어두운 밤의 귀족에게 아주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마안 「적야(寂夜)」의 코드가 입력되었습니다.]
도진의 눈이 잠시 붉은 기운에 휩싸이는가 싶더니, 새까맣게 침잠했다.
빛 하나 들지 않는 심해처럼 묵직한 어둠이 도진의 왼쪽 눈에 자리 잡았다.
도진이 눈을 깜빡여 봤다.
약간의 위화감과 뻑뻑함이 느껴졌다.
그때.
[새롭게 입력된 코드에 암호화 된 코드가 추가로 발견되었습니다.]
[암호화 된 코드 분석 작업을 시작합니다.]
진리의 서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도진의 눈에만 보이는 도식들이 어지럽게 떠다니며 해체되고 분석되었다.
[정보 분석 완료.]
그 끝에, 어지럽게 떠다니던 조각들이 하나로 합쳐져 하나의 주문을 이루었다.
[고유 마법 「착취의 쐐기」가 진리의 서에 기록됩니다.]
그것은 대마법사 카르네스 티룬드가 만들어 낸 그의 고유 마법 중 하나인 「착취의 쐐기」였다.
‘마지막 선물이란 게 이거였어……?’
허공에 뜬 메시지와 대공을 번갈아보는 도진은 얼떨떨함을 숨기기 힘들었다.
그런 그에게 대공이 말했다.
“제대로 자리 잡은 것 같군. 그래도 당분간은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릴 거다. 거기에 숨겨 놓은 수수께끼를 푸는 데는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거고. 어쩌면 재능의 벽에 가로막혀 영원히 풀지 못할 수도 있겠지.”
그런 그를 향해 도진이 물었다.
“그 수수께끼가 혹시 이걸 말씀하시는 건가요?”
손에, 새롭게 얻은 주문을 띄우며.
검붉게 요동치는 피로 만들어진 쐐기였다.
그것을 본 티룬드 대공이 보인 반응은.
“말도 안 돼!”
경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