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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55화 (56/271)

55

「흑룡의 송곳니 단검」은 공격력과 마법 공격력을 동시에 올려 준다.

현격한 레벨 차이에도 불구하고 단검이 헥슬리의 피부를 단검이 뚫고 들어갈 수 있었던 건 그런 이유였다.

기껏해야 생채기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긁힌 상처에 불과하지만, 여기서는 ‘뚫렸다’는 현상 자체가 의미를 갖는다.

기본적으로 어떠한 존재든 마법에 대한 저항력은 ‘밖’에서 들어오는 것보다 ‘안’에서 터지는 것에 더욱 취약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원거리에서 쏘는 것보다 눈곱만큼이라도 안쪽에 꽂아 넣고 발동하는 마법이 더 먹히기 쉽다는 소리다.

《흑룡의 독니》

공격과 방어.

환경과 상황.

복잡한 계산식이 돌아간다.

찰나에 불과한 시간 동안 도진의 행위는 LOST의 법칙 아래서 평가받았다.

그리고 그 결과는.

“크아악!”

헥슬리의 고통에 찬 비명으로 판가름 났다.

성공했다.

현격한 레벨 차이를 넘어, 도진의 저주가 헥슬리에게 스며든 것이다.

헥슬리는 복부 안쪽에서 독사가 꿈틀대는 것 같은 통증에 잡고 있던 도진을 집어던졌다.

“이… 이……!”

잡아 죽인다. 저주고 뭐고 당장 저놈을 찢어 죽이지 않으면 분노로 뇌가 터져 버릴 것 같다.

헥슬리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를 생각하기에 앞서 자신이 던져 버린 도진을 죽이기 위해 고개를 치켜들었다.

“안녕. 잘 있어라, 사이비.”

하지만 도진은 적에게 복수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자신을 죽일 듯 노려보는 헥슬리에게 상큼한 미소를 선물하고는, 그대로 뒤로 몸을 날린 것이다.

당연하게도 헥슬리는 바로 움직여 따라붙으려 했지만, 도진에게 있어 헥슬리가 무엇을 하는지는 이제 별로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3분짜리 시한폭탄을 박아 넣는 것까지가 어려운 일이지, 그다음은 아주 쉬운 일들만 남아 있으니 말이다.

콰콰쾅.

중력에 몸을 맡기고 떨어지는 동시에 도진은 마석 폭탄을 설치한 위치를 향해 화염구를 날렸다.

콰콰콰쾅.

화염구가 터지면서 격발시킨 마석 폭탄이 폭발을 일으키고, 이어서 그 충격으로 다른 마석 폭탄이 터지며 연쇄적으로 폭발, 수로 중심부를 만신창이로 만들기 시작했다.

그래 봐야 철근 다리랑 사다리 등이 부서지는 정도지만, 그 정도로도 적의 발을 잠시 묶기엔 충분했다.

잠시면 된다. 자신과 엘더가 저 밑으로, 게걸스레 도시의 물을 삼켜 대는 검은 구멍 아래로 빠져들 시간만 벌 수 있으면.

“선생님!”

엘더의 찢어지는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그쪽을 볼 시간이 없었다.

대신 도진은 벽면을 바라보며, 그곳에 길게 늘어진 밧줄을 염동력으로 당겼다.

탁.

그것을 낚아챈 도진은 힘껏 밧줄을 당겼다.

“앗?”

줄과 연결된 것은 엘더였고, 그녀는 도진이 당기는 대로 끌려와 자유 낙하에 합류했다.

자신보다 조금 위쪽에서 떨어지는 엘더를 보며 도진은 웃었다.

‘됐어.’

적에게는 3분 후에 발동될 치명적인 시한폭탄을 심었다.

다리와 사다리를 부숨으로서 짧은 시간 안에 적이 엘더에게 도달할 경로를 차단했고.

엘더는 준비한 밧줄을 이용해 현 상황에서 가장 안전한 곳인, 물로 가득 차 있을 지하 깊은 곳으로 떨어뜨렸다.

저 위에서 분노에 미쳐 소리치는 사제가 짧은 시간에 물살을 타고 검은 구멍 아래로 사라질 엘더를 찾아내는 건 불가능한 일.

익사할 일 없는 엘더는 시간이 지나 회복될 것이고, 그러면 운명 퀘스트는 완료된다.

‘나는 죽겠지만…….’

다른 모든 건 이룰 수 있다.

도진은 선택한 것이다.

어차피 버텨 봐야 적에게 내어 줄 확률이 높은 목숨이라면, 차라리 수단으로 소모해 승리하기로.

첨벙 하고 물에 빠지는 감각, 이어서 거센 불살에 휩쓸리는 감각이 도진을 덮쳤다.

숨을 컨트롤할 새도 없이 코와 입으로 대량의 물이 쏟아져 들어온다.

폐에 물이 차는 끔찍한 느낌과 함께 도진의 의식이 꺼졌다.

* * *

허리에 밧줄을 묶는 도진을 보며 카린은 그가 무엇을 하나 궁금해하지 않았다.

그냥 무언가를 하나 보다, 하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도진이 마석 폭탄을 심는 걸 보고 있을 때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마찬가지로 뭔가를 하는구나, 하는 인식만 있었을 뿐.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로 인해 무슨 일이 생기든 다 괜찮으니까.

운 좋게 텅텅 빈 마음을 채워 줄 무언가를 찾으면 좋고, 결국 찾지 못하고 스러지면 그건 그것대로 좋으니까.

하지만 이건 괜찮지 않았다.

‘이건 아니에요. 이건… 안 돼요.’

그가 허리에 묶고 있던 밧줄이 지금 이런 쓰임을 가질 줄 몰랐다.

카린은 위험해져도 자신이 위험해질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도진은 그런 그녀의 예상을 전부 배신했다.

‘아까부터 하고 계신 모든 것들이 이걸 위해서였나요? 스스로를 희생해 저를 살리기 위한?’

도진이 카린의 이름을 묻지 않았듯 카린 또한 도진의 이름을 듣지 못했다.

조금 앞선 곳에서 거친 물살에 휩쓸려 이리저리 흔들리는 도진을 보며 카린이 느끼는 감정은 공포였다.

저 사람이 죽을까 봐. 저 사람의 시체조차 찾지 못하게 될까 봐. 저 사람의 이름을 영원히 모른 채 살아야 할까 봐.

‘움직여… 제발 움직여.’

이런 물살 따위, 뱀파이어 엘더인 그녀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평소였다면 눈 깜짝할 새에 눈앞에 있는 사람에게 닿았을 것이고, 순식간에 안전한 장소까지 옮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아니었다. 하필이면 지금 그게 안 된다. 가장 간절한 이때에.

‘멍청이!’

카린은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공국을 나선 그 순간부터 한 모든 선택이 후회됐다.

그것들이 모여 지금 상황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럴수록 새롭게 싹트기 시작한 새싹 같은 카린의 마음은 속절없이 도진을 향해 쏟아졌다.

피어나고 커지고 넘쳐흘러 쏟아진다.

‘안 돼!’

물길이 갈리는 지점이 나왔다.

이대로는 도진과 흘러가는 길이 달라질 수도 있는 상황.

카린은 필사적으로 몸을 움직여 보려 했다.

그런 그녀의 노력이 움직일 리 없는 몸을 아주 조금 움직였다.

그래 봐야 꿈틀거리는 수준에 불과했으나 그것이 기적을 불러왔다.

휘리릭.

도진 근처에서 나풀거리던 밧줄이 그의 몸과 뒤엉킨 것이었다.

그렇게 연결된 채 도진과 카린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 * *

카린과 도진이 도착한 곳은 작은 공터였다.

아주 오랜 세월 물살에 깎여 나간 끝에 만들어진 공간일 터였다.

그곳에서 카린은 도진에게 입을 맞추고 있었다.

“후웁, 후웁, 퉤퉤.”

책에서 읽은 방법을 토대로 인공호흡을 하고 있는 것이었다.

다만 움직일 수 있는 게 목 위쪽뿐이라는 게 문제였다.

도진에게 다가갈 때도 턱으로 기어야 했고, 도진을 뒤집는 것도 머리로 밀어서 억지로 해야 했다.

흉부 압박도 턱으로 도진의 몸을 기어오르다시피 하여 머리로 쿵쿵 박는 이상한 자세가 되었다.

숨을 불어넣는 것조차 각도가 맞지 않아 힘이 들었다.

그럼에도 카린은 열심히 책에서 얻은 지식을 끄집어내어 할 수 있는 걸 했다.

“쿨럭, 쿨럭…….”

“선생님!”

그 노력을 세상이 가상하게 생각한 걸까. 도진이 힘없는 기침과 함께 물을 토해 냈다.

카린은 반색하여 도진을 보았다.

하지만 의식은 여전히 돌아오지 않은 상태였다.

그뿐 아니라 거센 물살에 휩쓸리며 여기저기 충돌하며 입은 부상으로 인해 상태가 매우 좋지 않았다.

겨우 찾은 숨소리와 심장박동은 언제 멈추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미약했고, 점차 미약해져 갔다.

‘조금만, 조금만 더 버텨 주세요. 제가 회복되면 꼭 구해 드릴게요.’

도진의 가슴에 고개를 묻은 채 카린은 그렇게 빌었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뱀파이어는 낼 수 없는 사람의 소리.

도진의 심장소리가 카린에게 새겨진다.

시간이 흘렀다.

카린은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게 됐다.

두근… 두근… 두근…….

도진의 심장이 뛰는 간격이 조금 벌어졌다.

카린의 발이 조금 움직였다.

두근… 두근… 두근…….

그에 비례해 도진의 박동은 더 약해졌다.

점점 회복되는 자신과 점점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도진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인지하며, 카린은 피와 영혼이 함께 말라 가는 걸 느꼈다.

‘이분이 죽으면… 전 지금보다도 더 소멸을 바라게 될 거예요. 하지만… 죽을 수 없게 되겠죠. 한없이 가볍게 여겼던 목숨이지만, 이분이 죽는 그 순간 제 목숨은 한없이 무거워지겠죠.’

이분의 목숨이 제 목숨의 무게에 더해질 테니.

새롭게 자각하고 배우는 감정은 하나같이 다시 모르고 싶은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 끝에 피어난 것은, 같은 무게의 증오였다.

도진을 이렇게 만든 새하얀 옷을 입고 있던 사제를 향한 증오.

‘아마도 절 속였던 그분이겠죠.’

얼굴과 목소리는 다르지만, 카린은 생물의 몸이 내는 소리로 상대를 구분할 수 있었다.

심장 뛰는 소리가 둘이나 있을 확률보다는 얼굴과 목소리를 위장했을 확률이 훨씬 높았다.

‘절대 놓치지 않아요. 이 세상 끝까지 따라가서라도 이 일에 대한 책임을 물을 거예요.’

카린은 다짐했다. 이 세상에 살아 숨 쉬는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심장 박동을 확인하는 한이 있어도.

이름조차 묻지 못한 사람의 복수를 하겠다고.

첨벙.

그때, 도진의 심장 소리에 다른 소리가 끼어들었다.

“벌레 같은 연놈들이 여기에 있었구나아…….”

기쁨에 절어 희열하는 헥슬리였다.

* * *

저주는 성공적으로 스며들었으나 결정적으로 대미지가 부족했다.

3분 동안 이어진 도트 대미지와 그 3배에 달하는 대미지도 헥슬리를 죽이지 못한 것이다.

도진이 구태여 엘더를 끌고 물살에 몸을 맡긴 것도 그 가능성을 염두에 두었기에 벌인 일이었다.

도트딜 끝에 폭딜이 들어가기까지의 3분을 버티는 것도 문제지만, 그러고도 적이 죽지 않으면 더 문제이기에.

하지만 적의 생존 가능성까지 염두에 둔 도진도 예상하지 못한 게 있었으니, 바로 헥슬리의 광기와 집착이었다.

아무리 미친놈이라 해도 밑바닥이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를 시꺼먼 구멍으로 뛰어들면서까지 추적을 할 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헥슬리는 저주로 인해 입은 피해가 어느 정도 회복되자마자 도진을 쫓기 위해 구멍으로 뛰어들었고, 지금 이렇게 도진과 카린이 있는 곳까지 도달했다.

“흐흐흐흐. 역시 위대한 섭리의 뜻을 거스르는 짓을 한 놈의 몰골답구나. 꼭 물에 젖어 죽어 있는 곤충 같아. 하지만, 너는 그렇게 편히 죽을 자격이 없어. 그래, 일단 팔다리를 자른 뒤에 이곳에 두고 가 주마. 눈도 파내야지. 고막도 그렇고. 의식이 회복되어도 넌 자신이 어떤 상황에 놓인지도 모를 거야. 그렇게 천천히 말라 죽어가겠지. 그래, 그게 좋겠어.”

아주 어울리는 비루한 죽음이야.

희게 번뜩이는 눈으로 도진을 보던 헥슬리는 뒤늦게 카린을 발견했다.

그녀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헥슬리를 노려보고 있었다.

“후후후, 보아하니 아직은 제 몸 하나 못 가누는 신세에서 벗어나지 못한 모양이군. 조금만 기다려라. 널 위한 성수와 금제의 재료는 흘러넘치게 들고 다니고 있으니. 밖으로 나가는 방법은 조금 생각해 봐야겠지만, 위대한 섭리를 위해 필요한 귀한 재료를 이런 곳에 두고 갈 수는 없는 일이지.”

헥슬리는 그렇게 말하며 걸어갔다.

“아, 안 돼!”

카린은 도진의 몸 위에 제 몸을 포갰다.

부질없는 일이란 걸 알면서도 할 수밖에 없는 발악.

길어야 몇십 분. 짧으면 몇 분만 있으면 뱀파이어 엘더로서의 힘을 되찾을 텐데.

그렇게 생각하며 카린은 눈을 꼭 감았다.

그 순간.

“하아…….”

아주 익숙한 한숨 소리가 카린의 귓가를 간질였다.

카린이 아니면 듣기 힘들 정도로 작은 소리에는 길고 긴 세월이 남긴 권태가 묻어났다.

이건 ‘아버지’의 소리였다.

긴장이 탁 풀린 카린은 눈을 뜨고 소리가 난 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있었다. 헥슬리의 뒤에, 검은 안개를 두른 그림자 공국의 주인이.

그를 보며 카린은 평생 처음 불러 보는 호칭을 입에 담았다.

“아빠아……!”

대공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헥슬리는 카린이 두려움에 젖어 하는 말이라 착각하고는 박장대소했다.

“피 빠는 덩치 큰 모기 같은 네놈들도 죽음 앞에서는 애미, 애비를 찾는구나! 역겹구나, 역겨-”

픽.

손가락질하던 헥슬리의 손목에 빗금이 갔다.

픽픽픽.

이어서 계속 조금씩 잘려 나가는 그의 팔.

뒤늦은 통증에 헥슬리가 못난 비명을 내질렀으나 그것도 잠시였다.

피피피피핏-

셀 수 없는 소리가 나고, 헥슬리는 순식간에 팔과 다리를 잃은 채 바닥을 뒹구는 신세가 됐다.

그런 그는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폐부에서 강제로 역류한 피가 소리를 낼 권리를 박탈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산소가 부족해 죽음에 이르는 일은 없었다.

대마법사 카르네스 티룬드 대공 앞에서는 죽는 것조차 그의 허락이 필요한 일이었다.

티룬드 대공은 자신을 바라보는 딸의 눈을 보며 생각했다.

‘저런 눈을 할 수 있는 아이였었지…….’

뱀파이어가 되기 전.

뛰는 심장을 가졌던 아이는 정원에서 죽은 새를 소중히 품고 와서 저런 눈을 하고는 했었다.

“아버지… 이분을, 이분을 살려 주세요…….”

그래. 너는 그때도 그런 말을 하고는 했었지.

그러면 나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죽은 생명을 다시 살릴 수는 없다. 그게 이 세상의 섭리이자 법칙이다.’라고.

그리고 우는 너를 보며 어찌 달래야 할지 몰라 쩔쩔맸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구나.

“그래도 다행히… 이번에는 달랠 걱정은 덜 수 있겠구나.”

그래, 다행이었다.

이번에 딸이 주워 온 동물은 아직 죽지 않은 상태였다.

“돌아가자.”

티룬드 대공의 몸에서 검은 안개가 퍼졌다.

안개는 도진과 카린은 물론이고, 사는 것과 죽는 것을 동시에 박탈당한 헥슬리까지 감쌌다.

그리고 안개는 감싼 모든 것을 동반하여 증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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