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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랭커의 뉴비 생활-24화 (25/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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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에 돌아와서도 도진이 쉴 틈은 없었다.

숨어 있는 마을 사람들에게 상황이 끝났음을 알려야 했고.

굴 안에 갇혀 있는 소피와 그 가족들도 꺼내 줘야 했다.

이후로도 마을 사람들과 함께 다친 사람들을 구해야 했고 말이다.

그 덕에 도진은 해가 중천에 뜬 정오가 되어서야 바닥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을 수 있었다.

적당한 터에 자리를 잡고, 도진은 마을 전경을 바라봤다.

그러고 보니 밝은 햇빛 아래에서 굴락 마을을 보는 건 처음이다.

솔직히 썩 보기 좋진 않았다.

탈 만한 건 문짝이고 지붕이고 다 뜯어낸 데다 개미들이 2차로 부수고 무너뜨린 탓에 멀쩡한 건물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죽은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게 기적이라고 해야 하겠지만… 그 사실에 기뻐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폭격으로 폐허가 된 삶의 터전을 보며 ‘그래도 폭격에 안 죽어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문 법이니까.

그나저나 왜 퀘스트 완료가 안 되는 거지? 혹시 다른 조건이라도 있는 건가?

“마법사 오빠.”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옆에서 불쑥 익숙한 얼굴이 튀어나왔다.

소피였다.

입술을 빼죽 내밀고, 눈이 축 처진 모습이 마치 비에 젖은 강아지 같다.

우울해 보이는 모습에 도진은 소피의 머리카락을 흩트렸다.

또래보다 약간 작은 체구를 가진 소녀는 도진의 손길에 옅게 웃었다.

“엄마랑 아빠는?”

“…다친 사람들 도와주고 있어요.”

마을이 이렇게 됐으니 마음이 좋을 수가 없겠지.

‘사탕이라도 있으면 좋을 텐데.’

도진이 인벤토리에 있는 거라고는 퍽퍽한 육포와 마법사용 연초뿐이라는 사실을 못내 아쉬워하며 육포라도 건네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소피가 그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오빠.”

“응?”

“내 진짜 이름 알려 줄까요?”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진짜 이름이라니?

눈에 의문을 담는 도진을 본 소피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 진짜 이름 말이에요.”

“진짜 이름이 따로 있어?”

이번에도 고개를 주억거린 소피가 자신의 사연을 풀어놨다.

“엄마랑 아빠가 그랬는데, 내가 어렸을 때 많이 아팠대요. 그래서 사신님이 날 데려가지 못하게 다른 이름을 불러야 한댔어요.”

말하는 소피의 표정은 뭔가 결연한 결심을 한 사람처럼 보였다.

하기야 미신이건 뭐건 간에 그 미신을 믿는 사람 입장에서는 큰 결심일 것이다.

알라를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돼지고기가 그저 맛난 음식이지만, 알라를 믿는 사람에게는 돼지고기가 지옥행 티켓인 것과 비슷한 맥락으로.

그래서 도진은 말했다.

불안을 감수하면서까지 알려 줄 필요는 없다고.

이에 소피는 이렇게 대답했다.

“싫어. 알려 줄 거야.”

말하며, 눈을 마주친 소피가 배시시 웃었다.

“괜찮겠어?”

“응, 괜찮아요.”

크게 심호흡을 한 소피는 자신의 진짜 이름을 밝혔다.

“내 진짜 이름은… 디아나. 디아나예요.”

소피가 속삭이듯 밝힌 이름.

그 이름을 들은 도진의 표정이 굳었다.

‘디아나……?’

알고 있는 이름이다.

심지어 도진은 전생에 몇 번이나 이 이름을 가진 사람과 마주쳤었다.

새까만 머리카락과 증오와 공허밖에 남지 않은 잿빛 눈 그리고 찢어진 입가와 새하얀 목을 가로로 가르는 짙은 흉터를 가진 그녀의 이름이 디아나였다.

다른 이름은… 검귀(劍鬼).

돈이라면 뭐든 하는 용병에서 귀족 살해자로, 귀족 살해자에서 국가 전복을 노리는 테러리스트로, 종국에는 아예 인류의 적으로 돌아섰던 인물.

아무리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의 이야기라지만, 그걸 감안해도 이 소녀와 미래의 검귀는 닮은 구석이 없었다.

그래서 든 생각은 동명이인의 가능성.

하지만 도진은 떠올리는 동시에 이 가능성을 부정했다.

떨리는 손으로 무디고 짧은 칼을 들고 있던 이 소녀와 그 앞에 베여 죽어 있던 굴락 앤트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 재능이 흔할 리가 없어. 거기다 이름까지 겹칠 정도면… 동일인물이라고 보는 게 맞겠지.’

자신이 알고 있는 검귀와 눈앞의 아이가 동일인이라는 걸 인정한 도진은 자연스럽게 이번 퀘스트의 진짜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구하라는 건 죽을 위기에서 구하라는 게 아니었구나. 이 애가 불행에 빠지는 걸 막으라는 뜻이었던 거야.’

퀘스트 내용에도 적혀 있었다.

닥쳐올 불행을 막으라고.

그건 소피, 아니 디아나가 검귀로 자라지 않게끔 하라는 소리였다.

그것을 도진이 깨달은 순간.

[퀘스트 완료!]

[10,000골드를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아직 피어나지 않은 가능성의 아이를 불행으로부터 구했습니다.]

[‘운명에 검이 새겨진 소녀’ 디아나와 인연이 이어집니다.]

[인연이 이어짐으로 인해 디아나의 호감도가 70으로 상승합니다.]

운명 등급 퀘스트가 완료되었다.

퀘스트 등급이 등급인 만큼 보상은 확실했다.

먼저 엄청난 경험치를 얻었다.

밤새도록 굴락 앤트를 학살하고도 36에 머물러 있던 레벨이 순식간에 40까지 올랐다.

정상적으로 굴락 앤트를 잡아서 레벨을 올리려 했다면 열흘이 넘게 걸렸을 걸 하룻밤으로 단축한 셈이다.

다음으로는 돈.

히든 던전을 공략했을 때 도진이 손에 쥔 골드가 대략 2,000골드.

그런데 지금 얻은 골드는 무려 10,000골드다.

그리고 운명 등급 퀘스트를 품고 있을 만큼 중요한 네임드 NPC와의 인연 연결까지 됐다.

도진은 이런 식으로 거미줄처럼 얽히는 NPC와의 관계와 인연이 나중에 큰 퀘스트를 얻을 기회로 돌아온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정해져 있는 운명을 뒤틀었습니다.]

[위대한 업적 <운명을 뒤튼 자>의 달성 조건 중 극히 일부가 충족되었습니다.]

[부분 달성 보상으로 ‘랜덤 특성 선택 포인트’를 1포인트 획득했습니다.]

거기다 당장 눈에 띄는 성장을 할 수 있는 보상까지 들어왔다.

‘랜덤 특성 포인트도 아니고 선택 포인트라니. 괜히 운명 퀘스트를 로또라고 하는 게 아니구나.’

도진은 새어 나오려는 웃음을 필사적으로 막았다.

세상 심각한 얼굴을 한 디아나를 앞에 두고 헤실헤실 웃을 수는 없지 않은가.

도진은 ‘랜덤 특성 선택 포인트’라는 글자를 몇 초 더 바라보다가 힘겹게 눈을 뗐다.

‘나중에. 나중에 하자.’

마음 같아서는 당장이라도 굴려서 어떤 특성들이 튀어나오나 보고 싶었지만, 참아야 했다.

손에 쥔 특성 뽑기 가챠야 언제든 돌릴 수 있지만, 인맥 관리에는 최적의 타이밍이란 게 존재하는 법이다.

도진은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진지한 얼굴을 한 소녀의 머리를 쓸어 줬다.

“디아나.”

그러면서 익숙하면서 낯선 이름을 발음해 봤다.

신기한 기분이었다.

전생에 이 이름을 부를 때는 고통과 신음에 젖은, 적의 가득한 목소리로 불렀었는데.

그리고 그때의 디아나는 아무렇지도 않게 날 베었었지.

떠오른 과거에 쓰게 웃은 도진은 어린 디아나를 보며 물었다.

“사신이 데려가지 못하게 이름을 숨겨야 한다면서. 무섭지 않아?”

작은 머리가 좌우로 흔들린다.

무섭지 않다는 대답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고개를 젓는 디아나의 눈에선 숨기지 못한 두려움이 묻어나왔다.

도진은 그것을 지워 주기 위해 인벤토리에서 적당한 장신구 하나를 꺼냈다.

음모를 꾸민 놈들을 개미 먹이로 던져 주고 돌아오는 길에 챙긴, 굴락 앤트들이 떨어뜨린 아이템 중 하나였다.

“진짜 이름을 알려 준 대신 부적을 줄게. 이걸 목에 걸고 있으면 네 진짜 이름을 아는 사신이 나타나도 널 데려가지 못할 거야.”

디아나는 동그란 눈으로 파랗게 빛나는 보석을 바라봤다.

마나를 품어 더욱 선명히 아롱지는 보석을.

“정말… 이거 주는 거예요? 엄청 비싼 거 같은데…….”

지나치게 귀해 보이는 선물에 가난하게 태어난 소녀가 주눅 들어 묻는다.

이에 도진은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네가 나한테 준 게 훨씬 더 많으니까.”

“……?”

내가 뭘 준 거지? 큼지막한 눈이 이리저리 움직인다.

그러나 곧 그녀의 눈은 반짝이는 보석에 고정되었다.

은색 목줄에 달린 푸른 보석을 이리저리 굴려 보던 디아나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나 이거 절대 안 잃어버릴게요!”

“아, 그리고.”

말하며, 도진은 단검 하나를 추가로 꺼내어 건넸다.

단검이라고는 해도 디아나의 작은 체구를 감안하면 거의 짧은 한손검 수준이었다.

열다섯 소녀에게 주기에는 살벌한 선물이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각성해서 그런가? 칼을 보자마자 눈빛이 변하네.’

운명에 검이 새겨져 있다는 표현에 걸맞게 단검을 받아 든 디아나는 순간적으로 예기를 내비쳤다.

“어……?”

자신도 모르게 뿜어낸 예기에 놀란 걸까.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온 디아나는 어리둥절한 눈으로 자신의 손을 바라봤다.

그러다 도진이 자신을 ‘디아나’ 하고 부르자 한 박자 느리게 고개를 든다.

“어? 네?”

“그때 커다란 개미를 쓰러뜨린 거, 너였지?”

“…네. 엄마랑 아빠 지키려고 그랬어요. 그런데 어떻게 한 건지… 잘 기억이 안 나요.”

디아나는 잠시 입을 다물고 뜸을 들였다.

그러다 도진에게 물었다.

“오빠, 나도 오빠처럼 세질 수 있어요?”

묻는 말에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나보다 더 강해질 수 있어.”

실제로 난 너한테 처참하게 발린 적도 있거든.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근거 있는 말이었다.

“…거짓말. 나 머리 나쁘단 말이에요. 글도 못 읽고. 산수도 못 해요. 엄마가 마법사는 천재만 하는 거랬는데.”

아이의 세계는 좁다.

어린 디아나가 보고 듣고 경험한,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도진.

그런 도진이 마법사다.

그래서 디아나는 마법사가 아니면 강해질 수 없다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면 마법사가 아니라 검사가 되면 되지.”

그런 아이에게 도진은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

성공이 보장된, 당첨된 복권을 긁어 나가는 길을.

“검… 사……?”

“디아나. 내가 볼 때 너는 검의 천재야. 제대로 검술을 배워 본 적도 없으면서 그냥 짐승도 아니고 굴랙 앤트를 베어 죽인 것만 봐도 알 수 있어.”

디아나의 단순한 사고회로는 도진의 말을 대충 이렇게 받아들였다.

디아나의 세상에서 가장 센 사람은 눈앞의 마법사 오빠.

그런 마법사 오빠의 말은 의심할 여지없는 진실.

그럼… 내가 정말 천재 검사……?

여기에 맹목적인 소녀의 호감도까지 더해지니, 디아나의 눈은 초롱초롱하게 변했다.

“정말… 정말 내가 그렇게 대단한 일을 한 거예요?”

“많이 대단한 일이지.”

“저, 정말 열심히 연습하면 오빠만큼 세질 수 있어요?”

끄덕이는 도진을 본 디아나는 단검을 꽉 쥐었다.

그런 그녀에게 도진은 문득 떠오른 질문을 던졌다.

“디아나, 넌 왜 강해지고 싶은 거야?”

단검을 꽉 쥐고 무언가를 생각하던 디아나가 고개를 들었다.

“나… 굴에서 나왔을 때 엄청 무서웠어요. 살아남았는데도 무서웠어요. 마을 사람들 중에 누구 하나라도 죽었을까 봐. 그런 경험,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아요.”

착한 아이였구나. 너는.

“착하네.”

그걸 다 잃어서 그렇게 됐었구나. 너는.

아무도 안 죽게 해 줘서 고맙다며, 활짝 웃는 디아나의 얼굴 위로 죽는 순간에도 무덤덤하던 한 여자의 얼굴이 겹쳤다.

누군가의 운명이 바뀌는 순간을 바라보는 건 꽤 묘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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