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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사라진 뒤.
히든 던전 공략 성공을 알리는 메시지 아래로, 그에 따르는 보상이 나열되어 있었다.
도진은 회복을 위해 힐링 포션과 마나 포션을 한 병씩 마시며, 그것을 읽어 내려갔다.
[히든 던전 <악에 잠식된 마법공방>을 최초로 공략하였습니다.]
[히든 던전 <악에 잠식된 마법공방>을 완벽하게 공략하였습니다.]
최초 발견자가 곧 최초 공략자가 되리라는 법은 없다.
같은 던전이라 해도 공략하는 과정이 어떤지에 따라 공략의 결과가 변하기도 하고.
그런 면에서 도진의 <악에 잠식된 마법공방> 공략은 완벽했다.
최초의 발견자이면서 최초의 공략자가 됐다.
이것만으로도 보상에 가산점이 붙는 점이다.
한데 도진은 거기에 더해 공략 과정과 결과 모두 만점이었다.
보상에 붙는 가산점이 곱절로 늘어나는 건 당연했다.
[<악령 퇴치> 업적 달성]
[업적 보상: 보너스 포인트 +5]
[퍼스트 클리어 보너스로 획득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퍼펙트 클리어 보너스로 획득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
업적 달성으로 보너스 포인트를 얻었고, 경험치도 어마어마하게 얻었다.
무려 35레벨이 됐으니, 순식간에 3레벨이 오른 셈이다.
평범하게 사냥터를 전전하는 유저들이 32에서 35가 되려면 열흘은 식음을 전폐하고 사냥을 해야 한다.
고생은 했지만, 이 정도면 경험치만 따져도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보상이었다.
심지어 보상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LOST는 ‘최초’를 매우 대우해 주는 게임.
이런 점은 던전 공략에도 당연히 적용돼서, 최초 공략에 한해 해당 던전에서 획득 가능한 아이템 중 최고 등급 아이템이 확정적으로 1개 나온다.
한 번 공략되어 일반 인스턴스 던전으로 바뀐 뒤에는 뺑뺑이를 10번, 100번 돌아도 구경하기 힘들지 모를 아이템을 확정적으로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30레벨대 던전이라고 해도 퍼클 보상은 A급은 주겠지.’
기대하며, 도진은 마법진이 있던 자리에 떨어진 아이템을 확인하기 위해 다가갔다.
그러자 때깔부터 남다른, 푸른빛을 발하는 아이템이 무려 두 개나 떨어져 있었다.
하나는 퍼스트 클리어 보너스고, 하나는 아마도 퍼펙트 클리어 보너스일 터였다.
[검게 물든 로브]
등급: B
착용 제한: 레벨 35│지능 120
[마나 오염도가 높은 곳에서 활동하기 위해 만들어진 로브.
꽤나 준수한 수준의 물리 방어 각인과 마법 방어 각인이 새겨져 있다.]
물리 방어력 +30
마법 방어력 +30
지능 +10
하나는 마법사용 로브였다.
보너스 스탯은 그저 그런 수준이지만, 방어 능력치가 높게 붙어 있었다.
초보 마법사의 처참한 방어력을 보충하기 위해서 마법사용 방어구를 포기하고 일반적인 갑옷을 억지로 입고 다니는 걸 생각하면 정말 유용한 장비였다.
‘망토’ 쪽에서 생존 스탯을 챙기면 안쪽에 입는 방어구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대충 쓰다 팔아도 꽤 짭짤하겠어.’
만족하며 로브를 챙긴 도진은 다음 아이템을 확인했다.
이번에는 날에 검붉은 피가 굳어 있는 검이었다.
[수상한 의식용 검]
등급: A
착용 제한: 레벨 35│지능 135
[산 제물을 처형하기 위해 만들어진 의식용 검.
평범한 검이었으나 수많은 희생자들의 원념으로 마법적인 힘이 깃들었다.
하지만 그에 상응하는 수준의 저주도 함께 깃들었으니, 사용에 있어 주의를 해야 할 것 같다.]
마법 공격력 +45
지능 +45
물리 공격력 -30
체력 –30
와우.
검을 집어 들고 제원을 확인한 도진은 입 모양으로 감탄했다.
마법 공격력과 지능의 수치가 비슷한 레벨에 구할 수 있는 무기에 비해 거의 2배 가까이 된다.
역시 A등급이라고 해도 좋을 수치였다.
다만 올라가는 능력치만큼이나 페널티 또한 어마어마하긴 하지만, 온갖 곳에서 보너스 포인트를 빨아먹은 덕에 웬만한 전사보다 체력이 높은 도진에게는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페널티였다.
도진
레벨: 35
클래스: 진리의 서
근력: 14
민첩: 18
체력: 82
지능: 197
스킬: ( 1 ) [열기]
특성: ( 1 ) [열기]
끼고 있던 장비가 지능은 고사하고 마법 공격력조차 겨우 10밖에 안 올려주는 싸구려 무기인 데다 처음에 관문에서 받은 초보자용 방어구 세트였던지라 장비 교체에 따른 체감이 엄청났다.
‘이 두 개 말고는 딱히 특별한 게 없네.’
특별한 게 없다 해도 그 외의 아이템들이 가치가 없는 건 아니었다.
돈 되는 아이템인 마석을 비롯해 자잘한 것들을 합치면 대충 잡아도 1,000골드는 넘게 번 듯싶었다.
“후우, 일단 내가 챙길 건 다 챙긴 건가.”
전리품을 인벤토리에 전부 챙겨 넣은 도진은 고개를 돌려 마법진이 있던 곳 반대편에 있는 통로를 바라봤다.
<악에 잠식된 마법공방>의 주인이 연구실로 사용하던 공간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사실상 이번 히든 던전 공략의 마지막 보상들이 있는 곳이라 할 수 있지만, 도진은 바로 통로로 향하지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저긴 같이 들어가야겠지?’
도진에게도 최소한의 양심은 있었다.
시살라도 함께 고생한 만큼 그녀도 함께 데려갈 생각이었다.
도진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애써 무시하고 있긴 했지만, 지속적으로 오르내리는 호감도를 볼 때 시살라의 상태가 심상치 않은 듯하다.
‘지금 오르락내리락하는 호감도를 감정 기복이라고 생각하면… 보자마자 화염구나 안 날아오면 다행이겠는데.’
생각하며 걷는데, 복도 저편에서 누군가가 바삐 달리는 소리가 났다.
“헉, 헉, 헉.”
가쁜 숨소리는 들어본 적 있는, 익숙한 여자의 것이었다.
뭐지? 어떻게 들어온 거지?
아, 던전 공략이 끝나서 문이 알아서 열린 거구나!
의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도출한 도진은 재빠르게 필요한 행동을 취했다.
빠르게 장착하고 있던, 새로 얻은 로브를 인벤토리에 쑤셔 넣었다.
그러고는 최대한 힘겨운 표정으로 벽을 짚고 비틀거리며 연기를 시작했다.
잠시 후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시살라의 걸음이 느려졌다.
또한 조심스러워졌다.
그녀도 이쪽의 기척을 느끼고 경계를 하고 있는 듯했다.
“쿨럭, 쿨럭.”
그런 그녀를 위해 도진은 일부러 목소리를 냈다.
악령이 아닌 자신임을 드러내기 위해.
그러자 앞에서 잦아들던 발소리가 다시 다급해졌다.
먼저 보인 것은 시살라가 만들었을 광구였다.
“도진, 도진이에요?”
이어 시살라의 목소리가 들렸고, 다음으로는 모퉁이를 돌아 나타나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시살라 오멘의 호감도가 3포인트 상승하여 36이 되었습니다.]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호감도가 상승했다.
생존한 모습을 보고, 순식간에 화가 녹은 모양이었다.
그것을 본 도진은 마음이 뭉클해졌다.
자신의 생존에 이만큼이나 안도하고 기뻐해 주는 걸 보고 어떻게…….
[시살라 오멘의 호감도가 5포인트 하락하여 31이 되었습니다.]
[시살라 오멘의 호감도가 5포인트 하락하여 26이 되었습니다.]
잠깐 기뻐하는가 싶더니, 시살라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멀쩡히 산 걸 확인하고 나니까 억눌렀던 화가 일시에 터져 버린 모양이었다.
‘좆 됐다.’
본능적으로 위기를 감지한 도진은.
“시살… 라…….”
기절을 택했다.
당연히 정말 기절한 건 아니었다.
그저 무사한 동료를 발견하고, 겨우 붙잡고 있던 의식의 끈을 놓아 버리는 연기를 한 것이었다.
“도, 도진!”
효과는 굉장했다.
막 화를 터뜨리려던 시살라가 걱정 가득한 얼굴로 달려왔다.
퍽 하는 소리가 울리도록 바닥에 머리통을 박은 보람이 있었다.
“도진, 도진! 정신 좀 차려 봐요!”
몸을 잡고 흔들어 대던 시살라는 직접 챙겨 온 듯한 힐링 포션을 마구잡이로 개봉해서 부으려다 바닥에 쏟아 버리더니, 떨리는 제 손을 부여잡고는 작게 욕설을 내뱉었다.
아주 작고 목소리마저 떨려 정확히 듣진 못했지만, 스스로를 자책하는 말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으윽……!”
결국 찔리는 양심을 견디지 못한 도진은 신음을 흘리며 눈을 떴다.
그러자마자 마주친 시살라의 눈은 격하게 떨리고 있었다.
눈물은 흐르지 않지만, 울고 있는 듯한 눈이다.
“왜…….”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한번 풀이 꺾인 분노는 힘을 잃은 듯했다.
구체적인 질문을 만들 기운도 잃은 듯 시살라는 짧은 말로 물었다.
“왜… 그랬어요?”
“…해야 하는 일이었으니까요.”
시살라의 아미가 찌푸려졌다.
“제가 묻는 게 그게 아니란 거 알잖아요. 그걸 왜 당신 혼자서 감당하려고-”
“난 죽어도 되지만, 시살라 당신은 안 되니까요.”
시살라의 눈이 커졌다.
원래도 큰 편인데, 이제는 굴러떨어지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난 리제니안이고, 당신은 아닙니다. 죽어도 다음이 있는 나와 달리 당신에게 죽음은 곧 마지막을 의미해요. 내 스스로가 무모하다고 판단한 짓까지 당신의 힘을 빌릴 수는 없었습니다.”
“이곳에 오기로 정했을 때부터 그 정도 각오는 했어요! 그리고, 리제니안에게도 죽음이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니잖아요. 리제니안도 영혼에 아물기 힘든 손상이 발생해요. 여기 온 지 얼마 안 된다고, 그런 것도 모르는 거예요?”
“알아요.”
칼 같은 대답에 말을 잃은 시살라에게 도진은 반복해 말했다.
“나도 알아요.”
“…….”
“죽음이 영혼에 새기는 상처는 언젠가 사라집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의 죽음으로 생기는 상처는 아물지 않습니다. 그걸 아니까, 혼자 간 거예요.”
기절은 연기였지만, 지금 한 말은 연기가 아니었다.
그런 도진의 마음은 시살라에게도 전해졌다.
누군가를 잃어 본 사람만 할 수 있는 말.
시살라는 저런 눈으로, 저런 말을 하는 사람을 탓할 수가 없었다.
“…이번이 마지막이에요. 앞으로 다시는 이런 데 안 올 거예요. 이런 심장 떨리는 경험을 또 하느니, 그냥 마탑에 평생 처박혀 있는 게 낫겠어.”
고개를 숙이고 힘없이 하는 말끝에, 시살라 오멘의 호감도가 올라갔다는 메시지가 따라붙었다.
* * *
“와…….”
방금 전까지 텐션이 낮아질 대로 낮아졌던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시살라의 눈은 초롱초롱했다.
그만큼 <악에 잠식된 마법공방>의 마지막 공간.
이곳의 주인이 기거했던 연구실은 마법사라면 침을 흘릴 만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여기 주인은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던 걸까요? 연구한 내용도 내용이지만, 갖춘 설비가 이렇게 대단하다니.”
그녀가 감탄하며 보는 것은 마법 실험을 위한 기자재들이었다.
한눈에 구분하기 힘든 각종 가루, 시약, 보석.
그것들을 가공, 합성, 조합하기 위한 장치.
시살라는 그것 하나하나를 조심스레 살피며 감탄을 연발했다.
그러는 사이 도진은 다른 부분을 살폈다.
바로 한쪽에 정리되어 꽂혀 있는 마법서들이었다.
대부분은 도진에게 쓸모없는, 정말 이런저런 마법에 대한 정보만 담긴 종이 쪼가리들이었다.
그러나 열심히 뒤진 끝에 도진은 2권의 마법 스킬북을 찾아낼 수 있었다.
‘최초 클리어 유저 전용 보상이 있는 곳인데 이런 게 없을 리가 없지.’
[3성 마법 스킬북: 대지의 창]
[3성 마법 스킬북: 돌풍]
두 권 모두 3성 마법이 담긴 스킬북이었다.
스킬북을 챙긴 뒤 혹시 다른 건 없는지 계속해서 뒤지고 있는데.
‘저건……?’
책장 사이에서 검은 연기가 흘러나오는 게 보였다.
살펴보니 가죽으로 만들어진 스크롤이었다.
그런데 스크롤치고는 형태가 특이했다.
얇은 가죽 수십 장을 이어 붙인 듯 여러 겹으로 접혀 있는, 한눈에 보아도 특별해 보이는 스크롤이었다.
아니, 스크롤보다는… 불완전한 마법 스킬북이었다.
이런 종류의 아이템은 형태가 워낙 제각각이라지만, 도진은 그런 제각각인 것들을 많이 봐 왔기에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마법적 현상 ‘악순환의 고리’가 담긴 불완전한 스킬북을 획득하였습니다.]
「원념이 증폭되고 순환하는 과정에서 악령들이 끝없이 태어나고 있다. 이것은 마법이 아니다. 그저 우연이 중첩되어 만들어진 마법적 현상이다. 제길, 내가 이런 기적에 가까운 현상을 온전히 기록이나 할 수 있을지-」
[기록은 여기에서 끊겼다. 아마도 술자 자신의 영혼마저 저주받은 스크롤에 마법적 현상을 박제하는 재료로써 사용된 듯하다.
희생양이 된 제물의 원념을 증폭하고 순환시켜 악령이 태어나는 현상을 마법적으로 해석하려는 시도가 담겨 있다.
사용 시 스킬 「악령 소환」을 확률적으로 획득할 수 있다.]
사용 제한 시간: 59초
폭발이 일어나기 전 완벽한 형태로 공략을 마치지 않으면 얻을 수 없었을 보상.
던전 안에 벌어진 마법적 현상을 ‘마법’으로 정리한 물건이었다.
다만 마법도 스킬북도 미완성이어서 스킬이 생기고 안 생기고는 운에 맡겨야 했다.
거기다 제한 시간도 겨우 1분밖에 주어지지 않아서, 생각을 정리하고 자시고 할 기회도 없었다.
‘불완전만 한 게 아니라 불안정까지 한 거면 좆 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안 쓰고 사라지게 만들 수는 없잖아.
머릿속에서 계산기를 두드릴 새도 없이 도진은 본능적으로 손에 쥐고 있는 미완성의 스킬북을 사용했다.
그러자 불완전한 스킬북이 거뭇거뭇한 안개로 흩어지며 복잡한 마법진을 만들었다.
뭉치다 흩어지고, 이어지다 끊어지고, 그야말로 두서없이 전개되는 이론과 공식들.
이건 비유하자면 강화 버튼을 누르고 보는 반짝임과 비슷한 거였다.
저 이면에서는 슬롯머신이 돌고 있고, 결과가 뜨는 창에 성공이냐 실패냐가 갈린다는 점에서.
[스킬 습득에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슬롯머신의 결과는 실패였다.
이런 종류의 아이템은 원래부터 확률이 극악하기로 유명했다.
도진 같은 베테랑 유저들은 그걸 잘 알기에 이런 경우에도 마인드 컨트롤을 잘하는 편… 은 개뿔.
‘빌어먹을 운빨 좆 망겜!’
도진은 다 꺼져 가는 불씨처럼 희미하게 흩어지는 검은 연기를 보며 눈을 부라렸다.
그때였다.
그의 마법회로가 희미한 황금빛을 발한 것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