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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릭터 생성을 마친 유저들이 모이는 튜토리얼 존.
그곳에서 눈을 뜬 도진에게 남색 제복을 차려입은 여자가 다가왔다.
“로스타니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곳은 경계를 넘어온 용사님들이 로스타니아에 빠르게 적응하는 것을 돕는 ‘관문’입니다. 그리고 저는 용사님께서 튜토리얼을 원활히 마치고 정식 모험가가 되실 수 있도록 도울 교관 라미라고 합니다.”
마치 군 장교처럼 딱딱하고 절도 있는 태도로 고개를 숙여 보인 라미는 한쪽을 가리켰다.
“거두절미하고 훈련 과정을 설명 드리겠습니다. 저곳에 가시면 훈련용 무기를 지급 받으실 수 있습니다. 원하는 병기를 골라 지급 받은 후 안내에 따라 훈련장으로 향하십시오. 그리고 그곳에 있는 훈련용 허수아비 3개체를 쓰러뜨리는 것이 용사님이 수행하셔야 할 첫 번째 훈련이자 ‘퀘스트’입니다.”
라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도진에게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퀘스트]
허수아비를 쓰러뜨려 보자!
등급: 튜토리얼
[초심자의 상대는 언제나 허수아비였다. 하지만 방심은 하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목표: 관문 훈련장의 훈련용 허수아비 3개체 처치
보상: 경험치, 초보자용 힐링 포션 3개, 초보자용 무기
도진의 초점이 허공에 고정된 것을 본 라미는 다음 말을 이었다.
“지금 눈앞에 뜬 것이 ‘퀘스트’입니다. 세계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는 자들에게 부여되는 임무죠. 그것을 해결하여 세계에 기여하면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습니다.”
혹시 다른 질문 있으십니까? 이어지는 질문에 도진은 짧게 답했다.
“아뇨, 충분합니다.”
질문이 있을 리가 있나.
이곳에서 얻을 지식이나 정보는 도진에게 무용했다.
도진이 지금 관심 있는 건 머릿속에 짜 놓은 성장 계획을 빠르게 실행하는 것뿐.
그러기 위해서는 튜토리얼을 빠르게 마쳐야 했다.
해서, 도진은 지체 없이 라미가 가리킨 방향으로 향했다.
“먼저 온 순서대로 무기 지급 받습니다! 앞사람 밀지 않습니다! 거기, 관문에서 소란을 일으키면 제재 받을 수 있습니다! 서로 멱살 놓으십시오!”
그런데 그곳은 이미 먼저 튜토리얼을 진행 중인 유저들로 붐비는 중이었다.
유저들은 서로 새치기를 했네, 안 했네 하며 멱살을 잡고 싸우고, 라미와 같은 복장을 한 NPC가 피곤에 절은 얼굴로 그들을 통제하려 애쓰고 있다.
차라리 ○○패드 100대 한정 99% 할인 판매라는 현수막이 걸려 있는 매장 앞이 더 질서 정연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나 때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보는 것만으로 아찔해지는 대혼란 앞에서 도진은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돌아가는 꼴을 보아 저곳에 뛰어들면 적어도 30분은 지나야 훈련용 무기 손잡이나마 잡아 볼 것 같았다.
‘어쩌지.’
조금이라도 빨리 튜토리얼을 마치고 싶은 도진은 고민했다.
좋은 방법이 없을까, 하고.
‘튜토리얼 순서가 분명히…….’
훈련용 무기를 받아 들고 허수아비를 쓰러뜨린다.
교관에게 사용한 훈련용 무기를 반납한다.
퀘스트 보상을 수령한다.
그 뒤에 이런저런 부가 설명을 듣고 마지막 시험인 시련의 숲 담당 교관에게 간다.
‘지금 받는 건 어차피 반납할 무기잖아?’
즉, 훈련용 무기는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라는 뜻.
목적은 어디까지나 허수아비를 처치하고 퀘스트를 완료하는 것이었다.
맨손으로도 훈련용 허수아비를 상대할 수만 있으면 굳이 시간 낭비를 해 가며 저 난리통에서 고생할 필요가 없다는 소리였다.
결론을 내린 도진은 걸음의 방향을 틀었다.
허수아비가 있는 훈련장으로 통하는 포탈 쪽으로.
그때.
“거두절미하고 훈련 과정을 설명 드리겠습니다. 저기에 보이는 병사들에게 가시면 훈련용 무기를 지급 받으실…….”
다른 훈련생에게 같은 대사를 반복하고 있던 라미의 눈에 도진이 걸려들었다.
그녀의 눈망울이 커진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맨손으로 허수아비가 설치된 훈련장으로 걸어가는, 아니 달려가는 미친놈이 보이는데 놀라지 않고 배기겠는가.
‘미, 미친!’
책임감 강한 교관인 라미는 반사적으로 달려가 도진을 붙잡았다.
“지금 무슨 짓을 하는 겁니까! 훈련용 무기를 지급 받지도 않고 훈련장으로 들어가려고 하다니! 이름이 허수아비라고 해도 마법으로 움직이는 일종의 골렘이란 말입니다!”
나무라는 투로 말하는 라미였지만, 정작 도진은 귀찮게 됐다는 표정이었다.
“꼭 무기를 받아야 저길 들어갈 수 있습니까?”
“당연하지 않습니까!”
라미는 어이가 없다는 듯 빽 소리쳤다.
“그럼 왜 붙잡았어요? 어차피 못 들어가는데.”
“그런 말이 아니라! 하아… 이렇게 맨몸으로 들어가면 큰일 납니다. 훈련장에 있는 허수아비들은 절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에요.”
“어쨌든 들어갈 수는 있다는 거네요. 그럼 그냥 들어가겠습니다. 교관님도 그랬잖아요. 클래스 선택할 때 참고할 수 있게 여러 무기를 써 보라고요.”
그랬다. 라미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그게 어떻게 맨손으로 저기에 들어가는 행동과 연결이 되겠는가.
하지만.
“저는 격투가나 무투가가 될 생각이거든요.”
도진은 그걸 연결시키고야 말았다.
“무, 무투가……?”
“예.”
“지금 그게 무슨 소립니까! 여기서는 무투가니 무도가니 하는 사람들도 다 무기를 사용합니다. 어서 줄 서서 너클 달라고 하십시오!”
라미가 손가락을 뻗어 도진이 탈출한 아비규환을 가리켰다.
얼마나 힘차게 뻗었는지 도진의 얼굴로 파악, 하고 바람이 불어올 정도였다.
그만큼 그녀가 답답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라미의 수명이 답답함으로 인해 줄든 말든 도진은 절대 저 아비규환 속에서 소중한 시간을 낭비할 생각이 없었다.
“사실 저는 무기를 손에 쥘 수 없습니다. 종교적인 신념 때문이죠.”
“……!”
상상도 못한 황당함에 라미가 입을 뻐끔거렸다.
“설마 로스타니아는 개인의 종교적 신념을 박해하는, 그런 곳인 건가요?”
라미가 당황한 틈을 타 추가타를 날린 도진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을 이었다.
“그럴 리가 없다는 거 알고 있습니다. 그럼 이만.”
궤변에 뇌가 잠시 정지되었던 라미는 뒤늦게 도진을 잡으려 했지만, 곧 뻗었던 손을 천천히 내렸다.
‘저런 부류는 한번 크게 당해 보는 게 차라리 나을지도.’
굳이 호된 경험을 해야 한다면 여기서 하는 게 저자에게도 도움이 되겠지.
라미는 생각했다.
한두 군데쯤 부러지면 질질 끌어서 훈련용 무기 지급 장소에 던져 놓자고.
* * *
훈련장 내부도 혼잡하긴 마찬가지였다.
많은 수의 유저가 여기저기 흩어져 각자가 고른 무기를 휘두른다.
상대는 움직이는 허수아비.
“흐아압!”
형편없는 자세로 검을 휘두르는 남자.
균형 잃은 그는 허수아비의 방패에 얻어맞고 그대로 졸도한다.
“꺄아악!”
작은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양날도끼를 휘두르다 중심을 잃고 고꾸라지는 여자.
허수아비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목검으로 여자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여자는 서서히 빛으로 흩어지며 훈련장에서 퇴장했다.
“으아악! 이게 무슨 허수아비야! 커억!”
목검과 방패로 무장한 허수아비들은 훈련장에 방문한 싱싱한 뉴비들을 사정없이 두드리고 있었다.
도진은 그런 광경 흐뭇하게 바라봤다.
‘뉴비 입장해서 허수아비가 조금 빡세긴 해. 나도 처음에는 세 번쯤 재도전했던가?’
보이는 바와 같이 튜토리얼 훈련장의 허수아비들은 단순한 허수아비들이 아니었다.
이름만 허수아비일 뿐 이것들은 전부 나무로 만든 골렘이라고 할 수 있다.
힘과 민첩성은 1레벨 플레이어와 동일하지만, 검과 방패는 더 잘 다룬다.
기본 태생이 골렘인 만큼 튼튼한 건 덤이었다.
대충 칼만 휘둘러도 알아서 대미지가 박히는 보정 떡칠 가상현실 게임에 익숙한 사람한테는 절대 호락호락한 상대가 아니라는 소리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LOST가 처음인 ‘뉴비’를 기준으로 할 때의 이야기.
‘내가 아무리 마법사였다고 해도 이런 놈들한테 당할 짬은 아니지.’
전생의 도진은 마법사였다.
그것도 공격력과 파괴력에 강제로 올인 당해 버린 기형적인 마법사.
그 덕에 온갖 페널티를 주렁주렁 달고 살아야 했고, 유리대포라는 멸칭까지 얻었었다.
그러나 그런 최악의 조건에서도 도진은 꽤나 이름을 날린 유저였다.
PVE는 물론이고 PVP에서도.
그럴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내가 마법 쓰는 애들 중에서는 제일 날랜 편이었거든.’
체술 관련 스킬의 도움 없이 끌어올린 근접 전투 능력이었다.
한마디로 약점을 게임 시스템이 아니라 개인의 피지컬과 컨트롤로 극복했다는 말이다.
도진은 숨을 고르며 가장 가까이 있는 허수아비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놈은 눈을 붉게 빛내며 목검과 방패를 들어 올렸다.
허수아비가 마지막으로 후드려 팬 유저가 흘린 피로 번들대는 목검.
보기만 해도 살벌한 모습이다.
“저 사람 뭐야? 미친 거 아니야?”
“왜 무기도 안 들고 저래?”
“미친놈인가?”
주변에 있던 유저들이 맨손으로 허수아비에게 다가가는 것을 보고는 수군거렸다.
하지만 신경 쓸 필요 없는 일이다.
저런 놈들이 비웃든 말든, 흠씬 두들겨 맞았으면 하는 기대 어린 눈빛을 보내든 말든 상관없다.
지금 도진에게 중요한 건 훈련용 허수아비에 쩔쩔매는 놈들이 아니라 눈앞에 있는 퀘스트 몬스터였다.
끼긱.
서로의 거리가 일정 간격까지 좁혀지자 허수아비의 관절에서 듣기 싫은 소리가 났다.
방향은 오른쪽 팔과 무릎.
도진은 바로 반응했다.
“흡!”
몸을 틀어 허수아비의 정직한 공격을 피한다.
동시에 간격을 더욱 좁혀 들어갔다.
그에 반응한 허수아비의 반격은 방패를 이용한 공격.
도진은 기다렸다는 듯 자신을 밀치려는 방패를 잡고 오히려 확 당겨 버렸다.
그러자 방패 치기를 하기 위해 앞으로 힘을 쏟고 있던 허수아비는 그대로 제힘을 못 이기고 앞으로 쓰러졌다.
콰당. 요란한 소리를 내며 쓰러진 허수아비 위로 도진이 올라탔다.
끼익- 끼익- 끼긱-
허수아비는 어떻게든 탈출해 보려 했지만, 싸구려 나무 골렘이 갖는 가동 범위의 한계는 명확했다.
이어지는 사정없는 구타.
도진은 허수아비의 발악을 요령 좋게 통제하며 일방적인 공격을 퍼부었다.
그러나 무기를 착용하지 않은 탓인지 공격력이 부족하다.
하나 문제는 없었다. 주변 환경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부족한 공격력을 보충할 수 있다.
쾅! 쾅! 쾅!
도진은 양손으로 허수아비의 머리를 잡고 연속으로 바닥에 찍었다.
일정한 리듬을 타면서 목각 인형의 안면이 바닥에 충돌했다.
끽- 끼긱-
허수아비의 사지가 경련하고, 몸 내부에서 나서는 안 될 소리가 흘러나왔다.
쾅! 쾅! 쾅!
한 번 안면이 바닥에 처박혔다 올라올 때마다 붉은 눈빛이 옅어졌고.
주르륵.
눈에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무죽죽한 액체가 흘러나왔다.
그 광경을 처음부터 지켜보고 있던 주변 사람들은 같은 생각을 공유했다.
‘제대로 미친놈이다.’
‘눈 마주치지 말아야지.’
‘아까 내가 한 말 못 들었겠지……?’
이미 그들의 머릿속에서는 도진에 대한 비웃음은 말끔하게 소거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