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화
오늘도 출근하여 모닝커피를 마시는데 희수가 들어왔다.
“고문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희수에게 약속 안 된 손님이 찾아오면 거절하라고 했는데 왜 들어왔지?
“돌려보내.”
“저도 그렇게 하려고 했는데 청와대 경제수석이라고 합니다.”
여태 가만히 있다가 청와대에서 왜? 설마 수소 내연 기관의 지분을 요구하려는 건가? 일단 만나 봐야겠지.
“들어오라고 해.”
“네.”
희수가 나가고 바로 사십 대 중반의 남자가 들어왔다.
“어서 오십시오. 제가 진민재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청와대 경제수석 황석민입니다.”
“앉으시죠.”
“네.”
소파에 앉자 희수가 차를 들고 들어와 내려놓고 나갔다.
“차 드시죠.”
찻잔을 들고 마시더니 물었다.
“이 차 귤 차입니까?”
“네. 맞아요.”
“귤 차는 처음 마시는 데 향도 좋고 맛이 좋습니다.”
“제가 그 맛에 즐겨 마시는 차예요.”
다시 차 맛을 음미하고서는 내려놓는 것을 보고 물었다.
“연락도 찾아오신 용건이 뭔가요?”
“미리 연락 드려야 했었는데 죄송합니다. 제가 왜 왔는지 짐작은 하고 있을 겁니다.”
“이미 끝난 이야기 아닌가요? 예전에 국정원에서 찾아와서 할 이야기는 다 했는데요.”
난처한 듯 웃음을 지었다.
“오해는 하지 마십시오. 수소 내연 기관 지분에 관한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러면서 내가 짐작하고 있다니? 그 이유 외에는 전혀 모르는데.
근데 의외였다. 너무 순순히 포기하는 거 아닌가? 노다지를 그냥 보고만 있기에는 아까울 텐데. 달라고 한번 떼를 써 봐야 하지 않나?
순간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하나 있었다.
혹시 미국 정부에서 한국 정부에 언감생심 생각지도 말라고 했나? 그렇다면 한국 정부로서는 어쩔 수 없겠지.
이런 게 약소국이 비애다.
“그러면 무슨 용건으로 찾아오신 건가요?”
“오션에서 대유 자동차를 인수하려고 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인수 협상은 잘 진행되고 있는 겁니까?”
뻔히 다 알면서 왜 물어봐?
“다른 것은 다 협상이 되었는데 인수 가격에 약간의 이견이 있어서 계속 협상 중입니다. 솔직히 우리는 시간을 질질 끌고 싶지는 않아요. 채권단도 마찬가지일 텐데 잘 해결되었으면 하네요.”
“그렇군요. 사려는 자는 싸게 사려고 하고 팔려는 자는 비싸게 팔려는 것이 세상 이치 아니겠습니까? 서로 한발씩 양보하면 될 겁니다. 잘되길 바랍니다.”
정부에서 한마디만 해 주면 쉽게 해결될 텐데. 말로만 하면 어떡해?
“좋은 생각입니다. 우리도 양보할 의향은 있는데 채권단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채권단도 양보할 생각이 있을 겁니다.”
“그랬으면 좋겠네요. 제가 국적은 미국이지만 저도 한국인이라 대유 자동차를 인수하여 한국에 도움이 되었으면 하거든요. 오션이 대유 자동차를 인수하면 대유 자동차뿐만 아니라 이제 막 IMF를 졸업한 한국 경제에도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오션 본사에서는 협상이 결렬되면 다른 국가의 자동차 회사를 인수할 계획도 있어요.”
“그럼 큰일이네요. 대유 자동차를 인수할 만한 곳이 오션밖에는 없습니다. 꼭 대유 자동차를 인수했으면 합니다.”
“저도 그러고 싶은데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잘될 겁니다. 그리고 만약 대유 자동차를 인수한다고 해도 수소 자동차 수요를 따라잡지 못할 텐데 대책은 있습니까?”
“우리도 그 문제를 잘 알고 여러 방안을 두고 고민하고 있어요. 조만간에 결정할 거예요.”
“혹시 어떤 방안인지 물어봐도 됩니까?”
“몇 가지 방안이 있는데 뭐냐면…….”
지금 생각하고 있는 방안을 간단하게 이야기하였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전부 좋은 방안이지만 특히 오션 브랜드 이름을 달면서 자동차 회사의 브랜드를 다는 방식이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이는 오션도 각 자동차 회사도 서로 윈윈하는 방식 같습니다.”
“전부 장단점이 있죠. 신중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도 오션에서 직접 수소 내연 자동차를 생산하려면 대유 자동차 하나만으로는 부족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기는 하죠.”
“한국에는 대유 자동차 말고 상용 자동차도 있습니다. 지금 인수자를 찾고 있는데 상용 자동차도 인수할 의향이 있으십니까?”
아! 이제야 온 용건을 알겠다. 애물단지인 상용 자동차를 나에게 넘기려는 생각이네.
그러고 보니 상용 자동차도 중국 자동차 회사가 인수하여 먹튀 했잖아. 왜 한국 기업들은 하나같이 그러냐?
한국을 만만하게 봐서 그런가? 그렇다 하여도 제대로 협상하고 계약하면 그렇게 되지는 않을 텐데.
답답하였다.
“글쎄요?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거라 생각 좀 해 봐야겠어요.”
“뭘 생각합니까? 오션에서도 자동차 회사가 필요하고 상용 자동차도 인수할 곳이 필요하니 서로에게 도움이 될 겁니다. 만약 인수하신다면 전폭적인 지원을 해 드릴 것을 약속합니다.”
“어떤 지원을 해 주시겠다는 겁니까?”
“대우 자동차보다 더 좋은 조건으로 해 드리겠습니다. 일단…….”
조건을 이야기해 주었다.
나쁘지 않은 조건이었고 나로서는 이익이었다. 어차피 자동차 회사가 필요한데 인수하면 좋을 것 같았다.
“잘 알겠습니다. 신중히 검토해서 결정하겠습니다.”
“현명한 결정 바랍니다.”
이후 아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갔다.
* * *
이엠스를 지분 90%에 무사히 인수하여 오늘은 경기도 오산에 있는 이엠스로 향하였다.
차를 주차하고 내려 주변을 둘러보는데 주차하는 것을 봤는지 김갑수 사장하고 한 남자가 뛰어나왔다.
“어서 오십시오. 고문님!”
“안녕하세요? 나오지 않으셔도 되는데요.”
“어떻게 그럽니까? 고문님께서 처음 방문하시는 건데 버선발이라도 마중을 나와야죠. 안으로 들어가시죠.”
“네.”
사장실에 들어와 차를 앞에 두고 앉았다.
“공장 주변이 전부 산이라 풍경은 좋네요.”
“네. 그렇습니다. 가을에는 단풍도 아름답게 집니다. 계절마다 바뀌는 산을 볼 때마다 자연의 신비로움을 느낍니다.”
“자연은 신비롭고 아름답죠.”
“겨울에는 고라니가 먹이를 찾아 공장까지 내려옵니다.”
“진짜요?”
“네. 그렇습니다. 고라니가 내려오면 직원들이 먹이를 줍니다. 그래서 더 자주 내려오는 것 같기도 합니다.”
“겨울에 꼭 와 봐야겠네요.”
“네. 꼭 오십시오.”
찻잔을 들어 한 모금 마시면서 물었다.
“직원들 반응은 어떤가요?”
“저는 솔직히 서운했습니다.”
“왜요?”
“회사가 오션에 인수된다고 하자 다들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은 못 하고 혼자 속으로 삼켰습니다.”
“그렇기는 하네요. 사장님 입장하고 직원들 입장은 서로 상반된 입장이니까요.”
“저도 알지만, 서운한 감정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연구원들은 다들 왔나요?”
“네. 그렇습니다.”
“연구실에 있나요?”
“네. 그렇습니다. 연구실에 가 보시겠습니까?”
“그러죠. 제가 가지고 있는 수소 충전기 연구 자료도 건네야 하니까요.”
“가지고 오신 겁니까?”
“네, 시간 끌면 뭐해요? 빨리 넘겨야 결실도 빨리 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기는 합니다. 가시죠.”
“네.”
자리에서 일어나 공장 안에 있는 연구실로 향하였다.
연구실 안으로 들어가니 남자 3명이 우리가 들어온 줄도 모르고 책상에 앉아 뭔가를 열심히 보고 있었다.
김갑수가 소리쳤다.
“주목!”
그제야 고개를 들어 우리를 보고서는 일어섰다.
“인사들 해. 이분이 오션의 진민재 고문이야.”
나를 소개하자 연구원 3명의 눈빛이 달라졌다. 마치 연예인을 본 듯한 표정들이었다.
“반갑습니다. 진민재입니다.”
“안녕하십니까? 만나 뵈어 정말 반갑습니다.”
인사를 나누고도 나를 멍하니 계속 바라보고 있자 김갑수 사장이 소리쳤다.
“뭣들 해? 인사했으면 자리에 앉아서 하던 일이나 계속해.”
연구원 2명은 30대 후반으로 보였고 한 명은 40대 중반으로 정도였다.
“잠시 같이 티타임을 나누면 좋을 것 같은데요.”
“그러시겠습니까?”
“네.”
“저쪽에 회의용 테이블이 있습니다. 저쪽에 앉으십시오.”
“네.”
내가 회의용 테이블로 가서 앉자 김갑수 사장과 연구원 두 명이 따라서 앉았고 막내로 보이는 연구원이 종이컵에 녹차를 담아서 가지고 왔다.
한 연구원이 입을 열었다.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더 젊고 잘생겼습니다.”
“감사합니다.”
나이가 있는 연구원이 부럽다는 듯 입을 열었다.
“고문님은 모든 것을 다 가지셔서 좋겠습니다. 머리도 천재에다 외모도 또 재물도 부럽습니다. 제 딸이 중 3인데 고문님 팬입니다. 가실 때 죄송하지만 사인 한 장만 해 주시면 제 딸이 무척 좋아할 겁니다.”
나도 몰랐는데 네이브와 다옴에 내 팬카페가 개설되었다고 하여 가입해서 내 정체를 숨기고 올라온 글들을 보기까지 하였다.
“그럴게요.”
“감사합니다.”
차를 마시며 한동안 이런저런 잡다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번에 다시 입사해 수소 충전기를 개발하시게 되었는데 한동안 손을 놓고 있어 잘 적응하셨으며 해요.”
“물론입니다. 우리가 타 회사에서 다른 일을 하기는 했지만 몇 년 동안 우리가 직접 개발한 수소 충전기라 금세 적응할 겁니다. 요즘 계속 연구했던 자료를 보고 있습니다.”
“다행이네요. 조금 걱정하기는 했어요. 그리고 제가 다른 수소 충전기 연구 자료가 있어서 가져왔어요. 여러분들이 그 분야에 전문가이니 보시고 도움이 된다면 참고하셨으면 해요.”
“주십시오. 보고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가져온 자료를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이거예요.”
제일 나이 많은 연구원이 서류 봉투를 집어 자료를 꺼내 보기 시작하였다. 다른 연구원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자료를 보는 연구원을 바라보았다.
한동안 연구 자료를 보던 연구원이 놀란 채 소리쳤다.
“고문님! 이 연구 자료 누가 만든 겁니까?”
“왜요? 무슨 문제가 있나요?”
“그게 아니라 발상 자체가 놀랐습니다. 이런 방식으로 수소 충전기를 개발하다니 진짜 생각조차 하지 못한 방식입니다. 한마디로 대단합니다.”
“아직 개발 완료가 된 것은 아니에요.”
“저도 압니다. 아직 끝내지는 못했지만 대단한 연구 자료는 분명합니다. 우리가 개발했던 방식을 이것과 비교하면 창피할 정도입니다.”
연구원 말에 다른 연구원들이 호기심을 가지며 연구 자료를 곁눈질로 보고 있었다.
아빠가 개발하던 연구 자료라 믿고 있었지만, 그 정도인가?
하긴 수소 내연 기관을 개발한 아빠가 개발하고 있었으니까 어쩌면 당연한 거다.
“그 정도인가요?”
“네. 그렇습니다.”
“그 연구 자료는 수소 내연 기관을 개발하신 분이 개발하던 거였어.”
“아! 어쩐지 남다르다 했습니다. 그 정도 실력자라면 이해가 갑니다. 근데 그분은 왜 연구를 중단한 겁니까?”
“이 세상에 안 계시거든요.”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수소 내연 기관을 개발했다는 뉴스를 보고 어떤 분이 개발했는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어떤 분입니까?”
“사실 저의 아빠가 15년 전에 개발하신 거예요.”
“네? 15년 전에 개발하셨다고요?”
전혀 믿기 힘들다는 표정이었다.
이런 말을 하게 되면 그다음 순서는 15년 전에 개발했으면서 이제야 공개하냐는 질문이라 먼저 대략 설명하였다.
“그래서 그래요. 개발하다가 만 수소 충전기 개발하실 수 있겠어요?”
“물론입니다. 기필코 개발에 성공하겠습니다.”
연구원이 너무나 자신 있게 대답하자 김갑수 사장이 걱정스러운 얼굴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