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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의 홀로서기-240화 (240/261)

240화

한숨을 크게 쉬는 소리가 들려왔다.

(요즘 엄마 상태가 안 좋아. 하루종일 멍하게 있는 경우가 많아지고 한숨을 자주 쉬어. 또 힘이 하나도 없고 매사의 의욕이 없어서 나도 동생도 아빠도 엄마 눈치를 보며 살얼음판 같은 분위기야.)

“식구들은 엄마가 왜 그런지 알아?”

(응. 아빠는 알지만, 동생은 몰라.)

“고생이겠네.”

(빨리 끝나 예전으로 돌아갔으면 좋겠어. 오빠는 어떻게 할 거야?)

“엄마가 알았는데 시간 끌어 봤자 좋을 게 없겠지. 나도 빨리 해결하는 게 좋아.”

(언제 엄마 만날 거야?)

“내일 저녁이 어떨까? 하는데 넌 어때?”

(좋지. 낮에는 가게 때문에 정신이 없으니 저녁이 좋아. 그렇다고 가게 끝나는 시간에 만나면 너무 늦으니까 내가 아빠한테 말해 내일 저녁은 좀 일찍 끝내도록 할게.)

“집으로 가야 하나?”

(처음부터 집으로 오는 것은 그렇고 식당으로 와. 나중에 정식으로 집에 초대할 테니까.)

“알았어. 몇 시쯤 가야 하는지 알려 줘.”

(알았어. 오늘 가게 끝나고 아빠한테 말하고 오전에 알려 줄게.)

“나 오늘 일찍 잘 수도 있으니까 내일 오전에 알려 줘.”

(그럴게. 오빠 먼 길 오느라 무척 피곤하겠다. 전화 그만 끊고 쉬어.)

“그래.”

엄마가 걱정이네.

내일 엄마를 만나면 뭐라고 말해야 할까? 엄마를 알면서도 모른 척했다고 서운하게 생각하실까? 화를 내실까?

행복하게 평화롭게 잘 지내는 엄마의 인생에 내가 돌을 던져 큰 파문을 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엄마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데 일단 만나서 상황 보면서 적절하게 대응해야지.

내일 오는 게 왠지 무섭고 두려웠다.

* * *

엄마 생각을 하느라 잠을 설쳤더니 다음 날 느지막하게 일어났다.

씻고 커피숍으로 향하였다.

미국에 가 있던 시간이 그리 오랜 시간이 아니었지만, 커피숍을 보니 왠지 고향에, 안식처에 돌아온 포근한 감정을 느꼈다.

커피숍이 뭐라고? 아니지. 내가 한국에서 가장 처음 정을 느낀 곳이고 나의 일터이자 쉼터인데 당연히 그런 감정을 느끼겠지.

“배 대리님! 커피숍 오니까 어떤 느낌이세요?”

“별다른 느낌은 없습니다.”

하긴 나만 그런 감정이겠지. 무뚝뚝한 배상도에게 무엇을 바랄까?

“들어가죠.”

“좋은 아침입니다.”

“안녕하세요?”

안으로 들어가자 강성중과 김나영이 인사하였다.

“좋은 아침! 나영이는 왜 일찍 나온 거야?”

“커피숍이 걱정돼서요.”

“커피숍이 사라졌을까 봐?”

“그런 건 아니고 신경이 쓰여서요.”

“신경 쓸 곳이 그렇게 없냐? 이제 안심돼?”

배시시 웃었다.

“네. 그래도 아침에 나온 게 잘한 것 같아요. 안 그랬으면 오전 내내 신경 썼을 거예요.”

“커피 한 잔 줄래?”

“네.”

늘 그렇듯이 신상철은 내가 나왔는지도 모르고 컴퓨터 앞에 앉아 게임 개발에 몰두하고 있었다.

내 전용석에 앉아 컴퓨터 전원 버튼을 눌렀다.

나영이가 준 커피를 마시며 오션에 접속하여 한국 내 반응을 살펴보고 있었다.

역시나 시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수소 내연 기관 기사가 계속 나오고 있으며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쭉 보다 보니 대유 자동차에 관한 기사가 있었다.

-안갯속을 헤매는 대유 자동차! 누구의 손으로?

제목을 클릭하였다.

(사람은 누구나 인생을 살다 보면 선택을 해야만 하는 경우를 자주 접하게 된다. 누구는 현명한 선택을 하지만 누구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게 된다. 물론 매번 현명한 선택을 하면 좋지만, 인간이기에 때로는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우를 범하곤 한다. 누가 봐도 현명한 선택이라고 판단할 정도로 쉬운 선택에서 어리석은 선택을 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대유 자동차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이런 염려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현재 대유 자동차를 인수하겠다는 기업이 오션과 GN이다. 공교롭게도 둘 다 미국 기업이다. 대유 자동차는 수소 내연 기관을 개발한 오션이 인수하는 것이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뿐만 아니라 대유 자동차에 대형 호재로 작용하리라는 것을 기자뿐만 아니라 국민 모두가 알 것이다. 대유 자동차 한 관계자가 요즘 분위기가 GN 쪽으로 기운다는 말이 간간이 나오고 있다는 말을 듣고 잘못 들은 줄 알았다. 그 이유가 GN은 아무도 대유 자동차를 인수하지 않을 때 유일하게 인수 의향서를 제출하여 협상한 기업이라 신의를 버릴 수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라는 것이다. 국가 간에도 기업 간에도 국익과 사익을 위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데 아직 계약도 체결 안 한 상태에서 신의를 논한다는 것은 어이가 없는 일일 거다. 지금이라도 정부나 채권단, 대유 자동차는 무엇이 국익과 사익을 위하는 일인지 심각히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또한…….)

기사 내용이 사실이라면 장부 아니면 채권단과 GN과 모종의 커넥션이 있는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이런 일이 생길 리가 없지.

아마도 GN이 인수하게 된다면 떡고물을 받아먹는 놈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내가 우려하던 일이 발생하였다.

다만 커넥션이 있더라도 GN이 먼저 포기할 수도 있었다.

앞으로 수소 내연 기관 자동차가 대세가 되어 기존 자동차 회사들이 많이 위축될 텐데 사업을 확장한다는 것은 불 속으로 뛰어드는 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오션의 심기를 거슬리게 된다면 GN과는 적대적인 관계가 되기에 GN도 그걸 원하지 않을 것이다.

떡고물을 받아먹는 놈들이 아무리 GN을 밀어도 GN이 포기하면 결국 도로 아미타불이 된다.

댓글을 보니 대유 자동차는 대부분이 오션이 인수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게 당연한 거지.

“오빠!”

고개를 돌리니 서희가 환하게 웃으며 서 있었다.

“왔어?”

“전화할까? 하다고 겸사겸사 오빠 얼굴 보려고 왔지.”

“잘했어. 앉아.”

“응.”

자리에 앉자 강성중이 커피를 가져와 테이블에 내려놓았다.

“맛있게 드십시오.”

“고마워요. 계산도 하지 않았는데 얼마예요?”

“아닙니다. 사장님 동생인데 돈을 어떻게 받습니까? 앞으로 서희 씨는 무조건 무료입니다.”

당연한 거지만 자기가 사장이야? 자기 마음대로 결정하게.

“고마워요. 오빠 덕에 커피를 무료로 마시게 되었네요.”

“자주 오십시오.”

“네. 그럴게요.”

강성중이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어떻게 하기로 했어?”

“어제저녁에 아빠한테 말했거든. 아빠도 엄마를 위해서 시간 끄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해. 그래서 오늘 저녁 8시까지만 가게 열기로 했어. 그러니까 오빠가 8시 30분쯤에 오면 될 거야.”

“엄마도 내가 오는 거 알아?”

“아니! 아직 말하지 않았어. 오빠가 한국에 온 것도 몰라.”

“엄마도 마음의 준비를 하게 미리 말하는 게 좋지 않을까?”

“말할 건데 지금은 아니야. 지금 말하면 8시 30분까지 더 힘들 거야. 오후쯤에 아빠가 말할 거야.”

“그게 좋겠다.”

“사장님!”

고개를 돌리니 커피숍 단골인 부동산 사장님이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커피숍 사장님이 미국 대기업 오션이 창업주이자 고문일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습니다. 어쩜 감쪽같이 사람을 속일 수가 있습니까?”

“죄송해요. 속이려고 한 것은 아니고 조용히 지내고 싶었을 뿐이에요.”

“여기 식구들은 알고 있었던 겁니까?”

“처음에는 몰랐지만, 나중에 알았어요.”

“영광입니다. 제 생애 사장님 같은 높은 분은 처음 봅니다.”

“저 그렇게 높은 사람은 아니에요.”

“아니긴요? 맞습니다. 근데 정말 수소 내연 기관을 개발한 것이 맞습니까?”

“네.”

“차가 언제 나오는 겁니까? 나오면 저부터 당장 구매하겠습니다.”

“1~2년 정도 걸릴 거예요.”

“오래 걸리네요.”

“네. 개발이 끝났다고 바로 생산할 수 없거든요.”

“그리고 사인 한 장과 사진 촬영 부탁해도 되겠습니까? 제가 딸하고 아들에게 진민재 고문님을 잘 안다고 하니까 자식들이 전혀 믿지를 않습니다. 사인받고 사진 같이 찍은 것을 보면 믿을 겁니다. 사진 찍으려고 얼마 전에 오션폰으로 바꿨습니다.”

“제가 커피숍 한다고 말했나요?”

“사장님이 숨기신 것을 보니 말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말하지 않았습니다.”

부동산 사장님은 말하지 않았지만 나를 아는 손님들이 꽤 많기에 조만간에 알려질 거다. 아니 벌써 알려졌겠지.

다만 커피숍 문을 연 것을 몰라서 조용한 거겠지.

“감사합니다.”

같이 사진을 촬영하고 준비해 온 종이에다가 사인 4장을 해 주었다.

태어나서 난생처음으로 사인을 해 준 거였다.

사인 4장에다가 진민재가 처음으로,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사인해 주는 거라고 썼다.

내가 처음 사인해 주는 기념으로 더욱 가치가 높았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부동산 사장님도 그걸 아는지 매우 좋아하였다.

“감사합니다. 아들과 딸이 무척 좋아할 겁니다. 아들과 딸에게 한 장씩 주고 두 장은 액자에 넣어 집에 걸어놓을 겁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되는데요.”

“아닙니다. 지금 사장님이 젊은데도 이 정도인데 앞으로 20년, 30년 후에는 진짜 세계적인 거물이 되어 있을 겁니다. 가보로 보관할 가치가 충분합니다.”

진짜 머리 잘 돌아가네.

“사장님을 봐서라도 세계적인 거물이 꼭 되어야겠네요.”

“반듯이 그렇게 될 겁니다.”

부동산 사장이 가자 서희가 웃으며 말하였다.

“오빠! 이제 톱스타가 다 되었네.”

“아무래도 내일부터는 커피숍 나오기가 힘들 것 같은 예감이 드네.”

“당연하지. 오빠가 한국에 돌아온 것을 알면 사람들과 기자들이 엄청 찾아올걸. 그런 대형 사고를 치고 무슨 배짱으로 커피숍에 나온 거야?”

이래서 한국 들어올 때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조용히 들어왔다.

비행기에서도 날 알아보는 사람이 있을까 봐 선글라스에 모자, 마스크까지 착용했었다.

그건 미나가 자신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조언이라며 조용하게 가고 싶으면 자기 말을 따르라고 하였다.

이제 봄날은 다 갔네.

내가 한동안 커피숍에 나오지 않으면 사람들도 많이 찾지 않을 테니 가끔가다가 나오면 될 거다.

“그러게. 예전 생각만 했나 보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손님 여러 명이 들어오더니 나를 보고 소리쳤다.

“진짜 진민재다.”

“세상에나!”

그동안 커피숍에 손님으로 오던 분들이라 내 얼굴을 잘 안다.

한동안 커피숍 문이 닫혀 있다가 오늘 커피숍 문을 열자 그걸 본 손님들이 본격적으로 들이닥치기 시작하였다.

아무리 손님이 없는 커피숍이었지만 이곳에서 장사한 지 4년 가까이 되기에 단골손님들이 꽤 있었다.

들이닥친 손님들에게 그동안 자신들을 속였다며 한동안 잔소리를 들었고 사인도 해 주고 기념 촬영까지 하였다.

아무래도 나를 보려는 손님들이 계속 올 것 같아 얼른 커피숍을 나와 집으로 향했다.

나중에 강성중이 말하기를 예상대로 그새 소문이 났는지 인근 손님들뿐만 아니라 처음 오는 손님들이 많이 왔었다고 하였다.

심지어 기자들도 왔었고 내가 올 때까지 기다리겠다며 진을 치고 있다고 하였다.

잽싸게 커피숍 나오기를 잘했네.

* * *

나영규는 점심시간이 지나고 손님들이 뜸해지자 주방에서 나와 카운터에 멍하니 앉아 있는 부인을 보며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

같이 20년 넘게 살았지만 살면서 혼자 가슴속에 꼭꼭 묻어 두었던 상처를 절대 내색하지 않으며 속으로만 삼킨 것을 자신도 잘 안다.

얼마나 긴 시간 동안 마음이 아팠을까? 생각이 들자 자신도 마음이 아려왔다. 이제는 끝내 할 시간이 다가왔다.

“뭐해?”

“아무것도 안 해.”

“오늘은 가게 좀 일찍 끝낼 생각이야.”

“나 때문에 그래? 안 그래도 돼.”

“당신 요즘 어떤지 몰라서 그래?”

“미안해. 내가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당신에게도 미안하고 애들한테도 미안해. 난 엄마 자격이 없나 봐.”

“절대 아니거든. 당신은 부인으로서 엄마로서 여자로서 훌륭해. 그런 말 다시는 하지 마. 당신이 왜 그러는지 나도 잘 알고 있어. 언제까지 이렇게 지낼 수는 없잖아? 이제는 끝을 내야지.”

“미안해. 나만 생각했나 봐. 이제 정신 차릴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렇게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야. 직접 만나서 풀어야만 해결되지. 오늘 8시에 가게 문을 닫을 거야. 그리고 8시 30분쯤에 진민재가 올 거야. 둘이 만나 그동안 쌓인 것들 다 풀어.”

정지희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뭐라고 민재가 여길 온다고?”

“그래.”

“어떻게? 당신이 불렀어?”

“아니. 진민재가 온다고 했어. 거의 30년 만에 만나는 모자 상봉인데 당신이 힘없이 있으면 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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