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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3세의 홀로서기-156화 (156/261)

156화

진성그룹 회장 진동훈은 그룹 현황 보고서를 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시간이 갈수록 상황이 나아져야 하는데 이건 갈수록 더욱 나빠지기만 하니 이걸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룹의 가장 큰 문제는 유동성 부족이었다. 자금만 수혈된다면 다시 회생할 수 있는데 문제는 자금을 조달할 방법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회사채를 발행해도 이미 투자자들 사이에 부실 그룹으로 찍혀 투자하지도 않고 은행권 대출도 꽉 막혀 사방에서 온몸을 조여오고 있는 형국이었다.

투자라도 받으면 좋겠지만 투자하겠다는 곳도 없으니 하루하루 살얼음판을 걷고 있는 기분이었다.

어디 한 곳에서 얼음이 깨져 빠지면 다시는 올라오지 못할 것 같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는데 문이 열리고 비서실장이 급하게 들어왔다.

또 뭔 일이 터졌나 보네. 이제는 비서실장이 들어오는 것조차 무섭기만 하였다.

“회장님!”

“왜? 또 무슨 일인데?”

“방금 진성 무역을 인수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오랜 가뭄 속에 단비 같은 소식이었다.

“뭐? 정말이야?”

“네. 그렇습니다.”

“어디에서 인수하겠다는 거야?”

“DS 자산 운용사입니다.”

“뭐? DS 자산 운용사라고?”

“네. 그렇습니다. 저번에 진성 어페럴을 인수했던 곳이고 이번에는 진성 무역을 인수하겠다고 합니다.”

인수하겠다는 것은 좋지만 하필 DS 자산 운용사라니? 왠지 찝찝하였다.

비서실장도 같은 기분인지 이상하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DS 자산 운용사는 진성그룹 계열사만 인수하는 것이 이상하기는 합니다. 제가 알아보니 다른 기업은 인수한 적이 없었습니다.”

진동훈은 DS 자산 운용사의 주인이 황규천이라는 것을 안다.

황규천이 진성 어페럴을 인수하고 진성 리조트를 독립시켰고 이번에는 진성 무역까지 인수하겠다고 한다.

진성그룹 계열사들이 하나씩 황규천에게 넘어가고 있었다.

무슨 생각일까? 할아버지를 위해서인가? 그렇다면 인수가 아닌 투자를 하면 되는데. 하지만 지금 찬밥 더운밥 가릴 때는 아니었다.

“인수하겠다는 것이 더 중요하지.”

“그렇기는 합니다만 진성 어페럴을 인수하고 재미를 보더니 진성 무역까지 탐을 내는 것 같습니다. 진성 어페럴 지금은 적자를 면하고 흑자로 전환했다고 합니다.”

자신도 잘 안다. 진성 어페럴을 보듯이 자금만 지원되면 얼마든지 회생 가능한데 자금을 조달하지 못해서 이 사달이 난 것이었다.

“진성 무역도 결국 흑자로 돌아서겠지?”

“그럴 겁니다. 원래 진성 무역도 알짜 기업이었으니까요. 잠시 유동성 부족으로 이 상황이 왔으니 자본만 충분하다면 머지않아 흑자로 돌아설 겁니다.”

“그렇다면 헐값에 넘길 수는 없지 않나?”

“하지만 지금 진성 무역은 파산 직전이라 DS 자산 운용사가 손을 떼면 바로 파산입니다. DS 자산 운용사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기에 힘들 겁니다. 그러니 인수하겠다고 나선 겁니다.”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알았어. 어렵겠지만 최대한 받을 수 있는 만큼 받으라고 진성 무역 사장에게 전해.”

“알겠습니다.”

“아니다. 자네도 이번 매각 협상에 참여해.”

“저도 말입니까?”

“그래. 지금 다급한 상황이잖아. 믿을 놈들이 없어서 그래.”

“알겠습니다.”

* * *

점심을 먹고 들어와 커피를 마시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진민재입니다.”

(안녕하십니까? 염중섭입니다.)

“안녕하세요? 식사했어요?”

(지금 식사할 때가 아니라서 아직 못했습니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네. 방금 음반 협회에서 알려 준 소식인데 노래 바다라는 사이트에서 MP3 노래를 무료로 풀고 있다고 합니다. 그 사이트에서 MP3 노래를 P2P 공유 서비스를 통해 다운받는 네티즌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결국은 이전 생처럼 노래 바다가 나왔네. 내가 먼저 MP3 플랫폼을 만들어 안 나오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언제부터 서비스했다고 하나요?”

(한 달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처음에는 네티즌들이 잘 몰라 알려지지 않고 있다고 요 근래 많이 알려져 음반 협회에서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어떻게 합니까? 그냥 보고만 있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어쩐지 요즘 오션팟 MP3 플랫폼 매출이 하락한다 했습니다.)

내가 기억하기로는 음반 협회에서 여러 번 소송했지만 끈질기게 계속 서비스를 하였다. 진짜 근성은 알아줘야 해.

어영부영했다가는 똑같은 일이 반복될 것이기에 처음부터 아예 강하게 나가야 다른 생각을 못 할 거다.

“음반 협회에서는 뭐라고 해요?”

(말하기를 저작권법 위반으로 가처분신청 및 민형사상 대응을 바로 한다고 합니다.)

그것 가지고는 부족하다. 음반 협회가 승소하더라도 또다시 다른 방법으로 서비스할 테니까.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겠죠?”

(그렇기는 합니다. 가만 놔두면 오션의 영업 손실이 계속 커질 겁니다.)

“음반 협회에서 저작권 소송을 걸면 우리는 손해 배상 청구를 신청하세요. 금액은 최대한 높게 신청하고요.”

(부담을 주자는 말씀입니까?)

“그래야죠. 그래야 빨리 포기할 거예요.”

(알겠습니다. 음반 협회와 긴밀히 공조하며 진행하겠습니다.)

“네. 그렇게 해요. 그리고 소송하기 전에 미리 공문을 보내 보세요.”

(그런다고 그만두겠습니까?)

“그건 모르는 거죠. 압박하기에는 좋잖아요.”

* * *

황규천은 DS 자산 운용 사장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책상에 앉아 있던 신동환 사장이 황규천을 보고서는 벌떡 일어나 구십 도로 인사하였다.

“안녕하십니까? 회장님!”

소파 상석에 앉으면서 신 사장에게 소리쳤다.

“나 귀 안 먹었어. 살살 말해. 와서 앉아.”

“네.”

신동환이 재빨리 소파로 와 앉았다.

“연락도 없이 웬일입니까?”

“연락했어?”

“어디 말입니까?”

“진성 말이야.”

“네. 어제 연락했더니 무척 반기는 분위기였습니다. 다음 주에 만나서 협상하기로 했습니다.”

“반겼다면 인수하는 데는 문제 없겠네?”

“그렇습니다. 매각하지 않으면 파산이라 막다른 골목에 내몰렸기에 무난히 인수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놈에게는 연락했어?”

“아직 하지 않았습니다. 다음 주에 진성 측을 만나서 이야기해 보고 그 후에 연락할 겁니다.”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놈 보니까 어떤 것 같아?”

“젊은 자가 꽤 강단이 있어 보였습니다. 제가 커피숍에 갈 때 일부러 복장을 건달처럼 하고 갔는데 저를 보면서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습니다. 보기에도 꽤 똑똑해 보였습니다.”

하긴 자기 앞에서도 고개를 꼿꼿이 세웠던 놈인데 건달이라고 다를까?

“잘 봤나 보네.”

“천재라고 해서 샌님인 줄 알았는데 전혀 달랐습니다. 회장님! 진민재하고 진성그룹하고는 무슨 관계입니까?”

“진성그룹 장손이야.”

“어쩐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았습니다. 빼앗긴 진성그룹을 되찾으려는 겁니까?”

“글쎄? 빼앗긴 것 같지는 않고 스스로 포기한 것 같아. 포기하지 않았으면 작은아버지와 한바탕 전쟁을 치러야 했겠지. 어쩌면 현명하게 판단한 것 같아.”

“천재라서 그런 겁니까? 제가 생각하기에는 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남 일 이해할 필요가 뭐가 있어? 자네 일이나 제대로 하면 되는 거지.”

멋쩍게 웃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일이 언제 남을 생각했습니까? 우리 일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겁니다.”

“자네 규희랑 최근에 이야기해 본 적 있어?”

“없습니다. 어페럴 인수한 후에 잠시 도와주다가 빠진 이후에는 아가씨가 알아서 잘하시기에 특별히 제가 도움을 주지 않았습니다. 아가씨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마치 회장님을 보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후계자로 선택한 거지. 규희가 제도권으로 들어갔으면 하는데 자네 생각은 어때?”

“제가 생각하기에도 좋은 생각 같습니다. 70, 80년 같은 시절은 이미 지나갔고 지금은 21세기입니다. 회장님은 기존에 하시던 일에 익숙해서 변화가 싫으시겠지만, 지금은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기는 합니다.”

“그렇다고?”

“네. 그렇습니다.”

“그럼 대부업이 좋을까? 신용금고가 좋을까? 아니면 다른 게 또 있으려나?”

“아가씨 입장에서는 신용금고가 좋을 겁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신용금고를 추천하고 싶습니다.”

“신용금고가 은행하고 경쟁이 되겠어?”

“정확히는 은행하고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신용금고만의 틈새시장을 노리는 겁니다.”

“알았어. 자네가 신용금고에 대해 자세히 알아봐.”

“알겠습니다.”

* * *

노래 바다 사장 양규한은 자신들의 늘어난 사이트 트랙픽을 보면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회사를 설립한 지는 2년이 되었지만, 사이트 방문 수가 저조해 고민 끝에 MP3 노래를 다운받는 사이트로 개편하였다.

예상처럼 네티즌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사이트 트래픽이 급증하고 있었다.

“형! 큰일 났어.”

자신의 친동생인 양철한이 정색을 하며 급하게 뛰어 들어왔다.

“무슨 일인데 그래?”

“음반 협회에서 우리 노래 바다를 저작권법 위반으로 가처분신청 및 민형사상 소송을 했다고 해. 어떡해?”

그건 이미 각오하고 있었던 바이다. 예상보다 더 빨리 반응이 온 것이고 그 정도로 물러날 수는 없었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바잖아. 법정에서 싸워야겠지.”

“그것뿐만 아니야. 오션에서 공문이 왔는데 당장 서비스를 중지하지 않으면 200억 원의 손해 배상 청구를 진행하겠대.”

“뭐? 미친 거 아니야? 무슨 그게 200억 원이나 돼?”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오션의 손해 배상 금액이래.”

“한국에서만 서비스하는데 왜?”

“우리 사이트에 한국 가요만 올라오는 것이 아니라 팝송을 비롯해 다른 나라 노래도 올라올 수 있잖아. 가끔 팝송도 올라와. 올라오지 않더라도 오션 측에서 소송에서 이기려고 일부러 올릴 수도 있어. 그럼 우리가 불리해. 전액을 인정받지 않고 일부만 인정받아도 금액이 커서 우리한테는 큰 타격이야. 그것뿐만 아니라 전 세계 외국 음반 협회까지 동원하여 저작권 손해 배상 소송을 진행하겠대. 그것도 시차를 두고 나라별로 진행하겠대. 그럼 우리는 결과에 상관없이 맨날 소송만 해야 해. 대응하지 않고 무시했다가는 분명 패소할 테고 소송 비용만 해도 장난이 아닐 거야. 그 소송 비용 어떻게 감당할 거야? 이러다가는 배보다 배꼽이 더 커. 우리 다시 생각해야 하지 않아?”

“우리가 승소하면 되지.”

“글쎄? 난 우리가 완벽하게 승소하기 힘들 것 같아. 일부만 진다고 해도 돈이 얼마고 더구나 소송 비용은 어떻게 감당하려고?”

오션까지 나설 줄은 전혀 예상하지 않았다.

한국은 아직 저작권의 개념이 확실히 잡히지 않아 소송에 가더라도 크게 걱정하지 않았는데 오션까지 참여하고 세계 여러 나라 음반 회사까지 소송하게 되면 일이 너무 커진다.

설마 다른 나라 음반 협회에서 이 작은 한국 기업에 저작권 위반 소송까지 할까? 일반적이라면 하지 않을 테지만 오션이 부추기면 가능할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큰일이네.”

“그러니까. 오션은 미국 기업이라 만만하게 볼 곳은 아니야.”

양규한은 이제 앞길에 꽃길만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장애물인 오션이 나타나 꿈이 산산조각 깨질 위기에 놓였다.

“철한아! 근데 음반 협회는 소송이 가능하지만 오션은 힘들지 않나?”

“내가 보기엔 가능해. 오션이 음반 협회와 계약을 맺고 MP3 노래를 유통하잖아. 그러니까 손해 보는 것은 사실이지. 형! 이러면 어떨까?”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

“우리도 무료 서비스가 아닌 오션처럼 유료 서비스를 하면 되지 않을까? 우리가 마진을 덜 먹고 오션보다 가격을 저렴하게 판매하면 되지 않을까?”

“그렇게 한다고 해도 우리가 오션의 상대가 될까? 또 음반 협회에서 우리한테 유통하도록 해 줄까? 이번 일이 없었다면 가능하겠지만 우리한테 감정이 좋지 않을 텐데.”

“그거야 협상하면 되지 않아? 우리가 당장 무료 서비스를 중지하고 유료 서비스를 하겠다 하면서 협상해야지. 안 그러면 우린 계속 무료 서비스를 할 테고 그 손해는 너희들이 볼 거다 배짱을 튕겨야지. 음반 협회도 우리가 유료 서비스로 전환하는 것이 더 좋을 테니 받아들일 수도 있어.”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그게 최선일까?”

“지금 상황으로는 그게 최선이야. 계속 소송만 할 거야? 이겨도 남는 게 없어. 이길 확률도 낮고.”

“한번은 음반 협회랑 만나야 할 테니 연락해서 만나 보자. 상황 봐서 이야기 꺼내면 될 거야.”

“알았어. 내가 연락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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