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화
짐을 간단히 정리하고 밖으로 나와 정원을 둘러보았다.
역시나 겨울의 정원은 운치가 별로 없었다. 봄에 왔을 때가 좋았는데. 날씨도 춥고 해서 조금만 둘러보다가 방으로 들어왔다.
침대에 누웠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진민재입니다.”
(나야. 도착했다며?)
“안녕하세요? 네. 도착했어요.”
(마음에 들어?)
“네. 너무 좋아요.”
(자네 말을 듣기를 잘했어. 손님이 오면 집에 묵게 하기도 그렇고 호텔로 보내기도 그랬는데 탁월한 선택이었어. 내가 손님을 데리고 그곳에 자주 갔었고 손님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면서도 난 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몰라.)
“이제라도 인수했으니 됐죠.”
(그렇기는 해. 다음에는 볼 게이트를 초대해야겠어. 그 친구도 여기 식당을 무척 좋아했었거든.)
“잘 지낸대요?”
(미국에 있었으면서 연락도 안 했어?)
볼 게이트는 전혀 생각지도 못하였다.
“제가 친한 것이 아니라서 부담이 되어서요.”
(그 친구가 들으면 섭섭하게 생각할 거야. 다음에 가면 꼭 연락해.)
“네. 그럴게요. 중국 손님은 언제 만나나요?”
(오늘 저녁에 도착한다고 하니 모레 오전에 만나는 것으로 하지. 거기서 만날 거야.)
“알았어요.”
(내가 일이 있어서 오늘하고 내일은 가지 못해. 모레 보자고.)
“네. 그러세요.”
내일은 뭐 하냐? 지난번에 일본 왔을 때 배상도는 관광도 못 했는데 관광이나 시켜 주어야겠다.
* * *
느지막하게 아침 식사를 마치고 소화도 할 겸 정원을 거닐었다.
여기서 묵으니까 맛있는 식사도 하고 좋았다. 자주 와야겠다. 오려면 겨울 말고 봄이나 가을에 와야지.
“배 대리님! 여기 좋죠?”
“네. 좋습니다. 다만 겨울보다는 봄이 좋은 것 같습니다.”
“맞아요.”
“여기 있다가 미국으로 가실 겁니까?”
“아뇨. 한국으로 가야죠.”
“알겠습니다.”
좀 더 거니는데 손병수가 다가왔다.
“지금 회장님 오셨습니다.”
11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벌써 왔다고?
“알았어요. 가죠.”
손병수를 따라 어느 방으로 들어가자 손 회장이 혼자 차를 마시고 있었다. 방 안을 둘러보니 이곳은 손님들과 담화를 나누는 곳 같았다.
아예 작정하고 꾸미네.
“일찍 오셨네요?”
“자네랑 먼저 이야기 좀 하려고. 식사는 했나?”
“네.”
“앉아.”
소파에 앉자 손 회장이 차를 따라 주었다.
“마셔.”
“감사합니다.”
찻잔을 들고 마시던 손 회장이 입을 열었다.
“요즘 미국 나스닥 주가 동향을 보니 확실히 상승 모텐덤이 약화되며 조정받는 것 같아. 이러다가 자네 말처럼 폭락할 것 같은 예감이 들어.”
맞다. 지금 1월 중순인데 벌써 일부 종목은 주가가 많이 하락하기 시작하였다.
앞으로 점점 하락 종목들이 속출하면서 2월이 되면 폭락하는 종목들이 많아질 것이다.
“그동안 아무 호재 없이 IT라는 명목으로 많이 올랐잖아요. 산이 높으면 골이 깊죠. 소프트 뱅코는 매도하셨어요?”
고개를 끄덕였다.
“올 초부터 매도하기 시작하여 소유한 지분 중 80% 정도 매도했어. 나머지 20%는 보유하고 있어야지.”
내가 70%만 매도하라고 한 것 같은데 손 회장은 한술 더 떠서 80%나 매도했다고?
“매도하면서 떨리지 않았어요?”
“당연히 떨렸지. 잘못하면 회사가 넘어갈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특정 세력들이 매집하는 것이 아니라서 그나마 마음을 놓았지. 그리고 내가 봐도 너무 올랐어. 이렇게 올라갈 재료가 하나도 없는데. 가만히 냉철히 생각해 보니 주식 시장에 묻지 마 광풍이 분 것 같아. 난 90년 초에 일본을 휩쓴 묻지 마 부동산 광풍을 직접 겪어봐서 잘 알지. 그때랑 비슷한 것 같았거든. 솔직히 모험이지. 근데 더 이상 주가가 올라갈 것 같지는 않았어. 그래서 결단을 내렸지.”
“아마 다음 달부터는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들릴 거예요. 최대 80~90% 정도 폭락할 테니까요. 잘하셨어요.”
“만약 폭락이 실현되면 언제까지 폭락이 지속할까?”
“워낙 많이 올라서 2001년까지는 갈 거예요. 하지만 올해만 지나고 나면 웬만한 거품은 다 꺼질 테고 내년부터는 바닥 다지기를 하며 횡보하거나 조금씩 더 빠질 수도 있어요. 신이 아닌 이상 완전한 바닥을 알 수 없을 테니 내년 1월부터 다시 매수하는 게 좋아요. 소프트 뱅코와 보다폰도요.”
“일단 올해 한 해 동안 지켜보면 알겠지.”
“근데 고점에서 주식 매도해서 자금은 꽤 많겠네요.”
피식 웃었다.
“난 돈을 가지고 있는 스타일이 아니거든. 은행에 넣으려고 해도 이자가 거의 없으니 어딘가에 투자해야 하는데 그래서 고민이야. 너무 많은 돈이 한꺼번에 들어왔어. 다른 투자할 만한 곳이 없을까?”
“안전한 미국 국채에 1년 동안 투자하세요. 그 돈으로 다시 소프트 뱅코 매수해야 하잖아요. 그리고 보다폰도 인수해야 하니까 안전하게 투자하세요.”
“오션은 투자 안 받나?”
“앞으로도 계속 받을 일이 없을 거예요.”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진작에 오션을 알았다면 내가 투자하는 건데. 아쉬워.”
“그러게요. 저도 회장님을 진작 알았다면 투자를 요청했을 텐데요. 대신 오늘 오는 알리바비에 투자하면 되죠.”
“자넨 투자 결정한 건가?”
“네. 그랬으니 여기까지 온 거죠.”
“들어보지도 않고?”
“느낌이 좋아요. 지금 중국에 전자상거래 회사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인터넷 환경도 열악할 거예요. 그런데 벌써 미래를 보고 기업을 설립하고 준비하는 것을 보면 성공할 가능성이 크다는 거죠. 저는 무조건 투자할 거예요.”
“자넨 나보다 더 대책이 없네. 묻지 마 투자야? 자네가 한다면 나도 해야지.”
“회장님! 알리바비에 대해서 알아보시기는 한 거예요?”
“아니! 중국이라 자세히 알아볼 수도 없고 작년에 설립한 직원이 20명도 안 되는 작은 회사라는 정도만 알고 있어. 신생 기업이라 모험이기는 해.”
“저는 모험을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가끔은 모험을 하고 싶을 때가 있어요. 그때가 지금이고요.”
노크 소리가 들리고 손병수가 들어왔다.
“회장님! 손님이 오셨습니다.”
드디어 마윈이 왔나 보네.
“들어오라고 해.”
“네.”
손병수가 나가고 곧 한 남자가 들어왔다. 마윈이었다.
작은 키에 말라서 왜소하고 초췌하게 보였다.
마윈이 90도로 인사하였다.
“손 회장님! 안녕하십니까? 알리바비의 마윈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손 마사요시입니다.”
나도 인사하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션의 진민재라고 합니다.”
내가 올 줄 몰랐는지 놀라는 얼굴이었다.
“미국 오션을 말하는 겁니까?”
“네. 손 회장님이 좋은 투자처가 있다고 해서 왔습니다. 제가 와서 실례가 된 겁니까?”
손을 들어 내저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오션의 창업자를 여기서 보다니 영광입니다. 한 번쯤 보고 싶었습니다.”
“제가 다 영광이네요. 앉아서 이야기하시죠.”
“네.”
모두가 소파에 앉았다.
손 회장이 빈 잔에 차를 따라 마윈에게 주었다.
“드시지요.”
“감사합니다.”
마윈이 찻잔을 들어 차를 마시자 손 회장도 차를 마셨다.
“자료 준비는 해 온 겁니까?”
“물론입니다.”
대답하고서는 가방에서 서류를 꺼내 손 회장에게 건넸다.
“여기 있습니다.”
나를 보고서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손 회장님만 계시는 줄 알고 한 부만 준비해 왔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저는 말로 설명 들어도 됩니다.”
“그럼 바로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손 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하겠습니다. 우리 알리바비는 전자상거래 회사로…….”
설명을 시작하자마자 손 회장이 중단시켰다.
“설명됐습니다. 그만하셔도 됩니다.”
마윈이 당황하는 표정을 지으며 다급히 말하였다.
“네? 마저 설명하겠습니다. 제 설명을 들어보시면 우리 알리바비가 얼마나 투자처로 매력적이고 발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잘 아실 수 있을 겁니다.”
“안 들어봐도 알 것 같습니다. 투자하겠습니다.”
마윈은 잘못 들은 줄 알고 되물었다.
“지금 투자하시겠다고 말씀하신 겁니까?”
“그렇습니다.”
손 회장이 나를 바라보았다.
“자네는 어떻게 하겠나?”
“저도 투자해야죠.”
“이 친구도 투자하겠다고 하네요. 나랑 이 친구랑 2,000만 달러씩 해서 4,000만 달러 투자하면 되겠소?”
마윈은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어안이 벙벙하였다.
투자를 받기 위해 자료를 준비하느라 고생도 많이 했고 또한 오늘 투자 설명회를 위해 새벽까지 연습했는데 말을 꺼내자마자 투자하겠다고 한다.
더구나 오션 창립자도 설명을 듣지 않고 투자하겠다고 한다.
그것도 무려 4,000만 달러를. 이제야 자신의 알리바비를 제대로 알아주는 투자자를 만나게 되었다.
지금까지 여러 곳에서 투자하겠다는 곳이 있었지만 알리바비의 가치를 제대로 인정해 주지 않아 자신이 투자를 거절하였다.
왜냐하면, 첫 번째 투자 조건이 추가적인 투자 조건이 되기에 헐값에 투자받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쉽게 투자를 받을 줄 알았다면 헛고생하지 말고 진작에 손 회장을 찾아올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로는 무얼 믿고 투자하겠다고 하는지 궁금도 하며 이해가 안 갔다. 자신이라면 이런 투자 결정을 절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정말 설명도 듣지 않고 투자를 하시겠다는 겁니까?”
“그렇소.”
“무얼 믿고 투자하시겠다는 겁니까?”
“난 다른 것보다 사람을 믿습니다. 마윈 사장님을 믿고 투자하는 겁니다.”
마윈이 나를 바라보았다. 왜냐고 묻는 눈빛이었다.
“사장님이 우리 뒤통수를 치실 겁니까?”
“절대 아닙니다. 제가 왜 투자자의 뒤통수를 치겠습니까?”
“그래서 마윈 사장님을 믿고 투자하겠다는 겁니다.”
이게 무슨 해괴한 논리란 말인가? 들리는 말로는 오션 창업자가 천재라고 하던데 괴짜 천재인가?
이유야 어떻든 간에 투자하겠다고 하니 한숨 돌리게 되었다.
하지만 투자금이 너무 많았다. 저걸 다 받으면 자신의 지분이 거의 없을 것 같았다. 많이 받아도 문제네.
“투자를 해 주신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하지만 4,000만 달러까지는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2,000만 달러만 투자받겠습니다.”
“자본이야 많을수록 좋은 것이 아닙니까?”
“그렇기는 하지만 제가 감당할 만한 금액은 아닙니다. 투자를 많이 받을수록 지분을 더 많이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기는 합니다. 그럼 2,000만 달러에 지분은 얼마를 주실 수 있습니까?”
마윈은 올 때 500만 달러만 투자받아도 좋겠다고 생각을 했기에 2,000만 달러의 지분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다.
얼마를 주어야 할지 생각해 보았다.
알리바비 설립 자본금이 8만 달러이지만 작년에 미국 골드만삭스로부터 500만 달러를 투자받아 8.6%의 지분을 주었다.
그러면 4배이니까 34.4%면 될 것 같았다.
“34.4%입니다.”
“40%는 안 되겠습니까?”
“그건 힘듭니다.”
“그럼 38%는 어떻겠습니까? 두 사람이 투자하는 거라 최소 그 정도는 되어야 할 겁니다.”
마윈이 난처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내가 나섰다.
이전 생에서도 34.4%였다. 그 정도만 해도 초대박인데 괜히 얼굴 붉힐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손 회장님! 34.4%로 해요.”
“정말? 자네하고 나하고 1,000만 달러 투자하면 17.2%밖에 안 되는데 괜찮겠어?”
“네. 저는 만족해요.”
내가 만족한다고 하자 손 회장도 할 수 없다는 듯 마윈에게 말하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2,000만 달러에 34.4%로 합시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여 투자금을 불려 드리겠습니다.”
마윈의 말에 속으로 말하였다.
‘너무 불어나서 문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