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화
어떻게 할지 고민하더니 입을 열었다.
“벤처 기업을 설립하면 바로 게임을 개발할 수 있는 겁니까?”
“원하신다면 해도 됩니다. 하지만 게임 개발이 금세 끝나는 것도 아니고 이윤도 없이 투자비만 계속 들어가기에 이윤 창출할 수 있는 종합 포털 사이트부터 개설해야 합니다. 그래야 안정적으로 게임 개발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제가 종합 포털 사이트도 운영하고 게임 개발도 해야 하는 겁니까?”
“그래야겠죠. 혼자서 감당하기 힘들면 직원을 뽑아서 해도 됩니다.”
신상철은 직원을 채용해서 하는 것보다는 자기는 자기가 좋아하는 게임만 혼자서 개발하고 싶었다.
“저는 게임만 개발하면 안 됩니까? 경영 쪽에는 해 본 적도 없고 자신이 없습니다.”
사람과의 관계가 원활하지 못하니 힘들겠지.
“그렇다면 방법이 하나 있기는 합니다.”
내 말에 반색하였다.
“어떤 방법입니까?”
“신상철 씨가 벤처 기업을 설립하고 전문 경영인을 채용한 후 그분에게 일을 전부 맡기는 겁니다. 그런 다음 신상철 씨는 저처럼 고문으로 물러나 게임 개발에만 전념하면 되는 겁니다.”
“그럼 하겠습니다.”
잘 생각했다. 친구야! 넌 진짜 운이 좋다. 나에게 감사해야 한다.
다른 사람을 대신 내세워 법인을 설립하고 넌 직원으로 채용해도 되지만 내가 네가 먹고 살길을 찾아 준 거야.
지분 10%라도 감지덕지해라. 대신 너를 마구 굴려 게임 개발하도록 할 테니까. 근데 게임 사업이 큰가?
신상철이 얼마나 벌어주려나? 밥값은 해야 하는데.
“잘 생각했습니다. 그럼 투자금 일부를 먼저 지급할 테니 제일 먼저 법인부터 설립하는 거로 하죠.”
“알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저를 볼 때는 여기로 찾아오시지 말고 다른 곳으로 왔으면 합니다. 제 작업실이 따로 있거든요.”
“알겠습니다.”
신상철이 신이 난 얼굴로 갔다. 자신에게 딱 맞는 일일 테니까.
신상철이 가자 염중섭을 불렀다.
“부르셨습니까?”
“네. 앉으세요.”
염중섭은 회사에 잘 나오지 않는 고문이 나와 손님을 만났다고 하여 궁금한 얼굴로 소파에 앉았다.
“손님은 가신 겁니까?”
“네. 그 일 때문에 오시라고 했어요. 오늘 온 손님은 서울대학교 컴퓨터 공학을 졸업한 인재거든요. 그래서…….”
상황 설명을 하였다.
“그래서 그 친구를 통해 2중대 사이트를 만들려고 하는 거예요.”
내 말을 들은 염중섭이 이해하기 힘들다는 표정을 지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습니까? 오션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봅니다. 또한, 한메일닷에 투자까지 하여 지분 33%로 확보하지 않았습니까? 근데 또 종합 포털 사이트가 필요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차라리 그 친구가 원하는 대로 게임 회사로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나로 인해 미래가 바뀌기는 했지만 오션이 야호처럼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
“무슨 말씀인지는 잘 알아요. 지금은 오션이 포털 사이트에서 압도적인 위치에 있지만,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지금도 한국의 토종 사이트들이 계속 오픈을 하고 있어요. 지금은 오션의 상대가 안 되지만 미래에도 그럴까요? 아니에요. 토종 사이트들이 계속 거센 도전을 할 테고 우리 수성하는 입장이에요. 애국 마케팅까지는 아니겠지만 한국민들이 시간이 갈수록 토종 사이트에 관심을 보이고 많이 방문하게 될 거예요. 우리 오션은 외국 기업이라 한국에서 성장하는 데 한계가 있어요. 그래서 한메일닷에 투자한 이유이고 이번에 새로 사이트를 오픈하여 후발주자들이 아예 발붙이지 못하도록 하고 그 후발 토종 사이트들이 차지할 자리를 먼저 차지하게 하려는 의도예요. 즉, 오션의 2중대 역할을 하게 될 거예요. 제 계획은 앞으로 한국의 종합 포털 사이트는 오션과 한메일닷, 2중대 사이트가 나눠 가지는 시장이에요. 한메일닷과 2중대 사이트는 토종 사이트의 대표로 자리 잡게 할 거예요. 그럼 전부 오션의 영향력 안에 있다는 말이죠.”
내 말을 곰곰이 생각하던 염중섭이 감탄하는 듯 입을 열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일리가 있다고 봅니다. 서양 국가들은 합리적인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기에 토종 사이트니 이런 것에 그다지 관심이 없지만, 한국은 민족적 자존심이 있기에 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오션이 잘나간다고 해도 혼자서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으니 남는 부분을 한메일닷과 2중대 사이트로 채울 수 있을 겁니다. 알겠습니다.”
“곧 한메일닷이 사이트 개편하고 오션 엔진을 사용하고 2중대까지 오픈하게 된다면 강력한 경쟁자가 생기게 되는 겁니다. 비록 같은 편끼리의 경쟁이지만 그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면 긴장하셔야 할 겁니다.”
“오션도 곧 사이트를 개편하고 서비스를 시작하기에 한메일닷이 개편하더라도 자신 있습니다. 그 정도에서 진다면 오션이 대표로 자격이 없을 겁니다.”
“그래요. 선의의 경쟁을 해 보도록 하세요. 그리고 한 가지 문제가 있어요. 제가 투자할 신상철이 성격에 좀 문제가 있어요. 어떠냐면…….”
신상철에 대해 이야기하였다.
“그래서 기존 회사도 그만둔 거예요. 다른 사람을 선택해도 되겠지만 게임 개발에 실력 있고 오히려 그런 사람이 다루기가 편해 선택했어요.”
“그 정도라면 사회생활 하기가 참 힘들겠습니다. 직장보다는 혼자서 하는 사업이 적성에 잘 맞을 겁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고문님이 계획하시는 일에 잘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저도 같은 생각이에요. 그래서 전문적인 CEO를 새로 채용해야 하는데 서로 부딪칠까 봐 이해성이 넓은 사람이었으면 해요. 가만히 놔두면 부딪칠 일은 없기는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요. 혹시 대표님이 아시는 분들 중의 능력 있고 그런 분 있을까요?”
잠시 생각하다 입을 열었다.
“한 명이 떠오르기는 하는데 나이가 꼭 있어야 하는 겁니까?”
“몇 살인데요?”
“서른입니다.”
벤처 기업 창립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젊으니 나이가 꼭 중요한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젊기에 상상력이 뛰어나고 참신하며 남들이 하지 않는 것도 과감하게 할 수도 있고 오히려 더 좋을 수도 있었다.
“능력이 중요하지 나이가 중요하나요. 어떤 분인데요?”
“고문님도 아시는 사람입니다.”
“네? 제가 안다고요?”
“네. 이주희 과장입니다. 능력 있고 그런 사람에게는 남자보다는 여자가 상대하는 것이 더 나을 겁니다. 누나처럼 이해심도 많고 참을성도 많고 포용력도 넓고 제가 보기에는 이주희 과장만 한 인물이 없습니다.”
“대표님이 스카우트했는데 그대로 다른 회사로 보내도 돼요? 나중에 강력한 경쟁자가 될 수도 있어요.”
“충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선의의 경쟁을 하겠습니다.”
“빈자리를 많이 느끼실 텐데요.”
“그럴 겁니다. 하지만 제 이익보다는 후배에게 도움이 더 되었으면 합니다. 생각보다 너무 일찍 보내주게 되어 그건 많이 아쉽기는 합니다.”
나도 이주희 과장이 마음에 들었다.
내가 이주희 과장을 본 것이 오늘로 두 번이지만 첫 번째 봤을 때 미국 신문 기사까지 찾아서 내 얼굴을 확인하는 것을 보면 기본이 된 것 같고 준비성도 철저한 것 같았다.
“비록 신생 벤처 기업이지만 젊은 나이에 파격적인 승진이 아닌가요?”
“그만한 능력이 됩니다.”
“그렇게 해요.”
“제가 이주희 과장에게 말하겠습니다.”
“그러세요.”
* * *
오늘은 귀한 손님인 신상철과 이주희 대표가 커피숍으로 오기로 하였다.
이주희 대표는 염중섭이 말하자 자신에게 좋은 기회를 주어 감사하다며 기꺼이 허락하였다고 한다.
사실 한국 사회에서 여자가 30세의 나이에 대표가 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비록 이제 막 시작하는 벤처 기업이긴 하지만.
아직 올 시간이 남아 컴퓨터 앞에 앉아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었다.
“고문님!”
날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신상철이 호기심을 가지고 모니터를 보며 서 있었다. 시계를 보니 10시 30분이었다.
11시에 만나기로 했는데 30분이나 일찍 온 거야?
“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
“분당은 초행길이라 서둘다 보니 일찍 왔습니다. 근데 지금 개발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앞으로 쓸 프로그램이에요. 앉으세요.”
“네.”
옆 테이블에 앉았다.
“성중아! 여기 커피 한 잔.”
“네.”
강성중은 돈 주고 사 먹으라는 소리를 하지 않아 좋았다. 그래서 손님이 올 때는 오전에 오라고 한다.
오후에 왔다가는 정미나에게 잔소리 들으니까.
나도 옆자리로 옮겼다.
강성중이 커피숍을 둘러보며 물었다.
“여기가 고문님! 작업실입니까?”
“네. 커피 마시며 여기서 작업하는 게 더 능률이 오르더라고요.”
“고문님이 커피숍을 직접 운영하는 겁니까?”
“네. 그래야 마음 편히 사용하죠.”
“손님은 많이 없는 겁니까?”
“네. 한가해요. 그래서 좋아요.”
“그렇습니까?”
말을 하고 다시 커피숍을 둘러보는데 순간 신상철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설마 여기가 마음에 든다는 것은 아니겠지.
아닐 거야.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놈이 여러 사람이 왔다 갔다 하는 이곳이 마음에 들지 않을 테니까.
“커피숍에서 일한다는 것을 저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보기에 괜찮은 것 같습니다.”
“사람마다 다를 겁니다. 어떤 사람들은 집중하기 어려워 싫어하기도 합니다.”
“그럴 수도 있겠습니다.”
“준비는 잘되고 있나요?”
“네. 어제 네이브 법인 설립 서류 신청을 했습니다.”
사무실은 오션이 있는 양재동에 있는 다른 건물에 얻었다.
처음에는 같은 건물에 빈 사무실이 있어서 얻으려다가 주소가 같아지는 문제로 인해 다른 건물을 선택하였다.
“잘했네요.”
“오늘 오는 네이브 신임 CEO는 어떤 분입니까?”
“곧 올 테니 직접 보시는 것이 좋을 거예요. 다만 능력 있고 좋은 분이에요.”
“알겠습니다.”
마침 이주희 대표가 커피숍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양반이 아닌가 보네. 왜 다들 일찍 오는 거야?
나를 본 이주희가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고문님!”
“어서 오세요. 앉으세요.”
이주희가 앉았다.
“찾아오는 데 어려움은 없었어요?”
“고문님이 알려 주신 대로 오니까 쉽게 찾았습니다.”
“두 분 인사하세요.”
이주희가 먼저 인사하였다.
“안녕하세요? 이주희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해 봐요.”
신상철이 쭈뼛거리며 인사하였다.
“안녕하세요?”
내가 이주희에게 이해하라는 눈빛을 보내자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신상철에 대해 말을 들었으니.
“이제 인사도 했으니 두 사람이 협력해서 네이브를 잘 이끌어 가야 해요.”
“알겠습니다.”
“당장 사무실 집기도 구해야 하고 직원도 모집해야 할 거예요. 물론 이주희 대표가 잘 알아서 하겠지만 신상철 고문도 당분간은 이 대표를 도와주었으면 하고요.”
이주희가 대답하였다.
“우리 둘이 잘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래요. 그리고…….”
한동안 네이브가 어떤 방향으로 사업을 할지 이야기를 하였다.
“그럼 시작은 종합 포털 사이트로 가고 따로 게임을 개발하여 나중에는 게임 사업까지 사업영역을 넓힌다는 말씀이네요.”
“네. 맞아요. 그 시기는 여기 신 고문이 얼마나 하는 가에 달려 있어요.”
이주희가 미소를 지으며 신상철에게 말하였다.
“저는 신 고문님만 믿을게요. 이왕이면 최대한 빨리 개발해 주세요.”
“네.”
여자 앞이라 그런가? 신상철이 경직되어 있었다. 그래도 피하려고 하는 모습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이네.
“대충 사업 이야기는 끝난 것 같은데 점심이나 먹으러 가죠. 제가 살게요.”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