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화
오늘은 소프트 뱅코 손정우 회장을 만나러 코리아 소프트 뱅코 사무실로 향하였다.
어제 통화를 했는데 염중섭이 그만두고 오션에 온 것을 아는 눈치였다. 말하는 것을 보니 약간 삐진 것 같은데 뭐라고 해야 하나?
사실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그래도 어떻게 해? 이미 일은 벌어졌고 나도 염중섭이 필요한데.
아! 몰라!
도착하여 사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직원들이 바쁘게 일하고 있었다. 여기는 바쁘네. 가까운 곳에 있는 직원에게 물었다.
“실례합니다.”
내 말에 일하던 직원이 고개를 들었다.
“네.”
“손 회장님과 약속이 되어 있는데 어디로 가야 하나요?”
“회장님은 여기가 아니라 한층 더 올라가야 합니다. 올라가셔서 사장실로 가시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어제 통화할 때 미리 알려 주던가? 나 훈련시키나?
한 층 더 올라가자 사장실이 있어 그 안으로 들어갔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비서로 보이는 직원이 일어서며 물었다.
“손 회장님과 약속이 되어 있습니다.”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진민재입니다.”
“잠시만요.”
직원이 어느 방 안으로 들어갔다가 나왔다.
“이쪽으로 들어가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들어가면서 얼핏 보니 문에 회장실이라 되어 있었고 맞은편에는 사장실이 있었다. 회장실까지 따로 있는 것을 보니 손 회장이 한국에 자주 오나 보네.
“어서 와.”
“안녕하세요? 회장님!”
“안녕 못하다는 거 알지 않나?”
역시나 삐져 있었다. 얼굴에 철판 깔자.
“무슨 일 있으세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렇게 안 봤는데 능구렁이 같은 모습도 있네. 앉아.”
“네.”
소파에 앉았다.
“내가 그깟 일에 크게 신경 쓰진 않지만, 기분이 별로야. 꼭 뒤통수를 맞은 것 같아.”
“오해하실 만하지만 하나는 알고 계셨으면 합니다. 제가 먼저 스카우트 제의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저는 헤드헌팅 회사에 의뢰한 것이고 정말 우연히 염중섭 전무가 그 명단에 포함된 것입니다.”
“나도 알아. 자네가 어떻게 염 전무를 알고 스카우트하겠어? 나에게는 불운이지만 자네에게는 행운이겠지. 그러고 보면 소프트 뱅코와 오션과는 자꾸 서로 얽히네. 그게 인연인지? 악연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는 좋은 인연이 시작되는 징조라고 봅니다.”
“꿈보다 해몽인가?”
“앞일은 누구도 모르는 것이고 미래는 만들어 가는 거죠. 혹시 알아요. 미래에는 소프트 뱅코와 오션이 전략적인 파트너가 될지요?”
“나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는데 소프트 뱅코와 오션이 서로 연관되는 부분이 별로 없어. 우리가 오션에 투자하면 가능하겠지만.”
아직도 투자에 미련을 못 버리고 있네.
“오션은 이제 투자받을 생각은 없어요. 다만 지금의 오션이 전부라고 생각하시면 안 될 거예요.”
“다른 사업을 생각하고 있는 건가?”
“당연하죠. 저는 현실에 안주하고픈 생각은 전혀 없어요. 지금 당장은 아니고 몇 년 후가 되겠지만 회장님이 깜짝 놀랄 만한 것을 준비하고 있어요. 그때가 되면 전략적인 파트너 관계를 맺을 수가 있을 거예요. 그때를 대비하여 소프트 뱅코와 오션이 작년부터 인연을 맺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난 MP3 플레이어와 스마트 폰을 망고의 아이폰이 그랬듯이 일본에서 독점적으로 판매할 권한을 소트프 뱅코에 줄 생각이었다.
소트프 뱅코가 통신사를 소유하고 있으니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 정도면 내가 받은 보답은 충분히 하는 거지.
관심이 가는지 뒤로 젖혀 있던 몸을 앞으로 세웠다.
“그게 어떤 사업인가?”
“지금은 자세히 말해드릴 수 없어요. 다만 세상을 놀랄 만한 깜짝 쇼가 될 거예요.”
“그러니 더 궁금하네. 그 사업이 뭔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도 감이 좋아. 내가 투자해도 되겠나?”
“조금 전에 말했잖아요. 오션은 더는 투자 받지 않는다고요. 그냥 전략적인 파트너 관계로 만족하세요. 그것만으로도 도움이 되실 거예요.”
손정우 회장은 자신의 선택이 옳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만약 미국에 가서 진민재를 만나지 않고 그냥 귀국했다고 생각하자 아찔하였다. 진민재를 만나라고 조언한 비서가 고마웠다.
미국에 가서 진민재를 만나 투자 제안을 하여 깨끗이 거절당했지만 오션에 미련이 남아 진민재에 대해 좀 알아보았다.
핀란드에서 3년 만에 대학 졸업을 하였고 대학 재학 중에 오션을 개발한 천재로 알려져 있었다.
그렇기에 저런 천재와는 친하게 지내는 것이 좋다는 생각에 진민재가 일본에 방문했을 때 과한 호의를 베풀었고 자신이 아끼는 인재 또한 추천까지 하였다.
자신의 철학은 베풀 때는 확실하게 베풀어 상대가 고마움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세상에는 좋은 일 하고도 베풀고도 욕먹는 경우가 간혹 생기는데 그건 정도가 약하기에 그런 것이다.
해 주고도 욕을 먹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은 없을 것이다.
손님이 오면 상다리가 휘어지도록 푸짐하게 음식 대접하는 것과 같이 상대가 부담을 느낄 정도로 베풀어야 감사한 마음이 들고 되돌아오는 것이 세상사이다.
그러니 진민재가 소프트 뱅코와 전략적인 파트너 관계를 맺겠다는 것이다. 만약 자신이 그런 호의를 베풀지 않았다면 소프트 뱅코를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약간 기분이 나쁘기는 하지만 이럴 때 염 전무 일은 통 크게 웃으며 넘어가 주는 아량도 필요한 법이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천재가 자신하는 것을 보면 분명 큰 사업일 테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사업이라는 말이다.
만약 먼저 투자를 원하거나 같이 사업에 참여하자고 제안했다면 사업이 불확실하거나 기대할 만한 것이 없을 가능성이 크기에 신중히 판단해 봐야겠지만 자신의 투자 제안을 거절하는 것을 보니 그만큼 자신한다는 의미이었다.
그렇다면 무조건 같이 사업에 참여하거나 투자해야 하는데 진민재의 반응을 봐서는 불가능할 것 같았다.
느낌상으로 오션처럼 분명 대박을 칠 것 같은데 고민이었다.
“혼자서도 충분히 할 수 있겠지만 모든 것을 여럿이 나눈다면 그만큼 부담도 줄고 도움도 받을 수 있어 여러 면에서 더 좋을 수도 있는 법이라네. 그냥 거절만 하지 말고 다시 한번 잘 생각해 보게.”
뭔지도 모르고 말만 듣고 투자하겠다는 거야? 이러면 사기당하기에 쉬울 텐데. 항상 이런 식이었나?
“회장님은 뭔지도 모르고 무조건 투자하시겠다고 하시는 거예요? 사업에 실패할 수도 있고 제가 사기 칠 수도 있지 않겠어요.”
“설마 오션의 개발자가 오션을 두고 사기를 치겠어? 또 천재가 하는 일이 허투루 하겠어? 그만큼 자신하고 믿으니까 진행하겠지. 난 사업을 보고 투자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 즉, 자네를 보고 투자하겠다는 거야. 그만큼 내가 자네를 믿는다는 거지.”
내가 손 회장에게 그만큼 믿을 주었나? 날 믿는다고 하니 기분이 좋기는 하였다.
“고마운 말씀이나 혼자서 해 보고 힘에 겨우면 그때 도움을 요청하겠습니다. 그리고 당장 시작하는 것도 아니니 이 이야기는 그만했으면 합니다.”
손 회장은 진민재 말처럼 아직 시간도 많고 여기서 더 늘어져봤자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나아갈 때와 물러날 때를 아는 것이 진정한 장수이었다.
“알겠네. 난 언제든지 기다리고 있을 테니 도움이 필요하면 부담 없이 요청하게. 무조건 도울 테니까. 다만 한 가지 궁금해서 그러는데 지금 준비하는 사업이 오션같이 인터넷에 관련된 사업인가?”
“그건 아니에요. 어떤 제품을 만들어서 판매할 생각이에요. 다만 그 제품이 IT에 관련된 것은 맞아요.”
“혹시 자네가 커피숍에서 개발하던 그 프로그램과 연관이 있는 건가?”
그날 몇 년 후에 사용할 거라고 말했더니 예리하네.
“그 프로그램은 직접 돈을 벌기보다는 일종의 보조 프로그램이에요.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에요.”
“알겠네. 그리고 자네가 나를 어떻게 보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나 그렇게 꽁한 사람은 아니야. 염 전무 일은 조금 서운한 면도 있지만, 염 전무가 선택한 일이고 내가 뭐라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니 내가 너그럽게 이해하고 넘어가겠네. 그러니 그 일 가지고 너무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본의 아니게 일이 그렇게 진행되어 찝찝했었는데 다행이다.
“감사합니다. 전 회장님의 기분이 상했을 것 같아 사실 많이 걱정했거든요.”
“나를 어떻게 보고? 내가 그리 속 좁은 사람이었다면 애초부터 고진욱도 소개해 주지 않았을 거야. 난 오션과 자네가 잘되었으면 하는 사람이야.”
“너무 감사해서 그러는데 오늘 제가 회장님께 식사 대접할게요.”
“나 비싼 거 먹을 거야.”
“네. 얼마든지요.”
* * *
디지털 카스트 황정화 사장과 심용철은 독일 하노버 정보통신 박람회 첫날부터 부스에 밀려오는 관람객들을 보며 속으로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다.
오늘도 어김없이 개장하자마자 관람객들이 부스에 몰려왔다.
부스 앞을 지나가던 관람객들이 MP3에 연결된 스피커로 음악이 나오자 호기심을 보이며 물었다.
“지금 이 음악이 이 작은 기기에서 나오는 겁니까?”
황정화 사장이 어깨를 들썩이며 대답하였다.
“네. 그렇습니다.”
“크기가 작아 CD 플레이어는 아닐 테고 이 작은 기기는 뭡니까?”
“이건 말입니다. MP3 파일을 이 작은 기기에 넣고 재생하는 겁니다. 들어보시면 알겠지만, 음질 또한 CD 플레이어에 못지않습니다.”
관람객이 놀라며 다시 물었다.
“이 기기에 MP3 몇 곡이 들어가는 겁니까?”
“현재 대략 50여 곡이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메모리를 늘리면 수백 곡도 가능합니다.”
“MP3 파일이 이 작은 기기에서 실행되다니 오! 놀랐습니다. 이걸 개발하신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우리 디지털 카스트에서 세계 최초로 개발한 겁니다.”
“대단합니다.”
관람객의 칭송에 황정화 사장은 으쓱하던 어깨가 더욱 올라갔다.
한바탕 몰린 관람객들이 돌아가고 조금 한가해지자 심용철이 미소를 지으며 진열대를 정리하던 황 사장 옆으로 다가왔다.
“형! 이 정도면 대성공 아니야?”
“당연하지. 아까 보니까 우리 부스에만 사람들이 많이 몰리더라.”
“우리 이러다가 대박 맞는 거 아닌가? 몰라.”
“당연히 대박 맞아야지. 넌 다른 부스들 둘러봤어?”
“대충 둘러봤는데 우리처럼 참신한 제품은 별로 없는 것 같더라. 그러니까 우리 부스에 관람객들이 많이 몰리지.”
“내가 봐도 그래.”
“근데 형! 관람객들이 호기심을 보이며 많이 몰리는데 왜 바이어들이 계약하자고 하지 않을까?”
“이제 3일째잖아. 아직 이틀이나 남았고 바이어들이 바로 계약하겠어? 전부 둘러보고 고심한 다음에 결정할 거야. 아마도 내일부터는 조금씩 움직일 테고 마지막 날에 계약이 몰릴 것 같아.”
“그렇겠지?”
“그럼. 그러니까 계약서 미리 준비하고 이상 없는지 다시 한번 잘 확인해.”
“알았어.”
“저기 또 관람객들이 몰려온다. 정신 차리고 끝까지 잘하자.”
“오케이. 저 관람객들 내가 맡을게.”
심용철이 관람객들에게 다가가는 것을 보며 만족한 미소를 짓는 황정화 사장이었다.
* * *
대한 일보 서하연 기자는 오늘도 허탕을 치고 힘없이 사무실로 돌아와 자기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옆자리에서 그 모습을 본 황태성 기자가 혀를 찼다.
“너 요즘 뭐 하고 다니냐?”
“내가 뭐 놀러 다니는 줄 알아? 힘들게 기삿거리 찾으러 다니다가 온 거야. 오늘도 얼마나 걸었는지 발이 아파.”
“뭘 얼마나 걸었기에 발이 아플 정도야? 차 타고 안 다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