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화.
마법이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지 6년.
강산이 한 번 바뀌지도 못할 정도로 우주적 관점으로 바라보기에는 아주 찰나의 순간과도 같은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 동안 이 지구는 몰라볼 정도로 변화하였다.
[ 네. 다음 소식입니다. 최근 전 세계의 음반 시장에 큰 화제를 몰고 오는 ‘세계수의 자매들’이 한, 미, 일을 비롯한 세계 29개국에서 1위를 달성했습니다. 세계수의 자매들은 엘븐 킹덤에 소속된 엘프들로 이루어져 있는 여성 보컬 그룹으로 아름다운 외모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적인 음색으로 전 세계의 남성 팬을 모조리 휘어잡았습니다. 이들의 소속사인 매지컬 엔터테인먼트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한 대규모 콘서트를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
[ 전 세계 학계에 새롭게 개설되고 있는 ‘마법’ 학파의 전문성이 많이 뒤떨어진다는 관련 전문가들의 지적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마나를 수련하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위험 상황에 대비하지 못해 수련 도중에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 각성자들이 매년 속출하고 있습니다. 이에 마법 학술 기관인 우로보로스에서 한시적으로 파견 교수를 몇몇 대학에 보내 주고 있으나 그 수가 현저히 부족해 앞으로도 우로보로스의 입학 경쟁은 더더욱 과열될 전망입니다. ]
[ 최근 새롭게 창설된 신성 교단. 여명의 빛이 세계 곳곳에서 악마들의 출몰 빈도가 증가하고 있다는 통계 자료를 발표했습니다. 관련 통계와 관련해 여명의 빛 관계자는 주변에 여러 고난과 어려움에 고통받는 이들을 방치하지 말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주변에 작은 관심과 선행이 악마들의 영혼에서 이웃과 가족들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며, 남을 위하는 헌신과 봉사 정신을 강조했습니다. ]
[ 스페이스 S가 파이오니어 모델을 비롯한 우주 탐사선의 예약 판매를 드디어 개시했습니다. 미합중국 정부를 우선으로, 수많은 국가가 경쟁적으로 관련 입찰에 참여할 것으로 보이는데요, 한 대의 예상 낙찰가만 최소 60억 달러 이상일 것으로 예상되며, 비로소 인류가 본격적인 우주 개척 시대를 맞이했다는 소식이 시장에 나돌자 오늘 스페이스 S의 주가는 21% 급등하였습니다. ]
불안정한 국제적 정치 상황에 맞물려 나날이 심각해져 가는 환경 파괴로 인해 촉발된 핵전쟁으로 종말 엔딩을 향해 나아갔을 세계.
하지만, 그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의 전개로 흘러가는 모습을 보며 나는 조금은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안도할 수 있었다.
“이제 좀 그럴듯한 모습이 된 것 같네.”
멸망의 조짐이라고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 상황.
그렇기에 나는 지난 1년 동안은 생각보다 꽤 느긋하고 여유를 가지며 한가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자네가 학교로 자원봉사를 나간다니.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는가?”
나를 앞에 두고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킬킬거리며 찻잔을 들어 올리는 이호준 대통령.
지난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초등학교나 유치원 등을 돌아다니며 아이들을 돌봐 주거나 놀아 주는 봉사 활동을 하고 다닌 나는 그런 그의 물음에 어깨를 으쓱하며 되물었다.
“제가 뭘 어떻다고요? 이래 보여도 저 생각보다 아이들 좋아하거든요?”
“아이들을 좋아하긴 무슨……. 그냥 각성자로 적합한 싹수 파란 녀석들 찾아 나서는 거겠지.”
내 말에 다 알고 있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리는 이호준 대통령의 말에 나는 딱히 히죽 웃으며 답했다.
“어? 뭐예요? 알고 있었어요?”
“뺀질거리면서 이곳저곳 돌아다니면서 괜찮은 소질이 있는 아이들을 발견하면 부모들에게 접촉해 우로보로스의 특별 장학생으로 자네가 선점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보좌관들이랑 국정원 간부 사이에서 쉬지 않고 들려오고 있는데 모를 리가 있겠나?”
“하여간 자네 때문에 임기 말년까지 조용한 날이 없네. 아니, 각성자가 앞으로 얼마나 중요한 인적 자원인지 알면서 왜 자꾸 유망주인 미래 인재들을 어떻게 그렇게 귀신같이 찾아내서 쏙쏙 빼가는 건가? 제발 좀 어떻게 말려 달라고 국정원장이 나에게 맨날 닦달하고 있거든.”
아직 마력을 각성하지 못한 어린아이들. 그렇기에 정부에서도 이들의 존재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황이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멀린이 이들의 잠재성을 누구보다 빠르게 알아보고 유망주들을 쏙쏙 집어 가고 있었다.
“뭘 어떻게 하긴요? 감이죠. 감.”
“그 감을 우리한테도 좀 알려 줄 수는 없는 건가?”
“글쎄요……. 이건 기계적으로 수치화할 수 있는 개념이 아니라서 조금 어려울 것 같은데요.”
“……? 그게 무슨 소리인가?”
“말 그대로예요. 어느 한 사람의 운명(運命)을 읽어 내는 거는 단순한 아티팩트나 감지기로 확인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
오직 나만이 가능한 방식으로 유망주들을 골라내고 우로보로스로 데려가고 있는 내가 한국 정부로서는 아니꼬워서 미치고 팔딱 뛸 법한 상황이었지만, 그렇다고 이를 막아설 수도 없었다.
“너무 걱정들 하지 말라고 전해 주세요. 졸업까지 시키고 난 이후에는 한 10년 정도만 부려 먹고 자유롭게 풀어 줄 생각이니까요. 뭐……. 그런다고 그 녀석들이 한국으로 되돌아오는 선택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알아서들 설득하셔야 할 문제고요.”
단순히 마법사로 성장할 재능이 있는 이들을 키워 낼 뿐, 굳이 한국을 위해 헌신할 충성스러운 인재들로 만들 생각은 전혀 없었기에 나는 이호준 대통령의 말에 어깨를 으쓱했다.
“자네는 참 알다가도 모를 사람이네. 도대체 왜 그렇게 마법을 가르치는 데 헌신적인가?”
“……. 그게 뭐가 어때서요?”
“아니, 그렇지 않나. 보통의 인간이라면 자신만이 아는 지식이 있다면, 이를 숨기고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는 법이네.”
자신만이 아는 비기나 지식을 남에게 알려 주는 것을 꺼리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인간의 본성. 한낱 요리법 하나까지도 며느리에게 알려 주지 않고 꼭꼭 숨겨 대는 이 비정한 현대 사회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마법의 지식을 자유롭게 풀어내는 나를 이호준 대통령은 도무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마치 자네와 같은 마법사들이 이 지구에 득시글거리기를 바라는 사람처럼 말이지……. 교육에 너무 열정적이란 말이야.”
삼진 그룹을 이끌던 회장이었던 때부터 멀린을 옆에서 지켜보았던 이호준 대통령. 그렇기에 그는 환경 보호 다음으로 멀린이 제일 민감하게 반응하고 신경 쓰는 주제가 바로 이 교육이라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이번에 오스트레일리아인지 파푸아 뉴기니인지에서 건설 중인 우로보로스만 봐도 그렇네. 제주도보다 더 커다란 규모의 땅덩어리를 하늘 위를 날아다니게 할 생각이라며? 최소한의 수용 인구만 해도 80만 명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던데.”
고작 학교 하나라고 하기에는 정신이 나가 버린 규모. 게다가 그곳에 들어간 마법진의 수준과 마나석을 비롯한 재료들의 규모는 감히 집계할 수 없을 정도로 천문학적이었다.
“수십만 톤은 족히 될 법한 무게의 땅덩어리를 공중을 부유하고 전 세계를 돌아다니게 만들고, 투명화 기능에 핵미사일도 막아 낼 수 있을 수준의 방어막. 거기에 크로노스 시스템은 물론이고 기후 조절에 심지어 워프 마법까지도 들어갔다던데 이 정도면 학교가 아니라 그냥 하나의 도시 국가로 치부해도 되는 수준으로 보이네만.”
내가 꿈꾸고 있는 계획을 알고 있다는 듯이 히죽 웃어 보이는 이호준 대통령. 하지만 그는 내가 무어라 답을 하기도 전에 돌연 관심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어 갔다.
“됐네. 굳이 대답 안 해도 되네. 어차피 이제 임기도 다 끝나고 은퇴할 상황인데 자네가 뭘 하든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지.”
이미 살면서 이룰 수 있는 업적이란 업적은 다 이룬 이호준 대통령. 그렇기에 그는 앞으로 어떤 후회나 미련도 없다는 듯이 편안한 표정으로 소파에 몸을 누이며 말했다.
“그건 그렇고……. 자네 최근 여론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론이라면……. 설마 그거요?”
“그래. 그거. 요즘 국회에서 그 여론 때문에 얼마나 게거품을 물고 발작하고 있는지 아나?”
최근 한국 사회에 퍼져 나가고 있는 하나의 여론.
그것은 다름 아닌 차기 대통령 선거와 관련해 최근 한국 사회를 뜨겁게 달구는 이야기였다.
- 솔직히 말해서 현재 한국에서 다음 대통령으로 뽑을 만한 인물이 없지 않음?
- 인정. 그 나물에 그 밥임. 죄다 똑같더라
- 어떻게 하나같이 법정에서 혓바닥 걸고 청문회 하겠다는 인간이 없냐?
- ㅋㅋㅋ 그걸 누가 미쳤다고 함? 혓바닥 날아가거나 정치 인생 끝장난 거나 둘 중 하나인데.
- 요즘 죽어도 안 가려는 법원에 제 발로 들어갈 인간이 누가 있겠냐?
그 어떠한 거짓말도 인정하지 않는 신성한 법정.
그곳에서 차기 대통령 후보자들을 검증하는 토론을 진행하자는 주장이 강력하게 빗발쳤지만, 이러한 여론에 결사반대를 외쳐 대며 무산시킨 후보자들의 행태에 대중들의 반응은 차갑기 그지없었다. 그리고, 그 이후로 묘한 이야기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었다.
- 소신 발언 하나 해 보자면 이호준 대통령의 최대 업적도 사실 멀린이랑 친한 거 아님?
- ㅋㅋ 맞지. 솔직히 누가 되든 멀린하고 좋은 관계만 유지해도 평타는 침.
- 문제는 이호준 대통령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정치인도 멀린하고 친하지 않다는 거지.
- 그렇게 조지겠다고 달려든 놈들을 멀린이 좋아할 리가 있겠음?
- 그럼 지금 후보로 나온 놈팽이들 중에 누구를 뽑든 결국 나락 확정 아니냐?
몰라볼 정도로 급부상한 한국의 국제적인 위상과 저력.
그리고 그 배후에 멀린이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기에 최근 하나의 주장이 계속해서 튀어나오고 있었다.
- 그냥 멀린을 대통령으로 뽑으면 안 되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되고 압도적인 지지율 속에서 찍소리도 못하고 그의 눈치만 볼 수밖에 없었던 대한민국의 국회. 그렇기에 차기 대권에는 반드시 정권 탈환을 하고야 말겠다며 절치부심 칼을 갈아 오던 두 야당은 예상치 못한 여론에 초조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당사자는 조금도 그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지만 말이다.
“……? 어차피 저는 대통령 후보로 출마할 자격 요건도 안 되지 않나요?”
기본적으로 새파랗게 어린 내가 지원할 수조차 없는 영역. 최소한 나이가 40세는 넘어가야 지원할 수 있는 자격 요건이 되기에 애초에 논의조차 할 수 없는 문제였지만, 이호준 대통령의 생각은 달랐다.
“뭐……. 그런 부차적인 제한 사항들은 바뀔 수 있는 것들 아니겠나? 만약 자네가 진지하게 대권에 도전하겠다고 한다면 그건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생각하네만.”
은근히 내가 자신의 후계자가 되기를 바라는 듯한 눈치의 이호준 대통령.
그리고 그는 은근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어떤가? 자네도 이 자리에 한번 앉아 보는 게 어떻겠나? 가끔 골치 아프고 성가신 일이 없는 건 아니네만 그래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처럼 나쁘지는 않네. 나름대로 보람도 있고.”
내가 원한다면 법을 바꿔서라도 자신이 앉았던 이 권좌에 나를 앉혀 보이고 말겠다는 의지를 적나라하게 내비치는 이호준 대통령. 하지만 나는 그의 제안에 일말의 고려도 없이 답했다.
“미쳤어요? 내가 왜 그런 수지 타산도 안 맞는 짓을 해요?”
마음만 먹으면 북한은 물론이고 나에게 영혼이 저당 잡힌 탄자니아까지도 원하는 대로 부릴 수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내가 진정으로 마음을 독하게 먹는다면 한국이나 미국을 비롯해 지구 전체를 하나의 단일 국가로 만드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한국을 통치하는 것은 ‘못’ 하는 것이 아니라 ‘안’하 는 거예요. 뭐가 예쁘다고 내가 그렇게 귀찮고 골치 아픈 일에 휘말려요? 고마운 줄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X간들이 지천에 그득그득 깔려 있는데?”
대놓고 나의 영향력에 편승하겠다는 인간들이 가득한 이 나라에서 그렇게 해 줄 생각은 추호도 없었기에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단호한 어조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제가 그 자리에 앉는 일은 눈에 흙이 들어가도 없을 테니까 꿈 깨라고 하세요. 의원들한테도 괜히 지레짐작해서 같잖은 수작질 부리다가 나한테 걸리면 진짜 다 뒤질 줄 알라고 전해 주시고요.”
“……. 그렇게까지 싫은가?”
진심으로 싫어하는 내 반응에 조금은 상처받은 듯한 이호준 대통령.
하지만 나는 그런 그의 물음에 도리어 되물었다.
“지금 용용이가 북한 통치하겠다고 얼마나 개고생하고 있는지 모르고 하는 말이에요?”
북한이라는 국가를 완전히 새롭게 재탄생시킨 용용이.
전 세계의 학자들과 정치인들을 경악하게 만든 어마어마한 성과를 이룩하며 눈부신 성장을 끌어내고 있었지만, 그에 따른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 이런 XXXX하고 XXXXX할 X간 새끼들은 도대체 왜 하지 말라는 짓들을 계속하는 걸까? ]
[ 하여간 뿌리 검은 짐승 새끼들은 거두는 게 아니라고 하더니. 딱 그 말이 맞네. 다 굶어 뒤져 가는 새끼들 거둬서 먹여 주고 치료해 주고 했더니 이제는 아주 대놓고 보따리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네. 오냐오냐해 주니까 호이가 권리인 줄 알지? 마법 맛 좀 볼래? ]
단 한시라도 한눈을 팔고 있으면 어디에선가 꼭 방심한 틈새를 비집고 이상한 짓을 벌이는 인간들. 그 때문에 조금도 긴장을 풀 틈새도 없이 모두를 주시하고 감시하는 용용이는 최근 들어서 회의감을 넘어서 이상한 사상에 조금씩 빠져들고 있었다.
[ 주인. 요즘 들어서 진지하게 드는 고민인데……. X간들은 그냥 모조리 박멸해 버리는 게 차라리 이 행성을 위한 일이 아닐까? ]
[ 아니, 박멸하는 건 너무 그렇다고 한다면 딱 절반만 정리하는 거야. 북한만이 아니라 지구상에 있는 인구의 절반을 엄선해서 제거한다면, 이 X간들도 조금은 인간다워지지 않을까 싶어서 말이야. 어? 어떻게 생각해? ]
프롤레타리아 혁명을 통해서 인간을 계몽시키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지고 시작했지만, 지독한 인간 혐오에 빠져들어 전 세계 인류의 절반을 삭제(?)시켜야 한다는 이상한 주장을 하는 용용이. 그런 그의 고된 중노동을 옆에서 쭉 지켜보고 있었기에 나는 북한의 두 배나 되는 인간들을 떠넘기려는 이호준 대통령의 제안에 나는 확신에 찬 얼굴로 답을 할 수 있었다.
“대통령 같은 건 시켜 줘도 안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