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화.
20년 후에 멸망할 운명을 타고난 세계.
하지만 마법이라는 중대한 변수의 등장과 함께 이미 정해져 있던 운명은 완전히 뒤틀렸다.
[ 이호준 대통령은 오늘 언론 브리핑을 통해 마법이 단순한 교육 제도를 넘어서 산업 전반에 활용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5개년 마법 개혁 로드맵을 발표했습니다. 이에 마법 기술을 선제적으로 활용하고 있던 삼진 그룹의 주가는 장중 3% 이상 상승했으나, 일각에서는 특정 기업을 밀어주기 위한 정책 아니냐는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
[ 환경 보호가 전 세계의 화두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이전부터 환경 문제는 인류 사회 전체의 문제로 주목받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 분위기가 사뭇 다릅니다. 단순한 명분이나 대의를 위한 이유가 아니라 마나라는 새로운 에너지원의 원활한 확보라는 현실적인 과제로 인한 것이기에 이번에는 정말 의미 있는 해법을 도출해 낼 것이라는 기대감이 실리고 있습니다. ]
[ UN 총회에서 미국이 주도로 추진하던 마법과 마법사들에 관한 국제적인 공조를 강화하기 위한 국제 협약. ‘국제 마법 법령(The International Statue of Magic)’을 승인했습니다. 이를 통해서 마법과 관련한 기초적인 기준들이 마련된 것인데요, 이 협약에 가입하는 것에 대해 중국과 러시아를 비롯한 반-서방 세력들은 미국에 유리한 조항들을 지적하며 부정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
한 나라의 대통령이 완전히 뒤바뀌고, 환경 보호가 여러 국가의 주요 안건이자 과제가 되며 전 세계의 국가가 한자리에 모여 마법과 관련한 국제적인 규범을 만들기 위해서 고민하는 상황. 그리고 이건 분명 멸망을 향해 치달아 가던 2023년의 세상이 아니었다.
이러한 변화를 불러온 한 사람.
멀린.
그가 만들어 낸 변화와 그 이유에 대해서 사람들은 제대로 알지 못했지만, 오직 한 사람만이 유일하게 그가 바라보고 있는 목표와 그 이유에 대해서 분명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뭐를 만들 생각이라고요……?”
매지컬 컴퍼니의 대표이사이자 멀린의 전속 매니저이자 동시에 뮤튜브 편집자를 겸임하고 있는 이아영. 세계 멸망을 막아서기 위해서라는 일념 하나로 이 정신 나간 마법사의 비서를 자처하고 있는 그녀는 갑자기 나타나서는 별것 아니라는 듯이 터무니없는 것을 요구하는 멀린을 황당하다는 눈으로 바라보며 되물었다.
“인공 섬이요. 적당한 크기로 하나 직접 만들려고 하는데 적당하게 지지 기반으로 쓸 만한 돌이나 흙들 좀 구해 줄 수 있어요?”
“갑자기 무슨……. 이제는 하다 하다 간척 사업에까지 손대시는 거예요? 그럴 거면 그냥 차라리 어디 외국의 작은 섬을 하나 통째로 사시는 게 낫지 않아요?”
엉뚱한 요구를 하는 멀린에게 피식 웃어 보이고는 흘려들으며 손에 들고 있던 결재 서류에 도장을 찍는 아영. 하지만 나는 그런 그녀에게 조금은 진지한 얼굴로 설명을 이어 갔다.
“우로보로스가 새롭게 확장 이전될 곳인데 그냥 아무 나라에 있는 섬에다 지으면 감당할 수 있으시겠어요? 아마 그랬다가는 미국이나 한국 정부가 게거품을 물고 발작하지 않을까요?”
우뚝.
그 말에 일순간 움직임을 멈추는 아영. 그리고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다시금 되물었다.
“뭐……뭐라고요? 뭘 새로 지어요?”
“우로보로스요. 작년에 말했었잖아요. 지금 있는 곳은 시범 사업을 위해서 한번 테스트 삼아 만들어 본 것뿐이지, 진짜는 나중에 완전히 새로 만들 생각이라고 했잖아요.”
서울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경기도 인근에 만들어진 학교.
하지만 그것은 촉박한 시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임시로 조성된 시설일 뿐인 데다 한국 정부의 관할권 안에 묶여 있는 곳이었기에 완전한 자유를 누리기에는 한없이 부족한 곳이었다.
“게다가 그곳은 수도권인 도심지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이라서 마나 생산력도 떨어지는 곳이잖아요. 지금 당장이야 학생이나 교직원 수가 그리 많지 않아서 가동에는 그리 큰 문제가 없는 상황이지만, 나중에 수천……. 아니, 수만 명 이상의 인원이 상주하는 규모로 커지게 된다면 그곳의 마나량으로는 턱도 없이 모자랄걸요?”
“지금 당장이라도 새로운 시설을 준비하는 게 좋을 거예요. 나중에 예기치 못한 상황에 마법진의 가동이 중단되어서 누구 황천길로 떠나 버리는 대참사 보고 싶지 않으면 말이죠.”
불사(不死)를 유지하기 위해서 한순간도 가동이 중단되면 안 되는 크로노스 시스템. 그 마법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나의 말에 아영은 한숨을 푹푹 내쉬며 물었다.
“아니, 도대체 어느 정도의 규모로 지으려는 건데요?”
“음……. 대충 가로세로 해서 각각 20km 정도 크기로요?”
“…….”
“그 이상으로 넓으면 더 좋고요.”
20km*20km.
다시 말해 400km². 즉, 1억 2,100만 평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섬을 인공적으로 만들겠다는 정신 나간 계획을 꾸미는 멀린을 보며 아영을 할 말을 잃었다.
“지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뭘 벌써 그렇게 호들갑을 떨고 그래요? 아직 진짜 놀랄 만한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는데?”
히죽 웃으며 무언가 불길한 미소를 짓는 멀린.
그리고 그는 이내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그녀의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뭔데요……? 이 USB는?”
“한번 확인해 봐요. 제가 그래도 우로보로스에서 1년 동안 가르치기만 하면서 시간 때운 건 아니거든요. 틈틈이 시간 날 때마다 앞으로 우리의 마법 혁명을 위해서 준비해야 할 것들을 고민하고 생각해놨죠.”
투박한 금속형 USB.
마법 혁명을 위해서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준비했다는 멀린의 말에 그 USB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아영은 이내 약간은 긴장된 얼굴로 집어 들고는 천천히 자신의 컴퓨터에 꽂고는 그 안에 들어가 있는 파일들을 확인했다.
“이건……?”
듣도 보도 못한 수많은 마법 회로와 마법진들에 대한 세부적인 설계도가 들어가 있는 복잡한 파일들. 전자 공학을 전공한 반도체 산업 종사자나 만질 법한 EDA(Electronic Design Automation)를 활용해 완성된 여러 개의 설계도 파일들이 가득했다.
“이거 만들면서 떠오른 건데, 나중에 마법진 설계를 위한 프로그램도 하나 우리가 만들어 보지 않을래요? 나중에 아티팩트 시장이 커지면 관련 설계도를 제작하는 툴도 많이들 필요로 하지 않을까 싶더라고요. 이거 구독제로 내놓으면 쏠쏠한 사업이 될 거 같던데……. 아무래도 반도체 제작 툴이다 보니 기존 것들은 안 맞는 부분도 많고 불편한 것이 영…….”
새로운 사업이 떠올랐다면서 반도체 제작 프로그램의 문제점에 대해서 주저리주저리 떠드는 멀린. 하지만 아영은 그가 1년 동안 만들어 놓은 그 작업물들을 살펴보느라 그 이야기를 하나도 듣지 못했다.
“이……이게 도대체 뭐예요?”
한참을 멍하니 앉아서 수백……. 수천 가지의 파일들의 제목을 살펴보던 아영. 그리고 그녀는 그 제목들을 보며 그가 만든다는 섬이 평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위장이랑 인식 저해……. 거기에 은폐랑 탐지 왜곡. 섬 전체를 감싸는 거대한 방어 결계에 인공적으로 섬의 기후를 조정할 수 있는 마법. 그 이외에도 꽤 많죠? 저도 알아요. 이 모든 것을 마나석에 하나하나 새겨 넣으려고 한다면 벌써 대가리가 뜨거워지죠?”
히죽 웃으며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묻는 멀린.
하지만 아영은 이내 마지막에 그려져 있는 엉성한 조감도를 보고는 이내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중얼거렸다.
“반중력……. 마법이라고요?”
중력을 거스르고 하늘 위에 부유하는 거대한 섬……. 아니, 하나의 요새나 다름없는 시설.
그리고 그곳에 자리하고 있는 마법 학교 우로보로스가 그려져 있는 풍경을 보며 경악하는 아영에게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언제라고 일평생 한국 정부랑 사이좋게 지낼 수는 없는 법이잖아요? 나중에 또 이상한 정권 들어와서 자꾸 꼴 받게 이거저거 간섭하고 그러면 그때는 짐 쌀 필요도 없이 그냥 학교를 가지고 통째로 떠나 버리면 되는 거예요. 미국이든, 어디든 원하는 곳 어디에서든지 둥지를 틀면 되죠.”
공중에 떠서 자유자재로 이동할 수 있는 하늘섬. 알바트로스와 그곳에 자리 잡은 마법 학술 기관 우로보로스. 멀린이 최종적으로 완성하고자 하는 학교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비로소 깨달은 아영은 정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그러니까……. 특정 국가에 얽매이기 싫다고 아예 학교를 이동식으로 만들어 버리겠다고요?”
“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난다는 말에 떠오른 아이디어예요. 어때요? 엄청나게 혁신적이죠?”
“……. 혁신적이라기보다는 이 정도면 아예 반역적인 수준 아닌가요.”
일반인이라면 도무지 상상도 하지 못할……. 아니, 애초에 현실에 구현 자체가 불가능한 방식. 하지만 전지의 권능이 가져다주는 마법 지식은 그 불가능한 것을 충분히 가능한 현실로 만들어 주었다.
“제가 생각하는 규모로 섬을 만들고 운용하려면 용용이랑 세심한 검토와 계산을 해 본 결과 최소 최종병기형 마나석 1개를 메인 코어로 두고 특대형 최상급 마나석 120개를 전역에 장착해 부족한 마력을 보조하는 형태로 구상하면 될 것 같더라고요.”
“그건 또 뭔데요……?”
듣도 보도 못한 등급의 마나석을 운운하는 멀린. 그런 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아영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묻자 멀린은 말했다.
“아, 최상급 마나석이랑 같아요. 다만 그 사이즈가 더럽게 무식할 정도로 크다는 것이 차이일 뿐이죠.”
지금은 해 봤자 고작 사람 머리통 정도의 크기로 제작되고 있는 마나석의 표준 규격.
그리고 그렇게 작은 크기로 제작되고 있는 것은 그리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었다. 그저 현재 전력을 주 에너지로 사용하고 있는 현실에서 그렇게 많은 양의 마나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가장 효율적인 크기로 만들고 있는 것이 전부일 뿐.
얼마든지 필요에 따라 그 마나석의 크기와 규모만 늘릴 수 있다면, 내가 말한 이 무지막지한 규모의 하늘을 부유하는 천공섬을 만들고 운용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하아……. 일단 무슨 말씀인지는 알겠어요. 하지만 지금 당장 이걸 만들어 내라고 한다면 그건 제가 아니라 누구를 데려와도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는 계시죠?”
“그럼요. 제가 무슨 10살짜리 어린애도 아니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생떼를 부리겠어요? 한……. 10년……. 아니다. 5년 내로만 만들어 주시면 돼요.”
“……. 9년.”
“6년.”
“8년.”
지금 당장 매지컬 컴퍼니의 모든 자산과 인력을 갈아 넣어도 수십 년은 족히 걸릴지도 모르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토목 공사. 단군……. 아니, 인류 문명의 창시 이래로 가장 대규모의 공사가 될지도 모르는 이 전례 없는 환상 속의 섬을 5년 안에 만들어 내라는 멀린의 말에 아영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그와 한참을 씨름하다 말했다.
“7년으로 하죠……. 사실 그 기간 안에 만들 수 있을지 그것조차도 미지수네요.”
“왜요? 무슨 문제라도 있어요?”
“……. 혹시 제가 보내는 사업 보고서를 읽긴 읽으시나요?”
매번 주기적으로 매지컬 컴퍼니의 사업 현황과 재무 상태에 대해서 보고했던 아영. 하지만 전혀 그것을 읽어 보지 않은 것 같은 멀린의 질문에 그녀는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제가 뭐 놀고 있었나요? 그 망할 제자들 가르치고 확장할 우로보로스 계획도 틈틈이 구상하고……. 거기에 매번 버르장머리 없는 주둥아리 놀리는 용용이 참교육도 주기적으로 해 주고 레너드 대통령이랑 이호준 대통령이랑 간간이 영업도 좀 뛰어 줘야 해서 진짜 눈코 뜰 새도 없었다니까요?”
“결국에는 안 읽어 보셨다는 말이시군요.”
“뭐……. 그런 셈이죠. 어차피 아영이 알아서 잘하실 거잖아요? 제가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다는 믿음의 증거로 봐 주세요.”
뻔뻔한 얼굴로 눈을 찡긋거리는 멀린.
그런 그의 태도에 할 말이 많아 보이는 아영은 이내 깊은 한숨을 푹 내쉬며 말을 꺼냈다.
“지금 저희 매지컬 컴퍼니가 주력으로 벌어들이고 있는 수익 사업은 두 가지예요. 일단 첫 번째로 멀린 님을 대신해서 저희가 삼진 그룹으로부터 수령하고 있는 30%의 이익금. 그리고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서 사들인 광산들로부터 나오는 채굴 수익.”
마나석의 대량 생산 체계는 이미 완성했지만, 아직 정식적인 판매와 상용화는 여러 문제로 인해서 미뤄두고 있는 상황. 간신히 적자는 면하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막대한 자금을 운용하며 무리한 투자를 감행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기에 아영은 골치가 아프다는 듯이 관자놀이를 매만지며 말했다.
“그런데 최근에 저희가 매입한 광산들에 문제가 생겼어요. 가장 핵심적인 주력 광산 두 곳에서 붕괴 사고가 발생해서 광부 3명이 매몰되어 사망했고 5명이 크게 다쳤죠. 그리고 그 때문에 두 광산 모두 가동을 중단한 상태고요.”
“그래요……?”
아영이 건네주는 보고서를 받아 들고 유심히 그 내용을 살펴보던 나는 이내 그녀가 말하는 광신이 어딘지를 확인하고는 눈을 크게 뜨며 물었다.
“여기는……. 최상급 마나석을 생산하는 원료인 탄자나이트의 유일한 채굴지네요?”
“그래요. 특히 그곳이 제일 문제예요. 벌써 붕괴 사고가 3번이나 발생한 곳이거든요.”
“3번이나요……?”
한 광산에서 연속적으로 3번이나 발생한 붕괴 사고.
수상한 냄새가 물씬 피어오르는 것을 직감한 나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네. 탄자니아 정부도 저희에게 잔뜩 화가 난 상태라서 지금 당장은 상황을 지켜보고 있어요. 혹시라도 또 불미스러운 사태가 벌어지면 그때는 광산 채굴 권한을 강제로 박탈하겠다고 대통령이 직접 엄포를 내려놓아서 진짜 조심해야 한다고요.”
근심 어린 얼굴로 무어라 계속 한탄을 토로하는 아영.
하지만 나는 그런 그녀의 말을 곧장 흘려듣고는 이내 그녀에게 말했다.
“잘됐네요. 안 그래도 우리 누나가 죽여 버리겠다고 아득바득 이를 갈고 다녀서 찾을 수 없는 곳에서 당분간 잠적해야 했는데. 딱 타이밍이 좋네요.”
“예……?”
지금 무슨 소리를 하냐는 얼굴로 되묻는 아영.
하지만 나는 그런 그녀의 물음에 답하지 않고 그저 히죽 웃으며 말했다.
“비행기 표나 하나 예매해 줘요. 아영.”
“이 해결사 멀린이 아영의 고민거리는 단숨에 해결하고 돌아올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