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화.
101화.
2021년 7월.
원래의 역사대로라면 이 시기의 한국인의 모든 관심은 이제 곧 시작될 대통령 선거에 누가 당선될 것이냐에 대한 주제로 쏠려야 할 시기였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대한민국을······. 아니, 전 세계를 뒤엎은 하나의 화젯거리로 인해서 대중들은 다음 대통령이 누가 될 것인지 일말의 관심도 가지지 않았다.
- 마법은 실제로 존재한다. 레너드 대통령의 성명으로 인해 충격에 빠진 세계.
- 마법 입국 프로젝트. 미국이 바라보고 있는 미래는 과연 무엇인가?
- 마법을 통한 인류의 번영을 주창한 레너드 대통령. 성명문의 내용 집중 분석.
한국에서 벌어진 사태와 관련해서 아무런 예고도 없이 급작스럽게 발표된 미국 정부의 마법 입국 선언문. 미국 대통령이 직접 나와 카메라 앞에서 마법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시인한 이후부터 전 세계 언론이 한 사람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김철수······. 아니, 멀린이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하던 어느 한 중학생 소년을 말이다.
- 이 세상의 유일한 마법사라고 주장하던 멀린. 그는 정말 마법사였다!
- 특집 기사! 멀린의 충격적이고 은밀한 사생활? 같은 반 동급생이 이야기하는 멀린의 실체!
- 16살의 중학생 소년 마법사 멀린. 과연 그의 정체는 무엇인가.
멀린과 관련한 모든 것을 낱낱이 파헤치며 온갖 것들을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로 만들어내며 온갖 허위 사실과 추측이 사방에서 난무하기 시작한 상황. 하지만 그런 언론의 맹렬한 관심과 뜨거운 취재 열기 속에서 나는 굳이 침묵하거나 숨지 않았다.
오히려 예전보다 더욱 운신의 범위가 넓어진 이 상황을 이용해서 당당하게 나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본격적으로 움직였다.
“안녕하십니까. 시청자 여러분. 오늘 저희 BMC에서는 아주 특별한 손님을 스튜디오로 모셨습니다. 바로 최근 미국 대통령이 발표했던 마법 입국 선언과 관련해 유일한 마법사로 알려진 멀린 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네. 반갑습니다.”
나와의 인터뷰 진행을 맡은 BMC의 메인 앵커인 권진표. 오랜 시간을 방송 업계에 몸 담은 평소에도 유려하고 매끄러운 진행으로 명성이 높았지만, 그조차도 이번 인터뷰만큼은 부담스러운지 그의 얼굴과 목소리에는 평소와는 다른 긴장감이 실려 있었다.
“많이 긴장하셨나 보네요.”
별생각 없이 툭 던진 내 말에 잠깐 당황한 진표. 하지만 그는 이내 웃으며 자연스럽게 그 말을 흘려 넘겼다.
“하하하. 평소보다 훨씬 더 많은 시청자가 이 방송을 지켜보고 있어서 그런 것 같습니다. 그보다 인터뷰를 시작하기에 앞서, 저희와의 인터뷰를 허락해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를 드려야 할 것 같군요.”
“뭘요. 제가 전에 BMC에서 사고 친 것도 있어서 보답할 겸 수락한 거니까 그렇게 감사해하지 않으셔도 돼요.”
“예······?”
조금은 분위기를 편안하게 가져가 보고자 잠깐의 사담을 던진 진표. 하지만 이어지는 내 대답에 그는 무슨 말이냐는 듯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매직 서바이벌이요. 거기 무슨 연예인 하나가 꼴 받게 해서 괜히 로또 당첨 번호 말해줬다가 BMC가 난리가 났잖아요. 그거 때문에 무슨 국장인가 하는 아저씨는 모가지 날아가고 사장도 본인 이름으로 사과문 게시하고 그러지 않았어요?”
“······.”
“사실 그때 이후로 BMC는 물론이고 다른 방송사에 출연하는 것은 앞으로 죽을 때까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하다 보니 다시 이렇게 방송에 또 출연하게 됐네요. 이런 거 보면 TV에 나오고 싶으면 일단 유명해지고 보는 게 답인 거 같네요. 그쵸?”
마치 뮤튜브 방송을 하는 것처럼 빠꾸 없이 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다 하는 멀린. 그런 그의 너무나도 솔직한 발언들에 진표는 지금 인터넷에 실시간으로 올라가고 있을 삼류 언론들의 자극적인 기사들의 제목을 떠올리며 정신이 아찔해졌다.
‘정신 차리자······. 허튼 질문을 던졌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갑작스럽게 BMC의 블랙리스트 의혹을 제기하는 멀린의 발언에 정신이 번쩍 든 진표. 그리고 그는 다급하게 오늘의 주요 목적이자 시청자들의 가장 궁금해하는 내용으로 화제를 돌렸다.
“그러시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가장 시청자들이 궁금해할 질문부터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법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했는데······. 시청자들에게 간략하게나마 설명해주실 수 있습니까?”
“마법에 대해서요?”
그 말에 나는 히죽 웃으며 답했다.
“그건 제 뮤튜브 채널에 보시는 게 가장 빠르실 것 같은데요?”
“예······?”
“네. ‘너도 할 수 있어. 마법사가 되는 법!’이라는 제목의 채널인데요. 제가 가장 중요한 핵심들만 요목조목 뽑아서 요약 정리해 놨으니까 그거를 보시는 게 좋을 거예요.”
“······.”
“아, 그리고 보실 때 구독 좋아요에 알림 설정도 꼭 해 주시고요.”
대한민국의 3대 방송사인 BMC의 뉴스 스튜디오에 앉아서 자신의 뮤튜브 채널을 홍보하고 있는 멀린. 그런 그를 멍한 얼굴로 바라보던 진표는 자기도 모르게 불쑥 튀어나오는 속내를 물어보고야 말았다.
“혹시······. 오늘 본인 채널 홍보하려고 오신 건 아니시죠?”
“맞는데요? 이럴 때 유입 확 끌어줘야죠. 물 들어올 때 노 젓는 건 당연한 거 아니에요?”
너무 당당하고 뻔뻔해서 할 말을 잃어버린 진표. 하지만 그런 그를 바라보며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너무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마세요. BMC도 뭐 저랑 다를 바 없잖아요? 세간에 화제가 되니까 이참에 시청률 좀 뽑아보자고 저를 여기에 앉힌 거잖아요. 우리 입에 발린 소리는 그만하고 서로 원하는 것들만 이번 시간 동안 빠르게 얻고 가자고요.”
“그게 무슨······.”
내 말에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무어라 반박하려던 진표. 하지만 그는 나의 손에서 일순간 피어오르는 거대한 화염의 구를 보며 입을 다물었다.
화르르르르르륵.
“3 서클의 원소계 마법. 파이어볼이에요. 가장 대중적이고 마법사의 상징과도 같은 마법이니까 대충 이거로도 제가 마법사라는 것은 충분하게 증명이 되겠죠?”
“저게 무슨······.”
“세상에 맙소사······.”
얼굴이 익을 정도로 화끈하게 밀려오는 열기. 스튜디오 전체에 순식간에 퍼져나가는 열풍과 함께 새빨간 홍염이 내뿜어내는 강렬한 빛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한 이들의 술렁거림이 스튜디오에 퍼져나가고 있는 상황. 그리고 그 화염의 구를 가장 가까이에서 두 눈으로 본 진표는 정말로 경악한 얼굴이었다.
파스스스.
“정말이지 놀랍군요······.”
마나를 거두어 마법을 흩어버리고는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흘리는 나를 아까와는 전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며 진심으로 경탄하는 진표. 그리고 이전과는 다르게 반짝거리는 눈으로 마법과 관련한 여러 가지 질문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뭐 마법적 경지가 올라가서 자연의 순리와 흐름을 통달하고 제어할 수 있는 물아일체에 이르게 된다면 굳이 축적하지 않고도 활용할 수는 있겠지만, 그건 인간들 대부분한테는 거의 불가능한 경지니까 그렇다고 봐야겠죠.”
“마나를 모으는 가장 좋은 방법은 호흡이에요.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곳······. 대자연이 살아 숨 쉬는 생태계가 비교적 마나의 밀도가 높은 편이니 그런 곳에서 생활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죠. 마나가 가진 균일성 때문에 그 차이가 그리 크진 않지만, 숲속 한 가운데에서 집 짓고 살아간다면 서울 같은 대도시보다는 2배 정도 차이가 날 거예요.”
“미국 정부가 최근에 환경 보호와 관련해서 발표했던 규제책이요? 네, 맞아요. 그게 전부 마나 때문이죠. 기본적으로 마나가 가진 효율성이 석유나 석탄, 원자력까지 모조리 다 씹어먹고도 남을 수준인데 그걸 알고도 가만히 있을 머저리가 있겠어요? 어떻게든 남아 있는 땅에다가 모조리 나무 심고 숲을 조성해서 마나를 생산해야죠.”
“마나를 각성하면 어떻게 되냐고요? 뭐······. 그런다고 전부 다 마법사가 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일단 기본적으로 마나에 자신의 강력한 의지를 심을 수 있다면 소위 초능력이라고 일컫는 이능은 쓸 수 있게 되겠지만, 그 방향성과 위력은 한계가 존재해요. 정말 제대로 그 마나의 힘을 100% 활용하기 위해서는 마법을 배우는 건 필수적인 과정이죠.”
앵커가 던지는 질문들에 대한 답을 하며 나는 한참 동안 마법에 관해 지금껏 뮤튜브에서 그 누구도 제대로 귀를 기울이지 않았던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매우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귀 기울이지 않았던 이야기.
하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이 스튜디오에 있는 사람들을 비롯해 방송을 지켜보고 있을 수많은 사람이 정말로 귀를 기울이고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었다. 방송이 시작된 이후로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는지도 의식하지 못할 정도로 말이다.
“그렇다면······. 제가 말씀을 듣다 보니 하나 더 궁금한 게 생겼는데요, 마법을 쓸 수 있는 재능을 가진 이들이 나타나게 된다면 그들이······.”
어느새 완전히 이야기에 매료되어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들까지도 질문하기 시작한 진표. 하지만 나는 그런 그의 태도에 황당한 눈빛으로 물었다.
“저기······. 잠깐만요. 그런데 이 인터뷰 언제까지 하는 건가요? 이미 예정된 시간보다 30분은 더 지난 것 같은데 이래도 되는 거예요?”
원래라면 저녁 9시 정규 뉴스를 시작하고도 남았어야 할 시간.
그렇기에 1시간으로만 예정되어 있던 인터뷰가 기약도 없이 늘어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중간에 그 누구도 방송을 끊을 생각이 없어 보이기에 나는 황당하다는 눈으로 되물었다.
“아, 괜찮습니다. 이후 방송들은 전부 무기한 미뤄둔 상태입니다.”
“······. 그래도 되는 거예요?”
“이런 인터뷰가 흔한 것도 아닌데. 괜찮습니다. 시청자들도 충분히 이해하실 테니 시간은 걱정하지 마시고 편하게 이야기하시죠.”
안 그래도 이미 이번 인터뷰를 통해 사상 최고의 시청률을 경신한 BMC.
동 시간대 시청률 85%라는 역사적으로 다시 없을 미친 기록을 달성했기에 이미 여기서 무슨 정신 나간 짓을 하더라도 용서받을 수 있는 상황. 그렇기에 진표는 뭐든지 하고 싶은 건 마음껏 하게 내버려 두라는 보도국장의 흥분에 찬 지시를 이어폰을 통해 전해 들으며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예전과 다르게 지금 멀린님의 이야기에 한국과 전 세계의 시청자들이 귀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평소에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말씀을 여기서 다 하고 가신다고 생각하시죠.”
“정말요······?”
“네. 뭐든지요. 아, 그래도 어린이 시청자들도 있을 수 있으니 비속어나 저속한 발언은 자제해 주시기 바랍니다.”
혹시나 뮤튜브에서처럼 대놓고 생방송 도중에 욕을 박아 버릴까 두려운지 황급히 하나의 조건을 덧붙이는 진표. 그리고 그 순간, 나는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하나 까먹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아! 그러고 보니 가장 중요한 이야기를 빼먹었네요. 어린이 이야기를 해 주시지 않았으면 큰일 날 뻔했네요.”
“네······?”
“요번에 제가 한국 정부에 납치당할 뻔했다고 했잖아요. 뭐 결국에는 한바탕 시끄럽게 하고 끌려갔지만 말이죠.”
“그러셨죠······. 그런데 그건 갑자기 왜······.”
“한국 정부가 저한테 제안을 하나 하더라고요. 내란죄를 일으킨 폭도가 되어서 평생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거나, 아니면 정부 밑에 들어가서 개처럼 구르며 목줄을 찬 노예가 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요.”
“예······?”
“아, 그렇게 놀란 표정 짓지 마세요. 그게 잘못된 건 아니니까요. 아니, 도덕적으로 잘못된 건 맞지만 뭐 마법사를 처음 본 입장에서 욕심이 생길 수도 있죠. 저 하나로 삼진 그룹이 살살이 풀이나 타임리스 휴대폰을 만들어낸 것만 보면 솔직히 말해서 누구든 눈이 돌아갈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마법 하나면 어마어마한 돈이 될 텐데 말이에요.”
“하지만······. 그렇다고 마법사도 아니고 이제 마나만 막 각성한 9살짜리 어린이한테 가혹한 노예의 목줄을 채우는 건 너무한 건 아닌 것 같더라고요. 인간적으로 그건 사탄이 경악할 수준 아닐까요?”
“그······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강원도에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최초의 각성자.
민서율의 존재를 공개적으로 모두에게 언급하며 나는 이번에 세상에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게 된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카메라에 대고 전부 보란 듯이 일러바쳤다.
“여러분도 조심하세요. 이놈의 나라는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애라도 이용해 먹을 가치가 있으면 수단 방법 안 가리고 등골을······. 아니지, 마나를 쪽쪽 빨아먹으려고 안달일 테니까요. 모르긴 몰라도 장담하는데 나중에는 마법사를 위한 특별법까지 만들면서 병역 의무를 대신할 특례 제도까지 만들어서 개같이 굴려 먹으려고 할걸요? 제가 나이는 어려도 헬잘알이거든요. 이번에 저한테 하는 짓 보니까 딱 봐도 그림이 그려져요. 그림이.”
“······.”
도대체 무어라 반응해야 할지 몰라 그저 멍하니 앉아 있는 권진표.
그런 그를 잠깐 바라보던 나는 이내 광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카메라에 대고 물었다.
“이게 진짜 나라 맞아요? 무슨 깡패 소굴도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