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화.
98화.
대한민국의 국익과 안보를 위해 소리 없이 오롯이 음지에서만 일하는 정부 기관.
국가정보원(National Intelligence Service).
물론 무소불위의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고 있던 과거 20세기와 같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지금까지도 이들은 일반적인 다른 조직과는 다르게 마음만 먹는다면 일반인들이라면 상상도 하지 못한 일들을 처리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일반인들이라면 아직도 국정원에서 나왔다고 한다면 지레 겁을 먹고 긴장할 수밖에 없었지만, 이들이 붙잡아온 이 어린 소년만큼은 달랐다.
“호오······. 누가 저를 상대하려나 했는데 생각보다 높으신 분이 오셨네요?”
심문실에 들어오자마자 반갑다는 듯, 장난기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네는 그. 하지만 이번 심문을 하기로 한 요원은 단 한 번도 그 소년을 만나본 적 없었기에 잠깐 미묘한 표정을 짓다 물었다.
“나를 아는가······?”
“국정원 대테러보안국 제2팀 소속. 박무진 단장. 아닌가요?”
“······!!”
정확한 그의 신상과 소속을 말하자 내색하지 않았지만, 일순간 그의 차갑고 딱딱했던 표정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하지만 이내 다시금 냉정을 되찾은 그는 침착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그 정보······. 어디서 들은 거지?”
조직의 특성상 모든 소속된 요원의 정보가 철저하게 국가 기밀로 관리되고 있기에 내가 방금 말했던 그 내용은 외부에서는 그 어디에서도 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미 이 건물 전체와 주변 일대를 마나를 통해 완전히 내 인지 범위 안에 두고 있었기에, 심문이 시작되기도 전부터 나는 국정원에 대해서 꽤 많은 것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뭐······. 밖에서 그렇게 시끄럽게 떠들고 다니면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어요? 한 30분 전에 김환수 차장인가 하는 아저씨랑 저와 관련해서 이야기하고 있었잖아요. 자기가 조용히 처리하라고 지시한 일을 어쩌다가 이 모양 이 꼴로 만들었냐고 한참을 깨지시던데. 어떻게······. 그래 가지고야 진급은 할 수 있겠어요? 그 아저씨 진짜 화난 것 같던데.”
“······.”
내가 있는 방에서 최소 수십 미터는 더 위에 있는 개인 집무실에서 이루어진 대화.
외부의 도청이나 감청을 방지하기 위한 특수한 조치가 되어 있는 그곳은 완벽한 방음을 자랑하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그 방 안에서 나눈 대화를 들었다는 나의 주장에 불가능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무어라 입을 열려고 했지만, 이어지는 나의 말에 다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초능력자를 포획해서 어떻게 그 능력을 얻게 되었는지 그 경위를 파악한다······. 뭐 저한테 무언가 있다는 것을 눈치 챈 것은 칭찬할 만한 일이긴 한데, 그건 뮤튜브를 보고도 충분히 알 수 있는 정보라고 생각하는데요? 뭐가 그렇게 궁금해서 저를 생포하는 작전까지 세웠는지 이해가 안 되네요. 그리고······. 작전명이 토끼 사냥이 뭔가요? 아니, 국정원 안의 요원들은 그렇게 작명 센스가 없어요?”
“······.”
그 어디에서도 노출된 적 없는 작전명까지도 이미 알고 있는 상황.
그렇기에 무진은 심문 직전에 차장과의 면담에서 나누었던 대화를 모두 다 엿들었다는 나의 말이 사실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거의 체념한 듯 깊은 한숨을 내쉬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
“너를 어떻게 하려거나 그런 건 아니었다. 그저······.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을 뿐이다.”
털 끝 하나 다치게 할 생각이나 의도는 없었다는 무진. 그리고 그의 말은 엄밀히 따지면 사실이긴 했다.
“그러시겠죠. 제가 대화를 나누고 싶지 않더라도 강제로라도 하게 만들려고 했다는 그 저의가 문제지만 말이죠.”
농담이 아니라 길거리 한복판에서 나를 강제로 끌고 가려고 했던 요원들. 만약 저항할 수 있는 수준의 힘이 없었더라면 그들에게 질질 끌려가 어딘지 모를 시설에 갇혀 있을 것이 뻔했기에 나는 냉소적으로 비아냥거리며 물었다.
“제가 아무리 세상 물정 모르는 중학생으로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런 식으로 강압적으로 끌고 가려고 하면 얌전히 따라갈 거라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그 괴한들이 총까지 들고 있다? 어디 길거리에 지나가는 사람들 붙잡고 한번 물어보세요. 이건 무조건 저항할걸요?”
“······. 네가 초능력자라는 감안해 혹시 모를 피해를 대비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
“알아요. 어련하시겠어요.”
나는 무진의 변명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여유로운 태도로 일관하며 물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모양새가 조금 그렇게 됐죠? 아무런 잘못도 한 적 없는 미성년자인 중학생 소년을 우리 국가정보원이 총기를 든 요원을 동원해서 비밀리에 납치하려 했다······. 이거 기자들이 알면 아주 인터뷰 따고 저와 관련한 기사 쓰고 싶어서 아주 난리가 나겠는데요?”
“······. 지금 나한테 협박하는 건가?”
내 말에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되묻는 무진은 이내 수많은 사진들을 책상 위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네가 저지른 잘못이 아무것도 없다고 하는데 얼마나 착각하고 있는지 알려주지. 너를 체포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상자만 모두 54명. 그들 모두가 공무를 수행하고 있던 국정원의 요원들이자 수도방위사령부 소속 육군 장병들이었다. 그들을 공격해서 위해를 입힌 것만 해도 심각한 군사 범죄이지만 네가 강제로 빼앗은 총기들만 해도 군용 무기 탈취에 파손된 수송 차량들은 군수품 파손 혐의를 적용할 수 있지. 아니, 앞에 말했던 모든 혐의를 다 떠나서······.”
“네 녀석의 행동은 충분하게 국가 반란 혹은 내란 혐의로 간주될 수도 있다.”
군대와 직접적인 교전까지 벌어졌던 상황.
총을 든 병사들과 단순히 대치하는 것을 넘어서 교전이 벌어지고 나아가 수십 명의 군인들을 제압하는 그 과정까지······.
그 모든 것이 영상 자료로 남아 있었기에 사실 내가 저지른 짓들의 증거들은 차고 넘쳤다.
물론 그게 정말로 이 나라 전체를 뒤엎겠다고 저지른 일들이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건 앞뒤 순서가 바뀐 것 같은데요? 애초에 아무 혐의도 없이 무작정 잡아가려고 한 것부터가 문제인데 정당방위가 어떻게 내란이 될 수가 있는지 그 논리가 이해가 잘 안 되네요.”
애초에 나를 먼저 건들지 않았으면 벌어지지도 않았을 일.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 이야기에 나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따져 물었지만, 그는 상관없다는 듯이 고개를 흔들며 말했다.
“상관없다. 어차피 네가 가진 그 마법이라는 힘 때문에라도 우리에게는 그럴만한 권한과 명분은 충분히 있었으니까. 조사할 만한 충분한 혐의점이 있었기에 작전이 수립된 거고, 모든 것은 절차에 따라 진행된 합법적이고 정당한 조치들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그러한 조치를 불응하고 저항한 것은 네 녀석의 선택이었고.”
“······.”
원래 계획대로라면 나는 마법의 존재를 최소 2년 정도는 후에 전 세계에 당당하게 드러내려고 했었다.
하지만 한국 정부의 멍청한 결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 계획이 엄청나게 빠르게 앞당겨진 상황. 그런데도 이들은 미안해하기는커녕 오히려 당당하게 내가 저항한 것이 잘못이라며 모든 책임을 돌리고 있었다.
“하여간······. 이래서 이 나라는 대화가 안 통한다니까······.”
“방금 뭐라고 했나?”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래서······. 뭐 저한테 내란죄라도 뒤집어씌우고 교도소에 평생 처넣겠다고요? 애초에 그 말 하려고 온 것도 아닌 것 같은데 원하는 게 있으면 뭐든 들어는 줄 테니까 제안이나 해 보세요.”
“······.”
“왜요? 원하는 거 없어요?”
내 말에 정곡이 찔린 듯, 할 말을 잃고 굳게 입을 다무는 무진.
그런 그는 잠깐의 침묵 끝에 이내 어색한 표정으로 헛기침을 연신 하다가 이내 꽤 두꺼워 보이는 종이뭉치를 꺼내들었다.
“크흠······. 아까 이야기했던 그 모든 혐의는 네가 여기에 서명만 한다면 우리가 모두 해결해 줄 수 있다.”
“어디 한번 줘 보세요.”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가 내미는 종이뭉치를 휙 잡아채고는 나는 빠른 속도로 내용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아까 위에서 이야기한 게 이거였구나?’
차장이라는 인간이 그렇게 강조하던 서류.
그리고 그것은 노예라는 단어만 빠져 있었지 현대판 노예나 다름없는 신세로 만들어버리는 온갖 독소조항이 가득한 악마의 계약서나 다름없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여기 이 서약서에 따르면 제가 가진 힘을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서 쓰이도록 언제나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뭐······. 그런 내용이네요?”
“엄밀히 말하자면 그런 셈이지. 아, 그래도 자네에게는 나쁘지는 않은 제안이니까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는 말게. 자유는 조금 제한될지 몰라도······. 그 대우만큼은 나쁘지 않을 테니까.”
자신에게 주도권이 넘어왔다고 느꼈는지, 두 손을 맞대며 조금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하며 무진은 오랜 시간 동안 단련된 심문 기법을 활용하며 나에게 당근과 채찍을 현란하게 휘둘러대기 시작했다.
“자네의 선택이네. 이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 힘쓰는 영웅이 되겠는가. 아니면······.”
“조국을 배신하고 국가 반란을 꾀한 범죄자로 쫓기는 인생을 살겠는가?”
그 물음에 나는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무슨 배짱으로 이런 짓을 벌이는 건지 이해하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할 뿐이었다.
“하나만 물어보죠.”
“뭘 말인가?”
“제가 이 서약서에 서명하면······. 뮤튜브 방송은 그대로 하게 내버려둘 건가요?”
혹시라도 끌리는 조건이 하나라도 있을까 싶어 물어본 질문.
그리고 그 물음에 그는 제정신이냐는 표정으로 단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내 요청을 일축했다.
“그럴 리가 있겠나?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그 채널의 모든 영상부터 지워버리는 건데.”
“그렇군요······.”
마법이 존재하지 않았던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마법과 관련한 수없이 많은 지식들이 올라와 있는 나의 채널.
전 세계에 마법의 개념을 최대한 널리 뿌리고 전파해야 하는 나와는 다르게 어떻게든 정보를 제한하고 국익을 위해서만 제한적으로 이용하려는 그의 태도를 보며 나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접고는 이내 그 대답을 내놓았다.
“역시 이 나라가 괜히 답이 없는 게 아니라니까요? 뭔가 가치가 있어 보이면 어떻게든 뜯어먹고 이용해 먹을 생각만 하지 제대로 된 대가를 주거나 보상을 해 줄 생각은 하지도 않고. 여기서도 열정 페이 운운하고 있어요? 이러니까 헬조선에서는 취직 하는 게 아니라는 소리가 나오지. 어휴 답답해서 진짜. 들어주는 것도 고역이라서 못하겠네요.”
질린다는 표정으로 짜증 섞인 한탄을 토해내자 표정이 잔뜩 일그러지는 무진. 그리고 그는 이내 위협적으로 으르렁거리며 물었다.
“지금 그 말은······. 결국 국가의 반역자가 되겠다는 말인가?”
“X까세요. 씨발. 가만히 있던 중학생 하나 붙잡아놓고 한다는 게 치사하게 협박질인가? 지들이 먼저 잘못 건드려놓고 사과는 못할망정 별 말도 안 되는 개소리나 늘어놓고 있는데 대가리에 총 맞은 것도 아니고 누가 이딴 쓰레기 같은 제안을 받아들여요?”
생각만 해도 화가 밀려오는 어처구니없는 상황.
마음 같아서는 여기를 모조리 폭파시키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앞으로의 일처리가 더 복잡해질 것 같아 애써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꾹 누르며 나는 가운데 손가락을 내밀었다.
“······. 후회할 텐데······.”
“후회는 제가 아니라 아저씨를 비롯해서 한국 정부가 해야 할 걸요?”
“그게 무슨 의미지?”
“최근에 저랑 비슷한 마법사 한명 포획한 적 있죠? 이름이 민서율이라고 했나······. 그 아이한테 했던 수법을 지금 그대로 저한테 써먹으신 것 같은데요. 사람 잘못 봤어요.”
“······?”
이 무한의 대우주를 지탱하고 구성하는 하나의 거대한 개념이자 그 깊이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고 방대한 마법.
이 마법을 일개 초능력 따위로 이해하고 있는 한국 정부는 나의 가치를 너무나도 과소평가하고 있었다. 마치 앞으로 계속해서 생겨나게 될 마나의 각성자들과 다를 바 없는 수준으로 말이다.
하지만······.
이미 내 가치를 그 누구보다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는 미국 정부.
이 지구의 세계관 최강대국이자 대한민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하는 그 미국과 일찍이 손을 잡고 있는 나에게 고작 국가정보원 소속의 일개 단장이나 차장 따위가 지껄이는 협박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그저 말뿐인 허상에 불과했다.
“어디 누구 뒷배가 더 좋은지 인맥전이나 한번 제대로 떠 보자. 이 망할 새끼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