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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마법 만세!-76화 (76/242)

76화.

76화.

과거, 남산에 자리했던 국가정보원.

이제는 내곡동으로 모든 시설을 이전하면서 이전에 사용했던 모든 시설을 폐쇄했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아주 가끔은 필요에 따라 이곳을 활용하곤 했다.

바로 지금과 같은 상황 말이다.

콰앙.

“얼른 바른대로 불지 못해? 도대체 어제 그 공원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잔뜩 인상을 쓰고 있는 험상궂은 얼굴의 남자. 딱 보기에도 살벌한 기세를 풍기며 당장 아는 것들을 실토하라고 그는 아영을 압박했지만, 그녀는 정말 억울하다는 듯이 일관된 이야기를 했다.

“저는 진짜 아무것도 몰라요. 그날 밤에 운동하러 공원에 갔는데 갑자기 이상한 남자들이 저를 에워싸고는 어디론가 끌고 가려고 했다고요. 그게 제가 기억하는 전부예요.”

사건이 벌어지는 내내 현장에서 기절해서 의식이 전혀 없었던 아영. 그녀가 이들에게 아무리 협조하려 하더라도 애초에 제공해줄 수 있는 유용한 정보가 아무것도 없는 것이 사실이었다. 물론, 상대는 그러한 그녀의 주장을 전혀 믿는 것 같은 눈치가 아니었지만 말이다.

“지금 설마 그 말을 우리가 곧이곧대로 믿을 거로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 지금 아가씨가 사태 파악이 제대로 안 된 것 같은데, 똑바로 아는 것을 전부 이야기하지 않으면 일이 정말 심각하게 커질 수 있어.”

“전 이미 아는 건 전부 다 말해줬어요. 변호사 불러주세요. 저도 제가 가진 권리가 뭔지 다 알거든요? 도대체 언제까지 이렇게 불법적으로 감금해놓을 거예요? 예?”

“하······. 이게······. 야! 진짜 험한 꼴 보고 싶냐?”

“저 털끝만큼이라도 건들면 나중에 나가서 기자들 앞에서 여기서 있었던 일 모조리 다 폭로할 거예요! 건들지 마세요!”

심문실 안에서 강도 높은 조사를 받는 아영. 하지만 단 한 번도 말을 바꾸지 않고 일관되게 기억이 안 난다고 주장하며 버티고 있는 그녀를 유리창 너머로 바라보고 있던 한문철 부장은 이내 질린다는 얼굴로 옆에 있던 담당 요원에게 물었다.

“아직도 기억 안 난다고 버티고 있나?”

이제 아영을 붙잡아 이곳에 데려와 강제로 잡아 가둔지도 거의 3일이 지나가고 있는 상황. 기록도 남기지 않고 불법적으로 구금하고 있는 상황이기에 최대한 빠르게 그녀에게서 정보를 빼내야 했지만, 생각 이상으로 아영은 완강했다.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협박이나 회유가 전혀 안 통하는 유형인 것 같습니다.”

“후······. 옛날 방식이 오늘만큼은 정말 그리워지는군.”

난처한 얼굴로 고개를 숙이는 부하 직원의 말에 담배를 하나 꼬나물고 한숨을 푹 내쉬는 한문철 부장. 그리고 그는 부하 직원이 내미는 몇 장의 서류를 받아들고는 물었다.

“이건 뭐야?”

“그곳 현장에 있던 시신들의 부검 결과와 통신 기록들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뭔가 이상한 점들이 곳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이상한 점······?”

“예. 먼저 현장에서 발견된 시신 중에서 하나가 완전히 새까맣게 타버린 상태였습니다. 시신을 부검한 결과 거의 수백 도에 가까운 온도로 전신이 불타버려서 신원 자체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고 합니다.”

완전히 새까맣게 전신이 숯덩이가 되어버린 시신 하나. 그 사진을 유심히 살펴보던 한문철 부장은 그도 의구심이 들었는지 눈을 가늘게 뜨며 중얼거렸다.

“증거 인멸하려고 그냥 휘발유 뿌려서 불붙인 수준이 아니네?”

“처음에는 감식반에서도 시체가 화장장에서 태우다 말고 나온 줄 알았다고 하더군요. 주변에 휘발유와 같은 인화성 물질도 전혀 발견되지 않았고요. 아무튼, 평범하게 불에 타죽은 시체가 아닌 것 확실합니다.”

국정원 요원으로 살아오며 숱한 죽음을 봐왔던 한문철 부장. 그런 그조차도 처음 보는 이 생소한 시신의 모습을 보며 담배가 다 타들어 가는 것도 모른 채 깊은 생각에 잠겼다.

“어떻게 죽인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범인이 누구인지 알게 되면 밝힐 수 있겠지. 그리고 그거 말고 또 뭐가 이상한 건데?”

“이아영이라는 이름으로 되어 있는 통신 기록을 보십시오. 초 단위로 그녀의 휴대전화 신호를 수신했던 기지국들이 나와 있습니다. 그 사태가 벌어졌던 날에 저 용의자는 분명 저희 쪽 요원들이 도착하기 바로 직전까지 그 공원에 있었습니다.”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공원에서 총격전이 벌어졌다는 보고를 날렸던 두 명의 감시조. 그런 그들의 보고를 받자마자 요원들은 그 즉시 해당 지역으로 달려갔지만, 그 어디에서도 아영을 찾을 수는 없었다.

“뭐야 이거······? 잘못된 거 아냐······?”

“기지국의 오류가 아닐까 싶어 수차례 확인했습니다만, 이상이 없었습니다.”

오후 11시 39분 24초에 정확히 공원 인근 기지국에서 그녀의 스마트폰과 연결되어 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기지국의 로그. 하지만 정확히 11시 39분 24초를 기점으로 그녀의 스마트폰은 전혀 다른 지역의 기지국에서 그 신호를 수신받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네 말은 저 용의자가 그날 그 시간에 공원에 있었던 것은 확실한데, 우리가 도착하는 그 순간에 정확히 4KM 떨어져 있는 기지국 인근으로 이동했다는 말인가? 그것도 공원 일대를 완전히 포위하고 차단 작전을 개시한 우리의 감시망을 완전히 뚫고 정확히······. 3초 만에 그 거리를 이동했다고?”

“······. 현재로서는 도무지 설명이 안 되는 증거들이라 보고드린 것입니다. 관련해서 정확한 상황을 파악하면 다시 보고드리겠습니다.”

“기기 오류로 인한 걸지도 모르니까 제대로 확인하고 다시 보고해.”

“알겠습니다.”

상식적으로 설명이 안 되는 기묘한 상황. 하지만 기지국에 남아 있는 위치 정보는 그녀가 그날 공원에 있었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정보였기에 한문철 부장은 다시 확인하라고 지시하고는 이내 가만히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굳게 입을 다문 아영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그는 갑자기 문득 든 하나의 생각에 터무니없다는 듯이 피식 웃으며 중얼거렸다.

“이건 뭐······. 초능력자도 아니고, 순간이동이 말이 되나.”

*

대한민국 서울 용산 소재에 자리한 CIA의 비밀 안가.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가정집처럼 보였지만, 그곳에 숨어 상황이 잠잠해지기를 대기하고 있는 그녀는 상부로부터 혹독한 문책을 받고 있었다.

[ 도대체 일을 어떻게 처리했길래 이런 사달이 나게 만든 건가! 지금 한국 정부에서 얼마나 국무부를 상대로 얼마나 길길이 날뛰고 있는지 알기나 해? 도대체 어쩌다가 다른 정보기관들과 교전하게 된 건가! ]

작전명. 기묘한 이야기.

암살이나 테러와 같은 공격적이고 적극적인 비밀공작과는 다르게 그저 비밀 정보 수집에 불과했던 평화적인 작전.

그렇기에 별다른 고민 없이 승인했던 이 작전이 타국의 요원들과 총격전을······. 그것도 우호국이자 동맹국인 대한민국의 영토 안에서 벌이게 되었다는 사실은 그야말로 CIA 내부에서도 기겁할 만한 일이었다.

“죄송합니다. 부국장님. 중국 쪽에서 먼저 저희 감시 대상에게 손을 써서 어쩔 수 없이 부득이하게 개입하겠다는 현장의 보고가 있었습니다.”

[ 그리고, 그걸 승인한 건 에밀리. 자네고? ]

“그에 따른 책임은 달게 지겠습니다. 하지만, 부국장님. 아직 제이크 요원이 생존한 상태입니다. 현재 한국정부가 그를 구속해 심문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전부 죽은 줄 알았지만, 3일 동안 한국 내부의 모든 정보망을 총동원한 결과 에밀리는 자신의 동료이자 오랜 친구인 그가 살아있다는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부국장에게 강력한 어조로 요청했다.

“반드시 한국정부로부터 제이크 요원을 인계받아야 합니다. 부국장님. 그가 이번 사태의 유일한 생존자이자 목격자입니다. 정확히 그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 파악하기 위해서라도 그를 다시 데려와야 합니다.”

이번 사태의 모든 정황을 풀 수 있는 유일한 열쇠와도 같은 제이크. 그저 친분 때문이 아니라 국익을 위해서라도 그가 목격한 것들에 대한 정보가 필요했지만, 그런 에밀리와 다르게 부국장의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 국무부에서 가능한 선택지들이 뭐가 있는지 파악하고 있네. 우리가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 그 문제에 대해서는 손 떼고 지금 당장 본부로 복귀하게. ]

“······. 알겠습니다.”

[ 그리고, 또한 삼진······. ]

“부국장님······?”

갑자기 격렬한 노이즈가 생기면서 통신이 끊겨버린 화면. 검은색 화면에서 지직거리는 소리만이 울려 퍼지고 있는 노트북을 만지작거리고 있는 그때, 에밀리는 갑작스럽게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완전히 얼어붙었다.

“당신이 에밀리 맞죠? 둘이서만 오붓하게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 일시적으로 모든 신호를 차단했어요. 부국장인지 뭔지 하는 문어 대가리 아저씨랑은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세요.”

거울 너머로 비춰 보이는 능글맞게 웃으며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어느 검은 머리의 소년. 그리고 그 순간 거의 본능에 가까운 속도로 그녀는 허리에 매고 있던 총을 꺼내 들고는 정확히 머리에 겨눠 들고는 물었다.

철컥.

“너는······. 누구지? 어떻게 여기는 알고 들어온 거야? 아니······. 그보다 내 이름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이왕이면 질문은 하나씩 좀 하시죠? 그렇게 질문만 쏟아부으면 도대체 어떻게 답하라는 건가요? 그거보다 그 흉악한 것부터 좀 치우시죠. 대화하려고 온 사람 앞에서 이게 무슨 예의인가요. 하여간 누가 미국인 아니랄까 봐.”

우우웅.

내 가벼운 손짓에 거칠게 그녀의 손에서 뽑히듯이 빠져 나와 허공을 떠다니는 권총. 그저 가벼운 염동력에 불과했지만, 공중에 가만히 떠 있는 자신의 권총을 바라보는 에밀리의 표정은 정말 가관이었다.

“이건······?”

“아줌마가 하신 질문에 대해서 대답부터 먼저 하자면, 그 제이크인가 케이크인가 하는 아저씨가 여기 주소를 알려줬어요. 에밀리라는 사람하고 이야기하면 될 거라고 하던데요?”

“뭐······? 제······제이크가 알려줬다고?”

내 말에 또다시 경악하며 다급한 목소리로 비명 지르듯이 날카롭게 소리치는 에밀리. 그리고 그녀는 이내 떨리는 목소리로 나에게 물어왔다.

“제이크는 무사해? 지금 어디에 있어? 혹시 한국정부에서······.”

“에헤이. 또 그러시네. 질문은 하나씩만 하라고 그랬죠. 진정 좀 하세요.”

제이크라는 이름이 예상치도 못하게 튀어나오자 자신이 너무 흥분했다는 사실을 깨달은 에밀리. 그리고 그녀는 이내 호흡을 가다듬으며 본래의 평정심을 되찾고는 조금은 다른 눈빛으로 물었다.

“······. 무슨 대화를 하고 싶어서 나를 찾아온 거지?”

“이제 좀 대화할 준비가 되었네요.”

그런 그녀의 침착한 태도에 빙긋 웃어 보인 나는 비로소 미국 정부를 향해서 제대로 된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저는 멀린이에요. 마법사죠.”

“······?”

“그런 표정 짓지 말고 진지하게 들으세요. 이 세상에 마법은 실존해요. 지금 저기 천장을 떠다니는 권총을 보면 아시겠지만······. 그저 판타지 영화나 소설 속에 존재하는 그런 환상 속의 개념이 아니라는 말이죠.”

마법이 존재한다.

일반적인 성인이라면 쉽사리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

하지만, 에밀리는 자신의 머리 위에 있는 권총을 힐끗 바라보고는 이내 진지하게 물었다.

“좋아······. 마법사 멀린님. 그래서 나를······. 아니, 미국 정부를 찾아온 용건은 뭐죠?”

단순히 CIA의 요원인 자신에게 접근한 것이 아니라 미국 정부에 접근한 것을 눈치챈 에밀리. 그리고 그런 그녀의 질문에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저는 말이죠······. 한국이고, 미국이고, 중국이고, 북한이고, 일본이고 사실 다 좋아하지 않아요.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냥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가 싫다고 해야 할까······. 뭐 아무튼 그래요.”

인류의 종말을 이끌었던 핵전쟁. 그 전쟁에서 그 누구도 평화를 선택하지 않았다. 그저 서로의 사사로운 이익만을 좇다가 결국 모두의 파멸이라는 끔찍한 결말을 맞이하게 만든 주범들. 물론 아직 벌어지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일이었겠지만, 그렇다고 과거의 이들에게 호감을 느끼기란 어려웠다.

“하지만······. 일단 그래도 미국이 마지막까지 최종적으로 생존한 우승자이기도 하고, 또 괜히 국가별 서열 바꾸겠다고 괜히 다른 데 건드렸다가 뭔 사달이 벌어질지 모르니 안전하게 가고 싶은 것도 솔직한 심정이거든요. 그래서 제안을 하나 하려고 해요.”

“제안이요······?”

내 말을 도무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으로 되묻는 에밀리.

그런 그녀에게 나는 너무나도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혹시 저랑 세계정복 안 하실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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