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70화.
데슬라와 스페이스 S의 오너인 엘런 더스크와 삼진 그룹의 이호준 회장의 만남.
일반적인 두 회사의 경영자가 사업상 목적을 가지고 미팅을 하는 것은 그렇게 큰 화젯거리가 아니었겠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 삼진 전자에게 오랜 시간 공들여 구애의 메시지를 전하며 노력했던 저로서는 이번 이호준 회장님과의 시간이 너무나도 감격스러웠습니다. 또한, 삼진 전자에서 이번에 출시한 타임리스에 적용된 것과 같은 혁신적인 기술들을 체험하고 또 두 눈으로 감상할 수 있어서 정말 정말 유익한 시간이었습니다. ]
온갖 미사여구를 늘어놓으며 삼진 전자와 이호준 회장에 관한 극찬을 카메라 앞에서 늘어놓고 있는 엘런 더스크. 그리고 이내 그는 이번 회동에 따른 성과를 만방에 발표했다.
[ 따라서, 데슬라는 삼진 전자와 차세대 전기 자동차를 개발하기 위한 전략적 기술 제휴를 맺기로 했습니다. 아쉽게도 타임리스와 같이 무한정으로 움직일 수 있는 영구 기관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혁명적인(Revolutionary) 수준의 새로운 변화가 전기 자동차 산업 전반에 걸쳐 조만간 다가오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확신할 수 있겠군요. ]
데슬라와 삼진 전자의 전략적 기술 제휴.
다른 곳도 아니고 전기 자동차 분야에서는 가장 앞선 기술력을 자랑하는 기업에서 삼진 전자에게 기술적으로 도움을 받는다는 이야기에 그 반응은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 와······. 삼진 전자 주가 뭐냐? 그냥 한순간에 12%가 폭등해버리네······.
- 무한 동력 전기차 하나 만들면 바로 지금 가격은 다시 안 온다. 천슬라 간다.
- 방송 안 봄? 무한 동력은 개소리라고. 그보다 데슬라도 주가 급등했네. 미리 사둘걸.
정확히 어떤 내용의 계약을 맺었는지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두 거대 기업이 손을 잡는 사실에 급격하게 오르기 시작한 주가. 그리고 이어서 수많은 전문가의 분석과 논평이 쏟아져나오기 시작했다.
[ 삼진 전자의 주가가 데슬라와의 협력 발표 직후 급등해 현재 마의 구간이었던 10만 원을 돌파한 상태입니다. 이는 타임리스를 시작으로 삼진 전자 내부에서 배터리와 관련해서 아주 혁신적인 기술을 개발한 상태라는 추측들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는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로 보입니다. ]
[ 사실 타임리스만 하더라도 삼진 전자가 가진 기술력이 어쩌면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도 훨씬 더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추측해볼 수 있습니다. 최근 타임리스와 관련해서 나오고 있는 이야기들을 보면서 저는 무슨 외계인이라도 납치한 건 줄 알았습니다. 하하하. ]
[ 삼진 전자가 본격적으로 내년에 타임리스를 출시해 판매하기 시작하면 그 이후의 실적이 매우 기대되는군요. 어쩌면 지금껏 깨지 못했던 앰플의 아성을 무너뜨리는 첫 시발점이 될 수도 있습니다. ]
타임리스의 내년 출시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며 양산을 위한 준비를 하는 삼진 전자. 그 어느 때보다도 철저한 보안을 유지하며 대대적인 생산설비 개편과 보완 작업을 하고 있다는 소문만 무성할 뿐, 아직 구체적인 일정이나 계획을 발표한 것이 아니었기에 이번 데슬라와의 소식은 그야말로 기삿거리를 원하던 기자들에게는 가뭄 속의 단비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한바탕 TV를 떠들썩하게 채우고 있는 삼진 전자에 관한 이야기. 하지만 공항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무슨 말인지도 이해하지 못할 그 뉴스를 가만히 응시하며 무언가 깊은 고민에 빠져 있던 엘런 머스크는 갑자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이런 빌어먹을······.”
복잡한 생각으로 머리가 아플 때 나오곤 하는 엘런 특유의 버릇. 이호준 회장과 만남 이후 계속해서 인상을 잔뜩 찡그린 채 무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을 보며 루시는 물었다.
“갑자기 또 왜 그러시나요? 협상은 완벽하게 마무리되었잖아요.”
엘런이 원하던 것이자 타임리스에 적용된 것과 비슷한 형태의 물건.
마나석 배터리.
물론 이호준 회장이 그것과 관련해 자세히 설명해준 것은 없었지만, 주먹 정도 크기의 이 기묘한 외형의 크리스털에서 기존 배터리에 자그마치 4배의 전력을 저장할 수 있는 이 괴물을 데슬라의 전기 자동차에 넣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만 해도 이번 미팅은 그야말로 대성공이라고 해도 다름없었다.
“이제 전기 자동차 시장은 우리가 장악했다고 해도 무방해요. 물론 이 배터리가 양산되기 시작한다면 3년 후에는 다른 회사에도 판매를 시작하겠지만, 그전까지 전기차 시장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독보적인 브랜드를 구축한다면 아마 실적 자체는 크게 개선될 거예요.”
가능하다면 얼마를 줘서라도 무한정 독점적으로 공급받고 싶은 성능의 배터리. 하지만 그럴 수 없어서 아쉽다는 듯이 주저리주저리 밝은 얼굴로 루시는 온갖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지만, 그녀는 엘런의 고민거리에 대해서 완전히 헛다리를 짚고 있었다.
[ 4MW 출력을 감당할 수 있는 배터리네. 최대 출력으로 사용한다면 정확히 한 달을 사용할 수 있는 수준의 용량을 자랑하지. 이건 선물로 줄 테니까 가져가서 마음껏 실험해보게나. 아마 모르긴 몰라도 데슬라보다는 다른 회사에서 더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을 걸세. ]
협의 도중에 돌연 단둘이 이야기하자며 모든 인원을 물린 이호준 회장이 갑자기 선물이라며 건네준 또 다른 하나의 크리스탈.
기존의 것보다 조금 크기가 크고 다른 재질로 만들어졌다는 것 말고는 그다지 특별할 것 없는 크리스탈. 하지만 그 출력이 자그마치 메가와트에 달한다는 말에 그는 이호준 회장을 불신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아무리 삼진 전자의 기술력이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불가능해······.’
고작 조금 커다란 크기의 크리스털에 불과한 크기에 작은 마을 하나의 전력을 전부 충당할 수 있는 어마어마한 양의 에너지를 품고 있다는 이호준 회장의 이야기. 하지만 그러한 기술은 현대의 기술력으로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절대 구현할 수 없다. 그렇기에······.
과학자이자 엔지니어인 한 사람으로서 엘런은 확신할 수 있었다.
뭐가 되었든, 만약 삼진 전자에서 만들어가고 있는 이 변화가 전부 사실이라면, 그것은 과학과 기술의 범주를 벗어난······. 지금껏 알고 있던 상식과 규격 외의 것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루시. 미국에 돌아가면 최근에 혹시 한국에 운석이나 뭐 비행체 같은 거 추락했다는 사실 있는지 최대한 빠르게 확인해서 나한테 가져와 줘.”
“예······? 운석이요? 갑자기 왜요?”
한참을 무언가를 고민하는 것 같더니 갑자기 정말 뜬금없는 지시를 내리는 엘런을 의아한 눈으로 바라보며 루시는 물었다. 그리고 그 물음에 그는 어느 때보다도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래도 삼진 전자에서 외계인을 납치한 것 같거든.”
*
1900년대 후반의 소련 붕괴 이후. 유일한 초강대국으로 세계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패권을 장악한 미국.
경제, 군사, 외교, 정치, 과학 기술을 비롯해 거의 모든 영역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기에 그 누구도 미합중국의 저력을 무시하지 못했다.
세계 경찰을 자처하며 온갖 분쟁에 개입하며 전 세계에서 실시간으로 벌어지고 있는 모든 일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주시하는 미국. 그리고 전 세계에서 들어오는 모든 정보를 분석하고 또 선별하는 정보기관인 CIA. 전 세계에······. 심지어 적성국인 북한이나 러시아에도 수많은 정보원을 심어놓았다고 알려진 이 CIA에서 최근 그 어느 때보다도 대한민국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정말이지······. 이해할 수 없군. 요즘 왜 이렇게 삼진 그룹에 관한 보고가 많이 들어오지?”
CIA의 국장. 에드워드.
매일 같이 전 세계에서 벌어진 사건들의 동향에 대한 보고를 받아보는 그. 대내외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다시 말해 언론을 타지 않은 사건의 세부사항들까지도 전부 포함되어 있었기에 그는 최근 이상한 움직임을 보이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기업. 삼진 그룹에 관한 보고서를 살펴보며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 살살이 풀이라는 미발견 식물 발견. 세포 재생과 복원에 탁월한 효과 확인.
- 삼진 바이오의 대규모 토지 매입 정황 확인. 살살이 풀의 대량 재배를 위한 것으로 추정.
- 국방부와 살살이 풀의 독점 공급 계약 체결. 레드 포션의 시제품 성능 테스트 중.
- 삼진 전자의 신제품인 타임리스. 무한 동력에 가까운 수준의 제품이라는 것을 확인함. 작동 원리 파악 불가.
- 자국 기업인 데슬라와 기술 제휴. 계약의 세부 내용은 확인 불가. 현재 파악 중.
보고서의 분량으로 따지자면 수백 페이지가 넘어가는 어마어마한 일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벌어지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이었기에 에드워드는 의구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봐도 이상하군.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일개 기업 하나를 중심으로 이렇게 어마어마한 변화가 단기간에 일어날 수 있는지 한번 설명해 보게. 듣자 하니 자네가 이 보고서를 직접 작성했다고 하던데?”
삼진 그룹이 아무리 대한민국에서 잘나가는 최고의 기업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건드는 사업마다 시장 자체를 완전히 뒤엎을 정도로 승승장구하는 것은 누가 봐도 이상한 상황. 그리고 그 질문에 답을 한 것은 다름 아닌 한국 내의 여러 정보를 담당하고 있는 분석관이자 에드워드가 지금 읽고 있는 보고서를 작성한 실무자인 에밀리였다.
“최근 삼진 그룹과 협력하고 있는 회사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아직 정확히 모든 것을 파악한 건 아닙니다만, 아무래도 그곳과 최근 삼진 그룹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례적인 변화들과 관련해 밀접한 연관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에밀리의 보고에 고개를 끄덕이며 관련 내용을 확인하는 에드워드. 그리고 그는 이내 그 이름을 확인하고는 인상을 찡그리며 중얼거렸다.
“매지컬······컴퍼니? 이게 그 회사인가?”
“네.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직접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최근에 갑자기 설립된 회사입니다. 삼진 그룹의 핵심 인력 중 일부가 그곳으로 이전했다는 정보를 입수했으며. 또한, 이호준 회장이 해당 회사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연관성은 충분히 확인되었습니다. 다만, 삼진 그룹 내부에서도 그 매지컬 컴퍼니와 관련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
자신이 분석한 정보가 맞다는 것을 입증할 수 있는 수많은 증거를 쏟아내며 빠르게 말을 이어가던 에밀리. 그리고 그녀는 확신에 찬 눈빛으로 까마득히도 높은 상사인 에드워드를 향해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자기 생각을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이호준 회장이 의도적으로 그 매지컬 컴퍼니라는 회사를 숨기고 있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제가 분석한 정보에 따르면 최근 삼진 그룹과 대한민국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여러 특이 동향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너무 많은 구멍이 보이지만, 그래도 의심스러운 정황들에 대해서 요점만 콕 집은 에밀리의 보고서. 그녀의 말을 100% 신뢰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CIA를 총괄하는 수장인 에드워드의 가슴 속에 삼진 그룹과 매지컬 컴퍼니에 관한 의구심을 심어놓는 데에는 충분했다.
“그래서 부국장에게 요청서를 올렸던 거였나? 삼진 그룹과 매지컬 컴퍼니라는 회사에 대한 정밀한 정보를 수집하는 데 필요한 인력과 자원을 지원받기 위해서.”
“······. 최근 삼진 그룹에서 발표한 것들이 불러올 여파를 고려한다면 그럴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하나하나가 산업 전반에 걸쳐 어마어마한 변화를 불러올 정도로 거대한 사건들. 그렇기에 에밀리는 자신의 사무실에서 들어오는 정보들을 분석하기보다는 직접 한국으로 가서 그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관련해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파악할 심산이었다.
“흐음······. 이아영이라······. 이 여자가 매지컬 컴퍼니를 이끄는 수장이라는 건가?”
“그렇습니다.”
“하나의 회사를 운영하기에는 나이가 너무 어린 것 같군.”
“저도 신상 정보를 파악해 본 결과 특이 사항은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만약 이번 작전을 허가해 주신다면 집중적으로 해당 타겟과 관련한 정보를 수집해 올 예정입니다.”
공식적으로는 아영의 이름으로 설립되어 운영되고 있는 매지컬 컴퍼니. 그렇기에 아영은 자기도 모르는 새에 어느새 CIA의 집중 감시 대상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 좋네. 우호국인 대한민국 내에서 비밀 작전을 수행한다는 건 조금 부담이 있지만 감수할 만한 필요성이 있어 보이는군.”
에밀리의 요청에 CIA 국장인 에드워드는 잠깐 고민하더니 이내 무언가를 결심하고는 그녀가 제출했던 어느 서류 하나에 서명하고는 조금은 엄숙한 목소리로 선언했다.
“작전명. 기묘한 이야기(Stranger Things). 현 시간부로 공식적으로 허가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