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화.
64화.
대한민국의 명실상부한 1위의 대학교로 모든 수험생이 한 번씩은 꿈꾸는 한국 대학교.
수능에서 최상위 성적을 받고도 들어갈 수 있을지 감히 장담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자랑하는 곳이었지만, 영희는 이런 한국 대학교를 전액 장학금으로 졸업하는 것을 넘어 대학원까지 장학금을 받으며 당당하게 입학했다.
그 특출난 이해력과 분석력 하나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뛰어난 영희.
안 그래도 남들과는 다른 재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거기에 부모님을 모두 잃고 어린 동생까지 도맡아서 키워야 하는 그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 가지게 된 성실성과 독한 노력이 합쳐지자 그녀는 옆에서 지켜보는 게 무서울 정도로 하루하루가 다르게 학문적 역량이 빠르게 성장해가기 시작했다.
“휴······. 영희야 나 완전 큰일 났어. 오늘 교수님이 낸 수업 과제 아예 못 했는데 어떻게 하지? 뭐라도 말은 해야 하는데 진짜 열 번을 넘게 읽어도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
오늘 있을 수업에 대한 걱정으로 안색이 잔뜩 굳은 채 안절부절못하는 동기. 하지만 그런 친한 동기의 말에 영희도 그와 다를 바 없는 근심 가득한 얼굴로 힘없이 답했다.
“그래······?”
평소라면 쾌활하게 몇 가지 할 말이라도 던져주던 영희. 하지만 그런 그녀가 전혀 생소한 반응을 보이자 동기는 곁눈질로 바라보며 조금은 안도한 얼굴로 물었다.
“너도 표정 보니까 잘 이해 안 됐나 보네? 이번 과제 엄청 어려운 거 맞지? 응? 응?”
비록 자신이 조금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같은 석사 2학기 차의 영희도 과제를 하지 못했다면 조금은 면이 사는 상황. 그렇기에 동기는 조금은 간절한 느낌으로 계속해서 대답을 물어왔지만, 영희는 아무런 말도 해주지 못했다.
‘어떻게 하지······?’
영희의 지도 교수이자 한국 대학교에서 물리학 교수로만 자그마치 20년이 넘게 재직하고 있는 이명찬. 가장 연차가 많고 교수진들 사이에서도 감히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 중 하나였기에 학부생인 시절에는 몇 개의 교양이나 전공 수업 말고는 만날 일이 없어서 그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지만, 대학원에 진학하고 나서야 그의 진짜 모습을 깨달을 수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교수님!”
“크흐흠······. 그래. 밥은 먹었냐?”
그가 들어오자 모두가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우렁찬 목소리로 인사하며 정확히 90도의 직각 인사를 하는 대학원생들. 석사고 박사고 상관없이 모두가 깍듯하게 인사를 하자 이명찬 교수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고갯짓으로 대충 인사를 받아주며 자리에 앉았다.
“에······. 오늘 수업은 조금 일찍 끝내자고. 내가 오늘 총장님하고 저녁 약속이 하나 있거든.”
“예. 알겠습니다.”
석사 과정 4학기 차로 가장 나이가 많아 선정된 수업 대표의 즉각적인 대답. 하지만 이명찬 교수는 무언가 자랑하고 싶었는지 연신 미소를 띤 얼굴로 히죽거리며 물었다.
“오늘 저녁에 누구랑 밥 먹는지 아나? 아마 너희들도 잘 아는 사람인데.”
“······. 잘 모르겠습니다.”
“양원철이야. 양원철. 그 민주사회당에 이번에 당 대표로 선출된 그 정치인. 그 친구가 우리 한국 대학교 출신인 건 다들 알고 있지?”
“아······. 예. 들어본 것 같습니다.”
“허허허. 그래. 너희도 잘 배워 둬. 우리 한국 대학교 출신의 성공한 선배들은 말이야. 기본적으로 성공하고 난 이후에도 자신이 나온 학교를 잊지 않는다고. 이렇게 찾아와서 인사도 하고, 또 얼굴도 비추고 그러면서 기본적인 사람 된 예의를 갖춰야지. 내가 예전에는 말이야······.”
수업 시간이 한참을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온갖 옛날의 이야기를 늘어놓으며 자기 자랑에 바쁜 그. 하지만 그 누구도 그런 그의 영양가 없는 강의에도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그저 너무나도 평온하고 태연한 표정으로 그의 이야기를 애써 관심 있게 듣는 척 연기하고 있을 뿐이었다.
‘후······. 또 시작이네.’
‘자기 자랑만 늘어놓으면서 또 한 시간은 헛소리하겠지······.’
‘아······. 이럴 시간에 실험 하나라도 더하고 싶다.’
학부생일 때는 모르지만 대학원생이 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이명찬 교수의 진짜 모습.
그것은 그야말로 학문적 연구에 완전히 등을 지고 그저 개발비나 연구비를 위한 용역 업무나 보고서만을 간간이 써내며 어떻게든 정계 입문을 꿈꾸며 자신의 지위를 악용하며 대학원생을 착취하고 착복하는 전형적인 정치 교수 그 자체였다.
겉으로는 그저 서글서글하고 인자한 노교수의 모습을 연기하지만, 뒤로는 누구보다 계산적이고 영악하게 자신의 이익을 취하기 위해서 다른 이들을 이용하는 명찬.
온갖 갑질을 당연하게 여기며 말도 안 되는 개인적인 집안일과 허드렛일을 시키며 휘하 대학원생들을 자기 몸종처럼 부리고 다니는 그로 인해서 영희도 온갖 잡무로 고생하는 날이 많았지만, 다른 대학원생들과 같이 싫은 소리를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다.
“너희들도 그러니까 앞으로 열심히 해서 성공해. 이번에 내가 쓴 논문 알지? 거기에 공동 저자로 박사 4년 차에 윤숙진도 같이 들어갔어. 아마 올해에 박사 따고 졸업할 것 같은데 그 한진 과학대인가 그곳에서 교수로 모셔가려고 아주 난리더라고.”
좋으나 싫으나 영희를 비롯해 강의실에 앉아 있는 대학원생들의 지도 교수인 이명찬.
학부생일 때는 몰라도 대학원에 진학한 이상 앞으로의 학위와 졸업을 비롯해 그 모든 미래가 전적으로 그의 손에 달려있었기에 절대로 그의 심기를 거스르는 짓을 해서 눈 밖에 나서는 안 됐다.
하지만······. 영희에게 그 선택의 순간은 마치 거짓말처럼 다가오고야 말았다.
“이제 잡소리는 그만하고 이만 내가 쓴 논문에 관한 리뷰나 들어보지. 에······. 김영희. 자네가 말해보겠나?”
“예······? 저요?”
“그래. 논문에 적힌 내용을 전부 다 이해하기에는 아직 부족한 점이 많겠지만, 그래도 느낀 것은 뭐든 있을 거 아닌가? 너무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이야기해 봐.”
“······.”
평소라면 유창하고 자신 넘치는 태도로 자기 생각을 이야기했을 영희. 모르면 그냥 최대한 부족한 지식으로 논문에 관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를 하며 넘어갔겠지만, 이미 모든 진실을 알고 있는 상황에서 그녀는 차마 그럴 수 없었다. 아니, 그러고 싶지 않았다.
[ 공식이 완전 잘못 도출됐네. 애초에 잘못된 거니까 이해가 안 되는 게 당연하지. ]
처음부터 잘못 끼워 맞춘 단추 덕분에 마지막까지 완전히 어그러진 잘못된 내용의 논문.
이 우주의 진리를 이해하고 파악해 나가는 데 있어서 이정표의 역할을 하지는 못할망정 오히려 혼란을 부추기는 방해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는 차마 학자의 양심을 걸고 그것을 모른 척 넘어가고 싶지는 않았다.
“저······. 그게······.”
그렇기에 그 어느 때보다도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강단으로 나와 서서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대학원생들을 둘러보았다.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입을 다무는 영희를 묘한 시선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사람들. 그리고 이내 서늘한 명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 그렇게 뜸을 들이나? 설마 내 논문을 읽어보지도 않고 그냥 온 건 아니겠지?”
“아뇨. 교수님의 논문은 다 읽어 봤습니다.”
설마 과제를 안 해 왔냐는 물음에 황급히 해명하는 영희. 그러자 교수는 더욱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추궁했다.
“그런데? 그렇다면 뭐든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왜 그렇게 우두커니 서 있는 거지?”
“그게······. 논문을 읽다 보니 한 가지 의문이 들어서······.”
“뭐······? 무슨 의문이 들었다는 말이지?”
자신의 말에 눈을 가늘게 뜨며 의아한 얼굴로 물어오는 명찬. 그리고 그런 그에게 영희는 조심스럽게 자신이 어제 철수와 했던 이야기의 조각들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교수님의 논문은 기본적으로 닫힌 차원을 가정한 공간적 차원의 좌표계를 한정해서 공식을 도출했습니다. 하지만, 만약 차원의 공간 자체가 열려 있는 것으로 가정하여 매개 변수를 추가한다면······. 공식 자체에 치명적인 모순이 생기게 됩니다. 또한······. ”
아주 예의 바르고 조심스럽게 꺼낸 이야기.
하지만 그 내용은 전문적으로 물리학을 전공한 이들조차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심오하고 복잡한 개념의 내용이었기에 명찬은 영희가 하는 말을 완벽하게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그녀가 하고자 하는 말이 무엇인지 딱 하나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그 말은······. 그러니까······. 지금 내가 쓴 논문이 완전히 잘못됐다는 소리인가?”
“······. 그게 아니라 혹시라도 공식에 오류가 있을 수 있으니 조금 더 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는 말이었습니다.”
이보다도 더 조심스럽게 말할 수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수동적인 영희의 발언. 하지만 그런 그녀의 말에 강의실 안의 분위기는 급속도로 냉각되었다.
“와······. 지금 이거 실화야?”
“미친······.”
석사 2학기 차의 영희.
그런 그녀가 감히 20년도 넘게 한국 대학교의 물리학 교수로 재직한 지도 교수의 논문이 잘못되었다며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감히 꿈에서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것 같은 상황.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니고 꼬장꼬장하고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명찬을 상대로 벌인 짓이었기에, 자리에 앉아 있는 대학원생들은 그저 입을 벌린 채 경악한 얼굴로 영희를 가만히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그리고······.
명찬은 분명 모두가 예상하던 반응을 보였다.
“그래? 자네가 그렇게 나보다 잘 알고 있으면 어디 한번 설명해 보지 그러나?”
자존심이 상한 듯, 잔뜩 찌푸린 얼굴로 적대적인 기세를 풍기며 비아냥거리는 명찬. 그리고 그런 그의 반응에 영희는 즉각적으로 고개를 숙이며 뒤로 물러났다.
“혹시라도 불쾌하셨다면 죄송합니다. 저는 그냥 제 생각을 말씀드린 거니 그냥 무시하셔도······.”
“아니, 내 공식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며. 이미 정확한 답이 무엇인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은데, 어디 나랑 다른 대학원생들에게도 알려주게나. 자네가 생각하는 진짜 이 우주의 진리가 무엇인지 말이네.”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지 않고서야 직성이 풀리지 않을 속셈인지 보드 마카까지 그녀에게 쥐여주며 자신이 한 말에 책임을 지고 설명하라고 강요하는 명찬. 그리고 그런 그의 반응에 영희는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우물거렸지만, 이내 귓가에 오늘 아침 자신의 동생이 했던 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 누나가 맞아. 기본적으로 우주를······. 아니, 최소한 차원과 공간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아까 공식보다는 누나가 도출해낸 게 훨씬 더 정확하다고 봐야지. ]
[ 살짝 더 다듬어야 하고 추가해야 할 핵심적인 공식도 몇 가지가 더 있기는 하지만, 이 공식을 잘만 활용하면 아마 기본적으로 공간 이동에 필요한 기술을 개발하기 위한 이론적인 기반은 이미 완성된 거나 다름없을걸? ]
과학은 절대불변한 것이 아니다.
한 학자가 자신의 이론을 말하고, 그것이 맞는지 수많은 동료 학자들로부터 검증받으며 하나의 거대한 패러다임으로 만들어져간다.
과거, 확고한 신앙과 신념 아래 구축된 천동설의 패러다임을 부수고 지동설이 이 우주의 진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숱한 고난의 길을 걸었던 이들처럼······. 영희는 지금이라도 당장 무릎을 꿇고 자신에게 사과하라며 무어라 쫑알거리는 지도 교수를 가만히 바라보다 이내 무언가를 굳게 결심한 얼굴로 마카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자신이 만들었던 공식을 빠르게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교수님이 도출한 공식에서 공액 변수가 가진 정규 좌표계는 절대 불변의 고정좌표가 존재한다는 가정 아래에서 위상 공간의 정확한 좌푯값을 구할 수 없어요. 바로 여기, 이 부분에서 심각한 오차가 발생하게 되죠. 하지만······. 만약, 절대 좌표가 존재한다는 가정 아래에 매개 변수를 한정해서 공간과 차원 왜곡의 변환점을 구하게 된다면 이런 공식이 나오죠.”
그 누구도 감히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너무나도 심오하고 난해하며 고차원적인 이 위대하고 무한한 대우주의 진리.
공간과 차원, 그리고 시간의 왜곡조차도 아우르는 이 진리의 단편을 마주한 이들은 그저 멍하니 쉴새 없이 무언가를 이야기하며 칠판에 복잡한 수식들을 빼곡하게 적어 내려가는 영희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렇기에······. 이 공식으로 모든 시공간의 왜곡에 따라 변화하는 위상 공간의 좌표를 도출해 낼 수 있는 거죠.”
“······.”
새빨개진 얼굴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칠판에 적힌 수식을 바라보고만 있는 지도 교수. 그리고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상황에서 모든 설명을 마친 영희는 그런 명찬의 눈을 마주하며 보드 마카를 내려놓고는 한 명의 학자로서 모든 양심을 걸고 그에게 당당하게 선언했다.
“교수님이 틀렸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