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화.
56화.
경찰 조사를 마치고 수많은 카메라와 기자들 앞에서 당당하게 멀린의 모습으로 선 나.
이들이 쏟아내는 질문에 가감 없이 답하며 마법의 위대함을 한껏 이야기했지만, 생각보다 그에 대한 파급력은 크지 않았다.
[ 최근 벌어진 로또 1등 당첨 번호의 유출 의혹과 관련해 경찰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로또 추첨과 관련한 관련자들 사이에서 어떠한 혐의점도 발견할 수 없었으며, 당첨 번호를 유출한 당사자 역시 조사 결과 일체의 관련성도 찾아볼 수 없었다고 발표했습니다. ]
[ 이번 사태와 관련해 강도 높은 감사를 진행한 기획재정부 역시 경찰과 같은 의견을 냈습니다. 추첨 과정 전반에 걸쳐 모든 사안을 꼼꼼히 들여다본 결과, 어떠한 문제점도 확인할 수 없었으며, 이번 상황은 그저 우연에 따른 이례적인 사안으로 추정된다고 밝혔습니다. ]
수사기관과 정부 기관의 공식 발표.
이들이 앞장서서 그저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우연에 따른 결과라는 주장을 내놓았고, 동시에 인터넷에서는 지극히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주장들이 쇄도하며 의구심을 갖는 생각들을 억눌렀다.
- ㅋㅋㅋ 마법이라고? 너도 그 멀린인지 뭔지 하는 놈 같은 미친놈이냐?
- 도대체 몇 살이길래 아직도 마법이 존재한다는 헛소리를 믿는 걸까?
- 걍 운이 좋아서 어떻게 때려 맞춘 거겠지.
마법의 존재를 숨기기 위해 삼진 그룹의 모든 역량을 총동원한 이호준 회장의 눈물겨운 노력.
그 덕분에 마법이 실존한다는 주제가 사람들 사이에서 진지하게 논의되지는 못하고 그저 헛소리로 치부되며 묻혀버렸지만, 그래도 예전보다는 확실히 마법이라는 개념에 대해서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은 분명했다.
[ 너도 할 수 있어! 마법사가 되는 법. ]
구독자 : 132만
예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게 늘어난 구독자 수. 거기에 영상마다 달리는 댓글들을 보면 어디에선가 조금은 진지하게 내가 한 것들을 엉성하게나마 따라 하려고 하는 이들이 차츰차츰 생겨나고 있었다.
물론···
- 오늘 집 앞 공원에서 숨 쉬면서 마나를 느껴보려고 하는데 잘 안 되네요. 꿀팁 없나요?
- 룬어 왜 이렇게 어렵나요? 너무 지렁이 같아서 따라 쓰기 힘들어요.
- 오늘 엄마한테 멀린님 이야기했는데 무지 혼났어요. 뮤튜브에서 이상한 거 보고 따라 하면 안 된다고.
- 우리 반에 저 괴롭히는 애가 하나 있는데 어떻게 혼내주면 좋을까요?
- 저도 멀린 님처럼 언젠가는 뛰어난 마법사가 될 거예요. 그래서 돈도 짱 많이 벌 거예요!
그 댓글들의 내용을 보면 연령대가 무척이나 낮은 것으로 보이긴 했지만 말이다.
“정말이지······. 뭐가 그렇게 좋다고 실실 웃고 있는 건데요?”
같은 반 친구를 혼내주고 싶다는 댓글에 친절하게 답변을 달아주고 있는 나를 보며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아영. 하지만 나는 연신 바쁘게 손가락을 놀리며 그녀에게 별일 아니라는 듯이 히죽 웃어보였다.
“별거 아니에요. 친구한테 복수하고 싶다는 얘가 있어서 그럴 때는 저주 마법이 효과적이라고 설명해주고 있었죠. 한번 보실래요?”
의아한 눈빛을 지으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힐끗 내 휴대폰을 바라본 아영.
그리고 그녀는 이내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내가 쓴 댓글을 읽어보았다.
“나를 괴롭히는 상대에게 마법으로 복수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흑마법 계열의 저주를 걸어주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이게 도대체 뭐냐는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아영. 하지만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능글맞은 얼굴로 대꾸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파이어 볼을 면상에 박아주는 거긴 한데 그렇다고 살상 마법을 알려주는 건 좀 그렇잖아요? 그래서 나름 마법으로 상대를 죽이지 않고 신사적으로 복수를 할 수 있는 방법을 몇 가지 알려준 거죠. 뭐.”
저주 계열의 마법 중에서 가장 난이도가 쉬운 마비를 비롯해 정신 착란과 환각을 보게 만드는 몇 가지 마법에 관한 조언을 남겨준 나. 하지만 아영은 그런 나를 가만히 바라보다 이내 멋대로 내가 힘들게 적어놓은 댓글을 지워버렸다.
“앗! 뭐예요. 그거 적어주느라 한 5분은 걸렸는데.”
“정말이지······. 미쳤어요? 이런 건 그냥 댓글 남겨주지 말고 그냥 무시하든가요. 그러다가 나중에 진짜 사고 터져서 문제 생기면 어쩌려고 그래요?”
누가 봤다가는 정말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마법들.
하지만 나는 그런 아영의 말에 너무나도 뻔뻔할 정도로 답했다.
“뭐 그런 거 가지고 그래요? 누가 보면 좀비나 스켈레톤으로 만드는 네크로맨시 학파의 마법이라도 알려준 줄 알겠어요.”
“······. 혹시라도 그런 거 적어줬다가는 진짜 가만 안 있을 거예요.”
아영의 진심 어린 경고에 일순간 내 머릿속을 가득 메우는 음험하고 사악하기 짝이 없는 암흑 마법들. 물론 아무런 이유 없이 이러한 마법들을 세상에 풀 생각은 없었지만 뭔가 격렬하게 반응하는 아영을 보자 묘하게 드는 장난기에 히죽 웃으며 답했다.
“아영 씨 하는 거 봐서요.”
“······.”
내 말에 아무 말 없이 날카롭게 째려보는 아영. 그런 그녀의 반응을 한껏 즐기던 나는 기지개를 켜며 말했다.
“어우······. 그건 그렇고 옛날에는 몰랐는데 슬슬 채널 규모가 커지니까 이거 구독자들한테 댓글 하나하나 달아주는 것도 힘드네요?”
“······. 그럼 그냥 댓글 무시하시죠? 그렇게 험악한 답변들 달지 좀 마시고요.”
예전에는 아무런 의미 없는 악플에 그저 간단하고 화끈한 불꽃 패드립만 달아주면 됐다면 지금은 정말 궁금해서 달린 질문 댓글에 최소 수백 자의 설명이 포함된 답글을 달아줘야 하는 상황. 그렇기에 점점 시간이 지나갈수록 답변해준 댓글보다 답변을 기다리는 질문이 더 쌓여가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그래요? 이렇게 열정적으로 제 강의를 듣고 있는 수강생들인데, 최소한의 도리는 지켜줘야죠.”
너무 중복되고 기초적인 수준 낮은 질문들에 대해서는 최대한 무시하고 있었지만, 그런 댓글들 사이사이에서 빛나는 주옥같은 질문들. 비록 직접 대면한 적은 없다고는 하지만, 랜선을 타고 이어진 스승과 제자의 인연을 차마 무시하고 넘어갈 수만은 없었다.
“······. 제발 적당히 수위 조절 좀 하세요. 안 그래도 삼진 그룹 쪽에서도 저한테 얼마나 잔소리했는지 아세요? 이호준 회장님이 최근 한숨이 늘었다고 엄청 눈치 줬다고요.”
삼진 바이오의 업무를 전적으로 이용수 사장에게 맡겼다고는 하지만, 계속해서 긴밀하게 삼진 그룹과의 소통을 이어가는 아영. 그렇기에 그녀는 알게 모르게 내가 저지른 일들에 대해서 압박을 받고 있었다.
“뭐······. 지금 이상으로 대놓고 움직일 생각은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최소한 국가 전체와 맞서 싸울 수 있을 정도의 무력을 가지기 전까지는 어느 정도 몸을 사려야 하는 상황. 그렇기에 적당히 하라는 아영의 잔소리에 나는 순순히 수긍하며 이내 화제를 돌렸다.
“그래서, 제가 요청한 건 어떻게 됐어요?”
“회사 설립 절차는 전부 마무리했어요. 아직 서류상이기는 하지만 삼진 물산 측에서 관련 인력들도 매지컬 컴퍼니 쪽으로 이전한 상태고 조만간 사무실 하나 구해서 제대로 회사를 꾸리게 될 예정이에요.”
사실상 내 회사지만 형식상 아영이 대표인 매지컬 컴퍼니. 아직 아무런 것도 꾸려지지 않은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회사였지만, 앞으로 대한민국을······. 아니, 전 세계의 마법 산업을 장악하게 될 초거대 기업으로 성장할 회사였다.
“좋네요. 광물 샘플은요?”
“여기······. 최대한 구할 수 있는 모든 광물은 싹 다 긁어 모아놨더라고요.”
삼진 물산 내에서도 광물과 광산 개발 사업에 특화된 인력들로 꾸려진 드림팀. 나름 이호준 회장이 신경을 쓴 것인지 아영이 끙끙거리며 가져온 커다란 금속 가방 안에는 수많은 플라스틱병이 빽빽하게 꽂혀 있었다.
“호. 생각보다 진짜 많네요.”
구리, 아연, 석영, 철, 황동······. 어디에서나 쉽게 구할 수 있는 값싼 광물부터.
금, 은, 다이아몬드, 사파이어, 백금과 같은 값비싼 보석과 희귀 광물까지.
온갖 다양한 광물들을 하나하나 집어 들고 유심히 살펴보는 나의 모습을 바라보던 아영은 이내 호기심 어린 눈빛을 빛내며 물었다.
“그래서 여기서 마나석이 될 만한 광물은 어떻게 찾아내려고요?”
“아, 그거요?”
의외로 좋은 질문을 해 준 아영.
그런 그녀의 물음에 나는 히죽 웃으며 플라스틱 통 안에 들어가 있는 자그마한 광물을 꺼내 들었다.
“생각보다 간단해요. 전기랑 조금 비슷한 개념이긴 한데······. 모든 물질은 저마다의 저항값을 가지고 있잖아요? 마나도 같아요. 받아들일 수 있는 용량과 한 번에 운용할 수 있는 출력의 한계가 정해져 있죠.”
그 어떤 에너지보다 순수하고 정순하며 동시에 강력한 마나.
이 마나가 얼마나 많이, 그리고 또 안정적으로 받아들이고 또 운용할 수 있느냐에 따라서 마나석의 역할을 대신할 수 있는 광물을 결정할 수 있었다.
“따라서······. 조금 무식하긴 하지만 그 한계점이 어디까지인지 하나하나 확인해 봐야죠.”
“어떻게요?”
“그냥 마나를 쑤셔 넣으면 되죠. 이렇게요······.”
우우우웅.
나의 의지에 따라서 강제적으로 마나가 주입되기 시작한 주석.
작은 크리스털 형태로 가공된 주석은 마나가 주입되기 시작하자 거의 곧장 강렬한 푸른 빛을 발산하며 격렬하게 반응하기 시작했고 그러한 반응을 보며 아영은 신기하다는 듯이 휘둥그레 뜬 눈으로 가만히 나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파지지지지직.
마나를 얼마 주입하지도 않았는데 어마어마한 저항으로 인해서 격렬한 열과 빛을 내며 반응하던 주석. 하지만 조금도 개의치 않고 끝장을 보겠다는 각오로 무식하게 마나를 밀어 넣자 그 강렬한 에너지를 견뎌내지 못한 주석은 이내 그 최후를 맞이하고야 말았다.
콰아아아아앙.
“꺅! 엄마야!!!”
어마어마한 굉음을 내며 산산이 터져나간 주석.
강렬한 마나의 에너지를 품고 수백 개의 조각으로 나뉘어 사방으로 퍼져나간 파편들은 그야말로 주변 일대를 초토화할 정도로 강력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기에 바로 코앞에서 지켜보던 아영은 기겁하며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지만 아무런 피해 없이 무사할 수 있었다.
“이건······.”
눈앞에 은은하게 빛나는 푸른색의 반투명한 막.
내가 펼친 실드를 신기하다는 눈으로 쳐다보며 연신 손바닥으로 만져대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이리저리 살펴보고 있었지만 나는 진지한 얼굴로 노트에 방금 확인한 실험 결과를 정리하고 있었다.
“주석······. 마나 출력, 마나 축적률, 마나 전도도 전부 기준 이하. 마나석 후보군에서 제외.”
고작 1 서클의 마나도 담아내지 못하고 터져나간 주석.
그 실험 결과를 정리하고 난 후 나는 연이어 또 다른 샘플 통을 하나 집어 들었다.
“멀린님. 아까 방금 그건······. 도대체 뭐였어요?”
아직 정신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았는지, 먹먹한 귀를 손으로 문지르며 물어오는 아영. 그리고 그런 그녀의 물음에 나는 또다시 마나를 끌어 올려 새로운 샘플에 주입하며 말했다.
“뭐긴요. 한계 측정 실험이죠. 이렇게 광물마다 마나를 최대한도로 집어넣어 보면서 그 수치를 확인하는 거죠. 다시 말해서······.”
파지지지지지직.
또다시 격렬하게 푸른빛을 내며 내 손 위에서 묘한 반응을 보이는 샘플.
그것을 보며 새하얗게 질린 아영을 향해 나는 히죽 웃으며 말했다.
“언제까지 마나를 버텨내다 폭발하는지 확인하는 실험이에요.”
콰아아아아앙.
그렇게 그날.
일반인의 출입이 철저하게 금지된 삼진 바이오의 생태 부지 안에서는 이상한 폭발음 계속해서 들려왔다.
혹시 전쟁이라도 난 것이 아닌가 싶을 착각이 들 정도로 어마어마한 굉음들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