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화.
34화.
이제 막 해가 뜨기 시작한 이른 새벽.
이용수 사장은 긴급하게 들어온 생태 부지의 화재 소식에 급작스럽게 회사로 출근했다.
“이게 도대체 무슨 소리야? 연구 단지에 화재라니?”
“현재 사태를 파악 중입니다. 하지만 일단 지금까지 들어온 정보들을 종합해보자면 아무래도 외부의 침입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뭐······? 외부의 침입?”
“예. 목적은 부지 내에서 재배 중인 살살이 풀을 노린 것으로 추측하고 있습니다.”
“이런 미친······.”
살살이 풀이 유일하게 생산되고 있는 삼진 바이오의 생태 연구 단지.
물론 그와 관련한 정보는 이미 공개적으로 언론에도 수차례 언급되었던 것이었기에 그들의 이런 시도는 그리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설마하니 이 대한민국에서 삼진 그룹을 건드는 간 큰 집단이 있다는 사실에 이용수 사장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중얼거리며 인상을 잔뜩 일그러뜨렸다.
“그래서, 현재 상태는 어떻게 되지? 설마 살살이 풀에 피해가 간 건 아니겠지?”
“저희가 확인한 결과 다행히 큰 이상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다만?”
“외곽 지역에 조성된 인공 숲 하나가 전소했습니다. 이유는 아직 정확하게 파악이 안 됐지만 아무래도 침입자들로 인한 방화로 추정됩니다.”
단순한 불법 침입을 넘어서 부지 내에서 방화까지 저지른 이들. 그런 문석호 상무의 보고에 이용수 사장은 싸늘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그들은 잡았나?”
그룹의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라도 그들을 응징해 삼진의 무서움을 보여주겠다는 각오가 묻어나는 물음. 하지만 그는 이어지는 문석호 상무는 고개를 숙이며 답했다.
“죄송합니다. 아직 침입자들의 흔적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
그야말로 완전한 보안 경계의 실패.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보안에 구멍이 뚫려서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생태 부지 안에서 자라나고 있는 살살이 풀은 앞으로 삼진 바이오의 미래를······. 아니, 삼진 그룹 전체를 먹여 살릴지도 모르는 아주 중요한 핵심 자산이었기에 이번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 일인지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문석호 상무는 면목이 없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철저하게 상황에 대비하지 못한 제 잘못입니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문제는 제가 다 책임지고 물러나도록 하겠습니다.”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문석호 상무. 하지만 이용수 사장은 한숨을 푹 내쉬며 자리에 앉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자네가 사표를 쓴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지. 지금 당장 나에게 필요한 건 책임을 돌릴 희생양이 아니라 신속하게 문제를 처리해 줄 해결사야.”
단순한 절도범이나 도둑이 감히 저지르기에는 너무 대범한 시도. 그렇기에 이용수 사장은 분명 이러한 상황을 사주한 배후가 있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뭐가 되었든 우리의 보안 시스템의 허점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겠지. 그곳에서 일하는 관련자들 철저히 확인하고 이번 일을 사주했을 거라고 의심될만한 경쟁 업체들도 추려내서 오늘 중으로 나한테 보고해.”
“······. 지금 바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이내 빠른 걸음으로 사장실을 나서는 문석호 상무. 그가 나가고 난 이후 혼자 방 안에 남은 이용수 사장은 이제 막 아침 7시를 가리키고 있는 회중시계를 힐끗 바라보고는 이내 업무를 처리하려고 컴퓨터 모니터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그 순간, 그는 저 소파에서 들려오는 앳된 남자아이의 목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며 얼어붙었다.
“이용수 사장. 삼진 바이오의 최고 책임자이자 삼진 그룹 회장의 둘째 아들······. 맞죠?”
심드렁한 얼굴로 잠옷 차림에 괴상망측한 인형 하나를 들고 집무실 소파에 앉아 있는 소년. 많은 인파와 경호 인력들로 둘러싸인 삼진 바이오 사옥 최상층에 자리한 자신의 집무실에 갑작스럽게 난입한 불청객에 이용수 사장은 경악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며 얼어 붙었지만 그 이후로 그는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있었다.
‘뭐······뭐야. 몸이······?’
“혹시라도 경비라도 부르려고 허튼짓하려고 하거든 꿈도 꾸지 마세요. 어차피 제가 허락하지 않은 이상 손가락 하나도 까딱하지 못할 테니까요.”
부드러운 목소리와 다르게 광기가 가득한 미소를 짓고 있는 소년. 그의 눈빛에서 비치는 알 수 없는 불안함을 느낀 이용수 사장이 연신 눈동자만을 굴리고 있을 그때. 그는 화사한 미소와 함께 자신의 귓가에 속삭이듯이 말했다.
“저랑 한번 오늘 새벽에 벌어졌던 일에 대해서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누어보도록 하죠.”
*
“그러니까······. 당신이 바로 살살이 풀을 가지고 우리 삼진 바이오와 계약을 한 직접적인 당사자라······. 이 말입니까?”
“뭐 대충 정리해서 이야기하자면 그런 셈이죠. 어지간하면 직접 나서겠는데 보시다시피 제가 아직 미성년자라서 계약 같은 부차적인 절차에 들어가게 되면 영 머리 아프거든요.”
대리인 격으로 아영을 내세워 삼진 바이오와의 협상과 거래를 체결한 나. 그에게 살살이 풀과 관련한 모든 거래에 관해서 이야기를 해주었지만, 그 모든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용수 사장은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왜요? 아직도 마법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못 믿겠어요?”
“그게······.”
“그럼 아까처럼 다시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못하게 마비시켜 줄까요? 그러면 믿으려나?”
마력으로 완전히 제압당해 놓고서도 아직도 마법의 존재를 불신하는 그. 다시 한번 마법의 존재를 몸소 체험하게 해주려고 나는 마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우우우웅.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내 머릿속에 자동으로 떠오르는 수식과 함께 손에 푸른빛 마나가 일렁이기 시작하자 이용수 사장은 다급하게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아닙니다! 믿고 있습니다. 믿고 말고요.”
의식은 완전히 멀쩡한데 마치 전신의 신경이 마비된 식물인간이라도 된 것처럼 눈동자 말고는 아무것도 움직일 수 없었던 끔찍한 경험. 또다시 그걸 겪고 싶지 않은 듯 이용수 사장이 격한 반응을 보이며 손사래를 치자 나는 거의 완성되어가는 마법을 취소하고 마나를 거두며 씨익 웃어 보였다.
“싫으면 말고요.”
“······.”
장난기 가득한 나의 미소에 할 말을 잃은 듯 잔뜩 피곤한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던 이용수 상무. 그리고 이내 조금은 진지한 얼굴로 지금까지 나에게 들은 모든 정보를 종합해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단······. 그러면 현재 상황을 정리해보죠. 그쪽이······.”
“멀린. 멀린이라고 부르세요.”
“멀린······?”
“나중에 뮤튜브나 찾아보세요. 그럼 알게 될 테니까요. 이왕이면 좋아요랑 구독. 알림 설정까지 해주면 좋고요.”
“······?”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는 얼굴로 나를 빤히 바라보는 이용수 사장. 하지만 이내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는지 작게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이내 다시 말을 이었다.
“멀린님이 여기에 오신 목적이······. 이번 화재와 관련해서 저희에게 책임을 묻고 싶다고 하셨는데 정확히 어떤 것을 바라고 직접 이렇게 찾아오신 겁니까?”
아영이라는 대리인까지 내세워서 자신의 정체를 비밀에 부쳤던 나. 그런데 갑자기 이렇게 자신의 집무실에 난입해서 책임을 묻겠다는 이야기에 그는 잘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왜겠어요? 이번 문제가 대리인을 통해서 해결하기에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했기에 이렇게 직접 찾아오게 된 거죠.”
이미 생포한 침입자로부터 모든 정보를 확인한 상황. 그렇기에 나는 전적으로 이 모든 상황에 대한 책임이 삼진 바이오······. 아니, 삼진 그룹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나와 삼진 바이오가 맺었던 계약은 명확해요. 나는 살살이 풀의 독점적인 제공을. 그리고 삼진 바이오는 그에 대한 대가로 막대한 크기의 부지와 그 부지에 관한 일체의 관리와 보호를 제공하기로 했죠.”
“그런데······. 이렇게 어수룩한 침입자 무리에게 그 모든 보안이 뚫리는 것도 모자라서 내가 애써 공들여 길러놓은 숲 하나를 완전히 불타 버렸죠. 이건 명백한 계약 위반이라고 볼 수 있는 사항 아닌가요?”
“그······그건······.”
이용수 사장으로서는 뼈 아픈 약점일 수밖에 없는 상황. 하지만 여기에서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었다.
“게다가······. 제가 더 열 받는 점은 이번 방화를 주도한 주체가 삼진 그룹이라는 점이에요. 이진수 사장인지 김 실장인지. 그 어디 듣도 보도 못한 나부랭이들의 수작질에 내가 왜 피해를 봐야 하죠? 예?”
“지······지금 뭐라고 했습니까? 이진수 사장이요······?”
내 말에 예상하지 못한 이름이 튀어나오자 경악하며 자기도 모르게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는 이용수 사장. 그리고 그는 이내 얼굴을 파르르 떨며 혼잣말로 연신 무어라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설마······. 형이 이런 미친 짓까지 해서까지······?”
자신의 친형이지만 삼진 그룹 전체를 지배하는 회장의 자리를 두고 경쟁하는 사이. 하지만 이번 사업은 아버지인 이호준 회장의 재가 아래에 삼진 그룹의 미래까지도 걸고 추진하는 아주 중요한 프로젝트였기에 설마 이런 극단적인 짓까지 벌이며 자신을 방해할 것이라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왜요? 못 믿겠어요? 그럼 그 부지 내에서 돌아다니고 침입자 잡아다가 직접 물어보세요. 어디 도망치지 못하게 반쯤 땅속에다가 심어놨으니까 아마 금방 찾을걸요?”
“······.”
이미 내가 모든 전후 사정을 다 파악하고 있다는 것을 직감한 듯한 이용수 사장. 그렇기에 그는 그런 내 말에 별다른 항변을 하지 않았다.
“사장님은 모르시겠지만, 이번 일로 인해서 제가 삼진 그룹에 대해 느낀 실망이 참 커요. 나름 대한민국에서는 최고의 기업이기에 쓸만할 것 같다고 생각해서 손을 잡았더니 이런 식으로 집안싸움도 제대로 관리 못 해서 못 볼 꼴을 보게 만들다니 말이죠. 이왕 이렇게 된 거 계약이고 나발이고 그냥 다 엎어버리고 미국이나 어디 유럽에 번듯한 회사랑 손을 잡는 게 어떨까 싶더라니까요? 살살이 풀 하나 얻어보려고 득달같이 달려드는 거 보니까 그쪽에서는 아주 환영할 거 같던데.”
은근한 목소리로 농담 반 진담 반으로 하는 협박. 하지만 그런 나의 협박에 이용수 사장의 얼굴은 그야말로 순식간에 창백해졌다.
‘그것만큼은 절대 안 된다······.’
살살이 풀의 공급 중단.
그것은 지금 삼진 바이오에게 있어서는 절대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이미 전 세계에 살살이 풀에 관한 정보를 흘렸고, 이에 따른 신약 개발의 추진과 동시에 세계적인 제약 회사들과 막대한 자금이 걸린 계약들을 체결한 상황. 이제야 와서 만약 살살이 풀을 공급할 수 없게 된다면 삼진 바이오는 단순한 이미지 손상을 넘어서 계약 위반으로 인해 회생할 수 없는 막대한 위약금을 감당해야 할 수밖에 없었다.
‘반드시 그런 상황만큼은 막아야 해······.’
지금 현재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카드가 아무것도 없는 상황. 그렇기에 이용수 사장은 모든 자존심을 내려놓고 벌떡 일어나 고작 중학생 정도밖에 되지 않는 어린 소년에게 깍듯하게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이번 일에 대해서 다시 한번 내부적으로 확인해봐야겠지만, 만약 방금 하신 말씀이 전부 사실로 밝혀진다면······. 제가 삼진 그룹을 대표해서 진심으로 사죄드리겠습니다.”
“호오······?”
생각보다 빠른 항복.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그마치 삼진 그룹의 차기 후계자가 될 수도 있는 이가 이렇게 고개를 숙이며 용서를 구하고 있는 모습에 나는 의외라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것과는 별개로 이번에 피해를 본 것에 대해서는 섭섭하지 않도록 최대한 보상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다시는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방비하겠다고 제가 직접 약속드리겠습니다. 그러니 부디 계약 파기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제고를 부탁드립니다.”
어떻게든 계약의 파기만큼은 막으려는 그 의지가 엿보이는 처절한 그의 몸부림. 그것을 보며 나는 잠깐 고민하다 이내 삼진 그룹에 대한 처우를 결정하고는 입을 열었다.
“좋아요. 그럼 지금부터 딱 일주일 드리죠.”
“······?”
“이번 사태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모든 이들을 찾아내서 그 대가를 치를 수 있도록 알아서 응징하세요. 죽이든 살리든 감방에 처넣던 뭘 어떻게 하든 상관없으니까 밑바닥부터 꼭대기까지 모조리 다 조져놓으세요. 앞으로 저와의 관계는 그 결과를 보고 결정하도록 하죠.”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나의 소중한 숲을 불태운 것에 대한 자들을 모두 응징하라는 나의 요구. 그것을 들은 이용수 사장은 잠깐 얼이 빠진 듯 입을 뻐끔거리다 이내 물었다.
“꼭대기라면······. 이진수 사장까지 말입니까······?”
자신의 형이자 삼진 그룹의 유력한 차기 회장인 이진수. 그마저도 이번 응징의 대상이냐는 그의 물음에 나는 너무나도 당연한 거 아니냐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당연한 거 아닌가요? 이번 사태의 원흉인데 그 새끼는 무조건 조져야죠.”
“······?”
“아, 혹시 그럴 힘이 없는 거면 그냥 놔두세요.”
혹시라도 그럴 힘이 없다는 거라면 걱정하지 말라는 듯 나는 손사래를 치며 그냥 내버려두라고 히죽 웃으며 나지막하게 말했다.
“당신네가 처단하지 않으면 그 새끼는 내가 직접 처단할 거니까요.”
내 소중한 식물들을 건든 새끼에게 자비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