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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화. 자니? (37/84)


37화. 자니?
2023.0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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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은 또 그와 원나잇을 하겠다는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다.

이번엔 오로지 그냥 잠만 푹 자고 내일 아침 서울로 돌아가자는 뜻이었다.

나영은 그가 오해하지 않게 차분하게 해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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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이 다섯 시간이나 수술하고 장거리 운전하면 사고 날까 봐서 그래요. 제 안전이……, 어? 교수님! 어디 가세요?”

그녀의 해명은 다 끝나지도 않았는데 최태혁 교수는 그녀만 남겨두고 다시 병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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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 올게. 거기서 꼼짝 말고 기다려.”

뭐야? 깜빡 잊은 거라도 잊는 건가.

설마 화장실이 급한 거야?

할 수 없이 그녀는 그 자리에서 최태혁 교수가 다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나영을 혼자 두고 태혁이 서둘러 간 곳은 다시 응급실이었다.

그는 안면이 있는 응급실 전문의한테 곧장 다가가서 다급하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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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근처에서 제일 가까운 호텔이 어딥니까?”

떠난 줄 알았던 그가 다시 돌아온 걸 보고 응급실 전문의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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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너무 늦어서 자고 가실 건가 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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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바뀌기 전에 얼른 가르쳐 줘요.”

시간이 없는 게 아니라? 마음이 바뀌기 전에?

응급실 전문의는 이유를 의아하게 생각하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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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어차피 오늘 나이트 근무니까. 그냥 저의 집에서 주무세요. 바로 병원 근처에 있습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이 병원 응급실 환자들을 살리다가 서울 갈 시간을 놓친 것이었기에 응급실 의사는 선의로 그의 집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태혁이 응급실 전문의에게 더 바짝 다가서며 진지하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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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이 몇 개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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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요.”

방이 두 개나 된다는 말을 듣자마자 태혁이 실망한 표정을 짓는 걸 보고 응급실 전문의가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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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호텔 가시겠어요? 그런데 괜찮은 호텔은 여기서 30분 정도 가셔야 있습니다.”

복강 내 출혈 환자 수술에 대해서는 1초도 고민하지 않았던 그가 이번엔 빨리 대답하지 못하고 심각하게 고민하는 걸 보고 응급실 의사는 혼자 웃었다.

아무리 유능한 의사라도 연애할 때는 어쩔 수 없나 보다.

***

딸깍.

불을 켜자 깔끔하게 정리된 실내가 드러났다.

나영은 감탄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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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엄청 깔끔한 성격인가 봐요.”

그녀와 승희가 함께 사는 집도 이 정도로 깨끗하지는 못했기에 반성하게 되었다.

시간 없어서 집 안 청소를 못 한다고 하기에는 응급실 의사도 못지않게 바빴으니까.

최태혁 교수가 곧장 부엌으로 걸어가자 나영은 놀라서 그를 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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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로 건들지 마세요.”

태혁은 개의치 않고 냉장고 문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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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오늘 밤은 우리 쓰라고 빌려준 집이야. 남의 집에 몰래 들어온 게 아니라.”

이 집과 호텔 사이에서 심각하게 고민했던 태혁은 곧 그게 쓸데없는 고민이라는 걸 깨달았다.

어차피 호텔에 빈방이 많이 남아 있으면 결국 방 두 개를 예약해야 했으니까.

그가 방을 하나만 예약하면 분명 나영은 그를 음흉하다고 욕하며 다시 경계할 게 뻔했다.

그래서 그냥 이 집으로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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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배고픈데, 넌 배 안 고파?”

조개구이가 두 사람이 오늘 마지막으로 먹은 요리였다.

그러고 보니 나영도 배가 텅 빈 느낌이었기에 난감한 눈으로 시계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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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시간이 너무 늦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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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간단하게 라면이라도 끓일 테니까, 넌 먼저 씻어.”

그가 또 라면을 먹겠다고 하자 나영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하지만 이 시간에 빨리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라면밖에 없는 것도 사실이라 나영은 뭐라고 못 하고 욕실로 향했다.

나영이 씻는 동안 태혁은 라면을 다 끓였다.

그가 요리는 못해도 라면만은 기가 막히게 끓일 수 있었다.

태혁은 냄비 속 끓는 물을 보며 바닷가에서 있었던 일을 생각했다.

나영은 결국 그한테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사실 그는 나영의 생각처럼 쿨했던 게 아니라 신경이 쓰여서 행동을 자제하게 되었다.

나영이 과거에 힘든 일을 겪었다고 말한 뒤부터 태혁은 그녀를 대하는 태도를 신경 쓰게 되었다.

앞으로 그녀한테 어떤 상처 주는 말이나 행동도 하고 싶지 않았다.

설령 그게 그한테 마이너스가 되어도.

태혁은 마음이 답답해서 핸드폰을 꺼내 차현한테 전화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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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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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오늘이 마지막 기회였거든. 그런데 내가 너무 배려한 나머지.”

순간 뭔가 쎄한 느낌이 들어서 고개를 돌렸던 태혁은 바로 앞에 서 있는 나영을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라 들고 있던 핸드폰을 떨어뜨렸다.

너무 생각에 집중한 나머지 그녀가 욕실에서 나오는 소리도 못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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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영은 천천히 눈동자를 움직여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과 아직도 끓고 있는 물과 돌처럼 굳어있는 최태혁 교수를 하나씩 눈으로 훑은 뒤 그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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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도 씻으세요. 라면은 제가 끓일게요.”

태혁은 바로 몸을 돌려 욕실로 피신했다.

탁.

욕실 문을 닫자마자 태혁은 두 손으로 머리를 움켜잡으며 자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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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했어. 제대로 망했어.”

차현한테 전화해서 묻는 걸 정통으로 들켜버리다니.

오늘 처음 전화 건 거라고 거짓말한다고 해도 나영이 안 믿을 거 같았다.

이미 의심할 만한 상황이 몇 번 있었으니까.

태혁은 태어나 처음으로 쪽팔려서 울고 싶다는 기분을 느끼게 되었다.

***

최태혁 교수가 욕실로 들어가 버린 뒤 나영은 몸을 숙여 그가 떨어뜨린 채 버리고 간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전화는 아직도 연결된 상태였다.

나영은 핸드폰을 귀에 대고 대신 차현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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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은 씻으러 들어가셨어요. 감독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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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문나영 씨 맞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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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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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는 날 이 시간까지 같이 있다는 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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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간에 최 교수님한테 장거리 운전시킬 수 없어서 내일 아침 가기로 한 거예요. 오해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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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심지어 서울도 아니구나.]

차현 감독은 혼자 쿡쿡 웃었다.

그가 다른 곳에 소문낼 사람도 아니라서 나영은 설명하길 포기하고 그냥 전화를 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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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들어가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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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나영 씨는 나한테 묻고 싶은 거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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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그녀가 차현 감독한테 묻고 싶었던 건 그날 병원에서 물었던 게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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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봤잖아요. 태혁이는 마음 쓸 일 생기면 나한테 물어봐요. 나영 씨도 한번 시도해 봐요.]

나영은 어른이 된 뒤 한 번도 남한테 자신의 마음을 상의한 일이 없었다.

가족과도 그래 본 적이 없었다.

차현 감독은 그녀한테 잘 모르는 타인과 마찬가지였지만, 그가 최태혁 교수한테 어떤 존재인지 생각하니 그녀도 입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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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용기를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그녀의 질문을 듣고 차현 감독은 경쾌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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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서 하기 힘들면 상대방과 나눠요. 그런 말이 있잖아요.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반이 된다고. 용기는 나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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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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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문나영 씨가 직접 해보면 알겠죠. 나도 결과가 궁금하네요.]

전화를 끊은 나영은 마음이 한결 개운해졌다.

최태혁 교수가 왜 차현에게 자꾸 전화하는지 이유를 알 것도 같았다.

***

달칵.

그가 욕실에서 나왔을 때 나영은 다 끓인 라면을 식탁 위에 준비해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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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서 라면 드세요.”

태혁은 걸어가서 조용히 나영의 앞자리에 앉았다.

그가 말은 삼가고 젓가락에 면발을 가득 떠서 막 입에 넣으려고 했는데, 나영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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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한테도 기회 주실 수 있으세요?”

태혁은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보았다.

바로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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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기회?”

나영은 바닷가에서 못한 말을, 차에서 못한 말을 이제 미룰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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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이 먼저 저한테 세 번의 기회 달라고 하셨잖아요. 제가 교수님 받아들일 수 있게. 저도 마지막 용기를 내려면 기회가 필요한 거 같아서요.”

누군가를 좋아하기보다 더 어려운 게 용기를 내는 거였다.

용기는 상처 입을 걸 알면서도 기꺼이 다가서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 용기가 없어서 그녀가 지금껏 움츠린 마음으로 산 걸 깨닫고 나영은 속이 뜨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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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이 안 도와주시면 저 혼자는 절대 못 할 거예요.”

그녀는 혼자서 용기를 낼 수 없다고 말하고 있었지만, 태혁은 그녀가 이런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그녀가 용기를 낸 거라고 생각했다.

예전의 나영이었다면 절대 할 수 없을 말이었다.

그를 받아들이기 위해서 자신을 바꿀 의지를 보여준 그녀가 태혁은 또다시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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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나보다 훌륭하니까 한 번의 기회면 충분할 거야. 그렇지?”

나영은 고개를 저으며 손가락 세 개를 폈다.

태혁은 웃으며 그녀의 손가락 하나를 억지로 접었다.

그리고 은밀하게 그녀에게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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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너도 차현이랑 통화했어?”

나영은 정색하며 단호히 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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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했어요.”

차현은 대화할 때는 도움이 많이 되지만, 그렇다고 내놓고 말하기에는 부끄러운 그런 은밀한 존재였다.

마치 그림자 친구처럼.

***

잘 시간을 벌기 위해서 남은 것이었기에 두 사람은 라면만 먹고 바로 잠자리에 누웠다.

그녀가 침실을 쓰고, 태혁은 거실 소파에서 자기로 했다.

강원도까지 장거리 운전을 하고, 다섯 시간을 수술실에 있었으니 피곤할 만도 하건만 태혁은 바로 잠이 오지 않았다.

태혁은 눈을 떠 나영이 자는 방 쪽을 보았다.

그러고 보니 그날 밤 이후 처음이었다. 한 공간에서 잠을 자는 게.

상황이 아주 많이 다르기는 했지만, 오히려 마음은 그때보다 더 진심이 되었다.

나영이 자는 방의 문을 열고 확인하고 싶은 마음을 꾹 눌러 참았다.

마치 어린이가 초콜릿 앞에서 먹고 싶은 걸 꾹 눌러 참는 마음으로.

그래, 잠이나 자자.

태혁은 반대로 몸을 돌려 두 눈을 감았다.

하지만 5분도 안 지나서 다시 방문 쪽으로 돌아누워 애꿎은 문만 노려보았다.

이제 점점 초콜릿에 애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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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이 오지 않는 건 나영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피곤해서 금방 잠들 줄 알았건만 침대에 누운 지 30분이 지나도록 두 눈이 말똥말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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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은 주무시겠지?’

나영은 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기분이 이상했다.

술에 취해 그와 하룻밤을 보낼 때는 전혀 현실감이 없었는데, 지금은 그와 함께 있는 이 밤이 벅찰 정도로 현실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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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은 앞으로 그와 그녀의 사이에 어떤 일들이 벌어질지 생각해 보았다.

다음에는 같이 영화관에 가봐야겠다.

평범하면 평범할수록 좋았다.

삑삑.

갑자기 핸드폰이 울리자 나영은 손을 뻗어 핸드폰을 잡았다.

새로 온 메시지가 화면에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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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니?>

문 바로 밖에서 보내온 메시지였다.

***

태혁은 어느새 소파를 벗어나 침실 문 앞에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서 핸드폰을 붙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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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셀 때까지 안 오면 나도 그냥 잔다.”

그래도 두 번째로 함께 지내는 밤인데, 어쨌든 시도라도 해봐야 나중에 후회할 일이 없지 않겠는가.

태혁은 기도하듯이 핸드폰을 두 손으로 붙잡고 숫자를 세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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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그때 병원에서 엘리베이터를 보고 숫자를 셀 때는 효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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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

이번에도 그때처럼 ‘짠’하고 나타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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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

다섯은 너무 짧았다. 열까지 센다고 할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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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

태혁은 두 눈까지 감고 진짜 기도하듯이 간절히 숫자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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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달칵.

메시지가 아니라 문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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