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빨로 FA 천억 포수-195화 (195/203)

195화 영원히 기억에 남을 시즌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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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호가 홈에 들어왔을 때 가장 먼저 들은 말은 칭찬도, 환호도 아니었다.

“은퇴식인데 밥 한 톨까지 싹 쓸어 먹으니까 좋냐? 에휴, 타점 먹고 은퇴한 야구선수가 때깔이 좋다는데.”

김수호가 홈런을 60개 넘게 때린 만큼 강주호가 저런 말을 하는 건 수도 없이 들었다.

평소 강주호가 저 말을 할 땐 장난기가 느껴졌다면 오늘은 반쯤 진심이 느껴졌다.

근데 김수호도 어쩔 수 없었다.

“제가 가장 가까이서 배운 사람이 워낙 먹는 걸 좋아해서요.”

황당해하는 강주호의 표정을 뒤로하고 김수호가 다른 선수들과 환호하면서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쯧. 너도 네 은퇴식 때 꼭 너 같은 놈 만나서 다 쓸어 먹어라.”

강주호가 저주 아닌 저주를 퍼붓고 타석에 들어섰다.

김태민이 강주호를 보자 모자를 벗고 고개를 숙였다.

다만 김태민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에 시작부터 3점을 내줬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강주호도 그 표정을 봤지만, 그리 기분 나빠 하지 않았다.

김태민도 그의 후배였고, 다만 선배 존중을 할 줄 모르는 어떤 놈 때문에 저런 표정을 짓는 거니까.

몇 년 선배든 상관을 안 하는 무자비한 놈이었다.

아무튼 묘한 동질감을 느낀 강주호가 손을 들어서 인사를 받았다.

그리고 포수에게 말했다.

“쉬운 거 하나 줘봐.”

강주호의 말에 포수가 곤란한 듯 말했다.

“선배님도 아시지 않습니까. 저희 오늘 무조건 이겨야 합니다.”

“쯧. 그런 놈이 수호한테 그런 공을 던지냐?”

“아니, 그건 태민이가 못 던진 게 아니라 쟤가 너무 잘 친 거 아닙니까? 하. 아니 그거까지 치면 대체 뭘 던지라고.”

포수 내면에서 폭발한 진짜 짜증을 마주한 강주호가 실실 웃었다.

저거야말로 상대팀에게 타자가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 아닐까.

아무튼 포수에게 저런 말을 하긴 했지만, 은퇴식이라고 대우받을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괜히 대우만 받아봤자 마지막 기분만 상하지, 차라리 최선을 다하는 게 낫다.

그리고 정신을 차린 김태민은 강주호를 향해 전력으로 공을 던졌다.

-따악!

초구에 당긴 타구가 땅을 한 번 때리더니 순식간에 3루를 향해 날아갔다.

워낙 빠른 타구에 왼쪽으로 휘는 타구라 충분히 3루수를 피해 외야로 빠져나갈 줄 알았지만.

-촤아악!

“아웃!”

황인재가 완벽한 슬라이딩에 성공하고, 이후 송구까지 깔끔하게 처리하면서 강주호의 첫 타석은 호수비에 지워졌다.

강주호가 나름대로 전력으로 달려봤지만, 발은 늘 그랬던 것처럼 느렸다.

허탈한 표정을 한 채 1루에 도달한 강주호가 투덜거렸다.

“저기 선배 대우 없는 놈이 또 있네.”

공을 받은 오기택이 강주호의 혼잣말을 듣고 실실 웃었다.

“인재요? 인재가 선배 대우 없는 거 마린스까지 소문났어요? 어후, 그래도 애는 착해요. 근데 마린스엔 누군데요?”

“쟤 친구.”

“수호요? 수호 엄청 착하지 않나? 들리는 말로는 칭찬밖에 없던데.”

“애는 착한데 실력이 싸가지 없어.”

아.

오기택은 단번에 이해했다.

“친구끼리 똑 닮았네.”

둘은 당사자들이 들으면 기겁할만한 얘기를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주고받았다.

아무튼 아웃당한 마당에 계속 일루에서 있을 수 없는 강주호가 터덜터덜 더그아웃에 들어왔다.

“아이고, 행님. 그리 뛰어가 안타가 되것습니꺼?”

채지훈이 기다렸다는 듯이 강주호를 놀렸고 다른 선수들도 합류했다.

“선배님 발은 진짜 기복이 없습니다.”

“규영아. 방금 뭐라고 했냐? 거북이라고?”

이용기가 툭 던진 말에 더그아웃이 초토화가 됐다.

“끄으윽···. 거북이···. 이렇게 보니까 거북이랑 좀 닮으신 것 같기도 하고···.”

“아, 용기형! 너무한 거 아닙니까! 깜빡이 좀 켜고 들어오지. 웃다가 죽을 뻔했네.”

“재밌냐? 웃기지? 내 은퇴 경기인데 존중과 리스펙은 어디 갔는데.”

“행님. 아까 행님도 웃는 거 다 봤습니더.”

정곡을 찔린 강주호가 주변을 살피다 김수호한테 말했다.

“김수호! 다 너 때문에 이런 거 아니야.”

“예? 저요?”

“그래. 너부터 나를 존중했으면 홈런 대신 출루를 했어야지. 안 그래?”

“우우우우! 그건 억까 아닙니까?”

“은퇴식에서 이기려다가 우리 수호 잡겠네. 우우우우!”

강주호는 깨달았다.

이곳에 자신의 편은 없다.

쏟아지는 야유를 들으며 나지막이 말했다.

“은퇴식 언제 끝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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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식은 말 그대로 한 선수가 그라운드를 떠나는 행사다.

이름만 보면 아쉽고, 또 슬퍼할 만한 일이었지만 강주호를 보내는 우리는 다르게 접근했다.

행복한 행사다.

강주호를 위해 이런 자리를 마련할 수 있고 평생을 뛴 사직구장에서 한마음 한뜻으로 강주호의 제2의 인생을 응원할 수 있는 행복한 행사였다.

그리고 이 경기가 정말 마지막은 아니었다.

한국시리즈가 남아있었고 강주호의 마지막은 트로피를 들면서 끝날 것이다.

그래서일까, 경기가 진행되는 와중에 항상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니까 그때 벤클 일어나서 선배가 팔을 퍽하고 밀었는데 걔, 그, 이름이 뭐였지? 아무튼 덩치 쩌는 외국인이었는데 걔가 그냥 나자빠지더라니까? 와, 그거 보고 진짜 개기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나 처음 1군 데뷔하던 날, 주호 선배가 초코파이 한 박스 사주고 다 먹으라고 해서 식고문인가 했거든? 근데 내가 못 먹겠다고 하니까 그냥 혼자서 다 드시더라.”

“형이 미국 가고 나한테 전화해서 마린스 오고 싶다고 울던 때가 진짜 엊그제 같은데. 그치?”

“강기호. 개소리하지 마라.”

대부분 강주호와 관련된 얘기를 나눴고, 강기호도 오늘만큼은 과거 얘기를 하면서 과거를 회상했다.

그러는 사이 계속 이닝이 흘러갔다.

2회 초에 선두타자로 나온 황인재가 홈런을 치면서 경기가 더욱더 격화됐고, 김태민도 안정을 찾으면서 이후 무실점으로 3회까지 막았다.

“언제부터 야구장에서 선배 대우가 사라졌냐. 진짜 나 때는···.”

3회 말 2사 2루의 기회를 놓친 강주호가 투덜거리긴 했지만, 별문제는 없었다.

하스도 안정된 투구를 보여줬다.

4회 초에 1사 만루 위기가 있었지만.

“홈! 홈!”

“아웃!”

이주학이 빗맞아서 느리게 흐르는 타구를 맨손으로 잡고 곧바로 홈을 향해 던지면서 아웃을 만들어냈다.

3루 주자였던 황인재는 느렸고, 1루 주자와 타자가 워낙 날랜 타자라 병살을 만들기는 어려웠다.

실점을 막는 좋은 수비가 나오고 이후 마지막 타자를 뜬공으로 처리하면서 만루 위기를 무실점으로 극복했다.

“리. 좋은 수비였다.”

하스의 칭찬을 들은 이주학이 그 기세를 타석에서도 이어갔다.

-따악!

이어진 우리 공격, 2사 2, 3루의 상황에 들어선 이주학이 2루수 키를 넘기는 깔끔한 안타를 만들어내면서 대거 2득점을 완성했다.

그 안타로 김태민이 결국 교체됐다.

“봤냐? 개쩔었지?”

“어. 잘 쳤는데?”

이규영이 아웃당하고 이닝이 끝나자 잔뜩 흥분한 채 들어온 이주학을 겨우 진정시켰다.

아무튼 그렇게 경기는 무난하게 우리의 승리로 끝나는 듯 보였다.

하지만 가을야구를 향한 피닉스의 집중력은 무서웠다.

5회 초, 선두타자를 잘 잡아냈지만 이후 1, 2번 타자가 연속으로 출루에 성공했다.

-따아악!

이어서 오기택이 기술적인 안타로 2루 주자가 홈으로 들어오면서 5대2.

1사 1, 3루 상황에 들어온 황인재가 한 번의 스윙으로 자신을 응원하는 팬들의 소망을 완성했다.

-따아아악!

그걸로 단번에 동점.

아무래도 경기가 끝나고 은퇴식이 시작하려면 아직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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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경기는 보통 시즌 가장 마지막 경기에 열리고 그 마무리를 좋은 기억으로 추억하기 위해 상대 팀이 어느 정도 조절을 해가면서 경기를 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강주호는 그런 은퇴식보다 지금 이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가득 찬 사직구장, 마린스의 승리를 위해 응원하는 팬들, 거기에 맞서 소수의 피닉스 팬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피닉스도, 마린스도 저마다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이유가 있고, 선수들 역시 승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패배한다고 해도 좋다.

강주호는 지금 이 분위기와 열기를 좀 더 오래, 그리고 길게 느끼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다만 늙고 노쇠한 신체는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박은성부터 시작한 5회 말 공격.

박은성이 2루타를 쳤고 김수호가 강한 타구를 날렸지만, 우익수 글러브에 걸리면서 아웃.

그 틈을 타 박은성이 3루까지 들어갔다.

“맛있게 드세요.”

김수호가 아쉬움을 뒤로하고 강주호한테 속삭인 뒤 더그아웃으로 들어갔다.

“딱 봐도 지가 먹으려다 실패한 게 다 보이는구먼.”

강주호에게 두 타석 연속으로 찾아온 기회.

특히 1아웃에 3루 주자가 발이 빠른 박은성이다.

멀리 가는 플라이만 쳐도 충분히 앞서가는 득점을 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못했다.

“스트라이크 아웃!”

최악의 결과, 삼진.

이후 후속타 불발로 득점에 성공하지 못하고 5회가 끝났다.

기대와 다른 결과에 머쓱함도 잠시, 누구도 강주호에게 뭐라 할 사람은 없었다.

가장 아쉬워할 사람이 바로 강주호였다.

이제 남은 정규이닝은 4이닝.

4회부터 불펜을 가동한 피닉스에 이어 마린스도 6회부터 필승조가 나왔다.

6회를 막기 위해 나온 투수는 바로 김동준.

필승조 중 항상 가장 먼저 등판했던 터라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다만 마린스의 필승조는 3명.

남은 4이닝 중 누군가는 멀티 이닝을 소화해야 했다.

그건 차후 이정훈 감독의 판단에 따라 정해질 터.

김동준은 묵묵하게 마운드로 올라왔다.

김동준 역시 강주호의 경남고 후배.

-퍼억!

“스트라이크 아웃!”

-딱!

“아웃!”

압도적인 구위를 바탕으로 피닉스의 하위타순을 찍어눌렀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강주호의 도움을 받았다.

-따악!

1루수 강습 타구에 강주호가 부드러운 핸들링으로 잡아냈다.

이후 1루 베이스 커버를 들어온 김동준에게 토스하면서 그대로 이닝을 종료했다.

“이야, 동준이 너 공 진짜 죽이네. 애들이 힘을 못 써.”

“선배님 덕분입니다. 수비 감사합니다.”

그렇게 짧고 굵었던 김동준의 역할은 끝났다.

마찬가지로 6회 말을 무실점으로 막은 피닉스가 1번 타자부터 시작하는 7회 초 공격을 준비했다.

그리고 마운드에는 이용기가 올라왔다.

투수조 맏형답게 누구보다 강주호와 함께 보낸 시간이 길었다.

물론 강주호가 있던 곳과 이용기가 있던 곳이 같은 곳이라고 말하기는 힘들었다.

강주호는 마린스의 중심.

반대로 프로 생활의 2/3를 패전조, 추격조로 뛰었던 이용기였다.

그래서일까, 오늘 은퇴식에서 가장 긴장한 선수 중 한 명이었다.

‘부럽다.’

프로선수 중 은퇴식을 할 수 있는 선수는 극히 적었다.

아마 이용기의 생각에 자신은 그 범주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래서 더욱 부럽고, 이 은퇴식을 망치면 안 된다는 생각에 부담과 긴장이 올라왔다.

“볼!”

그 결과는 첫 타자 볼넷.

-딱!

이어서 번트를 대면서 역전주자가 2루에 나갔다.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가 귀를 때리는 기분이었다.

처음 마무리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왔을 때도, 작년 한국시리즈에서 세이브를 기록했을 때도 이런 느낌은 아니었다.

적어도 그때는 경기를 망쳐도 기회가 더 있었고, 강주호의 은퇴식은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용기!”

그때 1루에 있던 강주호가 미트를 두어 번 치면서 이용기를 불렀다.

더 말하는 대신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몇 번 끄덕였다.

신기하게도 그 이후 심장이 제 자리를 찾은 느낌이 들었다.

“스트라이크!”

공도 자신이 들어갈 제 자리를 찾았다.

포심과 슬라이더, 포크볼.

“스트라이크 아웃!”

적재적소로 들어가는 변화구에 결국 오기택까지 삼진으로 잡아냈다.

이제 2사 2루.

“황인재! 황인재! 황인재!”

오늘 2개의 홈런이 있는 피닉스의 4번 타자, 황인재가 들어왔다.

하지만 피닉스 응원단은 곧 아쉬움의 함성을 내질렀다.

“볼!”

고의사구는 아니었지만, 의도적으로 승부를 어렵게 가면서 볼넷으로 출루에 성공했다.

피닉스 팬들의 야유가 들려왔지만 이용기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예전엔 올라오기만 해도 팬들한테 들었던 욕이었는데 저 정도는 뭐.’

과거를 잠깐 떠올리기만 해도 저 정도는 귀엽게 들렸다.

이제 역전주자를 넘어 추가점을 낼 수 있는 주자까지 출루한 상황.

그리고 타석에 홍민우가 들어왔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황인재에 비하면 귀여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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