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6화 가장 빛나는 별 -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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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학과 김수호는 몰랐지만, 김수호의 기사를 작성한 기자의 이름을 유심히 봤다면 뭔가 이상함을 느꼈을 수도 있다.
서상길 기자.
주로 마린스와 관련된 기사를 작성하는 마린스 담당 기자였다.
그리고 오민찬 단장이 가끔 소스를 내주는 대가로 마린스에 긍정적인 기사를 내는 기자였다.
이번 김수호의 기사 역시 오민찬 단장의 입김이 들어가 있었다.
“후. 아직 조금 불안한데.”
오민찬 단장이 퇴근도 미루고 올스타 투표 현황을 보고 있었다.
2023년 이후 무려 10년 만에 사직에서 열리는 올스타전이다.
특히 이번 올스타전엔 마린스 구단주가 직접 직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만큼 사활을 걸고 준비하는 중이었다.
오민찬 단장으로선 준비할 것도, 기대되는 부분도 있었다.
“사직에서 하는 올스타전에 마린스 선수 10명이 라인업에 있으면 좋긴 한데.”
모르는 사람이 보면 마치 1위 팀 마린스를 이기기 위해 나머지 팀들이 뭉치는 모양새였다.
물론 현실적으로 12명의 선수가 선수단 투표까지 이겨내고 전부 올스타에 선정되는 건 불가능 할 수도 있다.
하지만 할 수 있는 건 전부 해보고 결과를 기다리자는 게 오민찬의 신조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게 있다.
“수호야. 하준아. 힘내자.”
드림 올스타가 마린스의 독주라면 나눔 올스타는 꽤 골고루 분포돼 있었다.
그중에서 유일하게 몰표를 받다시피 한 포지션이 있었는데 바로 3루수였다.
대전 피닉스의 황인재.
작년 올스타전에서 득표수 1위에 뽑히는 걸 보고 얼마나 배 아팠는지 모른다.
신인답지 않은 실력도 실력이고 딱히 잡음도 없었다.
메이저리그 대신 KBO를 선택한 것도 긍정적인 효과를 봤다.
심지어 마린스 팬들도 부산 출신인 황인재를 밀어주면서 당당하게 전체 1위로 올스타전에 참가했었다.
그때 오민찬이 피닉스 단장에게 받았던 수모를 아직 잊지 못했다.
‘황인재 고맙다?’
올해 역시 당당히 나눔 올스타 1위로 황인재가 이름을 올렸다.
딱히 경쟁자가 없기도 했고 퍼포먼스가 워낙 화려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반면 드림 올스타에선 김수호와 허하준이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며 1, 2위를 나눠 가졌다.
문제는 황인재와 다르게 같은 포지션에 꽤 강력한 선수들이 있다는 거였다.
최정윤과 양준.
탄탄한 팬층을 자랑하는 대구 에이스의 배터리가 선발 투수와 포수 표를 야금야금 갉아먹고 있었다.
‘1위가 아니면 의미 없다.’
사직에서 열리는 올스타전이고 마린스 선수들이 전부 들어온다.
거기에 화룡점정으로 최다 득표 역시 마린스 선수가 차지하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었다.
“아직 부족한데.”
하지만 몰표를 받은 황인재가 전체 1위로 앞서고 있는 상황.
현재 세 선수 간의 표 차이는 약 1,000표.
황인재가 가장 앞서고 있지만 따라잡으려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는 차이였다.
“어. 서기자. 기사 하나만 더 쓰자. 뭐? 퇴근? 스포츠 기자가 퇴근 시간이 어딨어!”
그런 이유에서 김수호의 기사가 메인으로 올라간 거였다.
허하준을 밀 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경쟁 구도가 두 어린 선수로 굳어지는 게 그림이 좋다.
당연히 오민찬이 그리는 그림 마지막엔 김수호가 이겨야 했다.
“어. 그래. 그거. 내가 저번에 준 소스 있잖아. 그거 한 번 쓰자. 기사는 언제? 모레? 너무 늦는데?”
그렇게 오민찬 단장의 김수호 1등 만들기 프로젝트가 아무도 모르게 진행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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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츠와의 원정 3차전.
앞선 두 경기에서 이긴 마린스의 배터리는 요그 하스와 김성준이었다.
이제는 어느 정도 합이 잘 맞는 둘이었고, 김수호에게 주 1회는 반드시 휴식을 주겠다는 이정훈 감독의 의지였다.
이런 경우 김수호가 지명타자로 출전할 때도 있지만 그것도 격주에 한 번으로 제한한 만큼 오늘 김수호의 선발 출장은 없었다.
나이츠도 휴고 버터필드를 선발로 내세우면서 스윕만은 피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그렇게 경기는 후반으로 흘렀고 요그 하스도 6이닝 4실점(3자책) 하며 제 몫을 다했다.
하지만 타선이 부진하며 2대4로 끌려가던 8회 초, 결정적인 기회가 찾아왔다.
상대 실책을 틈타 출루에 성공한 강주호가 대주자 이준과 교체, 그 이후 차곡차곡 주자를 쌓아갔다.
“볼!”
결국 오늘 8번 타자로 나선 이주학이 볼넷을 골라내면서 2아웃 주자 만루.
수원 나이츠의 벤치가 먼저 움직였다.
감독이 직접 마운드에 올라 투수를 점검하는 사이 그 모습을 보던 마린스 팬들이 한목소리로 외쳤다.
“김수호! 김수호! 김수호!”
김성준의 타석이지만 누가 봐도 완벽한 대타 타이밍이었다.
“감독님.”
타격 코치마저 슬쩍 이정훈 감독의 의중을 떠봤고 이정훈 감독은 김수호를 불렀다.
“몸은 어때.”
“전 좋습니다.”
짧은 대답이었지만 어떤 말보다 믿음직스러웠다.
“삼진당해도 좋으니까 제대로 돌리고 와봐.”
“넵.”
조언은 거기서 끝이었다.
김성준이 약간 아쉬워하며 더그아웃에 돌아왔지만, 본인이라도 김수호를 선택했을 타이밍이었다.
그 사이 수원 나이츠 벤치도 결정을 내렸다.
투수가 내려가고 불펜에서 마무리 투수 강우진이 마운드를 향해 뛰어왔다.
결정적인 승부처에서 각 팀이 가장 믿을 수 있는 투수와 타자가 만났다.
자연히 분위기도 달아올랐다.
“김수호 홈런!”
“삼진! 삼진!”
팬들 역시 너나 할 것 없이 큰 소리로 응원하기 시작했다.
안타 하나면 동점, 장타가 나오면 역전.
사인을 고민하던 이기찬이 데자뷔가 느껴지는 장면에 이를 악물었다.
작년에도 김수호와 강우진이 만루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그 타석의 결과는 만루 홈런.
잊고 싶어도 잊기 힘든 기억이 자꾸 머릿속에 떠오른다.
‘시발. 어쩌지?’
그때와 다른 게 있다면 그때는 동점이었고 지금은 2점의 여유가 있다.
김수호 바로 뒤의 타자인 이규영 역시 만만한 타자는 아니다.
하지만 이규영은 강우진을 상대로 타율이 1할 밖에 되지 않는다.
‘미친 새끼. 벌써 거를 생각하냐.’
나름대로 경험 많은 포수인 이기찬이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들 정도로 김수호는 부담스러운 상대였다.
그리고 초구에 낸 사인은 그의 마음의 소리를 대변했다.
“볼!”
“볼!”
“볼!”
3연속 볼.
충분히 타자를 속일법한 공이었지만 김수호의 방망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최악의 카운트에 몰린 이상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스트라이크!”
“볼!”
‘후. 이게 맞아.’
밀어내기 볼넷.
자신의 사인대로 잘 던져준 강우진에겐 미안했지만, 먹음직스러운 변화구에 꿈쩍도 안 하는 방망이를 유인해내려면 결국 존 안에 던져야 했다.
그런 부담을 지기엔 작년 기억이 너무 선명했다.
이제 1점 차.
안타 하나면 역전이 되는 상황.
타석엔 절대 만만하다고 할 수 없는 이규영이 들어섰지만, 마음만큼은 김수호를 상대할 때보다 편했다.
강우진 지난 시즌 10타수 1안타.
-딱!
하지만 믿었던 전적과 다르게 날카로운 타구가 2루수 위를 뚫을 듯 빠르게 날아갔다.
“나이스 캐치!”
절로 감탄이 나오는 최건우의 점프 캐치.
이규영이 안타까워하는 장면을 끝으로 더 이상 마린스에겐 찬스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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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마린스 3 : 4 수원 나이츠]
[졌지만 존재감을 증명해낸 김수호. 대타로 나와 밀어내기 볼넷!]
ㄴ 진짜 포스 지리긴 하더라. 강주호 전성기 때도 저 정돈 아니었는데.
ㄴ 내가 투수였으면 울면서 던졌다. 강우진 깡 좋더라.
ㄴ 강우진이 3볼로 시작하는 건 첨 본 듯?
ㄴ 저 정도면 사실상 고의사구 아니냐?
ㄴ ㅇㅈ. 근데 선택 잘했지. 강우진 작년에 김수호한테 만루포 맞았음. 대신 이규영 상대로 10타수 1안타라.
ㄴ ㅉㅉ. 최건우 아니었으면 걍 이기는 건데. 봐줬다.
[김수호, 올해부터 몰래 봉사 활동 이어와···. ‘딱히 자랑할 건 아니라 공개하지 않았다.’며 멋쩍은 웃음 지어.]
ㄴ 제발 제발 제발 제발 제발 하자 있는 모습 좀 보여줘....
ㄴ 김수호 학창 시절에 공부도 잘함. 외국인들이랑 대화할 때 통역도 없더만.
ㄴ ㅋㅋ 걍 보여주기식이지. 저런 식으로 봉사하다 걸리면 저런 반응 보여주는 거 이젠 좀 식상한데?
ㄴ 작년 클스마스에 연탄 봉사한 건 벌써 잊음? 억까 ㄴ
ㄴ 에후. 수호야 네가 너무 잘나서 벌써 똥파리들 꼬이네. 형들이 다 캡쳐 떠 놓을 테니까 용돈 필요하면 말해라.
ㄴ ㅋㅋㅋㅋㅋ 바로 댓삭튀
ㄴ ㅉㅉ 김수호 반만큼이라도 좀 당당해져라.
[혼돈의 3파전, 올스타 투표 1위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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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으로 가는 버스 안.
앞선 두 경기는 이겼지만 아쉬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특히 이규영이 제일 아쉬워했다.
잘 맞은 타구가 호수비에 걸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결정했다.”
“예?”
이어폰을 꽂고 눈을 감고 있던 이규영이 갑자기 말했다.
“내일 특타한다.”
“굳이요?”
“너도 같이.”
“전 왜요?”
“너도 4구 한복판 스트라이크 놓쳤잖아. 그거 쳤으면 내가 아웃 됐어도 상관없었는데.”
“억지 부리지 마세요. 그 상황에서 그걸 왜 쳐요.”
이규영이 살짝 멈칫하자 이어서 말했다.
“제 뒤에 선배가 있는데 당연히 믿고 맡겨야죠. 안 그래요?”
“...그건 맞지.”
기분 좋아지라고 한 소리는 맞았는데 생각보다 효과가 대단했다.
거기에 툴툴거리는 입도 막았으니까 만족한다.
그래서 특타는 어떻게 됐냐면.
“한 번 더!”
결국 끌려 나왔다.
“꼭 제가 던져줘야 해요?”
“어. 너 공 잘 던지잖아.”
-따악!
오후에 경기가 있으니 무리하진 않았고 적당히 땀 뺄 정도까지만 하고 끝냈다.
“내가 오늘 홈런 하나 친다.”
“네네. 홈런 치면 한턱쏘셔야죠?”
“내가? 왜? 넌 홈런 쳤다고 밥 한 번 산 적 있냐?”
“와, 그거랑은 다르죠. 제가 공 던져줬잖아요.”
“꺼져. 돈 없어.”
“얼마 받는 지 기사에 떡하니 박혀있는데 그걸 믿으라고요?”
“넌 나중에 나보다 몇 배는 벌 거라 배 아파서 안 돼.”
“구두쇠.”
“어. 맞으니까 일어나. 커피나 마시러 가자.”
“사주는 거예요?”
“미쳤냐. 당연히 더치지.”
와, 진짜 쪼잔하네.
“저 지갑 안 가져왔는데요.”
“나중에 보내.”
“그렇게 모아서 뭐 하려고요.”
“부자.”
“어후, 유치해.”
그냥 말을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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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영이 김수호가 사준 커피를 마시면서 생각했다.
‘존나 자존심 상하네.’
어제 집에 도착한 후 마지막 타석을 몇 번이나 돌려봤는지 모른다.
본인의 타석이 아닌, 김수호의 타석을 말이다.
‘변화구밖에 안 던졌어.’
자신이 아는 강우진은 변화구가 아닌 빠른 공으로 승부를 즐겨하는 투수.
특히 자신과 상대할 땐 빠른 볼만 던져대서 항상 이를 악물고 타석에 들어섰다.
그런 투수가 김수호를 상대로 변화구만 던진다?
-으드득
얼음이 입 안에서 부셔 지는 소리가 조용하게 울렸다.
‘나한테는 바로 포심 꽂더니.’
이 상황이 말해주는 건 하나밖에 없다.
만루에서 볼넷이 주는 한이 있더라도 나이츠 배터리는 김수호가 아닌 자신을 선택한 거다.
야구선수라면 화날 수밖에 없는 상황.
특히 프라이드가 높은 이규영의 자존심에 제대로 금이 갔다.
이규영이 어제부터 저기압인 건 이 때문이었다.
‘생각할수록 자존심 상하네.’
그렇게 찬 커피로 진정하는 사이 때마침 화장실에 다녀온 김수호가 이규영의 컵을 보고 말했다.
“벌써 다 마셨어요?”
“어. 오늘 좀 덥네.”
“하나 더 사다 줘요? 아님 제꺼 마실래요? 아직 입 안댔는데.”
“그 정돈 아···. 아니다. 줘.”
진짜 달라고 할 줄은 몰랐는지 김수호가 잠깐 당황해하는 사이에 이규영이 먼저 김수호의 커피를 가져가 마셨다.
“갑자기 마시면 머리 안 아파요?”
“괜찮아. 차라리 아픈 게 낫지.”
‘피닉스 새끼들. 오늘 포심 던지기만 해봐라. 다 뒤졌어.’
나이츠에 쌓인 화를 피닉스에 풀 생각을 하는 이규영처럼 이번 피닉스전을 기다리는 마린스 구성원은 또 있었다.
바로 단장 오민찬이었다.
“피닉스 새끼들. 오늘 우리 수호 거르기만 해봐라. 바로 단장한테 전화 건다.”
어제 완벽한 타이밍에 등장한 대타 김수호에 ‘됐다!’라며 소리 지른 오민찬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볼넷.
물론 긍정적인 기사가 뜨긴 했지만, 김수호가 정상적인 타격을 했다면 분명 경기에서 이겼을 거다.
“거기에 인터뷰까지 했으면 역전인데.”
며칠 새 김수호와 황인재의 격차는 꾸준하게 줄어들어 이제 500표 남짓.
무언가 큰 거 한 방이 터진다면 순식간에 역전할 만한 격차였다.
올스타전이 오민찬의 계획대로 되려면 반드시 김수호가 황인재보다 나은 활약을 펼쳐야 했다.
특히 두 선수가 맞붙어 확실한 비교가 될 수 있는 이번 3연전 말이다.
‘믿는다. 수호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