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빨로 FA 천억 포수-85화 (85/203)

85화 배터리의 가치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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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외국인 용병을 상대로 원포인트를 쓸 때 주로 사이드암이나 언더핸드 투수를 쓰곤 한다.

이유야 간단하다.

외국에는 저런 유형의 투수들이 흔치 않았고, 실제로 김호기의 용병 상대 성적은 꽤 좋았다.

사이드암 투수에겐 큰 무기인 이 낯섦은 국내 타자들에게도 꽤 잘 통한다.

선발 투수들의 태반이 오버핸드, 쓰리 쿼터인지라 오랜만에 사이드암 투수를 만나면 꽤 고생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경력이 있는 타자들도 이런데, 갑자기 선발 출장을 하게 된 피닉스의 타자들이 김호기의 공을 단번에 잘 치는 건 요원한 일이었다.

그래도 김호기는 다른 사이드암 투수들과 비교해도 꽤 좋은 공을 던지는 투수니까.

“흐, 1회만 아니었어도 퍼펙튼데. 그치?”

“제가 말했죠? 오늘 공 좋다니까요.”

1회에 만났던 중심타선을 제외한 모든 타자를 삼자범퇴로 처리한 김호기가 장난스럽게 말했다.

“어때? 이래도 하준이 투심보다 내 투심이 못해?”

“전 아무 말도 안 했었는데요.”

“눈만 봐도 다 알아.”

“그런 능력이 있으면 타자들 생각을 읽어서 사인을 내는 건 어때요? 그럼 진짜 퍼펙트 가능할 거 같은데.”

“어? 그건 네 능력 아니었어?”

“제 잠 시간과 교환한 게 능력이라면 맞죠.”

기분 좋은 칭찬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말하면서도 약간의 찝찝함은 계속 남아있었다.

‘뭘 저리 말하냐?’

피닉스의 더그아웃을 볼 때마다 황인재가 피닉스 타자들에게 무언가 말하는 게 보였다.

무시하고 싶지만, 황인재의 능력을 알고 있는 터라 쉽지 않았다.

‘다음에 알겠지.’

4회 초 공격이 끝나면, 3번부터 시작하는 피닉스 타선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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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넷! 선두타자 최치호가 걸어서 1루에 나갑니다!]

[오늘 경기에서 처음으로 선두타자가 출루에 성공했습니다.]

[최치호 뒤에 기다리고 있는 타자들의 이름을 보면 이번 이닝 큰 위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마린스에겐 너무나 좋은 기회입니다.]

해설의 말처럼 대전에 응원을 온 원정 팬들이 소리 높여 타자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따아악!

그에 화답하듯 오준혁의 2루타가 터졌다.

[세잎! 오준혁, 2루타입니다! 주자 3루 2루!]

[최치호가 홈으로 들어올 법했지만, 다음 타자가 타자인 만큼 무리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그렇죠. 다음 타자, 김수호가 타석에 들어옵니다!]

[1루가 비어있긴 하지만, 뒤에 있는 강주호를 생각하면 승부를 피하긴 어렵습니다.]

4회 초밖에 안 됐지만, 피닉스의 배터리는 마운드에서 긴급한 만남을 가졌다.

하지만 대화를 하면 할수록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기분이었다.

‘김수호를 상대해? 김수호를? 그렇다고 걸러? 그러면 강주호인데?’

배터리가 해답 없는 퍼즐을 푸는 사이, 타석에 선 김수호가 배터리를 바라봤다.

‘내 타석에 유독 마운드에 자주 올라가는 것 같냐.’

이게 꼭 나쁜 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아무래도 시간에 여유가 있으니 수비 위치를 살피기도 편했고, 이전 타석을 돌아볼 시간도 있었다.

오늘 첫 타석에 땅볼을 쳤지만, 강주호는 안타를 쳤었다.

그렇다면 무턱대고 거르진 못할 거다.

아마 공 2개 정도 던져보고 카운트에 따라 결정할 가능성도 있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포수가 다시 돌아왔다.

[자, 이제 이번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입니다. 초구! 볼입니다. 골라내는 김수호!]

[지금 포수가 앉아있는 곳과 완전히 동떨어진 곳으로 던졌어요. 좋지 않습니다.]

볼넷으로 나가도 강주호가 있다.

그 사실이 김수호에겐 여유를, 배터리에겐 초조함을 불러일으켰다.

그렇게 던진 2구.

-따아악!

[아, 빠른 타구! 큽니다! 커요! 왼쪽! 넘어갑니다!]

[대단합니다. 김수호 정말 대단해요. 지금 그렇게 몰린 공도 아니었거든요? 살짝 높게 오는 공을 라인드라이브로 그대로 넘겨버렸습니다!]

[김수호의 쓰리런이 터지면서 스코어 3대0! 먼저 앞서가는 부산 마린스입니다!]

[이제 20홈런까지 단 3개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아이고. 치호야, 준혁아. 저놈이 너네들이 차린 밥상 지가 다 먹었다. 뭐라고 좀 해라.”

“선배님 드실 만큼 드셨잖아요. 이젠 수호가 좀 먹을 수도 있죠.”

“그렇지. 우리 주장, 말 잘하네.”

“뭐?”

설마 최치호가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지 강주호의 눈이 동그래졌다.

하지만 최치호는 그저 웃으면서 오준혁, 김수호와 함께 더그아웃에 들어갈 뿐이었다.

“세상에 믿을 놈 없다더니.”

그렇게 세상 초라한 척 타석에 선 강주호지만 입가엔 옅은 미소가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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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회 말 피닉스의 공격은 3번 타자 오기택부터 시작합니다.]

[마린스로선 김수호의 홈런 이후 흔들리는 김동환을 완전히 끌어내리지 못한 게 아쉽겠네요.]

김수호의 홈런 이후 강주호의 연속 안타가 나왔지만, 잭 미켈의 병살타가 나오면서 기회를 이어가지 못했다.

[이번 이닝, 오기택 선수가 반드시 출루해서 황인재 선수까지 이어가야 합니다.]

반면 피닉스는 3번 오기택부터 시작하는 타석이 시작됐다.

이전 타석의 기억 때문일까.

김호기가 쉽게 스트라이크를 넣지 못했다.

[볼! 세 번째 공도 볼이 됩니다. 볼 카운트 3볼 낫싱!]

“스트라이크!”

이후 다시 공을 존에 넣긴 했지만, 결국 5구째 빠지면서 볼넷.

이번에도 황인재 앞에 주자가 있는 상황.

‘안 좋은데.’

투수가 흔들린 경우, 포수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마운드에서 대화까지 했지만, 김호기의 제구는 여전히 흔들렸다.

“볼!”

2번 연속으로 들어간 볼.

그리고 3구.

[쳤습니다! 우측 담장! 넘어갑니다! 황인재의 투런 홈런! 오늘 양 팀의 젋은 4번 타자가 나란히 팀의 첫 점수를 홈런으로 장식합니다!]

[오늘 경기, 정말 재밌네요. 살짝 빗맞은 타구였는데 황인재 선수 특유의 강한 힘으로 넘겨버렸어요.]

스코어 3대2.

그렇게 승부는 미궁 속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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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김호기의 제구를 잡아준 건 마린스 내야진의 호수비였다.

[채지훈! 나이스 캐치!]

[오준혁, 빠르게 내려와서 1루에 송구! 아웃입니다!]

“스트라이크 아웃!”

1루 강습타구와 처리하기 까다로운 3루 땅볼을 깔끔하게 잡아낸 덕에 남은 하나의 아웃카운트는 삼진으로 잡아냈다.

4회의 홈런은 잊었는지 5회는 양 팀 모두 아무 일 없다는 듯 지나갔다.

하지만 그건 이후 일어날 일에 대한 징조에 불과했다.

다시 최치호부터 시작한 6회 초 공격.

-딱!

센스있는 기습 번트로 출루에 성공한 뒤, 오준혁이 삼진으로 물러났다.

이어지는 김수호의 타석.

그러자 피닉스의 벤치가 움직였다.

“피처 교체!”

선발 투수 김동환이 내려가고 시리즈 첫 경기에 올라왔었던 박진영이 마운드에 올라왔다.

[두 선수의 상대 전적은 김수호 선수가 안타 하나가 있죠?]

[과감한 승부수가 통할지, 기대됩니다.]

사실상 이번 경기에서 지면 가을 야구에 대한 희망을 포기해야 하는 피닉스의 승부수였다.

“스트라이크!”

박진영이 초구부터 과감한 몸쪽 포심으로 스트라이크를 잡았다.

‘스읍, 아깝네.’

좋은 공을 놓친 김수호였지만, 빠르게 미련을 털어내고 집중했다.

이전에 만났을 때 안타를 쳤던 코스는 바깥쪽 높은 변화구.

불과 이틀 전에 안타를 맞은 코스로 공을 던질까?

바깥쪽 높은 코스에 대한 생각은 머리에서 지우고 두 번째 공을 바라봤다.

“볼!”

초구보다 바짝 붙은 공이 들어왔다.

과감한 것인지, 아니면 제구가 안 되는 건지 분간이 안 될 정도로 적극적인 몸쪽 승부.

하지만 피닉스 배터리는 두 번에서 멈춰야 했다.

-따아악!

[다시 한번 몸쪽! 아, 떴습니다! 외야수,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대로 넘어갑니다! 연타석 홈런, 김수호!]

[지금 피닉스 배터리가 완벽하게 읽혔습니다. 스윙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일체의 망설임이 느껴지지 않았어요!]

[너무 과감한 승부였을까요, 피닉스로선 기껏 따라잡은 점수를 곧바로 허용합니다.]

[김수호 선수, 20홈런까지 단 두 걸음 남았습니다!]

“또 또 먹냐.”

“치호 선배님이 요리를 잘하시네요.”

“어후, 치사한 놈. 다음 경기부터 다시 5번으로 가.”

“한 번 주신 거 뺏는 거만큼 치사한 게 없습니다.”

“그래. 나 쫌생이다. 됐냐?”

두 번의 스윙으로 단번에 5점.

다시 한번 스코어가 벌어졌다.

하지만 그건 피닉스 역시 마찬가지.

[큽니다! 황인재! 와, 넘어갔습니다! 대전 구장 중앙을 훌쩍 넘겨버리는 대형 홈런이 터집니다! 한 점 따라가는 대전 피닉스!]

[진짜 오늘 경기, 너무 재밌습니다. 두 젊은 선수가 보여주는 홈런 쇼! 양 팀 팬들은 밥을 안 먹어도 배부르겠어요.]

스리런과 투런을 친 김수호.

이어서 투런과 솔로 홈런을 친 황인재.

양 팀 모두 둘을 제외한 점수는 나오지 않았다.

스코어 5대3.

이 점수는 유지된 채 9회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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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경기에서 처음으로 선두타자로 타석에 나섰다.

점수는 아직 2점 차.

안심하기엔 너무 적은 점수 차였다.

그런 만큼 이번 이닝에선 최대한 출루를 목적에 두고 타석에 들어섰다.

마운드엔 벌써 5번째 투수가 올라왔다.

김태민.

피닉스 역시 5선발이었던 김태민을 불펜으로 돌리기 시작했다.

마린스나 피닉스나 불펜이 없기로 유명하니 이해 못 할 선택은 아니었다.

어쨌든 1선발 출신인 김태민의 공은 묵직했으니 쉽게 볼 상대는 아니었다.

근데 어쩐지 오늘 공이 느리게 보였다.

“볼!”

전광판을 바라보니 152km가 찍혀 있었다.

김태민의 평균 구속보다 빠른 구속이지만, 7회에 받았던 김동준의 140대의 포심보다 느리게 느껴졌다.

‘뭐지?’

전광판이 고장난 건 아닐 텐데.

아무튼, 좋았다.

빠른 볼이 강점인 투수의 공이 느리게 보인다는 건 투수의 강점이 사라진 것과 다름없으니까.

“볼!”

두 번째 공마저 볼이 됐다.

이쯤 되면 스트라이크를 넣고 싶을 텐데.

내가 오늘 홈런을 친 두 개의 구종은 전부 포심이었다.

이런 나한테 과연 포심으로 카운트를 잡으려고 할까?

내가 노린 건 바로, 카운트를 잡으러 들어온 커브였다.

공이 김태민의 손을 떠날 때부터 궤적이 눈에 그려졌다.

떨어지는 공을 그 궤적을 역행하는 방향으로 그대로 끌어올렸다.

-따아아악!

청량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공은 끝을 모르고 날아갔다.

그래도 아는 사인데, 빠던은 좀 그렇지.

방망이를 툭 하고 던지고 그대로 베이스를 돌았다.

“이번엔 안 뺏어 먹었습니다.”

“너 잘났다.”

이번 경기, 벌써 세 번째 홈런.

손 맛 죽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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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 불펜은 상당히 불안했다.

점수를 허용하지 않았을 뿐이지 6회 황인재에게 솔로 홈런, 7회 주자 2명이 나간 걸 겨우 틀어막았다.

8회 역시 만루의 위기에서 간신히 무실점.

그리고 9회도 비슷했다.

[볼입니다! 이용기의 두 번째 볼넷!]

[아, 이러면 황인재까지 가나요?]

첫 타석 안타 이후 연타석 홈런과 8회 네 번째 타석에선 볼넷을 얻어낸 황인재.

그리고 9회 말 8번 타자부터 시작된 타선은 기어이 황인재에게 바통을 넘겼다.

[세잎! 세잎입니다!]

[여기서 이런 행운의 안타가 나오나요!]

유격수 이민상이 살짝 더듬는 사이 오기택이 1루에 들어갔다.

[2사 만루에서 오늘 절정의 타격감을 과시하고 있는 황인재가 타석에 들어섭니다!]

[오늘 동기인 김수호선수는 3연타석 홈런을 쳤거든요. 황인재 선수라고 세 번째 홈런을 치지 못하라는 법은 없습니다.]

[보는 제가 이렇게 떨리는 데 선수들은 얼마나 떨릴까요!]

스코어 6대3.

9회 말, 2사 만루.

홈런 한 방이면 경기가 끝난다.

마린스 벤치는 움직이지 않았다.

지금 이 상황에서 이용기만큼 잘 던질 수 있는 투수는 없었다.

하지만 초구가 형편없이 빠져버렸다.

“볼!”

김수호가 완전히 빠진 공을 몸을 날려 잡아냈다.

[방금 수비는 1점, 아니 2점을 막는 수비였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좋아진 건 아니었다.

불리하게 시작한 카운트.

-따아악!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공이 관중석으로 들어갔다.

“파울.”

‘포크?’

잠시 타구를 확인하고 뛰는 심장을 겨우 진정시킨 이용기가 김수호가 보낸 사인을 확인했다.

만루에 포크라.

공이 빠지면 바로 1점이었다.

하지만 아까 그 공도 잡아낸 김수호였으니 믿고 던졌다.

“스트라이크!”

제대로 손가락에 걸린 포크볼이 절묘하게 떨어지면서 헛스윙.

‘또 포크?’

던지긴 했지만, 솔직히 던질 때 빠질까 봐 심장이 찌릿찌릿했다.

하지만 이용기는 김수호를 믿었다.

“볼!” “볼!”

그렇게 2구 연속으로 던진 포크볼을 안정적으로 받아냈다.

하지만 방망이는 끌어내지 못하면서 풀카운트.

그리고 마지막 사인은 역시 포크였다.

‘미친놈.’

살다 살다 저런 포수는 처음 본다.

하지만 이런 마무리라면 나쁘지 않았다.

황인재에게 벌써 네 번째 던진 포크볼.

절묘하게 떨어진 공이 그대로 황인재의 방망이를 피하면서 미트에 빨려 들어갔다.

“스트라이크 아웃!”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경기 종료! 피닉스 팬들이 바라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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