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빨로 FA 천억 포수-75화 (75/203)

75화 조언의 결과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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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과 강기호.

한국 포수 역사를 새로 썼던 두 포수는 의외로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양준이 두각을 드러냈을 때 강기호는 이미 정점이었다.

강기호보다 양준의 나이가 많다는 걸 생각해보면 출발지점이 현저하게 달랐다는 걸 알 수 있다.

아무튼 두 선수는 한국에서 정점을 찍고 같은 도전을 했다.

메이저리그.

야구 선수들에게 꿈이라 불리는 곳에 동양인으로서 불모지나 다름없는 포수로 도전해 강기호는 성공, 양준은 실패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그때 양준은 깨달았다.

노력만으로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하는구나.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양준은 지금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가고 있었고, 강기호는 30 초반의 젊은 나이에 은퇴했다.

강기호의 은퇴에 타팀에서 가장 아쉬워한 사람이 바로 양준이었다.

그에게 있어 강기호는 라이벌이자, 넘고 싶었던 선수였으니까.

이젠 그 기회가 박탈된 것과 다름없었다.

시간이 흘러, 양준마저 은퇴하려는 시점에 김수호가 나타났다.

강기호를 빼다 닮은 듯한 실력.

아니, 누구보다 강기호에 대해 잘 알고 있다 자신하는 양준마저 김수호가 도대체 어디까지 성장할지 감이 안 잡혔다.

그래서 이석훈이라는 젊은 포수가 느낄 상실감과 같은 감정이 얼마나 클지 이해가 됐다.

하지만 그 감정에 잡아먹히지 않고 원동력으로 삼는다면 충분히 이석훈 본인의 재능도 개화할 수 있을 거다.

마치, 강기호를 보며 발전했던 자신처럼.

아무튼 김수호가 천재는 맞지만, 아직 양준의 눈에 여물지 않은 것도 맞았다.

4회 말, 2사 주자 1루.

지금 이 상황과 똑같은 4회 초 공격에서 김수호는 타점을 올렸다.

양준이 타석에 들어서자 김수호가 곧바로 말을 걸었다.

“선배님, 너무 하신 거 아닙니까?”

“왜.”

“아니, 저랑 이석훈 선배랑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끼는 건 반칙이죠.”

‘눈치 빠른 거 봐라.’

“시끄러 인마. 선의의 경쟁은 무슨. 그냥 씨앗 짓밟기지.”

“그렇게 따지면 저도 씨앗이죠.”

그건 맞는 말이었다.

‘석훈이가 민들레씨라면 넌 바오밥나무겠지.’

같은 씨앗이지만, 종자가 달랐다.

굳이 이놈한테 이런 말을 해줄 필요는 없어 말을 삼켰지만.

“집중해라.”

“넵.”

경기는 1대0으로 팽팽한 상황.

하지만 한 방이면 역전이다.

양준과 웰링턴의 상대 전적은 6타수 4안타 3타점으로 극 상성이었다.

하지만 2회에 봤던 공을 생각하면 이전에 만났던 웰링턴과 지금 공을 던지는 웰링턴은 다른 투수라고 봐도 됐다.

‘다 이놈 때문이지.’

포수의 중요성을 알리는 데 교과서로 써도 될 만큼 좋은 사례였다.

물론 마린스를 제외한 다른 팀들에겐 좋은 소식은 아니었지만.

2m가 넘는 키를 활용한 투구폼에서 공이 내리꽂히듯 날아왔다.

“파울!”

‘쯧.’

볼 카운트가 몰리기 전에 빠르게 승부를 보려고 했는데, 초구부터 슬라이더가 들어왔다.

양준의 방망이가 나오자 김수호가 슬쩍 미소를 지었다.

‘역시 돌리네.’

이전 타석, 몰린 카운트에서 던진 커브에 루킹 삼진을 당했던 양준이니만큼 처음부터 돌릴 거라 예상했다.

그게 잘 통했으니 이제 운영이 편해졌다.

‘2구 높은 포심.’

사인을 보자 안 그래도 큰 눈을 가진 웰링턴의 눈이 살짝 커졌다.

하지만 내 결정에 따라주겠다는 듯 곧 투구에 들어갔다.

“스트라이크!”

결과는 최상.

“하, 바로 따라 할 줄은 몰랐네.”

“선배님이 해주신 조언, 감사합니다.”

말로 한 조언은 아니었지만, 원래 몸으로 익히는 게 더 빠른 법이다.

양준의 말처럼 내 타석에 했던 볼 배합을 답습한 결과였다.

물론 상대가 양준이라 선택한 볼 배합이기도 했다.

포수로서는 몰라도 타자로서 완곡한 하향세를 타는 선수.

‘거기에 복귀전에 이런 공은 따라가기 벅차지.’

이런 의미에서 던진 공이었는데, 제대로 통했다.

2스트라이크를 먼저 잡은 상황.

이제 여기 있는 모든 사람이 알고 있는 커브 타이밍이었다.

웰링턴의 커브는 직각으로 뚝 떨어지는 커브.

그만큼 타격 포인트가 고작 공 하나에 불과할 정도로 정밀한 타격이 힘든 공이었다.

거기에 포심과 구속차는 최소 20km.

‘타이밍 잡기 힘들지.’

이런 공을 던지는 웰링턴이 퇴출 위기까지 간 건 간단했다.

안 치면 된다.

그러면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김수호가 합류하면서부터 완전히 달라졌다.

초반부터 포심, 슬라이더를 사용한 공격적인 피칭으로 유리한 카운트를 잡는다.

그리고 마무리는 커브.

이렇게 단순한 볼 배합이 힘을 받는 건 김수호의 존재 때문이었다.

웰링턴이 흔들리면 김수호가 중심을 잡아준다.

간단하지만 어려운 일.

거기에 가족 버프까지 들어간 웰링턴의 공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3구로 커브가 던져졌을 때, 타이밍이 완전히 어긋난 양준의 방망이는 그저 헛돌 뿐이었다.

“스트라이크 아웃!”

‘잘하네.’

양준이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볼 배합이 꼭 복잡할 필요는 없다.

단조로워도 투수의 공이 좋다면 그걸 믿고 과감한 승부도 필요한 법.

양준이 이 사실을 깨닫는 데 걸린 시간을 생각하면 그저 씁쓸할 뿐이었다.

그렇게 4회 말, 대구 에이스의 공격은 무득점으로 끝이 났다.

같은 상황, 다른 결과.

두 걸출한 포수를 보유했던 마린스와 에이스.

하지만 그 선수들의 시대는 끝이 났고, 어쩌면 오늘 이 장면이 두 팀의 상반된 미래를 상징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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웰링턴은 그간 대구 원정에서 느꼈던 악몽을 완전히 씻어낸 듯 보였다.

7이닝 무실점 3피안타 2사사구 11k.

공격적인 피칭을 한 덕에 안타는 조금 있었지만, 사사구가 확 줄었다.

포수를 하면서 느끼지만, 이럴 때 가장 기분이 좋았다.

투수는 내가 원하는 대로 던져주고, 그 결과가 좋았을 때.

그리고 그 결과가 팀의 승리로 이어졌을 때.

확실한 마무리를 위해선 약간의 점수가 더 필요했다.

이기고 있는 건 맞지만, 점수 차이는 고작 한 점 차, 1대0.

홈런이 뻥뻥 나오는 대구답지 않은 스코어였다.

양 팀 모두 승리의 희망을 놓지 않고 있는 상황.

그 상황을 끝내기 위해 마린스 벤치가 움직였다.

8회 초, 첫 타자인 이민상 대신, 마린스의 상징이 움직였다.

-대타, 9번 타자 강주호.

강주호가 좋은 주자는 아니지만, 어떤 상황이든 벤치에서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주는 최고의 타자였다.

웅장한 음악과 함께 천천히 타석을 걸어가는 강주호.

그리고 그에 기다렸다는 듯이 한목소리로 그의 이름을 부르는 팬들.

“진짜 언제봐도 지린다.”

이주학이 몸을 풀면서 중얼거렸다.

아마 강주호가 출루에 성공하면 대주자로 이주학이 나갈 거다.

상대 투수는 여전히 멧 위버.

변화를 준 마린스와 선발에게 믿음을 준 에이스.

하지만 에이스 벤치의 판단은 악수였다.

-따악!

투수를 지나 2루 베이스 위를 뚫어버리는 중전 안타.

“나 꼭 들여보내 줘라.”

“뛰다가 아웃이나 되지 말고.”

“꺼져.”

덕담을 주고받고 이주학이 1루로 나갔다.

“마, 니들은 무릎도 아픈 나도 치는 안타도 못 치냐? 딱 1점만 더 내자.”

더그아웃에 돌아온 강주호의 말처럼 1점만 더 내면 됐다.

점수를 짜내기 위한 박은성의 희생번트가 이어지고 최치호가 날카로운 타구를 날렸다.

“아웃!”

“아웃!”

하지만 유격수가 라인드라이브 강습 타구를 잡아내고 2루에 토스 후 더블플레이.

하지만 이주학이 벤치로 비디오 판독 사인을 보냈다.

떨리는 순간.

“세이프!”

판정이 번복됐다.

“나이스!”

“저노마 센스 봐라! 쥑이네!”

아직 기회는 남아있었다.

그리고 오준혁이 정말 귀한 볼넷을 얻어냈다.

이제 내가 타석에 들어갈 차례.

그러자 에이스 벤치에서 투수코치와 이석훈이 올라갔다.

투수를 바꾸든 말든 자신 있다.

무언가 얘기가 길어지더니, 결국 멧 위버가 공을 건네고 내려왔다.

그리고 불펜에서 나온 선수는 우완 사이드암 투수로 역시 땅볼 유도에 특화된 선수, 오시완.

사이드암을 상대해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니고, 김호기의 공을 받으면서 생긴 요령도 있다.

그런 나한테 바뀐 투수가 초구부터 한 가운데에 집어넣는 건.

‘욕심이지.’

-따아악!

“우와아아아!”

“김수호! 김수호! 김수호!”

8회 4점 차 정도면 널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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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내가 거기서 아웃이 됐더라면? 네가 과연 9회 초에 홈런을 쳤을까?”

“어.”

“아니, 내 생각은 달라. 사실상 내 지분이 50% 이상인 홈런인 거지.”

“그래서 어쩌라고.”

“그러니까 좀 더 나한테 고마운 마음을 가지란 말이야.”

“어. 고맙다.”

“좀 더 영혼을 담아서.”

“감사합니다. 이주학님. 다음에 제가 실책하면 한 번 봐 드리겠습니다.”

“오냐. 그 정돈해야지.”

오케이. 물었다.

“선배님. 다음 경기에서 주학이가 실책한다는 데 어떻게 할까요?”

“뭐?”

“아니, 그게 아니라....”

“예고 홈런이 아니라 예고 실책? 팬들이 참 좋아하겠다. 그치?”

키스톤 콤비는 항상 묶일 수밖에 없다.

그런 관점에서 이주학과 최치호는 꽤 잘 어울리는 콤비였다.

이주학이 아주 꼼짝을 못 하는 게 보기 좋았으니까.

“느 그믄은든드.(너 가만안둔다)”

“그런 말 하는 사람 치곤 무서운 사람 없더라.”

다 승리해서 할 수 있는 농담이었다.

어쨌든 오늘 이긴 덕분에 내일 경기의 결과와 상관없이 7등을 확정 지었다.

거기에 울프즈와 스타즈도 동시에 져서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이러다 4위까지 가는 거 아니야?

물론 몸은 피곤 그 자체였지만, 승리를 하고 나면 이런 피곤마저 기분 좋게 느껴지는 법이다.

“나 먼저 간다.”

“야, 같이 가!”

“누구 만나기로 해서. 먼저 가라.”

“넌 나랑 가자.”

“하하....”

어디서 저런 눈빛을 보내고 있어.

최치호가 이주학을 마크해준 덕분에 무사히 약속 장소에 도착했다.

이미 사람이 빠져나간 대구 구장, 오늘 온종일 앉아있던 그 자리에 양준이 있었다.

“왔냐?”

“늦어서 죄송합니다.”

“뭘 늦어. 정확하게 언제 볼지도 안 정했는데.”

사실 양준이 먼저 만나자고 한 건 의외였다.

거기다 경기가 끝나고 아무도 없는 휑한 구장 한 가운데서 말이다.

내일 경기 시작 전에 볼 수도 있는 거였는데.

“너 오늘 너무한 거 아니냐?”

“예? 뭐가요?”

홈런 친 거 때문에 그런가?

근데 양준이 그런 말 하려고 부른 것 같진 않다.

야구 선수가 홈런 친 게 잘못은 아니니까.

“석훈이. 완전 넋이 나갔더라.”

“아....”

음.

그럴 만도 한 게 이석훈의 오늘 성적은 4타수 무안타에 병살 한 개.

어제도 무안타 경기로 알고 있다.

“그래서 부탁이 있어서 불렀어.”

“그, 봐달라는 건 좀 그런데요.”

“그래? 걱정하지 마. 오히려 반대니까.”

“반대요?”

“내일 경기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봐주지 마.”

왜 저런 부탁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근데 뭐.

“이런 부탁이면 따로 말씀 안 하셔도 됐는데.”

“뭐?”

“절대 봐줄 생각이 없었거든요.”

내 말에 양준이 잠깐 멈칫하다 이내 피식하고 웃었다.

“오케이. 그래도 내일 쉽게 생각하지 마라. 선발 누군지 알지?”

“당연하죠.”

내일 선발 투수는 최정윤.

만만히 볼 상대도, 만만히 볼 생각도 없는 투수였다.

“근데 저희 선발도 만만찮은데요?”

“누구? 하스 그 친구?”

“예. 내일 쉽지 않을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정윤이가 걔보다 못 던지겠냐?”

“글쎄요. 야구가 실력이 다는 아니잖아요.”

행운의 여신이 누구의 편일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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