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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빨로 FA 천억 포수-56화 (56/203)

56화 완승 -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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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스가 최근 잘나가고 있지만, 불안한 구석이 있는 게 현실이다.

타선은 괜찮지만, 수비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지뢰밭이라는 점.

주전과 백업의 격차가 커서 부상의 위험에 항상 노출되어 있고.

보통 3명으로 이루어지는 필승조 중 고정은 2명, 그것도 약간 불안불안하다.

그 외 불펜은 항상 불안하고, 5선발 역시 마땅한 투수가 없는 등이 있다.

그래도 일단 5선발에 박지호가 있으니 이호민이 필승조 쪽으로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휴식기 전엔 이기고 있는 경기 7회에 올라오기도 했고, 꽤 잘 던졌으니까.

하지만 감독님의 선택은 이호민의 선발 전향이었다.

‘사실 전향은 아니지.’

2군에선 항상 선발로 등판했었다.

그러니까 전향이 아니라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는 게 맞았다.

그래도 이런 결정은 조금 의외긴 했다.

아무리 2군에서 선발 경험이 있다곤 하지만, 2군과 1군은 큰 차이가 있다.

재능의 문제가 아니다.

1차 지명자 답게 이호민의 구종은 150km가 넘는 포심과 최대 140km 중반의 슬라이더.

이런 공을 던질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한국 야구에서 이미 축복 받은 재능이다.

하지만 변화구 제구에 어려움이 있어 마땅한 위닝샷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불펜이나 2군에선 힘으로 윽박지를 수라도 있지만, 1군 선발은 그것 만으로 힘들었다.

‘그래도 잘했으면 좋겠는데.’

친한 동기기도 했고, 무엇보다 이호민은 내가 포수 전향을 결심하게 된 동기를 준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허하준이 1위, 2군 감독님과 수비 코치님이 2위, 이호민이 3위 쯤 될 거다.

2군에 있을 때 틈틈이 이호민의 공을 받으면서 포구 감각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유지한 감각으로 1군에 올라온 첫 경기부터 나름대로 호흡이 맞으면서 눈도장을 찍었고.

그런 만큼 이호민이 계속 좋은 모습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퍽!

“뭐야, 공 너무 좋은데?”

“그래?”

경기 시작 전 불펜에서 이호민의 공을 받아 봤다.

어제 경기는 9대5로 우리가 승리했다.

김호기 이후 불펜들이 3이닝 동안 3실점 하면서 시원하게 불을 질렀지만, 꾸준히 점수를 많이 내서 다행히 이용기가 등판하는 불상사는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피닉스 타자들의 타격감을 살려준 게 마음에 걸렸다.

오늘 양 팀 선발은 5선발.

양 팀의 상황 상 어제보다 더하면 더했지, 투수전이 될 일은 없었다.

그래서 걱정되긴 했지만, 이호민의 공을 받아보니 약간 마음이 놓이긴 했다.

휴식기 동안 뭘 한 건지 슬라이더의 위력이 한층 올라갔고, 제구도 어느 정도 잡혔다.

고작 3주동안 일어난 것 치곤 비약적인 변화.

“무슨 일이 있던 거야?”

“마술사가 도와줬지.”

“마술사? 아, 감독님?”

감독님은 마린스 감독 이전에 국가대표 투수코치였다.

코치로서 국가대표까지 갔을 만큼 코칭 능력이 대단하신 분이다.

특히 구종을 깎고, 단련 시키는 데 도가 트신 분이라고 들었다.

가는 팀마다 선수들이 다들 구종을 하나씩 추가해서 붙은 별명이었다.

그것도 전부 실전에 쓸만한 구종들로.

“그럼 이용기 선배 포크볼도 감독님이 하신 건가?”

“어. 맞아. 나랑 같이 배웠어.”

확실히 이용기의 포크볼은 휴식기 전후 같은 구종이라 보기 어려울 정도로 좋아지긴 했다.

아무튼 이 정도 슬라이더에 150km포심, 그리고 가끔 던질 줄만 아는 체인지업을 섞어주면 꽤 안정적인 운영이 가능했다.

“그럼 마지막으로 그거 한 번 해보고 끝내자.”

“좋지.”

다시 불펜 끝으로 가 앉았고, 이호민이 잠깐 심호흡을 한 뒤 공을 뿌렸다.

-퍽!

“오···.”

“어때?”

“미쳤는데?”

돌핀스전에서 이규영을 상대로 유의미한 성과를 냈던 그 슬라이더가 더 날카로워졌다.

아직 제구는 여전히 꽝이지만.

“이거 제구만 잡을 수 있으면 나카무라 뺨치겠는데?”

“냐카무라? 그 일본 에이스?”

"어. 진짜 좋아."

당연히 나카무라와 비교하면 부족한 부분도 많았지만, 내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아 보여서 굳이 사족을 붙이진 않았다.

흠, 그나저나 올 때가 됐는데.

“어, 수호야.”

타이밍 좋게 불펜장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바로 허하준이었다.

“아, 오셨어요?”

갑작스러운 허하준의 등장에 이호민이 어리둥절했다.

이호민이 허하준의 팬인 것 치곤 접근하지 못하길래 선발 팁 좀 알려달라고 내가 불렀다.

“그럼 시작해 볼까?”

항상 그랬듯 미소를 머금은 말과 함께 짧지만 확실한 1타 강사의 강의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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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민이 선발이긴 했지만, 아무런 대비가 없는 건 아니었다.

기존 5선발이었던 박지호가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대기 중이었다.

“후, 떨린다.”

“또 긴장했어?”

“또라니. 선발은 처음이니까 그러지.”

“긴장 풀고 던져. 형이 점수 좀 뽑아줄게.”

“진짜?”

바로 얼굴이 바뀌는 걸 보니 오늘 점수 못 내면 큰일 나겠는데?

“너 혹시 김호기 선배 만나고 왔냐?”

“아니? 왜?”

그야 점수 내준다고 하니까 표정이 바뀌는 게 너무 닮아서 그렇지.

물론 김호기 선배의 프라이드를 위해 말하진 않았다.

“아무것도 아냐. 슬슬 시작하겠네.”

오늘도 가득 찬 사직 구장.

만원은 아니었지만, 이 기세라면 내일은 무조건 만원 관중이다.

“후, 시발. 뭐 있냐! 가자!”

이호민이 먼저 출발했고, 뒤이어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 신인들은 정상이 없냐.”

뒤를 돌아보자 김호기가 보였다.

“전 아니죠?”

“네가 제일 심한데? 빨리 나가기나 해.”

빈말이란 거 다 알고 있다.

아무튼 관중들의 환호성 속에 홈플레이트에 가서 앉았다.

연습 투구가 끝나자 1번 타자가 왼쪽 타석에 들어왔다.

어제 첫 타석부터 기습 번트를 댄 적이 있던 터라 3루수 오준혁의 위치는 내야 안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쉽사리 번트를 댈 만한 상황은 아니지만, 밀어서 3루수 키를 넘긴다면 자칫 장타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

수비에 맞춘 볼배합이 필요했고, 그래서 몸쪽 포심을 요구했다.

첫 선발 등판에 초구부터 몸쪽은 가혹하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이것보다 좋은 코스가 없었다.

이호민이 사인을 보고 약간의 텀을 투고 투구에 들어갔다.

“파울!”

-와아아아!

파울이 되긴 했지만, 사람들이 전광판에 찍힌 숫자를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153km.

‘그래. 차라리 확실하게 기선제압 하는 게 낫지.’

허하준의 조언, 그건 애매하게 완급조절 할 바에 차라리 불펜으로 올라온 것처럼 있는 힘껏 던져라.

그 조언을 성실히 수행한 이호민이 2구를 던졌다.

다시 한번 몸쪽에 꽂힌 포심.

반시계 방향으로 미트를 올리면서 자연스럽게 존 안쪽에 공을 집어넣었다.

“스트라이크!”

더 이상 번트를 댈 수 없는 카운트가 되자 수비는 다시 원위치로 돌아갔다.

이제 바깥쪽을 요구해도 됐지만, 포심이 살아있는 걸 최대한 이용하고 싶었다.

사인은 몸쪽 높은 포심.

“스트라이크 아웃!”

타자의 방망이가 그대로 헛돌았다.

다시 153km 포심.

첫 타자를 포심으로만 삼구삼진.

사직 구장이 새로운 선발의 등장에 용광로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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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 초 공격은 무난하게 삼자범퇴로 처리했다.

대부분의 구종이 포심이었지만 이호민은 꽤나 만족한 듯했다.

“흐흐흐. 첫 삼구삼진 공···.”

저런 것도 원래 의미부여 하나?

아무튼 쾌조의 스타트를 한 이호민과 달리 피닉스 투수는 고전을 면치 못했다.

모르는 얼굴은 아니다.

고등학교에 막 입학했을 때 팀의 에이스를 맡고 있던 선배, 김태민.

입단하자마자 바로 군대에 갔다고 들었는데, 전역했나 보다.

사실 고등학생 때 그리 많은 얘기를 한 사람은 아니라 무슨 생각이 들진 않았다.

김태민은 팀의 에이스였고, 나는 신입생에 타자였으니 딱히 겹치는 부분이 없었다.

아무튼 박은성이 출루 후 최치호의 땅볼로 2루에 살아 들어갔고 오준혁의 안타와 강주호에게 볼넷.

1회 1사 만루 상황에 타석에 들어갔다.

김태민에게 살짝 고개 숙여서 인사를 하고 스카우팅 리포트를 되새겼다.

‘포심과 슬라이더, 그리고 포크.’

포심은 최대 150km 초반에 형성되고 슬라이더는 140 초반.

‘여기까진 이호민이랑 똑같네.’

2년 선배지만 발전이 없다기보단 아무래도 군대를 다녀왔으니까.

그래도 전역하자마자 곧바로 1군 선발 기회를 받은 걸 보면 에이스는 에이스였다.

그나마 한 가지 다른 점은 포크볼이지만, 과연 만루에서 던질 용기가 있을까?

사실상 강제로 2피치가 된 투수.

사실 가만히 있어도 괜찮을 법했다.

“볼!” “볼!”

원래 알고 있던 선수가 스스로 무너지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존에 들어오지도 않는 공에 휘두를 순 없으니까.

“볼!”

어제와 같은 3-0 카운트.

하지만 다시 한번 존에 벗어나는 공을 던졌다.

1사 만루에서 볼넷.

투수 입장에선 최악 아닐까?

아무튼 걸어서 1루에 나갔고 밀어내기로 스코어 1대0.

잭 미켈과 김민석의 짧은 연속 안타로 여전히 1사 만루.

스코어 3대0.

3루를 밟자 똥 씹은 표정의 황인재를 볼 수 있었다.

오랜만이네, 저 표정.

야수 입장에서 수비가 길어지는 게 좋게 느껴질 리 없다.

그럴 때마다 황인재는 이런 표정을 짓곤 했다.

근데 뭐 어쩌겠어, 이것도 야군데.

인사할 시간은 주어지지 않았다.

이어진 이준의 안타로 천천히 홈에 들어왔다.

여전히 1사 만루.

김태민에게 지옥이, 사직을 가득 채운 팬들에겐 행복한 시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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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보니 두 경기 연속으로 쉬운 게임을 하게 됐다.

이호민 역시 황인재한테 안타를 맞긴 했지만, 7점을 등에 업고 씩씩하게 던져 무실점.

김태민은, 음.

1회를 전부 채우지 못하고 내려갔다.

고개를 완전히 떨구고 내려가는 모습이 조금 걸리긴 했지만, 우리로선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였다.

4회 초, 피닉스 공격.

선두 타자는 황인재.

이호민은 1회부터 전력투구를 한 탓에 3회부터 힘이 빠지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약간 도망가자고 사인을 보냈는데.

‘싫다고?’

지금껏 한 번도 사인에 고개를 젓지 않던 이호민이 고개를 저었다.

혹시 잘 못 봤나 싶어 똑같이 보냈지만, 이번에도 마찬가지.

그리고 계속 젓던 고개가 끄덕인 사인은 몸쪽 포심.

즉, 정면승부를 하겠다는 거였다.

‘좋아.’

어차피 점수도 많이 뽑았고, 주자도 없다.

‘홈런 맞아봤자 어차피 1점.’

이호민이 자세를 잡고 공을 뿌렸다.

-따아악!

이호민이 공을 던질 때 아차하는 표정이 보였고 차마 날아가는 공을 볼 용기는 안 났는지 그냥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진짜 홈런 칠 줄은 몰랐는데.’

약간 몰렸다 싶으니 주저없이 맹렬하게 돌아간 방망이에 그대로 걸렸다.

잠깐 진정 좀 시켜줄 겸 마운드로 올라갔다.

“괜찮냐?”

“저 괴물 새끼. 힘 존나 쌔네. 어디까지 날아갔냐?”

“중앙 담장 그냥 넘겼더라.”

평소에 쓰지 않는 강한 말투로 애써 자신감을 표현하는 게 보기 좋았다.

“야, 그래도 존나 멋있었어.”

“그래?”

“어. 솔직히 난 네가 빼자는 사인에 바로 끄덕일 줄 알았거든? 좀 멋있었다.”

“이제 알았냐?”

괜히 한 번 웃고 말을 이었다.

“지금처럼 하자. 어차피 맞아봤자 1점이야.”

“당연하지. 근데 네가 책임져주는 거지?”

“뭘 책임져. 나도 신인인데.”

“국대까지 다녀오신 분과 저랑 같습니까? 당연히 책임 져 주셔야죠.”

“오케이. 5점까진 내가 책임진다.”

어떻게 책임질지는 모르겠다.

“그 이상은?”

뭘 물어.

“강판이지.”

5점이면 2점차다.

계속 이호민이 던지기엔 부담이 있다.

“5점···.”

그 숫자를 되새긴 이호민이 말했다.

“오케이 콜.”

그렇게 내려와서 다시 공을 받았고, 이호민은 5회까지 책임지고 마운드에서 내려갔다.

이호민의 성적은 5이닝 4실점.

첫 선발치곤 나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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