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화 야구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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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일본의 4강 매치.
그건 평소 야구에 관심이 없던 사람이라도 TV 앞으로 불러올 정도로 큰 파급력을 가졌다.
[우리나라가 일본 이길 확률이 얼마임?]
-국뽕 빼고 말해주셈
ㄴ 솔직히 말하면 20% 언더 아닌가?
ㄴ ㅇㅈ
ㄴ 솔직히 우리나라 타자들이 나카무라 공을 어케 침
ㄴ 일본에서도 가끔 털리는데 뭔 상관?
ㄴ 걔네는 몇 번씩 봤었고, 우린 처음이자너. 솔직히 160이 누구 개 이름이냐?
ㄴ 걍 마음 놓고 보는 게 맞음
ㄴ 마린스 대 돌핀스 정도?
ㄴ 생각보다 할 만한데?
ㄴ 꼴린스 팬 ㄲㅈ
이런 분위기는 2회, 나카무라가 6타자 연속 범타 처리를 했을 때까지 이어졌다.
[ㅋㅋㅋㅋㅋ 국뽕 멸망 ㅊㅊㅊㅊ]
ㄴ 아직 0대0인데 왜 ㅈㄹ이냐
ㄴ 이게 한국 수준이지. 솔직히 허하준 결승으로 뺀 거 존나 헛짓거리 아님? 먼 미국이야. 도미니카 만나게 생겼구만
ㄴ 맞아. 솔직히 허하준이었으면 이길 만두.
하지만 김수호의 2루타가 터졌을 때, 커뮤니티 분위기가 순식간에 반전됐다.
[일뽕새끼들 멸망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응 느그 에이스 우리 20살 포수한테 털림 ㅅㅅㅅㅅㅅ
ㄴ ㅋㅋㅋㅋ 좋단다. 2루에서 절대 못 들어옴
ㄴ 빠중) 우오준 깔끔한 번트
ㄴ ㅋㅋㅋ 응~ 서도하 바로 삼진 당했쥬? 2사 3루에서 이규영 안타 못 치쥬?
ㄴ 빠중) 이규영 행운의 내야 안타, 스코어 1대0!
ㄴ ㅋㅋㅋㅋㅋ 아까 그 새끼 어디 감?
ㄴ 바로 런~
ㄴ 존나 꼴 보기 싫었는데 개꼬시넼ㅋㅋㅋ
1대1 동점이 됐을 때는 다시 혼란해지고.
[응~ 국내용 대투수 바로 홈런 ㅅㅅㅅㅅ]
-진짜 최지용 빠는 새끼들은 반성해라 ㅋㅋㅋㅋㅋ 이딴 게 대투수?
ㄴ 이 새끼 이규영 안타 때 런치더니 그새 튀어나왔네
ㄴ 저 새끼 때문이라도 이겼으면 좋겠다
ㄴ 세스코 불러라. 벌레 새끼 좀 죽이게
이 경기의 하이라이트.
7회 말 김수호의 역전 투런 홈런이 나왔을 때, 커뮤니티가 잠깐 멈췄다.
[주모!!!!!!!]
[일뽕 새끼들 멸망 ㅋㅋㅋㅋㅋㅋㅋㅋ]
[나카무라 준? 응 ㄲㅈ 우린 김수호]
[속보 일본 패배 시 올림픽 3회 연속 4강 따맄ㅋㅋㅋㅋㅋ]
-그중 2번은 황린스가 만들어냈다. ㅇㅈ?
ㄴ 황린스 ㅅㅅㅅㅅㅅ
ㄴ 아아... 리그에선 아낌없이 퍼주고, 국제 대회에선 캐리하는 황린스 형님들....
ㄴ 칭찬이냐?
[올림픽 신의 한수.]
-예비 포수, 김수호.
ㄴ 캬~ 이거지.
ㄴ 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야신 그 잡채....
ㄴ 진짜 저게 신의 한수가 될 줄 누가 알았냨ㅋㅋㅋㅋ
ㄴ죄송합니다임시포수김수호데려간다고했을때욕했습니다진짜반성하고있습니다김수호만세
ㄴ ㅇㅋ 봐줌
ㄴ 니가 뭔뎈ㅋㅋㅋㅋ
[일본 박멸포.gif]
(영상)
- 최소 거북선 대포 급
ㄴ ㅋㅋㅋㅋㅋ 이순신 장군님도 춤추고 계실 듯
ㄴ 한반도 ‘수호’신 강림 ㄷㄷ
ㄴ ㄷㄷ 닉값 제대로네
ㄴ 근데 저 공을 넘긴다고? 걍 김수호 개또라이네
ㄴ 뒤질래? 개또라이?
ㄴ 저새끼 아이피 추적해라
ㄴ 감히 수호신한테 개또라이? 뒤졌다 넌
[방금 홈런 친 선수 누구야?]
-야구 유입인데 존나 잘 생겼네? 원래 잘하는 선수임?
ㄴ ㄴㄴ 1군 올라온 지 2주 됐고 포수 배운지 한 달 됨
ㄴ ㅋㅋㅋㅋㅋ 와, 이렇게 보니까 진짜 괴물이네. 1군 데뷔 한 달 만에 군 면제 ㄷㄷ
ㄴ 일본 아마추어 나옴?
ㄴ ㄴㄴ 죄다 에이스급만 뽑았는데 걍 김수호 혼자 하드 캐리함
ㄴ 와 오늘부터 팬 해야지
이 분위기는 9회 초 김형주가 솔로 홈런을 맞았을 때 잠깐 주춤했지만, 결국 승리로 끝나자 계속 유지됐다.
그리고 이걸 보고 있던 기자들 역시 가만히 있지 않았다.
[야구 대표팀! 숙적 일본 꺾고 결승으로!]
[이젠 예비가 아닌 당당한 주전, 20살 어린 포수가 결승으로 이끌다!]
[드디어 찾았다! 국가대표 주전 포수!]
[확 바뀐 여론, 김수호는 누구? 고작 한 달 경력 포수!]
[김목근 감독, ‘오늘 경기 MVP는 누가 뭐라 해도 김수호.’, ‘내일 선발 역시 김수호.’]
[대망의 결승전! 상대는 4년 전 결승에서 만났던 미국!]
[일본 대표팀 에이스 나카무라 준, ‘김수호와 메이저에서 만나기로 했다.’]
그렇게 한국을 열광의 도가니로 만든 야구 대표팀은 그 시각, 다음 경기를 준비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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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의 가치는 경기 외적으로도 발휘된다.
최소 은메달이라는 안도감, 일본이라는 강적을 상대로 따낸 극적인 승리, 팽팽했던 경기 때문에 장시간 유지했던 긴장이 단번에 풀리는 등.
베테랑들은 젊은 선수들이 자칫 이런 감정에 휘말려 컨디션 관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 이규영의 경우, 경기 종료 직후 다리에 힘이 풀려 경기장에 누워버렸으니까.
하지만 이번 대표팀의 목표는 아직 달성하지 못했다.
“설마 벌써 만족하는 놈은 없겠지?”
“없습니다!”
강주호의 말에 선수단이 한마음으로 외쳤다.
“오늘 일본 놈들 얼굴 다 봤지? 그놈들한테 우리가 복수 대상이었다면, 내일 있을 미국 놈들이 우리의 복수 대상이다.”
4년 전 결승전에서 미국에게 패배한 대표팀.
“우리는 그때의 복수에 성공하고 당당히 돌아가자.”
마린스의 영원한 주장이라는 별명답게 들뜬 분위기를 휘어잡은 강주호의 말에 선수들이 결의에 찬 표정이 됐다.
우승까지 단 한 걸음.
하지만 그 한 걸음을 내딛지 못해 우승을 못 하는 선수는 수없이 많다.
대표적인 선수가 강주호였고.
아무튼 저 말 이후 어수선했던 선수단의 분위기가 진정됐다.
내일 만나는 미국은 일본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 하는 팀이 아니다.
이 사실을 다시 상기한 선수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대비를 하기 위해 흩어졌다.
김수호 역시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킬 수 있는 좋은 방법을 가지고 있었다.
“안 떨리세요?”
“네가 떨려서 온 거 아니야?”
단숨에 허하준한테 정곡을 찔렸다.
신기할 정도로 항상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사람.
그 모습은 올림픽 결승 선발을 앞두고도 여전했다.
“아니에요. 그냥 약속을 반쯤 지키게 돼서 찾아온 거지.”
“무슨 약속?”
“저번에 우승할 때 마지막 공을 던지게 해달라고 했잖아요.”
“아, 그거? 근데 그건 한국시리즈였잖아.”
“그건 제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서···.”
대한민국이 올림픽에서 우승하기와 마린스가 우승하기.
둘 중 하나를 고르라면 대다수는 전자를 고를 만큼 난이도 차이가 심했다.
“그래서 이걸로 때우려고?”
“그건 아니죠. 음, 선금 비슷한 거로 생각하면 돼요.”
절대적인 값어치로 따지면 올림픽 우승이 더 값지겠지만, 두 사람 사이에선 고작 선금 취급을 받았다.
“깔끔하게 우승하고 돌아가죠.”
“좋지. 어때, 저번처럼 내가 완봉승하고 네가 홈런 하나.”
그 말에 김수호가 피식 웃었다.
“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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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쿠, 수호님. 짐 저한테 주시죠. 제가 들어드리겠습니다.”
“이런 거 기자들한테 찍히면 저 큰일 나요.”
“아이구, 무슨 소리십니까. 몇 번이고 들어드릴 수 있죠.”
이규영과 장난치면서 훈련장에 도착했다.
강주호의 그 말 이후 들뜬 마음을 막기 위해 핸드폰을 꺼놨다.
아마 인터넷은 지금 이규영의 반응과 크게 다르지 않지 않을까?
“야, 김수호.”
“넵.”
“너 뭐하냐?”
가는 길에 우오준과 마주쳤다.
갑자기 정색하면서 말을 걸길래 조금 전 장면을 봤나 싶었지만.
“당장 네 짐 나한테 넘겨.”
“....”
그냥 무시하는 게 답이었다.
이런 모습들이 딱히 부담스럽진 않았다.
나름대로 내 긴장도 풀어줄 겸 본인들 긴장도 풀 겸 하는 장난이라고 생각한다.
“이규영! 양보해!”
“선배님이나 양보하십쇼!”
음···. 장난 맞겠지?
저러는 걸 보니까 주학이가 보고 싶어졌다.
장난하면 주학이도 장난 아닌데.
벌써 군 면제로 놀릴 생각 하니 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선배님, 이 새끼 웃는데요?”
“냅둬, 우승하는 상상이라도 하나 보지.”
드립을 멈추지 않는 돌핀스 센터라인 듀오를 대충 떼어놓고 옷을 갈아입었다.
내가 생각보다 일찍 왔는지 훈련장엔 한 명밖에 없었다.
-따아악!
-따아악!
계속해서 들리는 청량한 타구음 주인의 뒷모습은 몇백 번 봐온 사람의 것이었다.
언제나 쫓아갔기에 앞이 아닌 뒤를 볼 수밖에 없었던 황인재.
피칭머신에서 공이 나오는 게 멈추자 그제야 주위를 둘러봤다.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사실 굉장히 뻘쭘했다.
국대와서 단둘이 있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고, 딱히 개인적인 얘기를 해본 적도 없었다.
그냥 별다른 말 없이 주변에 어질러진 공을 주웠다.
궁금한 게 없는 건 아니었지만, 예민한 주제라 물어보기도 뭐 했다.
그래도 정적 속에서 공을 다 주웠을 때쯤, 조심스럽게 물었다.
“뭐 하나 물어봐도 되냐?”
“... 뭔데.”
항상 들었던 퉁명한 목소리.
“신인 드래프트 날, 기억나?”
“어.”
“그때 왜 그렇게 말한 거야?”
그 말을 들었을 때 딱히 이유가 궁금하진 않았다.
진심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근데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조금 걸리는 게 있다.
내 입으로 말하긴 좀 그렇지만 고등학교 때 황인재가 내 재능에 대해 모를 것 같진 않았다.
또 마냥 나쁜 놈이라고 생각하기도 뭐한 게, 나한테 꾸준히 조언을 해준 황인재였다.
근데 왜 그런 말을 했을까.
지금이 아니라면 물어볼 일이 없을 것 같아서 물었다.
하지만 얄궂게도 훈련장 입구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결국 듣지 못하는구나.
그 생각을 하면서 반쯤 포기했을 때, 더 이상 열리지 않을 거로 생각한 황인재의 입이 열렸다.
“... 오늘 경기 이기고 얘기해.”
“어?”
“막내 둘이 여기 있었네?”
더 묻고 싶은 게 남았지만 황인재는 말을 건 우오준에게 고개를 숙이고 안으로 들어갔다.
“뭐야? 둘이 싸웠냐?”
“아니요. 그런 거 아니에요.”
“아니긴. 어후, 젊은 게 좋긴 좋아. 나 때는.... 아니다. 말을 말자.”
“어땠는데요?”
“어떻긴, 맨날 뺀질거리다 그때 국대에서 쫓겨날 뻔했지.”
강주호의 말에 우오준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누가요? 제가요?”
“예. 후배님이요.”
“전 모르는 사실입니다.”
“잘하고 있는 애 괜히 뭐라 하지 말고 스윙이나 한 번 더 해라.”
그 말을 남기고 강주호가 떠나자 우오준이 황급하게 내게 말했다.
“수호야, 아닌 거 알지?”
“예. 그럼요.”
그렇게 대답한 내 머릿속엔 우오준의 얘기 대신 온통 황인재와 했던 얘기만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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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직전에 황인재와의 대화 때문에 머리가 복잡할 뻔했지만, 결국 하나로 요약이 됐다.
이기면 된다.
물론 승리를 단언하기엔 상대가 만만치 않았다.
이번 올림픽 우승 후보 1순위인 미국.
우리와 더불어서 올림픽에서 단 한 번도 진 적 없는 강팀이었다.
특히 이번 올림픽은 역대 올림픽 최고 라인업이라고 평가받는 만큼 만만한 선수가 한 명도 없었다.
그중에서 단연 돋보이는 선수는 오늘 경기 선발 투수이자 4년 전 결승전에서 한국을 상대로 8이닝 무실점을 거두고 당당히 금메달을 거머쥔 투수.
루카스 앤더슨.
이 투수를 공략할 수 있느냐, 마느냐에 성패가 달려 있었다.
그래도 나름 할만한 게, 우리도 투수 중 가장 믿음직스러운 투수가 나왔다.
허하준.
양 팀의 에이스가 맞붙는 결승전인 만큼 경기 시작 전 이미 관중석은 꽉 찼다.
호주에서의 마지막 경기, 그리고 반드시 이겨야 하는 경기.
그 경기를 앞두고 감독님이 선수단을 모아놓고 말씀하셨다.
“다들 고생 많았다.”
선수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치신 감독님이 이어서 말했다.
“4년 전, 저 투수를 상대로 패배했을 때가 생각나는구나.”
나를 포함한 몇몇을 제외하고 대다수의 선수는 그때 그 자리에 있었다.
“그때 우리가 느꼈던 무력감을, 나는 단 한 순간도 잊지 못했다.”
당시 TV로 봤던 나도 기억이 생생한데, 당사자들은 절대 잊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오히려 지금 홀가분하다. 만약 저 투수를 상대하지 않고 우승했다면 4년 전에 느꼈던 그 무력감을 되돌려 줄 수 없으니까.”
하지만 감독님의 표정은 전혀 홀가분해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복수의 대상을 눈앞에 두고 담담해진 그런 얼굴.
“너희가 느꼈던 그 무력감을, 저놈한테 돌려주고 와라.”
“예!”
마지막 경기를 앞둔 출정식은 그렇게 막을 내렸다.
그리고 가장 선두에 설 선수가 준비를 마쳤다.
“가시죠.”
“그래. 가자.”
언제나 그래왔던 것처럼, 담백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