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재능빨로 FA 천억 포수-42화 (42/203)

42화 세대 교체 -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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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정 반대편에 있는 호주에서 열린 올림픽.

애초에 구장 자체 수용 인원도 적을뿐더러 위치도 위치다 보니 경기장에서 만날 수 있는 팬들의 수는 한정돼있었다.

대만과 쿠바와 경기에선 내가 관중석에 앉아있어도 사람들이 나를 못 알아볼 정도였지만, 4강에 진출하자 어느새 경기장 앞에 내 유니폼을 들고 있는 팬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훈련을 하기 전, 짧은 사인회를 하고 경기장으로 들어갔다.

“이야, 우리 막내, 인기 많네.”

“일찍 오셨네요?”

황인재도 같은 막내였지만, 유독 최지용은 나한테만 그렇게 부른다.

“나야 우리 막내가 시선을 끌어줘서 짧게 하고 들어왔지.”

그렇게 말하는 최지용이었지만, 오늘 선발 투수인 최지용을 상대로 계속 사인을 요청하기엔 팬들도 머뭇거릴 수밖에 없다.

결승으로 가는 관문이라고 치부하기엔, 너무 많은 것이 달린 4강전이었다.

4년 전, 미국에서 열린 올림픽.

당시 신인이던 허하준의 완벽투에 패배한 일본이 이번 올림픽에 제대로 이를 갈고 나왔다.

일본은 복수를, 우리는 재현을 바라는 4강전.

양 팀의 투수는 그때와 달랐지만, 서로 믿을만한 투수들이었다.

“그럼 훈련하기 전에 공이나 좀 받아줄래?”

“좋죠.”

이렇게 중요한 경기에 선발 포수는 나였다.

이유를 생각해보자면 최필주가 저번 경기에서 딱히 실수를 한 건 아니지만, 공격에서 아쉬웠다.

최필주는 올림픽에서 5타수 무안타.

반면 나는 3경기에서 7타수 5안타 2홈런 6타점.

10타수도 안 되는 기록이지만, 비교하기도 조금 민망할 정도였다.

한 가지 불안 요소라면 내가 최지용의 볼을 받아본 게 그리 많지 않다는 것 정도인데.

-퍽!

“선배님, 오늘 공 진짜 좋습니다.”

“그래?”

공을 잡는 난이도로 치면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다만, 내가 만나본 투수 중에 가장 구종이 다양했다.

140km 후반의 포심, 140km 중반의 투심을 시작으로 종, 횡 슬라이더, 체인지업, 커브, 커터 등 사인을 외우는 것만 해도 일이었다.

물론 완성도는 각각 차이가 있었지만, 적절히 섞는다면 타자를 혼란에 빠트리기 좋았다.

“몸풀기는 이쯤 할까?”

“넵. 고생하셨습니다.”

그렇게 간단한 몸풀기를 마치고 훈련장으로 향했다.

새로운 유형의 투수를 만나서인지, 아니면 경기 시작이 점점 다가와서 인지는 몰라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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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시작 전, 강주호가 선수들을 전부 모아놓고 얘기했다.

“다들 배트 여유분 충분하지?”

강주호의 말에 오늘 일본의 선발 투수가 방망이를 잘 부수나 생각했는데, 스카우팅 리포트에는 그에 대한 부분이 없었다.

“오늘 지면 이걸로 뗏목 만들어서 한국까지 가야 하니까 알아서 여유분 챙겨놔라.”

그 말에 선수들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설마 진짜 진다고 방망이 뗏목으로 태평양을 건너겠느냐만, 확실한 건 공항에 들어갈 때 환영은 못 받는다.

“노는 뭐로 젓습니까? 투수들 글러브?”

“내가 지금까지 일본에 한 번도 진 적이 없어서 그건 모르겠다. 네가 좀 알려 줘봐.”

우오준의 질문에 강주호가 맞받아치자 긴장됐던 분위기가 조금씩 풀리기 시작했다.

4강에서 만난 일본.

긴장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었다.

더군다나 이번 경기에서 이기면 군 면제다.

군 면제가 메달 뒤에 따라오는 부차적인 보상 같은 거지만, 나 같은 미필 선수들에겐 아주 아주 중요한 문제였다.

올 초만 해도 상무 입대를 고민하던 때가 있었는데 메달을 따서 군 면제를 생각하다니.

사람 일은 진짜 모르는 거다.

그나저나.

덜덜덜.

“... 괜찮으세요?”

“... 어 아마도.”

옆에서 미친 듯이 다리를 떨어대는 이규영이 문제였다.

이번 국가대표에 미필 선수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나, 황인재, 이규영, 최정윤 그리고 이민수를 포함해 10명 조금 안된다.

나머지 선수들은 4년 전 올림픽에서 이미 메달을 딴 선수들이거나 군필이었다.

황인재야 별 반응을 안 보여서 잘 모르겠고, 최정윤이나 이민수는 오늘 경기에 등판할 일이 없으니 별 상관없었다.

하지만 이규영, 이 사람은 지금 대놓고 긴장했소 라면서 어필 중이었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었다.

이규영의 나이가 아마 26인가?

만약 이번에 메달을 못 딴다면, 4년 뒤 올림픽이 열릴 땐 아마 군인 소속으로 참가해야 하지 않을까?

그에 반해 나머지는 아직 기회가 한두 번 더 있었으니까.

물론 긴장한 이유가 그것뿐만은 아닐 거다.

그만큼 국가대표가 주는 무게감, 특히 중요한 순간 한일전이라는 부담감이 엄청나다는 거겠지.

“수호야, 그냥 네가 중견수 볼래? 너 1루수 하는 거 보니까 중견수도 잘할 거 같은데? 어때?”

이런 농담을 하는 걸 보면 괜찮은 것 같기도?

“농담이죠?”

“아닌데?”

설마,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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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영의 바람은 안타깝게도 들어주지 못했다.

애초에 들어줄 수 있는 사항도 아니었거니와 이규영만큼 1번 타자 툴을 수행할 타자도 없었다.

라인업은 우리의 베스트 라인업인 전 경기 그대로.

선발 투수 최지용을 필두로

1번 중견수 이규영

2번 2루수 최건우

3번 우익수 김규완

4번 1루수 강주호

5번 지명타자 김민주

6번 3루수 황인재

7번 포수 김수호

8번 유격수 우오준

9번 좌익수 서도하 였다.

일본 역시 8강 네덜란드전에서 나왔던 베스트 라인업이 그대로 나왔다.

선발 투수는 현재 일본 퍼시픽 리그 1위 팀,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에이스 나카무라 준.

근 시일 안에 메이저리그 진출이 분명한 투수였다.

일본은 한국과 포스팅 방법이 달라서 구단 허락이 있으면 언제든지 메이저리그 진출이 가능해 정확히 언제 가는지는 모른다.

애초에 그건 본인과 구단 사정이고, 이번 경기와 아무런 상관없으니 딱히 궁금하지도 않았다.

중요한 건 메이저리그급 투수라는 것, 단 하나.

코인토스를 하고 온 강주호가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가 말 공격이다.”

4강부터는 코인토스로 초, 말 공격을 정했다.

좋은 소식과 함께 애국가가 제창됐다.

더그아웃에 일렬로 서서 가슴에 손을 올리고 태극기를 바라봤다.

맞은 편에 일본 대표팀 역시 우리와 눈빛이 비슷했다.

애국가가 끝난 후, 마지막으로 선수단을 대표해 강주호가 말했다.

“오늘은 잘해도 이기고, 못해도 이겨야 한다. 4년 전과 똑같이 완전히 박살 내고 결승으로 가자! 셋 세고 파이팅 외치고 가자.”

하나, 둘, 셋.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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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전이라면 가위바위보라도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말이 있다.

그게 올림픽 4강이라면 더, 무조건, 반드시 이겨야 했고, 그건 야구뿐만이 아니었다.

“대~한민국!”

짝짝 짝짝짝

오늘 경기가 열리는 할로웨이 필드의 수용 인원은 1만 명.

기존 4천 명이었던 좌석을 올림픽을 맞아 증축했다.

야구장 치곤 작은 규모였지만, 응원마저도 일본과 경쟁하듯 열기가 뜨거웠다.

그에 힘입은 듯 최지용이 1회부터 연신 날카로운 공을 뿌려 댔다.

“스트라이크 아웃!”

140km 중반의 빠른 공부터 110km 중반의 느린 변화구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며 까다로운 1번 타자를 삼진으로 돌려세웠다.

이어서 나온 타자 역시 타이밍을 뺏는 변화구로 땅볼을 유도해냈고, 마무리는 수비의 도움을 받았다.

빗맞아 높이 뜬 타구에 좌익수와 중견수, 유격수가 몰려들었다.

중견수 이규영이 손을 들면서 슬라이딩으로 아슬하게 건져냈다.

최지용이 그 모습을 보고 엄지를 치켜들면서 이닝이 끝났다.

역시 경기 직전까지 이규영이 보여준 모습은 엄살이었다.

“선배님, 나이스 피칭이었습니다.”

“오늘 이대로만 가자.”

내 말에 최지용이 웃으면서 답했다.

4년 전 올림픽에는 비록 메이저리그로 진출했던 시기라 출전하지 못했지만, 허하준 이전에 원조 일본 킬러라 불렸던 모습을 가감 없이 보여줬다.

이제 우리가 공격할 차례.

하지만 나카무라 준 역시 왜 일본 1위 팀의 에이스인지 증명했다.

“공 미쳤네.”

145km까진 노력으로, 150km는 선택받은 사람만, 그리고 160km는 극소수만이 던질 수 있다고 한다.

우리에겐 안타깝게도 나카무라 준은 극소수에 속했다.

160km의 포심.

마의 100마일을 넘나드는 포심에 이규영이 공을 채 5개도 보지 못하고 물러났다.

“타이밍은 어때요?”

우리도 나카무라 준을 대비해 160km에 타이밍을 잡는 훈련을 했다.

“생각보다 더 빨라.”

하지만 피칭머신과 사람이 던지는 건 움직임부터 다르다.

그리고 나카무라 준의 무기는 포심만이 아니었다.

“슬라가 미쳤어.”

140km 중 후반의 슬라이더.

그 외에 던지는 구종은 거의 없지만, 고작 이 두 가지 구종만으로 일본 리그를 씹어먹었다.

이규영의 말을 들은 선수들이 그래도 희망을 가진 채 타석에 선 최건우를 바라봤지만.

“스트라이크 아웃!”

결국 슬라이더에 타이밍을 맞추지 못하면서 삼진.

그리고 김규완 역시 삼진으로 이닝이 끝이 났다.

첫 이닝 세 타자 연속 삼진.

“자자, 이제 경기 시작이야. 우리 선발도 최지용이니까 집중하자!”

-예!

강주호의 말 대로 이제 시작이었지만, 일본과의 준결승전은 쉽지 않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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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km를 던지는 나카무라 준보다 무게감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최지용 역시 한때 KBO를 제패하고 메이저까지 진출했던 투수.

나카무라 준과는 다른, 본인만의 장기를 살린 투구를 하며 3회까지 무실점을 이어갔다.

특히 이번 이닝에 2루타와 안타를 허용, 실점 위기에 몰렸지만, 이규영 – 우오준으로 이어지는 환상적인 중계플레이에 공을 받고 그대로 주자를 태그했다.

“아웃!”

돌핀스가 왜 1위를 하고 있는지 단편적으로 드러난 부분이었다.

이제 3회 말 공격.

선두타자는 나였다.

2회 말 공격 때 대표팀이 자랑하는 강주호 – 김민주 – 황인재로 이어지는 4, 5, 6번 라인이 삼자범퇴로 물러났다.

지금까지 던진 공은 고작 20개 남짓.

삼진을 무려 4개를 뽑아낸 것 치곤 아주 적었다.

그 말인즉 공격적인 투구를 한다는 뜻.

사실 160km가 넘는 공으로 도망치는 것도 웃겼다.

“스트라이크!”

초구는 그냥 흘려보냈다.

아니, 처음 보는 160km의 속도에 흘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이규영의 말처럼 피칭머신은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속도가 느껴진다.

하지만 못 치겠냐고 묻는다면 글쎄.

문제는 이 배터리가 포심만 던질 리가 없다는 거였다.

“스트라이크!”

역시 문제는 슬라이더였다.

우타자 바깥쪽으로 빠지는 148km의 슬라이더에 그대로 헛스윙.

순식간에 0-2에 몰렸다.

솔직히 말하면 슬라이더는 칠 엄두가 안 났다.

노리는 건 오직 빠른 공뿐.

제3구.

-따아악!

유리한 카운트에서 왜 정면 승부를 했는지 모르겠다만, 존 가운데로 오는 공이라면 충분히 쳐 낼 자신이 있었다.

“뛰어!”

“2루! 2루!”

“세이프!”

밀어 친 공이 중견수와 우익수를 가르면서 서서 2루에 들어갔다.

이게 웬 떡이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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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한 분석원 놈들.’

나카무라 준은 김수호에게 2루타를 맞고 스카우팅 리포트에 적힌 김수호에 대한 평가를 곧바로 수정했다.

‘뭐? 하위타선은 그냥 가운데만 던져도 못 칠 거라고?’

물론 정말 그렇게 쓰여 있지 않았고, 애초에 그것만 믿고 한 가운데 승부를 한 건 아니었다.

노린 거라기보단 하위타선에서 공 개수를 줄이기 위해 존에 붙이려다 던진 실투에 가까운 공이었다.

반면 위기 뒤 기회라고 했던가.

한국 벤치에선 곧장 찾아온 이 기회를 살리기 위해 우오준에게 번트 사인을 냈다.

-탁.

“1루!”

우오준이 160KM의 공에도 안정적으로 번트를 성공했다.

김수호가 타구를 보면서 빠르게 3루로 들어갔다.

'역시 짬이 어디 가지 않네.'

나카무라 준은 공을 잡고 3루로 들어가는 김수호를 힐끗 쳐다본 후에 포수의 말대로 1루에 던졌다.

이걸로 1사 주자 3루.

타석엔 9번 타자 서도하.

“스트라이크!” “볼!”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아웃!”

어떻게든 인플레이 타구를 만들어내려고 했지만 압도적인 구위와 구속에 결국 삼진을 당했다.

주자가 3루에 있을 때 1사와 2사의 차이는 말할 것도 없다.

타석엔 이전 타석 삼진을 당한 이규영.

“스트라이크!”

나카무라 준은 공을 건네받고 이규영을 쳐다봤다.

초구에 반응도 못 하는 모습을 보니 우스웠지만, 사자는 토끼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하는 법.

“스트라이크!”

좌타자 몸쪽으로 휘어들어 가는 슬라이더로 순식간에 카운트를 잡았다.

“나니?”

하지만 이번에도 제3구.

-탁.

바깥쪽으로 완전히 빠지는 포심에 이규영이 방망이를 갖다 대듯이 던졌고, 공은 3루수를 향해 천천히 굴러갔다.

3루수가 공을 잡은 순간, 던지는 걸 포기할 만큼 절묘한 타구.

그 사이 김수호는 홈에 들어왔다.

스코어 1대0.

결국 한국은 무사 2루의 기회를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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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된 거예요? 작전?”

“나도 몰라. 그냥 맞자마자 존나 뛰었어.”

이규영이 상기된 얼굴로 1루에서 걸어왔다.

2스트라이크를 잡힌 상황에서 허용한 두 번의 안타.

그걸로 선취점에 성공했다.

특히 이규영의 절묘한 내야안타는 투수의 멘탈을 흔들 수 있는 기분 나쁜 타구였지만, 나카무라 준은 최건우를 무난하게 잡아냈다.

이제 이 아슬아슬한 리드를 지키는 일만 남았다.

하지만 4회 초, 1사 주자 없는 상황에서 맞이한 4번 타자 사토 테츠야.

-따아악!

구장의 중앙 담장을 넘겨버리는 동점 솔로 홈런을 허용했다.

겨우 낸 점수가 곧바로 따라잡히자 약간 허탈했지만, 역시 일본은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최지용에게 가려고 했지만 괜찮다는 사인을 받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탁!

“아웃!”

“스트라이크 아웃!”

이어지는 5번과 6번 타자를 유격수 땅볼과 삼진으로 처리한 최지용이 당당하게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비록 허하준에게 결승전 선발을 뺏겼지만, 왕년의 에이스다운 멋진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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