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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빨로 FA 천억 포수-6화 (6/203)

6화 포수 데뷔 -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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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팬 중 퓨처스 리그 경기를 챙겨보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다.

그마저도 승패보단 팀의 유망주들이 어떻게 성장하고 있느냐에 관점을 두고 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오늘 마린스 2군과 상주 상무의 경기는 한 선수의 복귀에 초점이 쏠려 있었다.

나른한 화요일 낮, 회사에서 몰래 퓨쳐스 경기 라인업을 살펴보는 박민수 역시 그 선수를 보기 위해서였다.

‘드디어 허하준이 복귀하는구나!’

허하준이 누군가.

20살에 화려하게 데뷔해 강주호와 더불어 지난 5년 동안 당당하게 마린스 팬이라고 말할 수 있게 해준 두 선수 중 한 명이었다.

마린스 팬이라면 이름만 들어도 든든하고, 언제나 팬들의 가슴을 끓게 만드는 에이스 중의 에이스.

허하준이 없는 몇 달 동안 수많은 유망주가 그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도전했지만, 빈자리는 메꾸긴커녕 팬들에게 허하준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됐을 뿐이다.

그런 투수가 복귀한다는 건 마린스가 몰고 있는 배에 순풍이 분다는 것과 같았다.

‘그래봤자 9등이지만.’

정작 배에는 여러 구멍이 나 있고, 배에서 가장 중요한 조타수라고 할 만한 포수가 가장 큰 구멍을 담당하고 있어 허하준이 온다고 해도 성적이 크게 달라질 것 같진 않았지만.

그래도 항상 자신들의 밑에 있는 피닉스가 굳건히 그 자리를 지켜주고 있었으니 든든했다.

물론 요즘 피닉스에 황인재라는 미친 선수가 나타나서 9등 자리를 위협하고 있지만, 허하준만 돌아오면 된다.

그나저나 포수가 구멍인 건 1군뿐만 아니라 2군도 마찬가지였다.

오늘 허하준과 호흡을 맞출 포수가 누군지 궁금해서 시선을 쭉 내려봤다.

‘김수호?’

우리 2군에 김수호라는 특이한 이름을 가진 선수가 두 명 있었던가?

하지만 평소 퓨처스 리그를 즐겨보는 그는 곧 김수호가 자신이 알고 있는 김수호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 진짜 답도 없네.”

“왜 그래 박대리.”

“아,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한숨이 나올만한 상황이었다.

김수호가 누군지는 알고 있다.

드래프트 때 했던 인터뷰 때문에 팬들이 리틀 강주호라고 부르는 신인이었다.

실제로 강주호 성적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였지만, 그래도 신인치곤 꽤 좋은 성적을 보여주고 있어서 박민수도 유심히 지켜보고 있던 유망주였다.

리틀 강주호란 별명답게 포지션은 1루수였다.

근데 그 선수가 왜 포수 마스크를 쓰고 있는 걸까.

‘2군 포수도 답이 없구나.’

어제 터진 음주운전 기사, 그리고 부상.

2군 포수 상황이 급박한 건 대충 알고 있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신인한테 포수 마스크를 맡기다니.

도저히 일할 기분이 아니었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자 마린스 갤러리를 켰다.

[오늘 2군 라인업 봤냐? 김수호가 포수임]

글을 쓰자마자 순식간에 댓글들이 달렸다.

ㄴ 와 진짜네?

ㄴ ㅋㅋㅋㅋㅋ 이제 하다 하다 2군 포수도 전멸임?

ㄴ 아... 이건 진짜 탈꼴 마렵다.

ㄴ ㅇㅈ.

ㄴ 그냥 허하준 1군으로 바로 보내면 안 되냐? 공도 제대로 못 잡을 애한테 던지면 서로 컨디션만 안 좋아질 듯.

ㄴ 김수호 1루 수비 좋던데 우리 포수 조무사보다 공 더 잘 잡을 수도 있음 ㅋㅋㅋㅋㅋ

ㄴ 엌ㅋㅋㅋㅋ 이게 맞다.

마지막 댓글에 피식 웃긴 했지만 이게 마린스의 현실이었다.

강기호라는 최고의 포수가 은퇴한 이후 근 4년간 주전 포수의 자리는 항상 공석이었다.

4년 동안 포수 WAR이 0을 넘은 적이 한 번도 없는 팀.

‘그냥 허하준만 보자.’

부디 김수호가 공이라도 제대로 잡아주길 바라면서 박민수는 상사 몰래 핸드폰을 책상 구석에 켜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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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주 상무와의 경기는 마린스 홈 경기다.

사실 퓨처스 리그에선 홈 경기가 갖는 어드벤티지는 크지 않다.

기껏해야 익숙한 구장에서 경기한다는 것 정도?

내 생각엔 홈 팀의 가장 큰 이점은 팬들의 일방적인 응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 야구의 응원 문화는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그중에서 마린스의 응원 열기는 한국 최고였다.

하지만 퓨처스 리그는 직접 직관하는 팬도 거의 없을뿐더러, 특히 오늘같이 화요일 낮 경기엔 아예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허하준 파이팅!”

하지만 허하준의 힘일까?

무려 열 명이 넘는 팬들이 직관을 와서 응원을 해주고 있었다.

허하준은 그런 팬들에게 다가가서 직접 인사를 하고 사인도 하고 있다.

여러모로 배울 게 많은 사람이다.

자신 때문에 여기까지 찾아온 팬들에게 저렇게 팬서비스하면 저 사람들은 평생 팬으로 남을 거다.

그렇게 허하준과 팬들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뒤를 돌아본 허하준과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허하준이 내게 오라는 듯 손짓했다.

“선배님. 부르셨나요?”

“어 수호야, 여러분 오늘 제 공을 받아 줄 포수입니다.”

“어? 김수호 선수 아니에요?”

“예. 맞습니다. 이번 주에 임시로 포수 마스크를 쓰게 됐습니다.”

팬들이 날 알아보고 당황해하는 게 보였지만, 허하준은 그저 웃으면서 한마디 했다.

“오늘 직관 오신 거 후회 안 하실 겁니다. 이 친구가 진짜 물건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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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들과 인사를 마치고 슬슬 경기 준비를 시작했다.

“오늘 컨디션 어때?”

“선배님 덕분에 오랜만에 팬들한테 응원도 받아서 최곱니다.”

오늘만 벌써 네 번째 듣는 질문이었다.

감독님을 시작으로 수비 코치님, 배터리 코치님, 그리고 지금 허하준까지.

물론 이해는 됐다.

포수 경력도 없는 스무살 루키를 선발로 내보낸다는 게 그분들에게도 큰 부담일 것이다.

아마 성공해도 욕먹고, 실패하면 더 욕먹겠지.

“괜히 아부하기는. 오늘 경기 사인은 내가 내기로 했어.”

“정말요?”

내가 듣기론 벤치에서 사인을 내준다고 했는데, 아마 허하준이 주장한 것 같다.

“일 회는 직구 위주, 이 회는 스플리터를 제외한 변화구 위주, 삼 회는 스플리터 위주로 갈 거야. 어때, 쉽지?”

“예. 알겠습니다.”

“그래. 그럼 잘 해보자고. 오늘 온 10명의 팬을 전부 네 팬으로 만들어야지.”

허하준과 같이 계획을 세우자 곧 경기 시작할 시간이 됐다.

아무리 1.5군이라 불리는 상주 상무지만 허하준의 공을 쳐 내는 건 쉽지 않을 거다.

내 예상은 내가 공을 잡아낸다는 전제하에 퍼펙트 내지 1출루 정도?

하지만 경기 시작과 동시에 상무 1번 타자는 1루 베이스를 밟았다.

“볼!”

“볼!”

“볼!”

“볼!”

공 네 개가 연속으로 빠지면서 스트레이트 볼넷을 허용했다.

이거, 큰일 난 거 같은데?

허하준은 제구보다 구위로 상대를 찍어누르는 타입이다.

실제로 기록을 살펴보면 9이닝 당 볼넷 3개 정도로 볼넷을 아예 안 내주는 타입은 아니었다.

하지만 스트레이트 볼넷은 허용한 적이 거의 없는 걸로 알고 있다.

그런 내 불안함이 맞았는지, 허하준은 곧바로 내게 올라오라는 신호를 보냈다.

그 사인을 보자 더그 아웃에서도 투수 코치님이 급하게 올라왔다.

“선배님. 괜찮으세요?”

“어? 괜찮지.”

마운드로 올라가자 허하준의 웃는 얼굴이 보였다.

뭐지?

“코치님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미안해. 오랜만에 실전이라 제구가 좀 안 됐네.”

"어, 그래. 어디 이상한 건 아니지?"

“아, 괜찮습니다.”

"그래. 문제 없으면 내려갈까?"

“잠시만요. 저 수호랑 얘기 좀 해도 괜찮을까요?"

그 말에 투수 코치는 물론 나도 당황했다.

"그래 그럼. 나는 없다 생각하고 편하게 말하렴."

허하준이 투수 코치에게 살짝 고개를 숙이고 나를 쳐다봤다.

투수 코치가 먼저 내려가자 허하준이 나를 보고 싱긋 웃었다.

"수호야,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이번 이닝은 견제를 안 할 거야.”

“예?”

주자는 1군에서 도루를 10개 이상 할 만큼 준수한 발을 가진 타자였다.

그런 타자에게 견제를 안 한다고?

“그리고 다음 공은 한 번 빼자.”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이었다.

피치아웃으로 2루에서 승부를 하자는 의미인 걸까?

“피치아웃이요?”

“아니, 그거랑 좀 달라. 아예 실투인 척 공을 뺄 거야. 상대 주자를 속이는 거지.”

“오늘 제구가 안 좋은 척한다는 거죠?”

“정확해. 상대 투수의 제구가 흔들리면 주자는 보통 어떻게 할까?”

“조금 지켜보겠죠. 타자가 볼넷으로 나갈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포수가 오늘 처음 나온 선수라면? 심지어 전문 포수도 아니고.”

허하준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겠다.

“저보고 주자를 잡으라는 말인가요?”

“빙고.”

“... 굳이요?”

도루저지는 투수의 역할이 더 크고, 허하준 정도 되는 투수라면 주자를 1루에 완전히 묶을 수 있다.

“하하. 긴장하지 말고. 자 다시 가봐.”

“긴장 안 해···.”

“포수! 슬슬 돌아와!”

하지만 뒤에서 들리는 심판의 목소리에 어쩔 수 없이 돌아와야 했다.

그리고 내가 자리에 앉자, 허하준이 사인을 보낸다.

곁눈질로 주자를 쳐다봤다.

주자 역시 견제에 능한 허하준을 의식하는지 리드폭이 크지 않다.

“피쳐!”

심판이 시작하라는 사인을 주자 허하준이 1루를 쳐다보지도 않고 와인드업으로 공을 뿌렸다.

1루에 주자가 있는데 와인드업을 한다는 건 주자에게 대놓고 뛰라는 뜻.

심지어 공은 존에서 한참 떨어진 곳으로 들어왔다.

이 정도면 빼는 게 아니라 그냥 빠진 거잖아.

손을 뻗어 우타자 반대편으로 가는 공을 겨우 잡아냈다.

그런 내 눈에 자연스럽게 1루 주자가 움찔하는 모습이 보였다.

공을 잡은 순간, 무너진 자세를 바로잡고 그대로 1루를 향해 공을 던졌다.

“아웃!”

역모션에 걸린 주자는 그대로 아웃 처리.

더그아웃에서 환호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그저 허하준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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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거 봐라?’

기껏 밥상을 차려줬더니, 간이 안 맞는다고 스스로 반찬을 만들어 먹는다.

하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지금까지 누구나 그와 같이 밥을 먹는 걸 기대했지, 같이 차리려고 한 적은 거의 없었으니까.

‘더 탐나는데?’

프로로서 당연히 그의 목표는 우승.

하지만 데뷔 시즌을 제외하곤 단 한 번도 가을 야구를 했던 적은 없었다.

국가대표에도 출전했고, 시즌 MVP까지 받은 그의 발목을 잡은 건 항상 포수였다.

지금껏 마린스에서 은퇴한 강기호를 제외하고 그 누구도 그의 공을 100% 끌어내지 못했다.

‘이제 시간이 없다.’

하지만 어이없게도 우연히 만난 스무살짜리 임시 포수에게 희망을 봤다.

메이저 진출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2년.

그리고 2년이란 시간은 다른 의미도 있었다.

언제나 마린스의 중심이자 존경하는 선배인 강주호의 은퇴 역시 2년 뒤였다.

그리고 어제오늘 보여준 저 재능이라면 충분히 그 2년을 투자할 만했다.

볼 카운트 1-0.

불리하게 시작했지만, 허하준에게 큰 의미는 없었다.

그저 얼른 이닝을 끝내고 김수호에게 가서 무슨 생각으로 그런 판단을 했는지 묻고 싶었다.

그 순간부터 상무 타자들에겐 지옥이 시작됐다.

다섯 번 연속으로 볼이었던 공은 던지는 족족 존 안으로 들어왔고, 상무 타자들은 압도적인 구위에 눌리며 왜 허하준이 리그를 대표하는 에이스라 불리는지 깨닫게 됐다.

5개의 볼 이후에 던진 7개의 스트라이크.

“스트라이크 아웃!”

“스트라이크 아웃!”

타자들은 적극적으로 방망이를 휘둘렀지만, 오히려 이닝을 빠르게 끝내려는 허하준을 도와주는 꼴이 됐다.

이닝이 끝나자 허하준은 급하게 김수호에게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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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호야, 잠깐 얘기 좀 할까?”

“예. 장비만 풀고 가겠습니다.”

“그래? 오늘 7번 타자지? 오케이. 빨리 가자.”

환영해주는 선수들을 뒤로 한 채 감독한테 허락받고 잠깐 라커룸 쪽으로 이동했다.

“무슨 생각으로 1루에 던진 거야?”

그 말을 듣고 잠깐 고민했다.

그냥 보이길래 잡을 수 있을 것 같아 던졌다고 말하면 재수 없으려나?

잠깐 고민하는 사이 허하준이 답답해하며 재촉했다.

“아, 내 말대로 안 했다고 뭐라 하려는 거 아니야. 진짜 순전히 궁금해서 그래.”

“공을 던지셨을 때 1루 주자 몸이 쏠려 있는 걸 봤습니다. 던지면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던졌습니다.”

“그래? 이야, 첫 경긴데 눈썰미가 좋네. 어깨도 정확하고.”

“감사합니다.”

“정말 어제부터 시작한 거 맞지? 너 진짜 재능있다. 천재네.”

허하준의 말에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천재.

지난 3년간 항상 황인재가 듣던 말을 허하준에게 듣게 될 줄이야.

그것도 주 포지션이 아닌 포수 자리에서 말이다.

이걸 황인재가 알고 꽤 배 아파할 걸 생각하니 기분이 좋다.

황인재도 마린스의 팬이니까.

“대충 보니까 이번에 네 타석은 안 올 거 같고, 다음 이닝 얘기 좀 할까?”

허하준의 말에 그라운드를 보니 벌써 원 아웃에 2번 타자는 2스트라이크에 몰렸다.

그럴 만도 한 게 상대 투수 역시 1군에서 활약한 선발이자 현재 2군 성적 톱에 드는 선수였다.

이내 다시 공을 던지자 타자가 헛스윙하고 물러났다.

그 모습을 보자 방금 두 타자를 연속으로 삼진 잡은 허하준의 공이 떠올랐다.

포심만 던져도 헛스윙하면서 발레를 추던데, 변화구를 섞으면 타자들이 어떤 춤을 출까.

그 모습을 내 손으로 만들어내고 싶은 욕심이 생겼다.

“선배님. 그러면 2회부터 제가 리드해도 되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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