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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140화 (140/389)

◈140화 이야기가 아니기에 (8)

며칠 그런 식으로 쉬었을까. 신전과 마탑이 묘하게 날이 선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즈음, 자타브 부족에 파견된 마법사들로부터 드디어 보고가 왔다.

결과만 말하자면 문제는 없다는 게 요지였다.

“예상대로 밀집된 마력이 어느 정도 변질되어야만 마기를 품은 존재 혹은 악마가 태어나는 것 같아.”

즉, 이런 이야기였다. 마력이 밀집되면 성질 변화가 시작되고, 그 변화 단계가 10단계까지 있다고 쳤을 때 9~10단계쯤 되어야 악마가 태어난다는 것.

다르게 말하면 마탑 수초 사건은 그 단계까지 갔단 소리가 되겠다.

산군의 둥지는 7~8단계, 지금 조사한 자타브 부족의 뱀 양식장은 5~6단계쯤.

이건 내 추측이 아니라 산군이 설명해 준 것─제 둥지와 뱀 양식장의 차이─을 마법사들이 다듬어서 보내 준 내용이니 확실하다.

“마기를 품기 시작하는 기준은 7, 8단계부터인 것 같아. 산군만 특이 케이스고 9, 10단계처럼 바로 악마가 되는 건지, 아니면 산군처럼 마기를 품되 인간… 동물… 음. 일반 생물이라고 할까? 일반 생물로 남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군.”

“별개로 일반 생물로 남건, 악마가 되건 마기를 마력으로 바꿔 숨는 능력은 해당 단계부터 가지고 태어날 거라 생각해. 그러니 앞으로 참고하도록!”

“알겠네.”

“자세한 건 실험을 진행해 보고, 확정 결과가 나오면 전해 줄게. 중요한 내용이니까.”

‘구슬 보여 주라’ 피켓을 든 흰바람이 ‘이걸로 설명 끝!’을 외쳤다. 그러자마자 슬그머니 올라온 건 인퀴지터의 손이다.

“실험이라는 건……?”

“의도적으로 마력이 밀집된 환경을 형성해, 악마가 태어나는 걸 지켜볼 거랍니다!”

“그, 그래도 되는 겁니까?”

“신전과 협의했고, 그들 감시하에 진행할 거니까 걱정은 않으셔도 돼요.”

“그렇군요…….”

FM인 인퀴지터는 그걸로 납득한 듯, 손을 내렸다. 그러나 데브의 경우 표정이 묘해졌다. 아마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 것이다.

예컨대… 마법사 중에서 몰래 실험하는 자가 나올 것 같다는 생각.

“공표하기로 했나?”

“신전 쪽에서만. 마탑 쪽에선 일부 대현자와 우리 지부에서만 알고 있기로 했어. 이쪽은 사고 칠 확률이 높아도 너무 높으니까. 물론 신전 쪽도 아마 고위 계급만 암암리에 보고받을 거야.”

다행히 그에 대한 방비도 결정은 했나 보다. 저게 잘 통할지는 미지수지만, 안 하는 것보단 나은 게 맞기도 하고.

“벌써부터 눈총이 들어오는 걸 보니까 후회는 좀 되지만 말이야! 아하핫!!”

이런데도 새어 나간다면, 글쎄다. 오히려 악마와 내통하는 사람을 특정하기 쉬워지는 건 아닌가 싶다.

알고 있는 인물이 한정되어 있으면 범인을 찾기도 쉽잖아. 이미 알고 써먹는 중일지도 모르긴 하다만.

“그리고 자타브 부족은 악마랑 연결된 게 없어. 적어도 지금까지 나온 바론 그래.”

어쨌거나 설명을 잇던 흰바람이 내 쪽을 보며 살짝 웃었다.

“아쉽게 됐네?”

관련자가 나오면 내게 넘겨 주겠다던 말의 후속편일 것이다.

나는 특별히 대꾸하는 대신 팔짱을 낀 손에 힘을 더 넣었다. 잡힌 코트 자락이 더욱 구겨졌다.

“뭐, 아쉬워도 어쩔 수 없지. 이거나 받아가.”

아, 완성됐나.

“그건 무엇입니까?”

왜 모두가 보는 앞에서 주는진 모르겠지만, 상자로 포장된 상태니 내용물을 알아보진 못할 것이다.

나는 그 점에 안도하며 아마 가슴보호구일 것을 건네받았다. 이따가 출발하기 전에 착용할 것이다.

“후후. 용사님은 모르셔도 되는 물건이랍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그럼. 만두는 모르는 게 낫지. 나는 피켓을 흔드는 흰바람의 말에 긍정했다. 이제 진짜 마탑에 볼일은 끝났다.

“하면 대삼림에 더 이상 관여할 건 없겠군.”

“너희 입장에선 그렇지. 뭐가 나올 때까지 여기에 계속 남아 있을 건 아니잖아? 가야 할 이유도 있고.”

“하면 부탁해도 되겠나?”

“별말씀을. 애초에 이런 건 부탁하지 않아도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니까 일일이 말할 필요 없다고?”

나는 묵묵히 흰바람의 피켓을 외면하며 벽에 기댔던 등을 떼었다.

쉴 만큼 쉬었겠다, 더는 남아 있을 이유도 없겠다. 오늘 안에 떠나지 않을까 싶은 예상 때문이었다.

쉬는 동안 다음 목적지도 정해 둔 마당이니 가능성은 더 높다.

“정 부탁하는 게 미안하면, 악마기사가 구슬을─.”

“안 질리나?”

“질리겠냐고!”

안 그래도 오늘 아카타를 맡길 곳을 찾았다는데, 가기 전에 실 줘야지. 어영부영하다가 아직도 못 줬단 말이야? 나 참.

“그럼 오늘 중으로 떠나겠네요.”

“베르세르크는 좋다! 안 그래도 심심해 죽을 것 같던 참이다!”

“할 거 없다며 다리 재건에까지 손 보태는 걸로 대충은 짐작했습니다요…….”

“나는 조금 아쉽군……. 기술이 거의 완성돼 가던 참인데.”

아크메이지가 능숙하게 흰바람의 징징거림을 틀어 버리는 사이, 우리는 우르르 마탑을 빠져나갔다. 다리가 지어지는 동안 배로 호수를 오가는지라 헤엄칠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전 하루라도 빨리 떴으면 하는데 말입죠.”

“그러고 보니 네놈, 며칠 전부터 묘하게 도시에 있길 싫어하는군. 무슨 일 있었나?”

“…무슨 일 있긴요. 근데 우리가 이런 거 물을 정도로 친했습니까?”

“……!”

나는 뜨뜻한 햇빛을 받으며 배에 앉았다. 버서커나 나를 제쳐 두더라도 다들 한가락 하는 덩치들이라 배는 둘로 나눠서 타야 했다.

“저 망종 놈이 걱정을 해 줘도!”

참고로 버서커가 나보다 더 무겁다 보니 가장 가벼운 데브랑 짝을 짓고, 나는 김치만두랑 짝을 지었다.

걱정해 줬으나 데브에게 물먹은─내가 보기엔 걱정이 익숙지 않아서 츤츤거린 것 같다만─인퀴지터가 배에서 씩씩댄 건 덤이다.

“오! 저기, 물고기다!!”

“으아악! 가만히 좀 있어요!”

“오오오!!”

“배 넘어간다아아!!”

고기만두야 퉁명스럽게 군 대가를 버서커에게 돌려받고 있는 듯하다마는.

“꼴 좋군요.”

인퀴지터도 그걸 깨달았는지, 배에 찰싹 붙어 있는 데브에게 메롱 한 번 하곤 다시 평상시로 돌아왔다. 메롱은 또 어디서 배웠는지 모르겠다.

“아, 그렇지. 악마기사, 오늘 아카타를 보낼 곳을 찾았다고 합니다! 같이 가 보시겠습니까?”

오, 안 그래도 어떻게 갈까 궁리 중이었는데 여기서 핑계를 딱 대 주나. 굿만두, 굿만두.

나는 속으로만 김치만두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으며 한편으론 아카타를 떠올렸다.

신전에 편히 남을 수 있음에도 구태여 더 어려운 길을 택한 소녀였다.

아마 이왕 나온 바깥, 더 많은 것을 보고 배우겠다며 신전에 남지는 않겠다고 했던가? 심부름꾼이 되어도 좋으니 세상을 알 수 있는 곳에 들어갈 거라고.

덕분에 괜찮은 곳을 선별하고 그곳으로 유도하느라 바쁘다며 흰바람은 우는 소리를 냈지만… 그건 별로 알 바 아니다. 중요한 건 아이가 다가온 시련에 굴하지 않고 나아가는 모습이다.

그 아이는 큰 사람이 될 거다.

“이곳입니다!”

나는 대답없이 인퀴지터의 뒤를 따랐다. 우리 둘의 대화를 듣지 못한 데브와 버서커 역시 어리둥절 함께했다.

“어디 갑니까?”

“우리가 이런 걸 물을 사이였나?”

“……! 쪼잔하게!”

“저리 가라!”

아무튼, 함께했다.

“여기 근처일 텐데… 아!”

그리고 그리다나란 글자가 박힌 상회를 막 지나쳤을 때.

“저기입니다.”

그리다나의 글자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던 조그만 간판이 보였다. 상회긴 상회 같은데 규모가 상당히 작은 곳이었다.

“치리티 상회. 예, 여기입니다!”

뭐, 규모가 작다고 해도 비루하진 않았다. 사람이 끊임없이 드나들고, 물건을 실은 마차가 두루 보이는 것만 봐도 그렇다. 건물이 조금 조그마할 뿐, 내실은 알차 보인다.

“뭐야. 애 보러 온 거였습니까?”

“여긴 왜 왔나?”

“아, 나옵니다.”

그때 상회 건물 옆, 마방 사이로 누군가가 도도도 나왔다. 여섯 개의 팔 중 네 개에는 빈 수통이 들려 있다.

벌써부터 일을 하고 있나 보다.

“아카타!”

“응? 어!”

인퀴지터의 외침에 건물 안으로 들어가려던 아이가 이쪽을 보았다. 여덟 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제님!”

“벌써 일하고 있습니까?”

“아, 이건. 어. 일. 잘한다. 보다?”

며칠 사람들 대화를 열심히 주워듣더니만 언어에 벌써 익숙해졌나 보다. 아이는 어눌할지언정 몇 개의 단어를 늘어놓았다.

대충 일 잘하는지 못하는지 시험해 보려고 아이에게 일을 시킨 듯했다.

“시험에 통과하면 받아 준다고 했나 봅니다.”

“그렇군. 벌써부터 자립 준비인가!”

“그래도 그렇지 수통 네 개는 너무 과한데…….”

“빈 통만 옮기는 거 아닌가?”

“어. 나, 한다. 먼저 말한다? 4. 이거.”

“아카타가 먼저 하겠다고 했습니까?”

단어 고르는 솜씨가 일품인데.

나는 똑같이 외국인 사이에 방치되어도 말 못 해서 멍하니 있던 나와, 의사소통이 어떻게든 되게 하는 아이를 두고 괜히 가슴이 찔렸다.

아이도 저렇게 열심히 하는데 그때의 나는…….

“장합니다. 몸조심하고, 항상 건강하셔야 합니다.”

“잘하고 있습니다요. 그래도 너무 무리하진 마십쇼. 너무 잘하거나 성실하면 또 부려 먹히는 게 이쪽 판이니까.”

“으하핫, 작은 친구. 힘들면 크게 웃어라. 그러면 힘든 것이 날아간다!”

나는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며 일행이 아카타에게 한마디씩 얹는 걸 지켜보았다. 이 정도까진 알아듣기 힘든 듯, 아카타는 조금 미묘한 표정이었지만 곧 환하게 웃었다.

“응!”

며칠 사이에 많이 밝아진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거기.”

저기에 내가 껴서 좋을 건 없겠지. 나는 내 애매한 위치를 고려해 주변에 있던 한 명을 불렀다. 상회의 문지기(추정)였다.

“문지기인가.”

“그렇습니다만…….”

좋아. 그럼 이 사람에게 맡기자.

나는 인벤토리에 있던 꾸러미를 꺼냈다. 실만 툭 내밀기 그래서 대충 포장한 거였다.

“나와 저 머저리들이 가고 나면 저 아이에게 이걸 건네주도록.”

나는 눈짓으로 아카타를 가리켰다. 문지기는 다소 떨떠름한 표정이었으나, 수고비로 5만 갈을 얹으니 넙죽 고개를 숙였다. 역시 돈이 최고였다.

“만일 빼돌린다면…….”

“절대그럴일없게하겠습니다.”

혹시 몰라, 칼 잡고 협박도 좀 곁들였는데 효과가 꽤 괜찮았다. 나는 숨도 안 쉬고 말한 문지기를 뒤로한 채 이 자리를 온전히 떴다.

인퀴지터와 데브는 내가 떠나는지도 모르는 눈치고, 버서커는 알지만 신경 쓰지 않았으므로 붙잡힐 걱정은 없었다.

“아, 그렇지. 악마기사도 당신을 보러 왔습니다. 그렇지… 엇!”

“응? 엑. 나리 어디 갔어요!?”

“악마기사라면 방금 떠났다.”

“대체 언제!”

“내, 내가 눈치를 못 채다니……!”

나는 유유히 신전으로 돌아갔다.

“저흰 그만 가 보겠습니다!”

“건강히 있어야 합니다!”

“작은 친구, 안녕!”

한편, 아카타는 갑작스럽게 찾아온 이들이 떠나는 걸 지켜본 뒤 다시 상회로 걸음했다. 며칠간 저들이 얼마나 좋은 사람이고, 그녀를 잘 대해 줬는지를 알았기에 떠나보내는 내내 웃음이 멎질 않았다.

수통을 몇 번이나 지고 나르느라 뻐근했던 팔엔 다시 힘이 돌아온 채다.

“거기.”

“……?”

아직 말은 다 익히지 못했지만, 저게 누군가를 부를 때 쓰이는 말임은 안다.

소녀는 지금껏 대화 한번 없던 문지기의 부름에 고개를 들었다.

“이거 가져가라. 손님이 주고 가셨다.”

“어?”

처음 듣거나, 들었지만 애매하게 모르는 단어들의 조합은 의문을 가져온다.

그러나 그 이전에 건네진 물건은 이미 그녀의 손에 들어온 상태니. 매끄러운 재질의 천으로 포장된 것이 손아귀에 잡히자 푹신하게 접혀 들어 갔다.

안에 든 것이 뭔진 몰라도 딱딱한 물건은 아닌 듯했다.

부스럭.

눈치로 보아 이것은 아무래도 제 것인 것 같다. 소녀는 조심스럽게 꾸러미 위쪽 입구를 풀었다.

【실이다.】

얼마 전, 덩치 큰 전사와 가게에서 구경했던 실들이었다.

심지어 그 수가 꽤 되었다. 제가 조금이라도 만지거나 시선 준 것들은 죄 들어 있는 것 같았다.

【…바보 같아.】

정말로 바보 같다. 소녀는 이것을 준 사람의 정체를 직감하며 피식 웃었다.

암, 그녀와 한창 대화를 하고 간 이들이나 하얀 제사장은 이런 식으로 선물을 전달해 줄 성정이 아니니. 하면 준 사람은 딱 한 명밖에 남지 않는다.

【안 줘도 됐는데…….】

분명 자리에 같이 온 것 같은데, 유일하게 보지 못한 사람이 하나 있지 않나.

소녀는 웃되 울며 꾸러미를 다시 닫았다. 이 꾸러미는 이제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녀만의 보물이 될 것이다.

그녀가 힘들 때마다 힘이 되어 줄, 최고의 선물이.

* * *

줬겠지? 설마 5만 갈이나 줬는데 그걸 또 홀랑 먹진 않았겠지?

나는 신전의 마구간 앞에서 선물이 전달되었을지를 두고 고민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전달되는 것까지 보고 갈걸 싶었으나, 이미 늦은 일이었다.

나는 신전에 와 버렸고, 나머지도 다 도착해 버렸다. 아크메이지도 홀연히 합류해서 막 떠날 채비를 갖추는 중이고.

“이곳도 이제 떠나는군요.”

“아쉬우십니까?”

“그건 아닙니다.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 있다는 걸 아니까요.”

에라 모르겠다. 내가 걱정한다고 상황이 바뀌는 것도 아니겠다, 잘 전해졌겠거니 믿고 넘겨야지 뭐.

무엇보다 다들 말에 짐을 다 실은 상황이다. 이제 말에만 오르면 떠날 준비는 끝이다.

“아, 미리 말하는 걸 깜빡했군.”

아마도, 끝이었다. 아크메이지가 할 말이 생겨 버린 듯하지만.

“며칠 전 악마나 악마숭배자로 추정되는 자를 발견했습니다.”

한데 지금 뭐라고요?

“어, 그거 말해도 되는 겁니까?”

“도시에선 못 찾았지 않나. 가는 길에 매복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는 만큼, 지금은 말할 때가 됐네.”

아크메이지가 하려는 말을 데브는 알고 있는 모양이다. 무슨 말이냐고 묻는 게 아니라 말해도 되는 거냐고 묻는 걸 보면. 나는 지금이 처음인데.

“무슨 말이십니까?”

“매복? 적이 있나?”

반응을 보니까 인퀴지터나 버서커도 잘 모르는 눈치다. 오직 아크메이지와 데브만이 아는 사람의 낯일 뿐.

기묘하지만 이상하진 않은 조합이었다. 저 둘끼리만 정보를 다루는 건 종종 있던 일이었으므로.

“당장 말해라!”

별개로 악마와 악마숭배자란 단어가 언급된 이상 넘어갈 수 없다.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게…….”

곧 데브와 아크메이지의 성대를 타고 이야기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며칠 전 데브가 괴상한 놈을 만났단 요지의 말이었다. 그것도 그냥 괴상한 게 아니라 완벽하게 수상쩍은 놈을!

“왜 그걸 이제 말했지?”

“확실한 정보가 아니다 보니 섣불리 움직이기가 그랬던 것뿐일세. 만약 무언가가 나왔다면 자네에게 알리지 않았겠나.”

우리 고기만두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또 위험에 처할 뻔했다는 사실이 열불을 일으켰지만, 설명은 들어야겠다.

내가 컨셉에 맞춰 따져 묻자 아크메이지가 한숨과 함께 사정을 설명했다.

의심이 갔던 만큼 확실히 하기 위해 조사를 행했고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는 것. 데브 주변을 주시하기도 했지만 역시나 나타나지 않았다는 것. 그런 내용이었다.

“마탑과 신전에도 협조를 구했지만 나오는 게 없더군.”

아, 어쩐지. 며칠 동안 신전과 마탑이 묘하게 분주해 보이더라니. 그건 이 때문이었나? 그렇지만 왜 이걸 우리한텐 비밀로 했지?

“어째서 저희에겐 함구하신 것입니까?”

인퀴지터가 나를 대신해 물었다. 그러자 아크메이지의 얼굴이 10년은 늙은 사람처럼 변했다.

왠지 답을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인퀴지터께선 다음 경지로 나아가기 위한 수련 중이시지 않았습니까. 악마기사는 부상이 막 나은 상태였고. 불확실한 정보로 방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래, 그럴 줄 알았다.

어디처럼 쳐들어온 것도, 도시 아래 숨어 뭘 저지르는 것도 아니고 한 사람에게 접근해서 말 한마디만 두고 간 거면 휴식을 방해하기 좀 애매하지. 하물며 몇 달 만에 가진 단체 휴식인데.

무엇보다 나와 인퀴지터가 어떤 인물인가. 악마만 보면 눈 뒤집혀서 모든 걸 도외시하려는 군상이 아닌가. 버서커는 신나서 상대를 추적하다가 온갖 걸 다 부술 가능성이 있고.

아크메이지가 침묵하고 있던 사유가 단번에 이해가 간다.

“그런 건 네놈이 정할 게 아니다……!”

그러나 혐성인 컨셉은 그걸 모른다.

나는 소극적으로 반박하려는 인퀴지터를 제치고, 핏대를 뻣뻣이 세운 채 외쳤다. 아크메이지의 입술 새로 한숨이 푸욱 흘러나왔다.

“사과함세. 다음부턴 유의하겠네.”

본체 입장에서 아크메이지가 사과할 일은 아니나, 지금으로선 최선의 반응이었다. 이렇게 되면 나도 이를 갈지언정 더 꼬투리 잡진 못한다.

내 표정이 조금 더 구겨졌다.

“각설하고, 그러니 조심하게. 지난 며칠간 행적이 잡히지 않은 걸 보아 작정하고 숨었거나 아니면 도시를 뜬 듯하니. 어쩌면 매복을 준비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음. 그럼 가다가 악마사냥을 할 수 있는 건가? 베르세르크는 아주 좋다!”

그나마 내가 워낙 압도적으로 성질을 내서인지, 인퀴지터는 아크메이지의 혈압을 덜어 주었다. 차분히 사실을 받아들였단 소리다.

버서커는 언제나와 비슷했으니 뭐라 덧붙일 말이 없고 말이다.

“저, 그러니까, 대삼림의 변경을 둘러 캄버러로 가는 거 맞죠?”

그렇게 한차례 폭풍이 지나갔을까. 데브가 조심스럽게 화제를 돌렸다.

모두의 표정이 한결 풀렸다. 나만 빼고.

“그렇네.”

“…에드니엄은 안 가는 거 맞죠?”

“캄버러에 문제가 있어서 가는 것이니만큼, 어지간하면 그쪽으론 안 갈 것 같네만. 혹 가고 싶은 겐가?”

“아뇨, 그런 건 아니고.”

다들 준비된 모양새겠다, 방금 전 대화로 빡침이 올라왔을 컨셉이겠다. 나는 한 음절의 소리조차 내뱉지 않고 말에 올랐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다음 목적지는 캄버러. 백묘 능선 아래에 위치한 도시이자, 청연둥지란 별명을 지녔다는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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