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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이 컨셉충이면 곤란한가요-39화 (39/389)

◈39화 보다 나은 다음을 (4)

다들 거기서 거기인 집이었지만 그래도 촌장의 집은 조금 더 컸다. 집안에 들어서니 곳곳에 놓인 용 조각상이 유독 눈에 띄었다.

“이 조각상은…….”

“해룡님입니다. 서쪽 해의 지배자시지요.”

“포르젠 지방은 해룡을 숭상한다더니, 정말이었군.”

“그분의 기분에 따라 바다 날씨가 달라지니까요. 뭐…… 지금은 다소 믿음이 흔들리긴 합니다마는…….”

해룡을 숭배한다라. 그래서 사람들이 용이 조각된 펜던트를 목에 걸고 있거나 해룡에게 기도했나.

근데 이러면 교단 출신인 인퀴지터는 싫어하지 않나?

“왜 그러십니까?”

돌아본 인퀴지터의 표정은 여전히 못마땅했지만, 해룡 자체에 대한 배척감은 없었다. 이건 별로 신경 안 쓰나 보다.

하긴, 우상 숭배에 분노할 거라면 그 벽화부터 화냈어야 했긴 하지. 그런 건 보통 숭배 대상을 그려 넣는 편이니까.

“대접할 것이 물밖에 없어 송구스럽습니다.”

“괜찮네. 대접받고자 온 것이 아니니.”

식탁이 좁고 의자가 적었던지라 나는 의자에 앉는 대신 벽에 기대섰다. 일행 안 같고 훨씬 간지 나서 별로 기분 나쁘지 않았다. 으하학.

“바다가 이상해진 것은 한 달 전부터였습니다. 겉보기엔 잔잔해 보이나 파도가 제멋대로 치고 물고기들이 하나둘 종적을 감추더군요.”

억지로라도 그물질을 해보면 먹지 못할 까만 것만 올라오고 물질을 해도 어째 죽은 조개만이 가득했다며 촌장은 침착히 설명했다.

단편적인 것만 들어도 그다지 좋은 상황은 아니었다.

“처음엔 해룡님께서 화나신 건 아닌가 했습니다만, 그분께서 화내실 땐 비바람과 해일이 몰아쳤지, 이런 식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군. 하면 적조일 가능성은 없나? 적조가 발생했을 때와 상황이 다소 흡사한데.”

“적조가 한 달 넘도록 이어지는 건 들어 본 적 없습니다. 무엇보다 적조라면 바다가 붉게 변해야 하는데 그런 현상이 목격된 적도 없습니다.”

“허어.”

“그물질했을 때 나온다는 까만 건 뭡니까?”

“저희도 모릅니다. 바다에서 평생을 살아왔지만 생전 처음 보는 것이라…….”

촌장은 일단 보여 주겠다며 잠시 자리를 일어섰다. 곧 그녀의 손에 들려온 것은 무언갈 담은 나무그릇이다.

“……!”

가장 먼저 반응한 건 인퀴지터였다. 그녀는 마을에 들어온 이래 심기불편하던 낯을 바로 바꾸며 그릇을 받아들였다.

“인퀴지터?”

“미세하지만, 부정적인 기운이 느껴집니다.”

역시 게이머의 직감은 헛발질하지 않았다. 원인이 뭐든 간에 자연적인 게 아닌 이상 무조건 퀘스트로 이어질 거다.

거기에…… 이쪽 지방에 들어서 해룡이란 존재가 계속 부각되는 걸 보면 역시 그쪽과 엮일 것 같단 말이지. 유적도 괜히 만들어 두었을 리 없고.

추측일 뿐이지만 반쯤은 확신할 수 있다. 해룡과 같은 ‘태곳적 짐승들’은, 메타적으로 발언하면 폭주나 타락의 설정을 붙여 레이드 대상으로 내놓기 위해 추가된 이들이니까.

크. 종결템 만들겠답시고 뺑뺑이 돈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타락 요정들은 비싼 레시피를 떨궈서 앵벌이용으로 많이 돌았는데. 그거 현금으로 바꿔 먹으면 꽤 쏠쏠했지.

“부정적인 기운 말입니까?”

“예.”

그러나 이건 따지자면 심증에 불과하다. 물증이 나오기 전까지는 가설 정도로만 반영해야 한다.

“악마인가.”

그러하므로 나는 모르는 척 악마를 언급해 보았다.

그러자 인퀴지터의 눈이 동그래졌다. 오랜만에 말건 건 맞지만, 너무 놀란 눈치라서 내가 다 떨떠름해졌다.

“그건…… 잘 모르겠습니다. 부정하긴 하지만 마기와는 다릅니다.”

“쯧.”

인퀴지터 경험이 얕은 이상 모르는 게 있을 법도 하지만, 그 점을 이해하고 봐줘 봤자 악마 취급은 내가 받는다.

나는 무능에 대한 경멸을 눈에 담고 만지작거리던 칼자루를 놓았다. 김치만두가 시무룩해져서 고개를 숙였다.

“흠.”

반면 마법사는 그릇 속 내용물을 정밀히 검토했다. 그녀가 손으로 집어든 덕에 나 또한 그것을 볼 수 있었는데, 정말 설명하기 기묘한 형태였다.

좀, 찌꺼기 같다고 해야하나. 고기를 석탄마냥 새까맣게 태우면 저거랑 좀 닮았을 거다.

“자네는 본 적 있나?”

“저도 이건 모릅니다요.”

“그런가…… 어쩌면 해룡에게 문제가 생겼는지도 모르겠군.”

“그, 무슨……!”

“확실하진 않네. 그렇지만 그는 서쪽해를 관장하는 이가 아닌가. 바다에 일이 생겼는데도 해결되지 않는다면 그 주인에게 원인을 찾아보는 것이 빠르지.”

아크메이지의 냉정한 발언에 촌장이 무너진 얼굴을 했다. 하기야 믿음의 대상에게 문제가 생겼다면 누군들 저런 표정을 할 테다.

“다만 정말 해룡에게 문제가 생겼다면 포르젠 지방 전체가 난리 났어야 할 텐데…… 신전에서 이것을 몰랐을 리도 없고. 음, 도시나, 다른 마을에서 들려온 소식은 없나?”

망연자실하기 직전임에도 촌장은 물음 자체엔 반응을 보였다. 그녀는 무너진 얼굴로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제가 알기론 없습니다. 어획량이 좀 줄어들었다긴 하는데…… 매해 풍년일 수는 없으니까요.”

“그건 최근의 소식이 맞나?”

“먹을 것을 마련하고자 팔 수 있는 것들은 죄다 모아 도시, 그뤼 텔츠로 가져갔던 것이 보름 전입니다. 가는 데 엿새 정도 걸리니 오래된 소식은 아닐 겁니다.”

가는 데 엿새 정도 걸리고, 보름 전에 출발했으면 실질적으로 그뤼 텔츠에 도착한 시간은 아흐레 전이다.

그리고 아흐레 사이에 도시가 크게 달라졌을 가능성도 낮고. 악마 의식 같은 게 벌어졌다면 또 모르지만.

“그렇군. 말해 줘서 고맙네.”

“은인분들께 뭔들 말 못 하겠습니까.”

그녀는 무릎에 얼굴이 닿을 것처럼 허리를 숙인 채 작게 말을 이었다.

“어차피…… 이대로 있어 봤자 저희에겐 죽음만이 기다릴진대…….”

“…….”

그 말엔 아무도 위로를 얹을 수 없었다.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진 말게. 도시에 별 영향이 없다면 해룡에게 원인이 없을 수도 있지 않은가.”

“…원인이 무엇이든 이쯤 되면 상관없습니다. 아사든 갈사든 결국 이름만 다른 죽음이지 않습니까. 그저 해결되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이런 무거운 분위기,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데.

나는 벽에 기댄 채 눈을 지그시 감았다. 남의 절망을 마주했을 때 으레 들곤 하는 회피성 욕구와 얄팍한 동정 따위가 손바닥 안을 간지럽혔다.

하여간, 이 세상은 너무 과했다.

“일단 원인을 규명하기 위해선 따로 조사할 필요가 있어 보임세. 어쩌면 해룡의 문제가 아니라 이 근해에서만 벌어지는 문제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습니까, 인퀴지터?”

“예, 아크메이지님의 말씀이 맞습니다.”

인퀴지터는 새까만 찌꺼기를 가만히 보더니, 뒷말을 더했다.

“부정이 감지된 이상, 신의 종으로서 절대로 물러날 수 없습니다.”

「❖ 바다에서 떠내려온 부패

∎ 바다에서 벌어지는 일 조사하기」

그뤼 텔츠로 가라던 것말고 새로운 퀘스트가 떠올랐다. 사이드 퀘스트였다.

“설마…… 이 일을 해결해 주시려는……?”

“확답은 못 드립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근데, 뭔가 좀 이상한데. 사이드 퀘스트를 왜 너희가 수락하냐?

어차피 수락할 거긴 했지만 어처구니없는 건 없는 거다. 나는 꼈던 팔짱을 보다 꽉 쥐었다. 아크메이지가 비슷한 시기에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조사를 위해 며칠 머무르게 될 지도 모르네만, 괜찮겠나?”

“물론이지요. 은인들을 박대할 순 없을뿐더러…… 이 일만 해결할 수만 있다면 뭐든 협조하겠습니다.”

문득, 어두운 옷을 입고 붉은 눈가로 우릴 보던 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들은 우릴 썩 반기지만은 않던 것 같던데.

“하면 효율적인 수색을 위해 역할을 분담하는 게 낫겠지요.”

혀에서 느껴지는 껄끄러움에 손가락을 나붓나붓 두드렸을까. 마법사가 순식간에 역할을 정해 주었다.

기운 탐지에 탁월한 인퀴지터와 아크메이지는 바다로 나가 이변의 근원을 탐색해 보는 쪽.

눈썰미가 좋은 데브는 주민들에게 보다 자세한 상황을 듣거나 근방에 의식 흔적이 있진 않은지 확인하는 쪽이었다.

다들 발언은 안 했지만 내 역할도 후자에 속할 테다.

아무렴 마기는 느껴지지 않는다지만, 또 모르지 않나. 악마계약자가 있을 경우, 데브 혼자 대처하기엔 그의 무력은 조금 불안한 부분이 있다.

“아이고, 나리 가시네. 저는 그럼 먼저 가보겠습니다.”

그렇지만 같은 일을 하더라도 내가 나서서 할 거지, 너희 말을 듣는 느낌은 내지 않을 거다! 핫하!

“다녀오게.”

나는 저들을 외면한 채 걷어차듯 현관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마을을 조사할까 해변가를 조사할까. 당연히 택한 건 후자다.

내 컨셉은 대화에 재능이 없다.

쏴아아아!

모래사장을 사브작 밟으며 나아가니, 바다가 파도 소리가 나를 반겨 주었다.

다만 해변으로 밀려오는 포말은 어쩐지 회색을 띠는 것 같다. 물은 파르라니 깨끗해 보이는 것과 대비되었다.

“이야. 조개가 죄다 죽었네.”

뒤쪽에서 따라오던 데브가 소라 따위를 줍더니 곧 혀를 찼다. 입 벌리고 죽은 조개나 고둥이 다시 해변에 버려졌다.

“나리는 뭐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보다 인퀴지터도 그렇고 데브도 참 뚝심 있다. 며칠 동안 대답 안 해준 걸로 기억하는데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말 걸어오는 게.

아, 물론 나는 저런 사람 좋아한다. 돌아오지 않는 대답을 기다릴 수 있다는 건 그만큼 강인하다는 거니까.

“뭐든, 제거하면 해결되겠지.”

그렇다고 협조적으로 대답해 주진 않았다. 대답이라도 해준 게 어디야.

“꼭 힘을 쓰지 않아도 해결되는 문제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뭐어, 세상 대부분의 일은 그렇게 해결되는 경향이 크지마는.”

바삭

데브가 재잘재잘 떠드는 사이, 무언가가 내 밟에 밟혔다. 슬쩍 고개를 내린 채 발을 치워 보면 조금 특이하게 생긴 조개를 발견할 수 있다.

내가 밟았을 때 깨졌는지 안쪽이 살짝 드러났다.

“그건 뭡니까?”

잠깐만. 안에 조갯살 외에도 뭐가 있는데.

나는 고민하다가 신발 끝으로 갈라진 껍질을 툭툭 밀어냈다. 옆쪽으로 다가와 고개를 쭉 내밀었던 데브가 곧 귀를 바짝 세우며 비명을 질렀다.

“진주!!”

이게? 여기서? 이렇게? 뜬다고??

“진짜 진주잖아!”

나는 눈을 껌뻑이다가 이내 납득했다. 게임에서 보석은 생각보다 귀한 아이템이 아니었다.

아니, 귀하긴 귀한데 뭐라고 해야 하지. 대부분 아이템 제작이나 강화의 재료로 쓰이다보니 간간히 발견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게임에 따라 길가의 돌멩이처럼 흔하게 굴러다니는 경우도 많고.

“심지어 이 정도 크기에 광택이면…….”

그사이, 데브가 호들갑을 떨며 진주를 주워들었다. 도적 클래스답게 보석 대하는 법을 잘 아는지, 천을 두고 잡는 것도 잊지 않았다.

“못해도 150만 갈에 팔릴 겁니다.”

데브는 조심스럽게 진주를 천으로 감싸 내게 내밀었다. 본인이 가져갈 줄 알았는데, 본인 앞에서 제몫으로 삼을 만한 담력은 없었나보다.

“기사 나리 횡재하셨네요.”

대가 없이 움직이는 걸 싫어할 뿐, 재물욕이 있다고 설정하진 않았기에 데브가 가져도 뭐라 안 했겠지만…… 굳이 주는 걸 거부하지도 않겠다.

나는 천을 낚아채듯 받아들었다.

“별개로 저 마을 주민들은 아쉽게 됐습니다? 이 진주를 찾았으면 못 해도 보름 정돈 식량 걱정 덜었을 텐데. 코앞에 보물을 두고도 몰라봤네.”

…근데 150만 갈이 그 정도의 가치나 가졌어? 저기 마을 사람들 못 해도 쉰 명가량은 되어 보였는데.

나는 천 사이로 빼꼼 보이는 진주를 가만 보다가 그것을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인벤토리 내부는 시간이 흐르지 않으니, 이러면 보석이 덜 상할 것이다.

인벤토리의 여유는 더더욱 없어졌지만, 아무튼.

뜻밖의 불로소득이었다.

…어쩌면 이 퀘스트를 깨도 보상 못 받을 게 뻔하니까 게임이 미리 준 걸지도 모르고.

* * *

우리가 찾을 수 있었던 쾌거는 진주가 최고였던 모양이다.

해가 저물도록 주변 숲과 해변을 샅샅히 뒤졌지만 특별히 발견된 건 없었다. 기껏해야 사슴 두 마리가 다였다.

“아, 오셨습니까.”

“드디어 왔는…… 오? 사슴인가?”

아, 완전한 빈손이라 할 순 없겠다. 발견한 사슴 두 마리를 전부 잡았으니까.

“알면, 좀 도와주시죠…….”

참고로 사슴을 들고 온 건 데브다. 안 도와주고 싶었던 건 아닌데, 내가 사슴 들 거란 생각을 아예 안 했는지 본인이 두 마리 다 챙기더라고.

아까부터 손해란 손해는 본인이 알아서 보는 데브였지만, 굳이 정정해 주진 않았다. 으하학.

“이리 넘겨주세요.”

“세상에, 사슴을 두 마리나…….”

촌장과 그 아들이 서둘러 사슴을 받아들고, 데브는 그대로 뻗어 버렸다. 두 마리 다 새끼인지 크기는 좀 잘았으나 그래도 무게가 무게다. 녹초가 될 만했다.

“내일 분명 근육통이 일 거야. 분명 일 거라고…….”

데브는 의자에 젖은 빨래처럼 널브러졌다.

후드를 포대 삼아 사슴을 끌고 온지라, 방 안의 전등에 그의 얼굴이 훤히 드러났다. 지금껏 후드에 가려져 있던 얼굴은 생각보다 젋다. 혹은 어리다.

“뭐요, 뭘 그리 봅니까. 사람 얼굴 처음 봅니까?”

“아니…… 생각보다 젊어서 놀랐을 뿐이네.”

“흥. 고작 사슴 두 마리 든 걸로 빌빌대는 건가. 나약하기는.”

“이봐요. 내가 뭐 댁처럼 초인인 줄 압니까?”

수염 때문에 스물 후반이겠거니 했는데, 말랑말랑한 얼굴을 보니 인퀴지터와 동갑이어도 이상할 게 없을 성싶다.

물론 데브가 동안일 가능성이 없는 건 아닌데…… 인퀴지터랑 싸우는 걸 보면 최소한 정신연령은 또래다.

“결과는.”

그렇지만 내 컨셉은 데브 나이가 몇이든 신경 안 쓰니까! 나는 딴 길로 새려는 주제를 본래 궤도로 올렸다.

그제야 아크메이지와 인퀴지터가 반응했다.

“파도가 너무 험해서 제대로 조사하질 못했네. 그쪽은 어떤가?”

“혹 발견하신 게 있으십니까?”

발견한 게 있다면 당장 끌고 갔지.

나는 그저 인상을 구겼다. 무능하다고 매도하는 건 당장 나도 발견한 게 없으므로 관두었다.

“그쪽도 비슷한가 보군.”

아크메이지는 우리의 침묵을 그런 쪽으로 해석했다. 정확했다.

“그럼 뭐 어떻게 합니까? 이대로 시간만 보냅니까?”

“그래서야 쓰나. 새볔녘엔 그래도 파도가 잠잠하다는군. 해서 새벽에 다시 나가 보기로 했네.”

“헤에.”

“그럼에도 발견되는 게 없다면 그땐 도시로 가봐야겠지.”

그쯤 되어서 그녀는 내게 말을 걸어왔다.

“자넨 체력을 비축해 두게.”

그녀의 시선은 건물 밖에서 사슴을 다듬는 모자에게 닿아 있다.

“인퀴지터가 파도 사이로 해룡을 보았다고 했네.”

“예?”

저들에게 해룡은 신앙의 대상이니까, 듣지 못하게 배려한 건가. 스윗한 양반 같으니라고.

그런데 나한텐 왜 그랬냐. 사슬 PTSD를 자극한 건 아직도 좀 그렇다?

“파도나 폭풍을 잘못 본 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제 눈에는 분명 용이었습니다. 길고 가느다란 몸체나 어두컴컴한 하늘 사이로도 선명히 보이던 지느러미는…… 용밖에 가지고 있지 않으니까요.”

그사이, 아크메이의 눈짓을 받은 인퀴지터가 차분히 설명했다.

“다만…… 그 모습이 꼭 무언가와 싸운다 해야 할지, 날뛴다고 해야 할지. 보통의 상태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녀의 말에 데브가 기어코 튕기듯 몸을 일으켰다. 피로조차 잊을 만큼 경악한 게 아닌가 싶다.

“해룡이 이렇게까지 근해로 내려오는 경우는 굉장히 드무네. 하물며 인퀴지터가 보았듯 정말 무언가가 해룡에게 벌어진 거라면…….”

“…설마.”

“해룡을 곤란케 하는 무언가를 퇴치하거나, 최악의 경우 해룡 자체를 상대해야 할지도 모르지.”

데브가 결국 머리를 붙잡았다.

“그게 가능할 리 없잖습니까!”

지극히 인간적인 시야의 발언은 덤이었다.

“용 사냥인가.”

그렇지만 나에게 놀람은 어울리지 않으니까.

“기사 나리는 왜이렇게 침착한 건데요?!”

나는 데브의 경악을 흘려들었다.

오히려 기대도 좀 되었다.

용이면 좀 비싼 소재나 장비나 그런 걸 얻을 수 있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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