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465화 (465/649)

465화. 7층

골든애플 구역, 보니 스트리트 22호, 가이우스의 집.

이 원로의 사위인 치안관 월이 이곳에 한 번 더 방문했다.

서재로 들어온 월은 가이우스의 매부리코를 보며 책상 맞은편에 앉았다.

사실 월은 동쪽 군단 군단장이자 원로원 변혁파 대표인 장인어른이 이번에 퍼스트 시티에 와서 원로 회의에 참석하고 주민 집회를 소집한 후 한참이 지나도록 군단으로 돌아가지 않고 있는 이유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말해보게. 새로운 정보엔 어떤 것들이 있나?”

가이우스가 등받이에 기대 여유롭게 물었다.

월은 숨김없이 답했다.

“K라는 정보 제공자를 통해, 전에 마커스와 접촉해 특정 비밀을 취한 사람들이 반고 바이오 출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반고 바이오라⋯⋯. 과연 노스 앙헤포드 일에 관심을 보인 데엔 이유가 있었군. 그들은 분명 그곳에 중점적으로 신경 쓰고 있어. 거짓이 아냐.”

약간 안심한 듯 이야기하는 가이우스의 말에, 월은 어리둥절해졌다.

* * *

하늘이 희끄무레하게 밝아올 무렵, 누군가가 구조팀의 방문을 두드렸다.

“아침 밥이다!”

용여홍은 시카라 사원의 단조로운 메뉴가 싫었지만, 허기는 정직했다. 매일 똑같은 음식이라도 배고픔만 달랠 수 있다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그가 다가가 문을 여니, 밖에는 익숙한 젊은 중이 아닌 과묵해 보이는 회색 가운 차림의 승려가 서 있었다.

이 승려 역시도 레드리버인으로, 또렷한 이목구비에 눈동자는 청록색이었다. 그리고 잔나가처럼 비쩍 마른 편이지만 그렇게까지 야위어 보이지는 않았다.

그 승려가 가슴 앞에 손을 모아 합장하며 예를 갖췄다.

“시주님들, 신임 수석께서 부르십니다.”

성건우가 앞으로 나섰다.

“왜죠?”

회색 가운 차림의 승려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답했다.

“시주님들께서 며칠 전 밤에 들은 기이한 소리와 관련된 일입니다.”

‘설명을 하려는 걸까, 아니면 처리를 하려는 걸까?’

장목화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녀는 승려의 제안을 거절하지 않았다. 일단 수감자인 구조팀에겐 거절할 자격도 없었다.

* * *

그렇게 승려를 따라 방을 나선 구조팀은 계단 앞에 이르렀다.

승려는 고개를 돌려 구조팀 4명을 슥, 한번 살피더니 마치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 위로 향하는 계단에 발을 올렸다.

‘여기가 7층으로 가는데 구나…….’

장목화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 순간 장목화의 눈이 살짝 커지며 발은 허공에 멎어버렸다.

‘7층……?’

걸음을 뗀 후에야 장목화는 회색 가운의 승려가 자신들을 시카라 사원 7층으로 데려가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곳은 수정의식교 부처의 응신이 잠든 곳이었다. 무턱대고 진입했다가는 기이한 죽음을 맞게 될지 몰랐다.

장목화는 복근에 힘을 주고 앞으로 뻗은 오른발을 억지로 거뒀다. 동시에 그녀가 낮은 목소리로 외쳤다.

“멈춰!”

그때, 성건우도 반응에 나서고 있었다. 허리와 등을 살짝 젖힌 그는 회색 가운을 입은 승려의 눈동자가 깊고 어두워지는 것을 보았다.

억지쟁이! 성건우가 가장 먼저 발휘한 능력이었다.

장목화의 경고를 듣고, 용여홍과 백새벽은 무의식적으로 멈추려 했지만 미처 관성을 극복하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그 순간, 한발로만 가까스로 버티고 있던 장목화가 왼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에서 급속도로 부풀어 오른 은백색 전광 한 덩어리가 허공을 가르며 회색 가운 차림 승려의 몸통에 떨어졌다.

하지만 승려의 표정은 여전히 뻣뻣했으며, 아무 변화도 없었다. 눈빛도 흔들림이 없었다. 마치 전기 충격을 받은 게 다른 육신이기라도 한 듯했다.

성건우의 억지쟁이 능력도 그의 몸에 어떤 흔적도 남기지 못했다. 승려는 멍한 태도 그대로 반쯤 몸을 틀어 그 자리에 섰다. 비이성적인 행동 같은 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 후 승려의 청록색 눈동자에서 기이한 빛이 피어올랐다. 꼭 그의 얼굴에 고체화된 숙명통으로 이뤄진 보리자 두 개가 박혀있는 것만 같았다.

정신이 아득해지던 그때, 용여홍은 어느덧 회사로 돌아가 공동 결혼으로 한 여자와 결혼을 했다. 그 후 내근직으로 전환한 그는 근면 성실하게 일하며 딸 둘과 아들 하나를 키웠다.

점차 나이가 들며 그의 육신은 점차 노쇠해졌지만, 유전자 개량의 효과 덕에 수시로 병원 신세를 질 필요까지는 없었다.

그가 진정한 노화를, 서서히 가까워지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무기력감을 느끼기 시작한 건 일흔 살이 지난 후부터의 일이었다.

무엇보다 그를 힘들게 하는 건 속속들이 무심병에 걸린 아내와 큰 딸이었다. 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그들을 지켜보는 것뿐이었다.

여러 통증은 그의 몸에 흔적을 남겼고, 용여홍은 인간이란 평생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는 존재인가 싶어 깊은 고뇌에 빠졌다.

임종 직전의 순간, 그는 유리 같은 빛에 휩싸인 세상을 목격했다. 보리수와 높은 탑으로 가득한 그곳에서는 황금과 은, 수정, 호박 등이 지천에 널려 있거나 여러 건물을 장식하고 있었다.

아주 평안하고 고요한 그곳에 굶주림과 고통은 없었다. 용여홍은 그것이 바로 자신이 기대한 모든 것이라 생각하며 그 세상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그리고 성건우는 야수로 변해 있었다. 때로는 아우, 울부짖고, 때로는 다른 동물을 뜯어먹으며 비이성적인 상태로 짧은 삶을 살았다.

노쇠한 그는 결국 다른 야수에게 사냥당하고, 상대의 먹잇감이 되었다.

거칠게 뜯어먹히는 고통 속에, 머리에선 누군가의 음성이 울려 퍼졌다.

- 이런 상태를 원하는 것이냐?

몽롱한 가운데, 성건우는 다시 교실을, 아이들을 보게 되었다. 귓가엔 선생님이 수업하는 소리와 아이들이 책 읽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저도 모르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청성산 아래 백소진, 동굴에서 천 년 동안 수행하여 이 몸이 되었다네⋯⋯.”

순간 수업 중이던 선생님과 아이들이 멍한 표정을 드러냈다.

그리고 성건우는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황야에 선 백새벽의 양손에는 아이스모스와 연합202가 들려 있었다.

그녀는 끊임없이 달리고, 총을 쏘며 자신을 공격하려는 황야의 강도나 유랑자, 아류인들을 한 명씩 쓰러뜨렸다.

흐른 선혈은 대지를 물들였고, 짙은 피비린내는 그녀의 코를 파고들었다.

이런 생활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하루, 또 하루, 1년, 또 1년이 가도 백새벽은 끊임없는 전투와 살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결국 극심한 피로와 분노에 잠식된 그녀는 방심한 나머지 누군가의 총에 맞게 되었다.

탕!

백새벽은 온몸을 휩쓰는 끔찍한 고통을 느꼈다. 동시에 마침내 벗어났다는 기쁨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또 어렴풋이 왠지 자신이 살아날 것 같다는, 계속해서 이러한 도주와 살인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안돼⋯⋯.’

그때 그녀의 눈앞에 한 도시가 나타났다. 크진 않아도 평안했고, 광기에 휩싸여 서로를 잔혹하게 죽이려는 이도 없는, 엄연한 질서가 있는 도시였다.

입술을 오므린 백새벽은 황급히 그곳으로 뛰어들었다.

한편, 장목화는 실험실로 돌아와 있었다.

그녀는 매일 바삐 실험하며 얻은 결론들에 기뻐했다. 그녀의 삶에 굶주림, 추위, 피로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았다. 집중과 초연만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그녀도 늙어가기 시작했다. 몸도 더 이상 깨끗하지 않았고 갈수록 초조하고 불안해졌다.

장목화는 죽을 때까지 이런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다가, 잠든 사이 아무 지각도 없이 영원한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녀는 그 상태에서 벗어나려 노력했다.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도, 세상의 그 어떤 것도 느끼지 못하게 되는 일도 원치 않았다.

그러던 와중, 뻗은 손끝에 문 하나가 만져졌다.

시커먼 짝문 뒤쪽으로 풍요로운 대지와 찬란한 햇빛이 펼쳐져 있었다. 이곳에는 기아도, 괴물도, 감염도 없으며, 병증과 노화도 없었다.

장목화는 양손을 번갈아 뻗으며 사력을 다해 그 안으로 기어가려 했다.

육도윤회!

동시에 육도윤회가 강림했다.

인간의 고난, 축생의 무지, 수라의 살육, 천인의 노화.

* * *

구조팀 네 사람은 이렇게 각기 다른 상태에 처한 채 7층으로 향했다.

계단을 오르다 보니 곧 아무도 없고 고요한 7층 복도가 나타났다.

그때였다. 성건우는 머리에 쥐가 나 생각이 멋대로 튀고 인격이 바뀌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린 듯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계단 입구를 바라봤다.

회색 가운 차림의 승려가 그곳에 서 있었다. 얼굴은 푸른빛이 도는 보라색으로 바뀌었고, 동시에 죽 내민 혀……. 어느새 질식해 죽은 상태였다.

쿵!

계단 위로 그대로 쓰러진 승려는 두세 계단 아래로 굴러떨어졌다.

그가 죽음에 따라 육도윤회의 효과는 사라졌다. 장목화, 용여홍, 백새벽도 멍하니 걸음을 멈추고 소리가 들려온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세 사람 역시도 승려의 시체를 목격했다. 조금 전 억지쟁이와 고압 전류의 영향을 무시했던 회색 가운 차림의 승려는 이미 시신이 되어있었다. 그리고 그 몸에는 전류로 검게 탄 흔적과 질식으로 인한 갖가지 징후가 남아있었다.

이 순간, 용여홍의 머릿속엔 가장 먼저 이 생각이 떠올랐다.

‘제기랄, 저 사람은 자살을 통해 우리를 모함하려는 거야.’

자살을 택한 이유는 주위에 다른 이가 아무도 없기 때문이었다.

놀란 마음을 안은 채 주위를 둘러보던 장목화가 내뱉듯 물었다.

“여기가 7층이야?”

“이론상으론 그렇죠. 저희가 한층 더 올라 8층에 온 게 아니라면요.”

성건우가 답했다. 그러나 시카라 사원에 8층은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가 7층에 왔다고? 아무것도 모르는 새에?’

용여홍은 온몸이 다 긴장됐다. 시카라 사원 7층, 결코 좋은 공간이 아니었다. 극소수의 몇몇을 제하면 모든 진입자가 소리소문없이 기이한 죽음을 맞을 수 있었다. 그들을 7층으로 이끈 회색 가운 차림의 승려도 통풍이 잘되는 이 복도에서 이렇게 질식사했잖은가.

마찬가지로 긴장한 백새벽이 곧장 입을 열었다.

“당장 떠나죠!”

그녀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복도에 한차례 바람이 불었다.

휘익-

그리고 구조팀이 있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방에서 뭔가 소리가 났다.

끼익-

쾅!

뒤로 홱 열린 방문이 벽과 충돌했다.

복도 양쪽에 흐릿한 빛이 있지만, 등불이 없는 구역은 어스름했다.

장목화는 활짝 열린 그 방 안의 깊고 짙은 어둠을 응시했다. 정말 모든 빛을 다 삼킬 수 있을 듯한 어둠이었다.

“왼쪽에서부터 셌을 때 세 번째 방이네요.”

성건우의 말에, 용여홍도 가만히 눈동자를 굴렸다.

‘시카라 사원, 7층, 세 번째 방⋯⋯. 노크로 암시된 그 방이잖아?’

용여홍은 하마터면 찬 숨을 들이마실 뻔했다. 도망치기엔 너무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가 생각하기에는 그것만이 유일한 선택지인 것 같았다.

백새벽도 마찬가지였다. 여기 더 이상 머무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 순간이었다. 그들은 갑자기 모종의 부름을 느꼈다. 열린 방 안의 무언가가 그들을 부르고 있는 듯했다.

이에 당장 도망치려던 구조팀원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곧장 계단으로 달려가지 못하고 다들 제자리에 멍하니 서 있는데, 급기야 모두의 머릿속에 길고 가는 목소리가 울리기까지 했다.

- 이리 와⋯⋯, 이리 와⋯⋯, 이리 와⋯⋯.

“안 되지!”

성건우가 곧장 자신에게 억지쟁이 능력을 발휘했다. 물론 장목화, 용여홍, 백새벽에게도 영향을 발휘해 부름에 저항하도록 지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난 여기서 기다릴 거야! 어디에도 안 갈 거야!”

용여홍이 외쳤다. 억지쟁이가 된 그는 그 소환에 응하고 싶지도, 도망치고 싶지도 않았다.

장목화의 반응은 성건우와 비슷했다. 정신을 차린 그녀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명령을 내렸다.

“계단으로 물러나.”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 전, 활짝 열려 있던 방문이 보이지 않는 힘에 떠밀린 듯 다시 닫히려 했다.

휘익-

그런데 갑자기 바람 소리가 빨라지며 문 닫히는 속도를 대폭 낮췄다.

짙은 붉은색 나무 문이 완전히 닫히려던 그때, 아주 오랫동안 말을 하지 않은 듯 누군가의 거친 목소리가 힘겹게 울려 퍼졌다.

“호움⋯⋯, 호움⋯⋯.”

쾅!

문은 이내 완전히 닫히며 모든 기척을 막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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