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464화 (464/649)

464화. 합창

북안 뭇산, 어느 폐허 도시 가장자리.

한명호는 백미러를 보며 다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추적을 따돌리지 못한 것 같아.”

“갖가지 현상으로 보면 네 느낌은 틀리지 않다.”

게네바가 한명호의 판단에 동조했다.

“……그래?”

정도연이 약간 골치가 아프다는 듯 조그맣게 중얼거렸다.

불모지는 광활하고 또 환경이 복잡한 곳이었다. 이에 정도연은 가장자리만 맴돌며 초봄 마을 주위 구역에 접근하지만 않으면, 퍼스트 시티 정규군을 일부러 자극하지만 않으면 남들에게 특정 당하진 않으리라 생각했었다.

게네바가 금속 목을 움직이며 말했다.

“추적에는 기술적인 역량 말고 특정 각성자의 능력도 사용될 수 있다. 개처럼 예민한 후각을 예로 들 수 있지.”

정도연은 걱정하는 대신 추적에서 벗어날 방법부터 고민하기 시작했다.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던 그녀가 말했다.

“그럼 오염도 좀 심각하고 주위 환경이 더 복잡한 곳으로 가자. 그럼 적들의 추적을 방해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곳에 가더라도 지나치게 오래 머무르지만 않으면 별문제는 없을 거야.”

“난 상관없다.”

게네바는 오염을 크게 두려워하지 않았다.

한명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방도가 없으니 어쩔 수 없지.”

* * *

정오 무렵, 구조팀은 잔나가를 다시 만났다.

그들을 친히 찾아온 이 원각자는 전에 부탁받은 상황을 알려주었다.

“시주님들이 제공한 혈액 샘플과 스캔 결과는 이미 전문 의료 기구에 보냈습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대략 4, 5일 정도가 걸린답니다.”

“감사합니다, 선사.”

성건우가 진심을 담아 감사 인사를 했다.

잠시 문밖을 보며 머뭇대던 장목화는 잔나가를 쳐다보았다.

“선사, 식사 끝나고 복도만 좀 걸어도 될까요? 내내 방에만 있으려니 아무래도 감옥 생활을 하는 것처럼 갑갑하고 불편해서요.”

‘……이제야 그런 생각이 들었다고요?’

용여홍이 황당한 듯 장목화를 쳐다보았다. 구조팀은 애초부터 잔나가에게 납치된 것과 다르지 않았다.

잔나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 층을 떠나지 않는 한은 가능합니다.”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사.”

장목화의 목소리가 매우 경쾌해 보였다.

잔나가가 떠난 뒤, 용여홍은 그제야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팀장님, 왜 그런 부탁을 하신 거예요?”

장목화가 웃으며 설명했다.

“만약 우리가 계속 7층에 올라가지 않고 버티면 문을 두드린 사람은 더 많은 암시를 해올 거야. 그런 상황에서 복도라도 돌아다닐 수 있으면 뭐라도 발견할 수 있을지 모르잖아.

아, 선사, 만약 듣고 있다면 제발 이 이상한 현상 좀 처리해주세요. 더는 저희를 괴롭히지 못하게요, 이렇게.

그럼 저녁에는 회사에 전보를 보내 피드백 받을 수 있을지 확인하자.”

“그러네요⋯⋯.”

장목화가 무턱대고 7층에 올라갈 생각이 없는 것을 확인하고, 용여홍은 비로소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성건우는 신난 듯 복도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 * *

하늘이 좀 어둑해졌을 때, 구조팀은 막 복도에 진입하자마자 7층에서 내려오는 사람들을 목격했다. 회색 가운을 입은 승려 두 명이었다.

다소 뻣뻣한 표정과 멍한 눈빛을 드러낸 그들은 앞뒤로 서서 묵직한 나무 상자 하나를 옮기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앞쪽의 승려가 뭘 밟았는지 휘청이는가 싶더니 몇 번 비틀거리다가 그대로 넘어지고 말았다.

쿵!

그의 손을 벗어난 상자는 그대로 떨어져 옆쪽으로 넘어갔다. 상자는 뚜껑마저 날아가고, 안에 들어있던 것들을 다 쏟아냈다.

복도 등불 아래, 용여홍은 멀찍이서 쏟아져 나온 무언가를 목격했다.

푸른빛이 감도는 보라색으로 질려있는 피부, 길게 늘어진 혀, 그리고 잔뜩 일그러진 표정을 한 얼굴이었다.

고개를 쭉 빼고 그쪽을 살피던 용여홍은 곧장 목을 움츠렸다. 심장은 미친 듯이 빨리 뛰고 있었다.

죽은 사람……. 7층에서 내려온 승려들이 옮기던 건 죽은 사람이었다.

장목화는 바로 몸을 틀어 복도 한쪽 벽에 기대섰다. 동시에 왼손으론 성건우의 어깨를 잡고 문 쪽으로 끌어당겼다.

백새벽도 민첩하게 한 발 뒤로 물러나 방으로 들어갔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적막 속, 계단 쪽에선 마찰음과 나무 상자가 닫히는 소리가 속속들이 흘러나왔다.

장목화는 몸을 살짝 앞으로 기울여 조심스레 그쪽을 내다보았다.

뻣뻣한 표정의 두 승려는 다시 상자를 들고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뜻밖의 상황으로 인해 넘어지면서 상자를 떨어뜨리는 일이 발생했음에도 두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더 기이한 건, 그들은 주위를 관찰하지도, 누군가 그 상황을 봤는지 확인하지도 않았다는 점이었다.

회색 가운을 입은 두 승려가 층계참 너머로 사라지자, 장목화는 고개를 돌려 손동작으로 팀원들에게 자신을 따라 방으로 돌아오란 신호를 보냈다.

* * *

방으로 들어온 팀장이 문을 닫자 용여홍은 그제야 충격과 두려움에 점철된 얼굴로 조그맣게 이야기했다.

“저게 바로 악마에게 유혹당해 7층으로 향한 사람의 결말일까요?”

시체가 되는 것!

용여홍의 소리가 얼마나 작았는지, 장목화는 손을 들어 와우를 만지작거린 끝에 겨우 용여홍의 목소리를 들었다.

그녀가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꼭 악마에 유혹 당했으리란 법은 없지.”

용여홍의 표정에 미묘한 변화가 이는 사이, 그녀가 덧붙였다.

“다른 이유 때문에 7층에 들어간 것일 수도 있잖아. 아무튼 그 시체도 분명 승려였을 거야. 머리카락이 없었잖아. 사인은 질식인 것 같고.”

어떻게 질식했는지는 너무 멀리서 힐긋 본 것이라 짐작할 수 없었다.

어쨌든 용여홍은 이런 상황을 다행스러워했다.

“문 두드린 사람을 믿지 않고, 무턱대고 7층으로 올라가지 않아서 다행이에요. 안 그럼 지금쯤 그 상자에는 우리가 들어있었겠죠.”

성건우가 용여홍이 묘사한 광경을 상상하며 중얼거렸다.

“그런 상황에 어울리는 노래가 한 곡 있지.”

하지만 동료 중 누구도 그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장목화는 그의 발언을 당연하게 무시하고 용여홍에게 답했다.

“그 승려를 죽인 건, 심지어는 그를 7층으로 끌어들인 건, 아마 문을 두드린 사람이 아닐 거야.”

“어⋯⋯.”

용여홍은 순간 혼란에 휩싸였다.

그 사이 백새벽이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

“그렇겠네요. 만약 문을 두드린 사람이 우릴 7층으로 끌어들이려 했다면 한 이틀 정도는 행동을 삼가고 어떤 기이한 죽음도 일으키지 않았을 거예요. 혹시 우리가 그 광경을 보면 절대 7층에 올라가려 하지 않을 테니까요.”

“하긴⋯⋯.”

용여홍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얌전히 듣고 있던 성건우가 덧붙였다.

“위층에는 부처의 응신과 악마가 있다고 했죠. 누가 문을 두드렸고, 누가 조금 전의 그 승려를 죽였을까요?”

용여홍은 당연히 그 악마가 자신들을 꼬드기려 문을 두드린 것이라 답하려 했다.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 보니 7층에 들어온 승려에게 기이한 죽음을 안기고, 그 광경을 본 구조팀을 질겁하게 한 것이 부처의 응신이란 결론이 도출되었다. 이 경우에는 과연 어느 쪽이 부처고, 어느 쪽이 악마일까?

안 그래도 이에 대해 고민하고 있던 장목화가 답했다.

“만약 부처의 응신이 문을 두드리는 방법으로 우릴 위층으로 유인한 거라면, 조금 전 그 승려를 죽인 건 우릴 저지하기 위한 악마의 짓일 거야.

근데 부처의 응신이 우리를 만나려 했다면 7층을 지키는 원각자를 이용하는 게 더 빠르지 않나? 그쪽이 훨씬 더 간단하고 편한데. 설마 우리와 만나려는 걸 수정의식교 원각자들에게도 알릴 수 없었던 건가?”

백새벽이 답했다.

“7층 상황이 우리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할 수도 있죠. 부처의 응신은 어쩌면 노크와도, 살인과도 아무 관계가 없을지도 몰라요. 그저 진압과 균형 유지에만 노력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잖아요.”

성건우가 나섰다.

“맞아요, 맞아요. 어쩌면 그 역시 여든한 갈래로 분열돼있을지 몰라요. 개중에는 우리를 죽이려 하는 이도 있고, 우리 손을 빌려 뭔가를 하려 하는 이도 있고, 이 모든 걸 막으려는 이도 있고, 중도적인 이도 있고, 옆에서 목탁을 두드리며 불경만 읊고 있는 이도 있는 거죠.”

말을 이으면 이을수록 성건우의 감정은 격앙되었다.

장목화가 보기엔 말도 안 되고 황당무계한 얘기로 들렸지만, 보리 영역의 대가를 감안한다면 또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성건우의 말이 사실일 가능성은 분명 존재했다. 결국 그녀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만한 급의 존재와 연루되는 건 아무래도 위험해. 그러니 아무 짓도 하지 않는 게 좋겠어.”

용여홍은 쌍수를 들고 환영하고 싶은 충동을 애써 참았다. 백새벽 역시 그게 가장 이성적인 결정이라 생각했다.

성건우는 다시 잠들어 버린 가리발디를 힐긋 보더니 한숨을 뱉었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그에게 자신을 포용하는 방법을 배우고 싶었는데.”

같은 대가를 치른, 더 높은 급의 각성자를 만나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성건우의 추측일 뿐이었다. 실제로 그러리라 보장할 수는 없었다.

* * *

저녁이 되어 장목화는 지난 이틀간 일들을 회사에 보고할 준비를 했다.

잔나가 등의 승려에게 들키는 것을 막고자 5대 성지를 언급하진 않았다. 팀원들에게도 그에 관한 생각은 최대한 삼가라고 일러둔 바 있었다.

나중에 회사로 돌아가면 폐허 철강 공장에 다시 방문할 수 있게 해달라고 신청한 뒤 그 성지에 대체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는지 확인할 작정이었다.

전보를 막 발송하려던 그때였다. 시카라 사원 주위 구역 특정 거리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야옹, 야오옹. 야오오옹.

뭔가 고통을 참는 듯 애처로운 소리였다.

순간 다른 곳에서도 각기 다르지만 하나같이 애처로운 고양이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기복을 이루는 소리가 서로 어우러져 이어지고 있었다.

백새벽은 창밖을 내다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이 시기에도 발정기인 고양이가 있네⋯⋯.”

할 일을 마친 장목화도 고개를 들었다.

“아직 가장 더운 시기는 아니니까.”

백새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레드울프 구역에는 있을 수 있죠. 그린올리브 구역에는 살아있는 고양이라곤 찾아볼 수도 없지만요. 어, 특수한 능력이 있는 고양이는 빼고요.”

그린올리브 구역의 상당수가 매일 배불리 먹지 못했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쥐라도 잡아먹으려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백새벽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성건우가 창가로 달려가 외쳤다.

“야옹!”

“⋯⋯.”

팀원들은 이에 놀라긴 했어도 딱히 충격을 받진 않았다. 이제는 성건우가 어떤 짓을 해도 크게 충격받을 일도 없을 것 같았다.

작년 처음으로 지상에 올라왔을 때도 그는 멀리서 들려온 소리에 ‘아우!’하고 합창한 적이 있었다.

그래도 장목화는 회사 수신 확인 전보를 기다리며 성건우를 돌아보았다. 팀장으로서 나름대로 자제시키기 위해서였다.

바로 그때였다. 그녀는 성건우가 흰색과 파란색이 섞인 확성기를 꺼내는 걸 목격했다.

‘확성기⋯⋯.’

장목화의 눈이 멍해진 동시에, 성건우가 확성기를 입에 갖다 댔다.

“야옹!”

멀리까지 울려 퍼진 소리에 놀란 고양이들이 울음을 뚝 그쳤다.

“야옹!”

그에 그치지 않고 성건우는 계속해서 우렁찬 울음소리를 냈다.

도구를 가진 사람은 확실히 달랐다.

그때, 구조팀의 마음속에서 잔나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 시주님들, 좀 조용히 해주십시오. 밤 중에 다른 이들을 시끄럽게 해서는 안 됩니다.

“아, 네. 실례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성건우는 바로 잘못을 시인하고 확성기도 전술 배낭에 집어넣었다.

‘드디어 조용해졌네.’

용여홍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잠자리에 들 때쯤, 장목화가 불쑥 침대에 누운 성건우를 보며 물었다.

“효과가 있을까?”

성건우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무래도 어렵죠.”

‘……?’

불침번을 맡은 용여홍이 어리둥절한 얼굴을 했다.

그로부터 10여 초가 흐른 뒤에야 그는 장목화가 뭘 물은 건지 어렴풋이 짐작했다. 아까 전 성건우의 돌발 행동도 단순 발작이 아닌 모양이었다.

‘건우는 어쩌면 한동안은 억누를 수 없는 발작 증세를 이용해, 수면 고양이나 가위 말의 주의를 끌려 한 건지도 몰라. 아, 잠시만. 안 돼, 안 돼. 더 이상 생각하지 말자. 잔나가 대사가 들을지도 모르잖아.’

용여홍은 급히 내일 아침 식사 메뉴 쪽으로 생각을 틀었다.

‘휴, 생각할 것도 없지. 오트밀에 빵 아니면, 오트밀에 토스트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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