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9화. 경계하는 마음은 영구히 존재하리
안타나 스트리트로 가는 와중, 구조팀은 여러 임시 검문소를 목격했다.
다행히 구조팀엔 지능인 게네바가 있어,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미리 검문소를 발견하고 우회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검문소 역시도 주로 안타나 스트리트 쪽에서 온 차와 행인만 검사할 뿐, 안타나 스트리트 쪽으로 향하는 차나 사람은 엄격하게 조사하지 않았다.
덕분에 구조팀은 매우 순조롭게 안타나 스트리트 주위 구역에 도착했다. 동시에 그들은 돌아가는 데 이용할 안전 노선을 마련하기도 했다.
“길가에 세워.”
장목화는 차창 밖을 살피며 운전하는 성건우에게 지시했다.
아무 의문도 표하지 않고 길가에 지프를 세운 성건우가 웃으며 물었다.
“친구를 사귀어야 하나요?”
“응, 맞아. 친구에게 뭘 시켜야 할지는 알고 있지?”
고개를 살짝 끄덕이던 장목화가 습관적으로 물었다.
성건우가 당당하게 답했다.
“방패막이로 삼아야죠.”
“⋯⋯.”
뒷좌석의 한명호는 이해할 수 없는 그들의 대화에 입꼬리를 뒤틀었다.
‘너희들이 생각하는 친구란 방패막이였던 거냐?’
그때, 차를 세운 성건우가 한명호를 향해 몸을 틀더니 빙그레 웃었다.
“애쉬랜드에서 모험할 때는 세 가지가 필수야. 총, 칼, 그리고 친구.”
농담이란 걸 대충 짐작한 한명호는 호응 대신 다른 걸 물었다.
“왜 곧장 주차장으로 안 가는 거지?”
한명호가 보기에 이 일은 매우 간단했다. 위장도 했고, 주차장은 이미 조사의 중심에서도 벗어났을 테니 바로 들어가 차를 가져오면 될 일이었다.
장목화는 그 질문에 답하는 대신 성건우에게 말했다.
“적합한 대상을 잘 찾아봐. 최대한 안타나 스트리트에 숨어 사는 도망자를 골라야 해.”
안타나 스트리트에 숨어 사는 도망자는 당연히 그 사실을 얼굴에 새기거나 머리 위에 띄워놓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을 판별해내기도 쉬웠다.
그들은 상대적으로 남루한 옷차림도 아니었고, 허리춤에는 대개 권총을 숨기고 있었으며 눈에는 악의가 어려 있었다.
역시 성건우는 단 몇 초 만에 친구로 삼을만한 적당한 대상을 찾았다.
야구모자를 푹 눌러쓰고 선글라스를 낀 성건우가 차에서 내려 팔뚝에 흑청색 문신을 한 그 청년에게 다가갔다.
청년은 곁눈으로 접근하는 성건우를 확인하고, 곧장 경계심을 곤두세우며 손을 허리춤으로 가져갔다.
“안녕, 길을 좀 물으려고 하는데.”
성건우가 선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 바닥에서 길 물으려면 돈부터 내야지.”
청년은 차가운 얼굴로 대꾸했다.
성건우도 바로 지폐를 꺼내려는 듯 손을 주머니에 넣으며 말했다.
“알지, 알지. 봐봐, 우리는 모두 성인 남자야. 너는 총과 몸으로 돈을 벌고, 나도 총과 몸으로 돈을 벌지. 그러니까⋯⋯.”
청년의 얼굴에 점차 미소가 피어났다.
“친형제라고 해도 돈에는 경계가 있는 법이야. 그래, 경계. 난 이 단어가 꽤 마음에 들더라고. 우리 형님이 수시로 하는 말이거든.”
성건우는 그에게 1오레이 지폐를 건넸다.
“네 도움이 필요해.”
“나한테 맡겨!”
청년은 한 손으로는 지폐를 받아들고, 한 손으로는 자신의 가슴팍을 탕탕 두드리며 강한 자신감을 표했다.
성건우는 빠르게 돌아서서 지프를 향해 외쳤다.
“도 씨, 이리 와봐!”
자리에 앉은 한명호는 누구를 향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성건우의 외침에 멍한 표정을 드러냈다.
그러다 머지않아 성건우가 자신을 부르고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리고 장목화를 쳐다보았다.
장목화는 한명호에게 고개를 살짝 끄덕여 보였다.
문을 열고 차에서 내린 한명호가 성건우 옆으로 다가갔다.
성건우는 즉각 문신한 청년을 가리키며 말했다.
“차 세워둔 장소랑 차 모양 좀 알려줘. 차 열쇠도 넘기고.”
한명호는 이런 상황이 영 미심쩍었지만 일단 성건우의 말에 따랐다.
청년은 차 키를 갖고 자리를 떠났고, 한명호는 그를 잠시 눈으로 좇다가 성건우와 함께 지프로 걸음을 옮겼다.
“왜 나를 도 씨라고 부른 거야?”
성건우는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이미 네 본명이 폭로됐잖아. 어떻게 네 이름을 불러? 위험하게. 넌 원래 레드스톤 마켓 치안관이었고, 거기 있던 애쉬랜드인 중엔 도씨 성을 가진 사람이 제일 많았으니까.”
‘일리가 있긴 한데 지나치게 멀리 돌아온 것 같은데.’
한명호는 이렇게 생각하면서도 말로는 하지 않고 지프에 올라탔다.
성건우도 운전석에 오르자, 한명호는 그제야 장목화에게 물었다.
“이렇게까지 신중하게 굴 필요는 없잖아?”
차를 가져오겠다고 알지도 못하는 낯선 사람을 찾다니.
장목화는 자조하듯 웃었다.
“이 세상엔 기이한 능력이 너무 많아. 그중 어느 능력을 맞닥뜨리게 될지는 절대 알 수가 없지. 거기다 퍼스트 시티란 이 대형 세력엔 강자도 상당해. 그러니 신중할 수 있다면 최대한 신중해야 고생을 피할 수 있어.”
구조팀은 이런 방면에서 따끔한 교훈을 얻은 바 있었다. 포카스에게 다른 계략이 있는 게 아니었더라면 그들은 벌써 된통 당하고도 남았을 터였다.
한명호도 레드스톤 마켓에서 몇 년간 치안관으로 일하며 경계 교파와 장기적으로 교류를 해왔던지라 장목화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무엇보다 구조팀이 아무리 신중하게 군다 한들 경계 교파만큼 과장되게 행동할 리는 없었다.
“방금 그 사람은 믿을 만해?”
한명호는 그가 차를 갖고 그대로 튀어버릴까 걱정스러웠다.
혹여나 질서의 손에 자신들을 불어버릴 가능성은 생각하지 않았다. 한명호도, 성건우도 위장한 상태고, 남자도 질서의 손이 쫓고 있는 수배범이란 걸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눈치였었다.
“걱정하지 마, 우리는 친구니까!”
성건우가 자신만만하게 답했다.
아무 대꾸도 없는 한명호의 눈동자에 살짝 떨림이 일었다.
* * *
안타나 스트리트 서북쪽, 6층 높이 건물.
6층 어느 방에선 한 남자가 유리창 너머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주차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구세계에서도 구식 취급을 받았을 검은색 가운을 걸친 그는 머리카락이 마치 폭탄이라도 맞은 듯 부스스했다.
그 머리칼엔 흰머리가 적잖게 섞여 있었고, 긴 얼굴은 갸름했지만, 광대가 약간 두드러졌고, 눈가와 입가의 주름은 그의 세월을 말하고 있었다.
이 노인은 시종일관 같은 자세를 유지한 채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이따금 움직이는 파란 눈동자만 아니었다면 꼭 밀랍 인형처럼 느껴졌을 정도로 아무 미동이 없었다.
남자는 마커스의 보호자이자, 가상 세계의 주인인 나시스였다.
수정의식교 내 예언에 능한 원각자(圓覺者)로부터 목표가 오늘 특정 시간에 그 주차장에 다시 돌아오리라는 이야기를 들은 나시스는 친히 이곳에 이르러 직접 감시에 들어갔다.
현재 그 주차장은 이미 가상 세계에 뒤덮여 있었고 그곳을 왕래하는 이들의 행동은 모두 걸러졌다. 시간이 흐르는 동안 사람들은 끊임없이 주차장에 방문해 낡거나 오래된 차를 가지고 갔다.
그들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이 가상 세계에 의해 선별된 것임은 알지도 못했고, 여러 프로그램의 지원을 필요로 하는 일을 할 이유도 느끼지 못했다.
이때 반팔 티셔츠 차림에, 팔에 흑청색 문신을 한 젊은 남자가 주차장에 들어왔다. 차 키를 꺼낸 그는 기억에 의지해 그 키에 맞는 차를 찾았다.
그와 관련된 정보는 즉시 가상 세계에 복제돼 대비과정을 거쳤다.
최종적인 결론은 ‘문제없음’이었다.
남자는 일정한 시간을 들인 끝에 ‘본인’이 이곳에 며칠 세워둔 검은 SUV를 찾고, 바로 주차장 밖으로 빠져나갔다.
* * *
녹회색 지프와 짙은 검은색 SUV는 앞뒤로 서서 안타나 스트리트 주위 구역을 빠져나왔다.
한명호는 장목화의 신중함이 어떤 효력을 발휘했는지는 몰랐지만, 이미 목적을 달성했으니만큼 더 이상 무엇도 물고 늘어지지 않았다.
이들은 임시 검문소가 없는 곳만 골라 이리저리 방향을 튼 끝에 골든그레인 구역의 안전 가옥으로 무사히 돌아왔다.
“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요?”
백새벽이 물었다.
그녀는 안타나 스트리트에 갔다가 돌아오는 데 필요한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장목화가 답했다.
“움직인 김에 보수도 받고, 돈도 갚고, 기계 팔도 찾았지. 자, 오늘은 더 이상 밖으로 나가지 말고 쉬어. 내일은 수종이한테나 다녀오자.”
수종?
한명호와 정도연의 머릿속에는 동시에 물음표가 떠올랐다.
이 팀이 위기에 처한 와중에도 만나야만 하는 상대는 누굴까? 도시 내의 특정 세력을 통제하는 사람인가? 얼마나 강한 사람이지?
게다가 칭호로 봤을 때 상대의 나이는 많지도 않은 듯했다. 분명 장목화보다는 어린 게 확실했다.
‘그래도 이건 너무 어리잖아⋯⋯.’
정도연은 컴퓨터 앞에 앉은 검은 머리의 남자아이를 보고 하마터면 자신의 눈을 의심할 뻔했다.
한명호도 마찬가지였다. 더 놀라고 혼란스러운 건 바로 구조팀의 모습이었다. 일부는 그 남자아이와 게임을 했고, 일부는 주방일을, 또 다른 일부는 방 안을 청소하고 있었다. 마치 전문적인 보모 같았다.
이들이 무려 몇만 오레이나 되는 현상금이 걸린, 어마어마한 짓을 저지른, 감히 질서의 손에 대항하려는 위험한 팀이란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자리에 멍하니 선 한명호와 정도연은 이러한 광경에 좀처럼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지금 그들의 눈앞에 보이는 모습은 일반적인 주민의 집 안 풍경과 다를 게 없었다. 너무도 따뜻하고 밝은 분위기였다.
그러던 그때, 정도연의 귀에 무슨 소리가 닿았다.
야아옹.
‘고양이도 키우는 건가?’
무의식적으로 발코니를 향해 고개를 돌린 정도연의 시야에 무슨 악몽 속에서나 볼법한 생물이 들어왔다.
붉은 근육이 밖으로 드러난 그것은 거의 길이가 1미터에 달했고, 어깨엔 하얗고 뾰족한 뼈가 자라나 있었다. 거기다 단단해 보이는 갈색 껍데기로 뒤덮인, 침이 돋은 전갈 같은 꼬리도 있었다.
화들짝 놀란 정도연은 본능적으로 문 쪽으로 물러나 총을 뽑았다.
그녀도 보통 북안 불모지에서 모험하던 유적 사냥꾼이니 변이 생물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건 아니었으나 이곳 퍼스트 시티에선 처음이었다.
한명호 역시 정도연만큼이나 놀랐다. 다만 반응이 그렇게까지 크지 않았을 뿐이었다. 그 이유는 구조팀이 전처럼 평온하게 행동했기 때문이었다.
계속해서 하던 일에 열중하는 구조팀은 당황한 기색은커녕 이쪽으로 눈길 한번 돌리지 않았다.
야오옹.
고양이는 한 번 더 울곤 바닥에 엎드려 기지개를 켰다.
그때였다. 돌연 장목화가 들고 있던 식칼을 내려놓고 발코니로 향했다.
뭔가 생각이 났는지 수면 고양이 앞에 쪼그려 앉은 그녀가 몇 초간 망설이다 웃으며 인사를 했다.
“너, 북안 불모지에서 돌아온 거니?”
수면 고양이는 장목화를 힐끔 노려봤지만 아무 소리도 내지 않았다.
“어느 길로 왔어? 퍼스트 시티 사람을 마주치거나 하지는 않았어?”
장목화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지금 그녀는 북안 불모지를 마음대로 들락날락하는 수면 고양이에게 퍼스트 시티를 떠날 방법을 알아내려 하고 있었다.
야오옹-
수면 고양이가 대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