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426화 (426/649)

426화. 돈 벌 기회

성건우를 따라 임무 설명을 확인한 장목화는 아니나 다를까 자신의 가명도 발견했다.

가상 세계의 주인과 퍼스트 시티의 어느 고위층이 마커스가 아는 암호가 유출된 것을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그래서 임무 형식으로 의뢰해, 유적 사냥꾼들이 범인을 찾을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물론 이는 추적 방법 중 하나에 불과할 터였다. 질서의 손에 속한 뛰어난 이들과 군대의 엘리트 팀도 이 작업에 투입되었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한 명만 잡아도 1만 오레이라니.”

어마어마한 현상금에 흥분했던 전과 달리, 어쩐지 지금 성건우는 불만에 차 있었다. 자신에게 걸린 현상금이 너무 적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장목화 역시 그가 어느 부분을 불만스러워하는지 이해했다.

구조팀은 가상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 앞에서 극도로 중요한 비밀을 취했다. 그런 이들에게 걸기에 1만 오레이는 절대로 큰 금액이 아니었다.

“그래도 밀가루 1톤 값보다는 더 나가잖아.”

장목화는 차으뜸을 기준으로 삼아 성건우를 위로했다.

“그때는 유효한 단서만 제공해도 밀가루 1톤을 준다고 했어요. 하지만 저 의뢰는 상르 드라세를 직접 잡아 오라고 요구하고 있잖아요.”

역시, 성건우는 그렇게 물렁한 사람이 아니었다.

차으뜸에 관한 단서를 제공하는 임무는 상르 드라세를 직접 잡아 오는 임무보다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쉬웠다.

심지어 구조팀은 그들이 가진 차으뜸 관련 정보를 여러 부분으로 나눠 각 정보를 밀가루 1톤으로 바꾸기도 했었다.

반면 지금 대형 패널에 떠오른 임무에서 단서를 제공했을 때 받을 수 있는 보수는 50오레이, 100 오레이, 300 오레이, 세 단계로 나뉘었다.

장목화는 다시금 임무 설명을 살펴보았다.

의뢰자는 공적 기구인 질서의 손으로, 충분히 믿을 만했다. 다만 그들은 현상금이 걸린 세 사람이 격투장에서 중요 보호 대상과 접촉하여 기밀 사항을 훔쳐 갔다고 알리지는 않았다.

장목화, 성건우, 용여홍이 지난번 암살 기도 사건 범인의 공범이며 퍼스트 시티를 노린 거대한 음모를 꾸미는 중이라 현상금을 대폭 높인 것이라고만 나와 있었다.

장목화는 대형 패널을 보며 감정을 가라앉힌 채 생각에 잠겼다.

‘그래, 비밀과 연루돼있는지는 굳이 알릴 필요 없지. 현장에서 범인을 잡지 못했다는 건 그 비밀이 이미 유출됐고 그걸 저지할 수도 없다는 뜻이니까. 퍼스트 시티의 목표는 정보의 전파를 막는 게 아니라, 그런 짓을 한 세력을 밝혀내는 거야. 그리고 그를 통해 복수하려는 거겠지.’

질서의 손이 제공한 몽타주는 그다지 선명하지 않은 감시카메라 화면을 목격자 증언을 바탕으로 약간 수정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당시 성건우와 장목화는 모두 레드리버인처럼 보이도록 위장한 상태였기 때문에, 현장에서 그들을 아는 사람을 맞닥뜨리지 않은 이상 정체를 들킬 염려는 없었다.

용여홍도 애쉬랜드인 하인 역할을 맡기는 했으나 역시 위장했었던 데다 가명 하나 남긴 적이 없었다. 그는 임무 설명에서도 ‘세 번째 용의자’라고만 지칭됐을 뿐이었다.

이때, 한창 자료 인쇄를 기다리고 있던 용여홍도 거액의 현상금이 걸린 임무를 발견했다.

‘팀장님과 건우한테 시선이 쏠려 있네. 나에 대한 설명은 얼마 없어.’

그는 다행스러워하면서도 현상금 액수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어마어마하네.”

1만 오레이는 한 황야유랑자가 퍼스트 시티에 집과 가게를 가진 주민이 될 수도 있는 돈이었다. 그 이후로도 적당히 유지만 한다면 계속해서 괜찮은 삶을 살 수도 있었다.

용여홍의 감탄을 듣고, 성건우가 그를 돌아보며 웃었다.

“그래, 정말 어마어마하지.”

동시에 그는 1만 오레이를 세듯 용여홍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정말 그럴 용기 있으면 너 스스로나 갖다 바치라고!’

용여홍은 주위 사람들을 의식하고 겨우 분통을 억눌렀다.

근처에 있는 이들 대부분은 유적 사냥꾼이었다. 개중 유난히 청력이 뛰어난 이가 있을지는 모르는 일이었다.

시선을 거둔 성건우가 장목화를 바라보았다.

“접수할까요? 완수하지 못한다고 벌을 받는 건 아니잖아요.”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웃으며 말했다.

“좋지. 목표에 대한 정보만 제공해도 적잖은 돈을 받을 수 있잖아.”

“⋯⋯?”

장목화가 이런 얼토당토않은 제안에 동의할 줄 몰랐던 용여홍은 순간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가 퍼스트 시티를 떠나기 전에 쓸모 있는 단서를 발견해야 할 텐데.”

그리고 그녀가 덧붙인 말에, 용여홍도 비로소 고개를 끄덕였다.

퍼스트 시티를 떠날 준비를 할 때, 팀에 관한 정보 일부를 질서의 손에 넘기면서 남은 가치를 쪽쪽 빨아먹겠다는 뜻이었다.

‘대단한 계략이야.’

용여홍은 한참의 고민 끝에 장목화의 계획에 대한 평가를 내렸다.

곧이어 성건우가 그 임무를 접수하러 간 사이, 용여홍은 웨트를 비롯한 이들의 가족 관련 자료를 받았다.

* * *

레드울프 구역, 형성된 지 꽤 된 듯한 단지에 그리 과하게 높지 않은 건물들이 있었다. 곳곳에 고친 흔적이 가득한 건물들은 거의 맞닿다시피 해서 마치 밀폐된 것처럼 느껴졌다.

구세계 레드리버 유역의 거주 환경과는 퍽 달랐다. 퍼스트 시티가 막 건립됐을 때는 악랄한 환경, 혼란한 정세, 빈번한 갈등으로 인해 하나하나 무리를 지은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살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모여 서로를 돕거나 식량을 생산할 수 있는 농촌을 점거하곤 했다.

그 당시 일부 각성자와 아류인을 제외한 인간 대부분은 똘똘 뭉쳐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러지 않는다면 아무리 잘나봤자, 동시에 총 몇 자루 들고 방아쇠를 당겨봤자 절대로 무심자와 변이 생물을 당해낼 수 없었다.

이런 점 때문에 퍼스트 시티 내 비교적 오래된 단지는 건물이 아무리 높아봤자 5층을 넘기지 않았다. 거기다 출입구도 몇 개에 불과해, 마치 도시 안의 도시처럼 보였다.

이런 지역에서는 무슨 혼란이 발생했다 한들 바리케이드만 쌓아도 꽤 오랜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

물론 이는 적들이 매서운 화력을 갖추지 않았을 때나 가능한 일이었다.

요즘 이런 단지에 거주하는 이들은 모두 퍼스트 시티의 주민, 그것도 일정한 지위와 수입원을 유지하고 있는 주민이었다.

“웨트의 아내와 자식이 여기 살고 있다고?”

용여홍이 이 단지를 보며 의문을 표했다.

지금 손에 든 자료가 사냥꾼 길드의 검증을 받은 게 아니었다면 사기꾼에게 당한 것 같다고 의심했을지도 몰랐다.

웨트는 각성자이긴 해도 그렇게 잘 사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수확을 얻는 대로 집에 보냈을지도 모르지.”

백새벽은 그런 유적 사냥꾼을 많이 봐왔기에 능숙하게 대꾸했다.

그들은 황야에서 모험하는 동안 스스로를 놓아버리며 스트레스를 풀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가족을 모른 체 하지는 않았다. 심지어는 자신에게 조금 각박하게 굴더라도 가족만큼은 굶기지 않으려 노력했다.

“들어가자.”

장목화가 말이 없는 성건우를 보며 솔선해서 단지 입구로 향했다.

구조팀은 등록과 간단한 검사를 통과한 후, 건물들을 우회해 어느 동 5층에 이르렀다.

웨트의 집이 이곳에 있었다.

문 앞에 선 용여홍은 돌연 불안해졌다. 웨트의 아내와 자식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알 수가 없었다. 슬픔을 감내하지 못할까 걱정스럽기도 했다.

‘만약 내가 밖에서 죽게 된다면, 우리 집에 찾아가 그 사실을 알려야 하는 팀원들도 나 같은 걱정을 할까?’

용여홍은 느릿하게 숨을 토해내며 초인종을 눌렀다.

따르릉-

초인종 소리와 함께 발소리가 가까워지는가 싶더니 곧 문이 열렸다.

문을 연 건 27, 8살 정도 되어 보이는 레드리버 여자였다.

그녀는 꽤 낡았지만 깨끗하게 세탁한 흰색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밖에서 들어오는 햇살에 환히 밝혀진 집도 상당히 깔끔했다.

그리고 현관 쪽을 바라보는 호기심 어린 눈들이 또 있었다. 소파 주위에 앉은 조그만 아이 두 명이었다. 소파 앞 티 테이블 위엔 구세계 도시 폐허에서 찾아낸 동화책도 펼쳐져 있었다.

“누구시죠?”

레드리버 여자가 물었다. 불길한 예감을 느낀 듯 그녀의 얼굴에 경계심이 잔뜩 묻어나왔다.

용여홍은 동료들이 침묵하는 것을 보고 간신히 입을 열었다.

“웨트 부인 되십니까?”

순간 여자의 안색은 급격히 창백해졌다.

그녀가 다급히 물었다.

“그, 그 사람 어디에 있나요?”

“모험 중 사망했습니다.”

용여홍은 웨트가 자살했다는 사실까지는 고하지 않았다.

저도 모르게 두어 번 휘청거리던 여자가 캐물었다.

“시신은요?”

“북안 뭇 산 2호 전진 캠프 밖 숲에 있습니다. 저희가 표시도 해뒀어요.”

용여홍은 점차 유창하게 말을 이어갔다.

뭇 산에서의 에너지는 너무 비싸서 죽은 이들을 화장하긴 불가능했다. 누군가 땅을 파고 매장해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특정 지역, 특정 집단 안에선 식량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입술을 달싹이던 여자가 겨우 한 마디를 내뱉었다.

“고맙습니다.”

그녀의 목소리는 매우 낮았다.

이내 장목화는 확인해보라는 듯 성건우를 힐긋 바라보았다.

성건우는 아무 티도 내지 않고 추리 광대 능력을 발휘해, 상대가 틀림없는 웨트의 아내임을 확인했다.

용여홍은 그제야 웨트의 유품을 꺼내 건넸다.

“웨트가 가지고 있던 물건입니다.”

자루를 받아 내용물을 확인한 웨트의 아내가 깜짝 놀랐다. 웨트가 평소 집에 돌아올 때마다 가져왔던 수확물보다 몇 배는 더 많았기 때문이었다.

몇 초 후 그녀가 조심스레 물었다.

“여러분께 어, 얼마나 드리면 될까요? 커니에한테 들었어요. 이런 일을 겪었을 때는 일부를 송환자에게 보수로 줘야 한다고요. 하하, 웨트는 그이 가명이에요⋯⋯.”

그녀의 눈가가 붉어지기 시작했다. 목소리에서도 울음기가 느껴졌다.

용여홍이 막 만류하려던 그때, 장목화가 답했다.

“저희는 이미 저희 몫을 받았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웨트의 아내는 눈가를 훔치며 전에 했던 말을 반복했다.

“감사합니다.”

성건우는 그녀를 향해 미소를 그려 보였다.

“새 생명은 태양과 같습니다.”

그 묘한 말에 웨트의 아내가 잠시 멍해졌다.

“엄마, 저 사람들 누구예요?”

떠나려던 구조팀은 뒤쪽에서 들려온 아이의 목소리를 들었다.

“아빠 친구분들이셔.”

“아빠는요? 아빠는 왜 안 와요?”

“아빠는 아주 먼 곳으로 가셨어⋯⋯.”

웨트 아내의 목소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부드러웠다.

* * *

웨트 동료들과 가족에게도 일일이 찾아가 위로금을 전달한 구조팀은 레드울프 구역의 다른 거리로 향했다.

용여홍이 전에 한명호의 뒷모습을 봤다던 그곳이었다.

주위를 둘러보던 용여홍이 잠시 머뭇거리다 물었다.

“팀장님, 어디서부터 찾으면 될까요? 집마다 찾아다니며 물어볼까요?”

그러기에는 범위가 너무 넓었다.

장목화는 눈동자를 살짝 굴리다 가볍게 웃었다.

“나도 그 질문을 하려고 했는데.”

“네?”

순간 용여홍은 어안이 벙벙해졌다.

장목화가 웃으며 말했다.

“임시 심사인 셈이지. 네 분석 능력이랑 처리 능력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확인하려고.”

‘팀장님, 이렇게 갑자기 공격하기 있나요?’

용여홍은 사력을 다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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