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417화 (417/649)

417화. 성건우의 새로운 생각

장목화는 재차 실행 가능성을 고려해 분석했다.

“거기도 문제는 있어. 만약 마커스가 집에서 그것들을 먹는다면, 외출하기 전부터 화장실에 빈번하게 들락거리기 시작하면서 이후의 일정을 취소할지 몰라. 어쩌면 그중 한 음식은 먹는 대신 격투장의 귀족석에 함께 앉은 사람들한테 나눠 줄 수도 있고. 알잖아, 마커스는 물도 거의 안 마신다는 거.”

토론은 다시 중단됐다. 구조팀 다섯은 내내 고심했지만 고작 한 사람을 화장실에 보낼 방법이 좀처럼 생각나지 않았다.

장목화는 영감을 얻기 위해 성건우에게 이제부턴 음식에만 얽매이지 말고 자유로운 의견을 제시해보라고 했다.

“음, 제가 5분에 한 번씩 마커스 옆을 지나치면서 화장실에 가도록 관심을 돌려 볼게요.”

“꼭 볼일을 보기 위해 화장실에 가는 건 아니잖아요. 적당한 기회를 노려 마커스의 바지를 더럽히는 거죠! 도저히 화장실에 안 갈 수가 없게요.”

“마커스의 취향을 파악해서 마음에 들어 할 만한 대상으로 위장하는 거예요! 그리고 화장실 앞에서 기다린다고 하는 거죠.”

성건우는 정말 여러 방안을 냈지만, 팀원 전체가 하나같이 다 기각했다.

그러다 마침내 팀원들의 귀를 사로잡은 말이 있었다.

“귀족석에 디퓨저가 설치돼 있어요. 회사에 빈뇨를 유발하는 향을 만들어달라고 부탁하는 건 어떨까요?”

이 말인즉슨, 회사에 전보를 보내 설사나 빈뇨를 유발하는 신제품이 있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그것도 직접 먹는 게 아닌, 냄새나 다른 방식이어야 했다. 모처럼 팀원 모두가 성건우의 의견에 동의했다.

곧이어 반고 바이오 안전부는 최대한 빨리 물어보고 답을 주겠다 했다.

장목화는 천천히 창밖을 내다보았다.

“휴, 다들 좀 쉬자. 우리 너무 긴장했어. 그렇게 늦은 시간은 아니니 나가서 산책이라도 좀 하면서 신선한 공기나 마실까?”

‘여기 공기 하나도 안 신선한데.’

물론 용여홍도 속으로만 중얼거릴 뿐, 감히 밖으로 내뱉지는 않았다.

사실 그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골든애플 구역과 장원 근처 골든그레인 구역을 제외하면 퍼스트 시티 공기는 절대로 좋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 구조팀은 그린올리브 구역 근처의 레드울프 구역에 자리한 안전 가옥에 머물고 있었다.

이제 따로 할 일은 없어서 팀원들 모두 산책하는 데 동의했다. 북안 뭇 산으로 가 불모지 13호 유적을 탐색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다. 이미 다들 정신과 육신 모두가 긴장되고 지쳐버린 상태였다.

* * *

그린올리브 구역과 달리, 레드울프 구역 가로등은 보통 다 멀쩡해서 밤이 됐는데도 일정 범위 내의 정경이 또렷하게 보였다.

각양각색 차림의 행인들이 바쁘게, 혹은 한가로이 길을 거닐고 있었다.

“구세계의 밤거리 같아 보이네.”

용여홍이 거리 가장자리에 있는 상점을 훑어보며 중얼거렸다. 그는 늪 1호 폐허에 전기가 들어왔을 때, 또 구세계 콘텐츠 속에서 구세계의 밤을 배웠었다.

이내 백새벽이 덤덤하게 말을 받았다.

“하지만 여기서 바쁘게 움직이고 있는 건 대부분 노예지.”

용여홍은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장목화가 막 화제를 돌리려는데, 그린올리브 쪽에서 돌연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청력이 안 좋은 그녀의 귀에도 여기로 급히 달려오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곧이어 옆쪽 거리에서 한 인영이 튀어나오더니, 맞은편으로 비스듬히 자리한 골목길을 향해 달려갔다.

갈색 머리칼, 녹색 눈동자를 가진 남자였다. 급히 내달리는 남자의 뒤로 검은 트렌치코트가 펄럭펄럭 나부꼈고, 입은 스카프에 가려져 있었다.

‘격투장 암살 기도 사건의 공범? 시민 집회 폭발 사건의 용의자?’

흠칫 놀란 용여홍은 그 남자가 달려 나온 거리로 시선을 돌렸다.

그 거리에선 권총과 곤봉을 든 치안요원들이 다급히 남자를 쫓고 있었다.

장목화가 수배자가 사라진 비스듬한 골목길을 보며 작게 웃었다.

“저 사람도 항구 쪽에서 달려왔네.”

“예?”

용여홍의 얼굴에 어리둥절한 표정이 떠올랐다. 이후 그는 무의식적으로 장목화의 시선을 따라 가로등 빛으로 밝혀진 길을 쳐다보았다.

시민 집회 폭발 사건 용의자가 달려간 길가, 그러니까 인도와 차도를 구분하는 연석에, 신발 밑창에 끼어있던 석탄재가 몇 알 떨어져 있었다.

진짜 신부 관련 일을 겪은 장목화는 그 석탄재를 보고 남자가 방금 어디에 있었는지 단박에 파악했다. 용여홍 역시도 석탄재 흔적을 보자마자 장목화가 그렇게 판단한 근거가 뭔지를 알아차렸다.

그때, 남자를 쫓던 치안요원들이 거리를 나와 행인들을 가로막고는 조금 전 그 남자를 봤냐고, 어디로 갔냐며 다급하게 묻기 시작했다.

구조팀 역시 그들의 탐문을 받았다.

“저 골목길로 갔어요.”

구조팀이 입을 모아 답했다.

다른 행인들의 답변까지 듣고 확신을 얻은 치안요원들은 더는 꾸물거리지 않고 그쪽으로 달렸다.

장목화는 멀어지는 추격자들을 보며 뭔가 생각에 잠긴 채 피식 웃었다.

“저 사람, 어째 며칠에 한 번씩 일부러 나타나서 치안요원들 산책시키는 것 같은데. 아니면 이렇게 존재감을 과시하고 눈길을 끌려고?”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용여홍이 재차 의문을 표했다.

데이터베이스 정보를 처리한 게네바가 분석한 결과를 내놓았다.

“매번 아무 능력도 없는 평범한 치안요원만 맞닥뜨리니까. 꼭 일부러 그런 상황만 노린 것처럼. 공교로운 일이라고 할 수 있지.”

몇 차례 만남을 떠올리던 용여홍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러네.”

그러나 그는 다시 곧 미간을 찡그렸다.

“근데 그건 당연하잖아. 대규모의 조사는 원래 평범한 치안요원들이 하는데? 당연히 질서의 손 내부 강자랑 마주칠 가능성은 없는 거 아닌가?”

장목화가 웃었다.

“틀린 말은 아니야. 나도 그냥 그런 공교로운 부분이 있어서, 과감하게 한번 생각해봤어. 하……. 사실 난 그들이 또 다른 일을 저질러서 퍼스트 시티를 더 혼란스럽게 해줬으면 해. 그래야 우리가 가상 세계를 타파할 기회도 더 많아질 테니까. 음, 그들의 목적이 뭔지, 뭘 원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장목화의 한탄을 듣고, 앞으로 천천히 걷던 백새벽이 덤덤하게 말했다.

“퍼스트 시티를 혼란스럽게 만들 기회는 있었어요. 우리가 우리 손으로 그 기회를 망가뜨린 것뿐이죠.”

뜻밖의 말에 흠칫 놀란 장목화가 곧 그녀의 말뜻을 알아차렸다.

“아, 반 지성교랑 욕망 성인 교파가 합작해서 꾸민 그 일 말하는 거야?”

백새벽이 고개를 끄덕이자 장목화는 스읍, 하고 숨을 한번 들이마셨다.

“그래⋯⋯. 만약 우리가 진짜 신부를 처리하지 않았다면, 타초경사할 수 있었겠지. 다들 지금쯤 이미 나서서 어마어마한 혼란을 일으켰겠지?

휴, 그러니까 소소한 일을 참지 못하면 큰 줄기가 틀어져. 우린 그냥 진짜 신부의 위치를 파악하고 감시만 해야 했어. 그러다 혼란이 시작되면 그때 치명적인 일격을 날렸어도 됐는데.”

백새벽은 장목화의 말을 귀담아듣다가 또 담담하게 대꾸했다.

“그랬다면 성공을 보장할 순 없었을 거예요. 혼란스러운 와중에 부이용은 틀림없이 단서를 파악했을 테니까요.”

“맞아, 맞아.”

백새벽이 그 말을 하길 기다린 듯 장목화는 바로 웃으며 동조했다.

이내 장목화는 내내 아무 말이 없던 성건우를 쳐다보았다.

“무슨 생각 중이야?”

성건우가 진지하게 답했다.

“가상 세계를 어떻게 타파해야 할지요. 벌써 하나 방안이 떠오르긴 했는데……. 세세한 건 아직 보완이 필요하지만요.”

게네바가 협조적으로 물었다.

“어떤 방안이지?”

성건우는 한번 웃고 이야기했다.

“생각해봤는데, 이번에는 도우미가 필요할 것 같아.”

“근데 수종이는 외출하기 싫어하고, 이두형은 만나기도 쉽지 않잖아. 무엇보다 반드시 퍼스트 시티 일에 참여하리란 확신도 없고.”

용여홍이 가장 먼저 떠올린 도우미는 이두형과 수종이뿐이었다. 구조팀이 아는 강자 중 가상 세계 주인을 압도할 수 있는 건 그 둘밖에 없었다.

성건우가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아니, 아니. 내가 초청하려고 했던 사람은 다른 사람이야.”

“누군데?”

장목화 역시 그의 생각을 종잡을 수 없었다. 늘 그랬다. 성건우의 생각은 언제나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알 수가 없었다.

다시 성건우가 웃으며 답했다.

“오하명이요.”

“⋯⋯.”

순간 구조팀 동료들과 지능 로봇 게네바까지 멍한 얼굴이 됐다.

오하명은 분명 강했다. 그러나 그는 봉인된 것으로 추정되는 데다 그야말로 괴물에 가까운 존재였다. 그런 사람과 어떻게 상의하고, 도움을 청한단 말인가. 설마, 임무를 위해 그 위험한 존재의 봉인을 풀어버리자는 건가? 그럼 구조팀은 정말로 애쉬랜드의 대형 빌런이 될 터였다.

성건우는 진지하게 자기 생각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가상 세계도 상당히 골치 아파질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 주인에게 도와 전자 제품 수리 방송국을 복제해 오하명의 목소리를 방출할 능력이 있다면 말이죠.

그러다가 낮에 열리는 격투 시합이 도와 전자 제품 수리 방송 시간과 다르다는 게 떠올랐어요. 그러지만 않았다면 오하명의 영향이 걸러질지, 아니면 가상 세계 주인이 오하명의 영향을 받을지 확인할 수 있었을 텐데⋯⋯.”

그는 그 상황이 매우 흥미로운 듯, 점점 눈빛이 밝아졌다.

“그래, 격투 시합은 보통 오후에 있잖아. 게다가 오하명이 반드시 우리가 원하는 영향을 발휘해 주리라는 보장도 없고.”

용여홍도 성건우의 방안을 대충 이해했다. 귀족석에 스피커를 가져가 도와 전자 제품 수리 방송국 방송을 모두에게 들려줄 작정인 것이다.

성건우가 웃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오하명 방송의 열렬한 청취자인 척하면서 유도하면 돼. 오하명한테 특정인을 자발적으로 화장실에 가도록 할 수 있느냐고 묻고, 그 답과 설교를 녹음해 둔 뒤에 그걸 귀족석에서 트는 거야.”

‘마커스를 화장실로 보내기 위해 그렇게까지 힘을 들이겠다고? 그러느니 오하명에게 가상 세계의 주인한테 영향을 미쳐 마커스에 대한 보호를 포기하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게 더 낫지 않겠어?’

용여홍은 그 갖은 수고를 들여가며 결국 마커스를 화장실로 보내려는 생각을 욕해야 할지, 그냥 이 기발한 발상을 칭찬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내내 얌전히 경청하던 장목화가 천천히 입을 뗐다.

“몇 가지 문제가 있어. 첫째, 오하명의 영향이 담긴 목소리가 녹음본으로도 효과가 있는지는 미지수야. 물론, 이건 사전에 검증해볼 수 있지.

근데 둘째, 우리가 정작 도와 전자 제품 수리 방송국 전화번호라도 알아? 어떻게 열렬한 청취자인 척 오하명한테 질문한다는 거야. 아니면 그 주파수로 직접 전보를 보내려고?

마지막, 퍼스트 시티가 오하명을 모를까? 그들은 영원한 세월 교파의 천사한테 부탁해 오하명을 봉인했다고. 건우 네가 스피커로 오하명의 목소리를 재생하자마자 가상 세계 주인이 곧장 상황을 알고 대응하면 어떡해?”

“그래서 말씀드린 거죠, 세세한 건 보완해야 한다고.”

성건우는 솔직하게 문제들 모두 인정했다.

사실 녹음하는 방법 자체는 간단했다. 미리 주파수를 맞춰놓고 모두가 철수한 상황에서 녹음기만 작동시키면 됐다.

게다가 이곳 퍼스트 시티는 불모지 13호 유적에서 멀리 떨어진 곳이라 오하명의 영향 범위가 아니었다. 게네바가 무슨 영향을 받을 리도 없었다.

실제로 전에 게네바가 도와 전자 제품 수리 방송국 방송을 감청했어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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