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408화 (408/649)

408화. 향 연기

저녁 무렵, 반고 바이오에서 회신을 보내왔다.

「아주 적합한 방안임. 단, 한 가지 사항에만 주의하도록. 그 방송국에서 1킬로미터 이내 반경에는 진입하지 말 것.」

장목화가 못 참겠다는 듯 원성을 터뜨렸다.

“1킬로미터? 회사도 정말, 이렇게 인색할 수 있나? 탐색 한 번 할 때마다 정보 하나씩 찔끔찔끔 내놓잖아.”

이때, 게네바가 한 가지 모순점을 찾아냈다.

“만약 도와 전자 제품 수리 방송국에서 1킬로미터만 떨어져서 돌아다닐 수 있는 거라면, 퍼스트 시티 정규군은 밖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을 거야. 어떻게든 불모지 13호 유적을 탐색하려 했겠지.”

백새벽이 얼른 그 원인을 추정했다.

“우리가 갔던 그 구역만 탐색하지 않았던 걸 수도 있잖아.”

장목화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아직 해독 다 안 끝났어.”

“⋯⋯.”

백새벽이 멋쩍어하는 것도 참 드문 일이라, 용여홍은 하마터면 실소를 터뜨릴 뻔한 걸 겨우 참았다. 성건우도 박수를 자제하는 중이었다.

장목화가 다시 말을 이었다.

“계획했던 구역 이외의 구역을 탐색하지도 말 것. 그러니까⋯⋯.”

그녀가 바람 빠진 듯 엷게 웃었다.

답은 명확했다. 불모지 13호 유적의 다른 곳에는 다른 위험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 * *

이튿날, 다시 모인 8명은 전과 같은 시각에 금속 대문 앞에 이르렀다.

장목화는 잡초가 가득 자라난 바깥 공원을 바라보다 입을 열었다.

“다른 주의 사항은 잘 알 테니까 한 가지만 강조할게. 수확 상황이 좋든 나쁘든, 목표 지대를 다 탐색했든 어쨌든, 1시간 반이 지나면 무조건 돌아와야 해. 다들 각양각색의 방식으로 자살하고 싶은 사람은 없잖아, 그렇지?”

1시간 반은 지난 탐색을 통해 정한 시간이었다. 전에 13호 유적에서 머무른 시간이 1시간 반 정도였고, 그동안에는 별 영향을 받지 않았으니 그 시간 안에는 반드시 돌아와야 안전을 보장할 수 있었다.

“좋아.”

웨트가 곧장 답했다. 사실 그는 양범구가 아닌 장목화를 진정한 지도자라 여기는 것 같았다.

그레이, 파르스, 양범구도 서로 시선을 주고받으며 동의를 표했다.

구조팀은 당연히 함께 회의한 결과니 아무런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그렇게 두 팀은 속속들이 금속 문을 통과해 공원에 진입했다.

이번에 두 팀이 택한 방향은 전과 달랐다.

8명은 주변 경계를 늦추지 않고 혹여 존재할지 모를 사람의 흔적을 찾았다. 그 흔적의 주인공은 패링턴일 가능성이 가장 컸다.

완전무장 한 여덟 명이 차근차근 걸어가던 그때, 눈썰미가 뛰어난 장목화가 갑자기 멈춰 섰다. 그녀가 총구로 살짝 옆으로 치우친 아래를 가리켰다.

“누군가 여길 지나쳤어.”

다들 고개를 돌리니 그곳에 누운 잡초가 보였다. 잡초들은 앞으로 죽 쓰러져 한 갈래 길을 형성했다.

하지만 지금은 뜨거운 여름날인데다 최근에는 통 비가 오지 않아 흙이 다 말라버려서, 발자국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언제 남겨진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리 오래된 건 아닐 거예요.”

백새벽이 풍부한 경험에 비추어 얘기했다.

장목화는 고개를 끄덕인 후, 양범구 일행을 돌아보았다.

“따라가 볼까? 방향도 우리 목표 구역 쪽인데.”

동시에 그녀는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부디 패링턴이길.

양범구 팀은 아무 의견도 내놓지 않고 구조팀의 선택을 따랐다.

* * *

누운 잡초를 따라 공원 밖으로 나온 두 팀은 한 거리에 이르렀다.

길에 떨어진 낙엽은 쌓인 채 썩어 있고, 그 밑의 땅엔 햇살이 닿지 않았다. 이 때문에 거리 양옆이 좀 질척질척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덕분에 여덟 명은 비로소 약간의 발자국을 발견했다.

“신발 밑창 문양이 평범하네. 키는 170센티미터 정도, 체중은 약간 가볍고…⋯, 오늘 생긴 자국인 것 같은데.”

장목화는 발자국 여러 개를 비교해보며 간단한 분석 후, 기초적인 판단을 내렸다. 그녀는 약간 실망한 기색이었다. 이는 패링턴의 체격과는 달랐다.

양범구가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말을 받았다.

“오늘 생긴 자국이면⋯⋯. 저 동굴이 여기로 통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또 있다는 건가? 난 로엔과 해리슨한테 이 이야기 절대 유출하지 말라고 단단히 일러뒀어. 일반적인 상황이면 우리가 떠나기 전까진 감히 이 정보를 팔 엄두도 내지 못할 거야.”

로엔이 구조팀의 길잡이가 돼준 것처럼, 해리슨은 독행 사냥꾼 팀의 길 안내를 담당했던 사람이었다.

“가 보자.”

성건우가 의욕적으로 나섰다.

그런데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용여홍이 멀지 않은 곳을 가리켰다.

“저쪽에서 연기가 나.”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 전방 모처에 건물 몇 채에 둘러싸인 곳에서 정말로 남회색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상당히 옅은 연기였다.

장목화가 간단한 판단을 내렸다.

“1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는 것 같네.”

이어, 그레이가 추측했다.

“날도 뜨겁고, 건조해서 그런가?”

추위를 많이 타는 이 독행 사냥꾼은 지난 이틀은 기온이 상당히 높아서 매우 편안했었다. 물론 오늘도 가죽옷을 껴입었지만 전처럼 떨지는 않았다.

“오늘 여기 들어온 사람이 피운 불일 수도 있고.”

백새벽이 길가 발자국을 살피며 말했다.

“그래, 가 보자.”

성건우가 재차 모두를 재촉했다.

누구도 이견은 없었다. 그쪽으로 간다고 해도 물자 수확에 영향이 있을 것도 없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곳까지 놓인 물자들도 꽤 많았기 때문이었다.

* * *

여덟 명은 중간중간 수집도 하며 계속 앞으로 가다가 다른 거리로 방향을 틀었다. 건물 몇 채를 우회하니 순간 시야가 확 트였다.

전방에 연못이 자리한 작은 광장이 있었다. 광장 중앙에는 길고 가느다란 오벨리스크가 세워져 있었고 그 꼭대기에는 십자가가 하나 달려 있었다.

레드리버 유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구세계의 물건이었다.

그 오벨리스크 옆쪽, 연못의 울타리 위에는 두꺼운 선향이 한 움큼 꽂혀 있었다. 바로 남회색 연기의 출처였다.

선향 앞에는 남회색 도포를 입은 한 여자가 서 있었는데, 금발에 파란 눈을 가진 뛰어난 미인이었다.

“갈루란 도장!”

성건우가 마치 고향 친구를 만난 듯 기쁘게 소리쳤다.

구조팀이 검은 늪 황야에서 만난 영원한 세월 교파의 도사 갈루란, 그녀는 퍼스트 시티 어느 귀족 가문 출신의 레드리버인이었다.

갈루란은 곧장 부름에 응하는 대신 특정 방향을 향해 느릿하게 예를 갖춘 후, 느리지도, 급하지도 않게 여덟 명 쪽으로 돌아섰다.

곧 그녀의 얼굴에는 옅은 웃음기가 피어올랐다.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 쥔 갈루란은 양손을 눈썹까지 들어 올린 후, 허리를 깊이 숙였다.

“행복은 무량한 천존으로부터 오나니. 우리가 이렇게 다시 만난 것은 운명의 뜻입니다. 이것이 바로 도가 있는 바이지요.”

본래 구호를 읊을 때 애쉬랜드어를 사용했던 갈루란은 레드리버인이 있는 것을 보고 그 이후의 말은 레드리버어로 했다.

양범구 일행이 멍해진 것을 보고, 장목화가 웃으며 앞으로 나섰다.

“도장께서 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

갈루란은 옆으로 서서 어딘가를 바라보다가 숨김없이 이야기했다.

“제 사부의 사부, 일찍이 천사(天師)였던 그분께서는 퍼스트 시티를 도와 강력한 괴물 하나를 여기 봉인하셨지요. 이를 위해 그분은 스스로를 희생하셨습니다. 하여 전 여길 지나칠 때마다 그분을 위한 제사를 지낸답니다.”

갈루란의 명확한 설명에도 용여홍은 황당무계할 뿐이었다. 그가 아는 갈루란과는 화풍이 너무나 달랐다.

선향을 피워 제사를 지내는 건 갈루란 보다, 부수와 팔괘 거울 등을 들고 다니며 고등 무심자에 대처했던 남가관의 관주 주명희나 할 법한 일이었다. 그러한 모습의 본질도 각성자에 대적하기 위해 지불한 대가였다.

장목화 역시 갈루란의 말을 듣자마자 눈썹을 살짝 꿈틀거렸다.

“오하명?”

갈루란이 덤덤하게 말했다.

“저는 그 괴물의 이름을 모릅니다. 경솔하게 답했다가는 여러분을 오도하겠지요. 제가 유일하게 말씀드릴 수 있는 건 늘 온화하고 겸허한 태도를 유지하며, 포용적인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모하게 행동해서도, 잘난 체해서도 안 되지요. 부드러운 자가 도를 다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이번에도 레드리버어를 썼으며, 더는 똑똑히 발음하지도 않았다. 그래도 웨트, 파르스, 그레이는 멍한 표정이었다.

갈루란의 말은 일리가 있는 것 같으면서도 보통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큰 차이가 없었다. 그냥 간단한 말을 휘황찬란하게 포장한 것뿐이었다.

이때 성건우가 고개를 틀어 용여홍을 바라보았다.

“무슨 질문할 거 있어?”

‘내가 궁금한 게 있다는 건 어떻게 알았어? 잠깐, 내가 왜 질문해야 해?’

잠시 내적 갈등을 하던 용여홍이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도장, 도장께서 설명하시는 게 현실에서 알아듣기엔 좀 괴리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예를 들어, 용여홍도 이제 봉인이라는 개념이 그렇게 낯설진 않았다. 그러한 방식으로 지하 방주에 갇힌 디마르코를 마주한 경험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건 달지기와 연관돼 있어 원리가 불명확했던 데다, 누구도 종교적인 말로 포장하지 않아서 딱히 위화감이랄 게 느껴질 것도 없었다.

갈루란은 그 질문에 화를 내는 대신 미소를 지었다.

“세계에 대한 모든 사람의 생각은 서로 다른 법이죠. 당신이라고 무조건 틀리고, 저라고 무조건 맞을 순 없어요. 각자에게는 각자의 도가 있으니 논쟁할 것은 없습니다.”

‘그렇게 답하니까 제가 더 바보처럼 느껴지는데요.’

용여홍은 속으로만 답을 대신했다.

갈루란의 말 때문에, 구세계 콘텐츠에서 본 우스갯소리가 떠올라서였다.

「누군가 현자에게 물었다.

“바보들을 어떻게 설득합니까?”

현자가 답했다.

“그들은 설득할 필요도, 설득할 수도 없다. 시간만 낭비될 뿐. 난 보통 설명을 멈추고 그래, 네 말이 옳다고 동조한다.”

누군가 반박했다.

“그러면 됩니까? 그건 그야말로 문제를 직면하기 싫어서 현실을 도피하는 것이잖습니까!”

현자가 답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갈루란이 다시 용여홍을 보며 덧붙였다.

“모든 인지는 표상일 뿐입니다. 우리가 해야 하는 건 뭔가를 얻을 때까지 그런 인지 속에서 도의 존재를 찾고, 느끼고, 깨닫는 거죠.”

여전히 혼란스러워하는 이들을 보고, 갈루란도 설명을 멈추고 웃었다.

“가장 간단한 말로 표현하자면, 현상 너머의 본질을 보라는 겁니다.”

결국 장목화가 나서서 이 형이상학적인 분위기를 환기했다.

“도장, 제사를 마친 뒤에는 이 폐허 도시를 돌아볼 생각이셨습니까, 아니면 곧장 떠날 생각이셨습니까?”

갈루란은 미소 짓는 장목화를 보며, 본인도 빙그레 웃었다.

“전 본래 어떤 환경에도 잘 적응하고 만족해서 명확한 목적지랄 게 없습니다. 하지만 그 말씀을 들으니 부근에 퍼스트 시티가 있다는 게 떠오르네요. 오랜 시간 고향을 떠났다가 마침 근처로 왔으니 거기나 한번 가봐야겠습니다.”

그녀는 이 역시 또 다른 의미의 환경 적응이란 설명을 붙이진 않았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지 상관 안 하기 때문이었다.

이내 돌아서 선향의 연기를 바라보던 갈루란은 특정 방향을 향해 연달아 세 번 예를 갖췄다.

다들 갈루란이 예를 갖추는 방향이 도와 전자 제품 수리 방송국이 있는 곳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제사를 마쳤으니 이만 가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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