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401화 (401/649)

401화. 질주

장목화는 혼자서 AC-42형 외골격 장치를 착용했다. 이는 팀이 가진 외골격 장치 중 가장 오래된 것이었다.

양범구 일행도 구조팀의 장비 상황을 어느 정도 예상했기에 딱히 놀라지는 않았다. 대신 조용히 거리를 벌리며 반격할 준비는 했다. 완전무장 한 구조팀이 얼굴색을 바꾸고 자신들을 공격할지도 모르기에 걱정이 됐기 때문이다.

쾅!

갑자기 통로에 우렁찬 굉음이 퍼졌다. 출입구 쪽에서 난 소리였다.

설명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모두가 같은 생각을 했다.

누군가 닫아둔 대문을 열었다! 그것도 엄청난 힘으로!

구조팀 세 팀원은 아직 군용 외골격 장치를 다 착용하지 못한 상태였다.

그 순간, 길잡이 로엔을 포함한 사람들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곧장 돌아서 달리기 시작했다.

솔직히 구조팀이 일가친척도 아니고 오래된 친구도 아닌데, 굳이 같이 남아 생사를 함께할 이유가 있는가?

그들을 보고도 장목화는 팀원들에게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급하게 굴 것 없어. 서두르면 일을 그르칠 뿐이야.”

벽에 기대선 그녀는 능숙하게 각기 다른 위치의 금속 버클을 채웠다.

“저들도 마찬가지예요. 주도권은 저랑 겐의 손에 있잖아요.”

성건우는 조금도 긴장하지 않은 듯 웃으며 대꾸했다.

사실 성건우와 게네바의 도움이 없었다면 용여홍과 백새벽은 군용 외골격 장치는 착용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용여홍도 평소엔 성건우와 티격태격하기 바빴지만, 지금만큼은 친구의 대담한 태도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수십 초의 시간 끝에 마침내 용여홍, 백새벽도 군용 외골격 장치를 완벽히 착용했다. 성건우와 게네바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장목화는 이미 착용을 끝내고 손발을 움직여보고 있었다.

“가자!”

곧장 몸을 돌린 장목화가 유적 사냥꾼들을 쫓기 시작했다.

용여홍과 백새벽도 그 뒤를 바짝 따랐다.

성건우는 한 손으로 땅을 짚고 가볍게 몸을 날리더니 게네바의 왼쪽 어깨에 걸터앉았다.

게네바는 그 즉시 몸을 똑바로 세우고 엄청난 속도로 내달렸다.

전에 비하면 구조팀의 속도는 두세 배는 족히 빨라져 있었다.

군용 외골격 장치의 도움 아래, 구조팀은 별 힘도 들이지 않고 양범구 일행을 다시 만났다.

그들도 여태까지 쉬지도 않고 달렸던지라 이미 한계에 부딪힌 듯했다.

유적 사냥꾼들은 엄청난 속도로 그것도 매우 가볍게 질주하는 구조팀을 목격하고 절망에 휩싸였다. 뒤로 보이는 통로도 어둠과 적막뿐이었다.

불안에 빠진 그들 앞에, 달리는 장목화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포기하지 마! 우리가 도와줄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건, 장목화가 바보처럼 착해서가 아니었다. 이는 각종 장단점을 하나하나 따져 본 뒤에 찾아낸 가장 합리적인 방안이었다.

만약 구조팀이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유적 사냥꾼들을 그대로 지나쳐버린다면 절망에 빠진 그들은 비이성적인 행동을 하게 될지도 몰랐다.

예컨대 함께 죽자는 마음을 갖게 될 수도 있고, 도주를 위해 군용 외골격 장치를 빼앗으려 할 수도 있고, 물귀신처럼 구조팀을 억지로 이곳에 붙들어 매 불필요한 혼란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었다.

양범구 일행은 대부분 독행 사냥꾼으로 알 수 없는 능력과 강력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현재의 구조팀이라면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까지는 없었지만 그렇다고 얕잡아 볼 수도 없었다.

그런 혼란이 일어난다면 구조팀은 설령 아무 피해를 보지 않더라도, 시간을 몇 분씩이나 허비하며 진짜 적, 오하명에게 따라잡히게 될 터였다.

이 상황에 내분을 일으키는 건 절대 현명하지 못한 처사였다. 구조팀이 아직 여력이 있을 때, 양범구 일행을 도와 그들을 안정시키는 게 모두의 생존과 탈출에 유리한 행동이었다.

결국 장목화의 말에 양범구 일행의 표정도 풀어졌다.

뒤이어 총을 잘 걸어둔 장목화는 한 손으로는 구조팀의 길잡이 로엔을, 다른 한 손으로는 웨트를 움켜쥔 채 계속해서 달렸다.

이를 보고 용여홍이 그레이와 장신의 독행자를 맡았고, 백새벽은 양범구 팀의 길잡이를 도왔다.

가무잡잡한 양범구는 이미 게네바의 겨드랑이에 안착한 상태였다.

양범구는 고개를 들어 반대편에 자리한 성건우를 바라보려 애썼다.

‘아니, 저 녀석은 어떻게 어깨 위에 앉아 있을 수 있는 거지?’

하지만 이 의혹을 차마 입 밖으로 꺼낼 용기는 없었다.

* * *

요란한 소리를 내며 힘을 아끼지 않고 발휘한 구조팀은 단 10여 분만에 전에는 몇 시간이나 소요된 여정을 마쳤다.

사실 그때는 워낙 느리게 걷기도 했거니와 수시로 멈춰 주위를 살펴야 했기에 시간이 더 지체된 것도 있었다.

이동 중 말을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용여홍은 벼랑 끝에 몰린 듯한 느낌을 받기까지 했다.

그리고 마침내 모두의 앞에 익숙한 동굴 출입구가, 하늘의 흐릿한 별빛이 보였다. 그래도 구조팀은 끝까지 속도를 유지했다.

출입구가 나타났다고 절대 방심하지 않고, 양범구 일행을 꼭 움켜쥔 구조팀은 그대로 차를 숨겨둔 곳까지 달렸다.

곧 차량 여러 대가 산길을 따라 전진 캠프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쿵쾅- 쿵쾅-

용여홍의 심장박동은 잠잠해질 기미가 없었다. 아직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약 2시간이 지났을 무렵, 드디어 성을 개조해 만든 전진 캠프가 시야에 잡혔다.

용여홍은 처음으로 마치 집에 돌아온 듯한 친근감을 느꼈다.

깊은 밤이지만, 양범구의 넉살 덕에 전진 캠프 대문도 쉽게 열렸다.

두 팀은 주차장에 도착한 뒤에도 흩어지지 않고 날이 밝을 때까지 경계 태세를 유지했다.

* * *

아침을 밝히는 태양이 어둠을 데려갔을 때, 양범구가 긴 한숨을 뱉었다.

“아, 이제 다들 좀 쉬자.”

용여홍 역시도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현재 상황으로 볼 때 오하명은 불모지 13호 유적을 떠날 방법이 없는 것 같았다. 그게 아니면 그 폐허 도시 주위에 있는 퍼스트 시티 정규군은 일찍이 오하명에게 영향을 받지 않았겠는가.

이윽고 유적 사냥꾼들이 떠난 뒤, 장목화가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회사에 전보를 보내야겠어.”

용여홍은 팀의 무선 통신기를 꺼냈고, 장목화는 종이에 따로 회사에 보고할 내용을 적었다.

일단 그녀는 도와 전자 제품 수리 방송국과 접촉한 경험을 이번 사건에 교묘히 접붙였다. 게네바에게 모드를 전환해 위치를 정탐하게 한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게네바는 이미 합작 파트너라고 둘러댔으니, 회사에서도 그냥 양범구 팀의 일원이라 여길 것이었다. 거기다 생존자의 경험을 이용했다는 포석까지 깔아둔 후에 비로소 본론으로 들어갔다.

구조팀과 양범구 팀이 어떻게 동굴을 찾아냈는지, 어떻게 안으로 진입했는지, 불모지 13호 유적은 어떻게 발견했는지, 이상한 낌새는 또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기이하게 침입한 오하명에게서는 어떻게 벗어났는지, 어떻게 질주했는지까지 구구절절 밝혔다. 중요한 정보는 단 하나도 빠뜨리지 않았다.

만약 반고 바이오에서 장목화가 언급한 생존자를 찾아 도와 전자 제품 수리 방송국 관련한 일을 확인하려 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안타깝게도 후속 치료를 받다가 감염으로 사망했다고 말하면 그만이었다.

이를 위해 장목화는 정말로 이미 죽은 사냥꾼 이름을 적어둔 상태였다.

본디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 아니던가.

구조팀은 작성한 내용을 전보문으로 번역해 발송했다.

머지않아 반고 바이오에서 답신이 왔다.

이는 회사에서 그들의 전보를 확실히 수신했고, 앞으로 분부가 떨어지기까지 1~2일, 심지어 그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리리라는 뜻이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쉰 장목화가 팀원들을 돌아보았다.

“이제 교대로 휴식하고 잠도 좀 자자.”

휴식은 고성능 배터리를 충전하겠다는 걸 뜻하기도 했다.

전진 캠프 전기료는 퍼스트 시티에 비해 훨씬 비싸서, 구조팀의 활동 경비도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었다.

* * *

오후 경계를 맡은 용여홍과 백새벽은 돌격 소총을 쥐고 주변을 돌았다.

그때였다.

쿵!

팀의 지프차 안에서 웬 소리가 났다.

용여홍은 곧장 차 뒷문을 열었고, 백새벽은 이미 총구를 들이대고 있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눈앞엔 엎어져 있는 장목화밖에 없었다. 왼손으로 바닥을 짚은 그녀는 거의 거꾸로 뒤집혀 있었다. 자다가 떨어진 모양이었다.

“팀장님, 무슨 일 있어요?”

용여홍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허리와 등에 힘을 주고 제자리에 앉은 장목화가 어색하게 웃었다.

“꿈을 꿨어. 덕분에 한 가지 문제점을 발견했네.”

갑자기 진지해진 장목화를 보고, 용여홍과 백새벽도 덩달아 진지해졌다.

곧이어 다른 차에서 자고 있다가 깨어난 성건우가 게네바와 함께 이쪽으로 왔다. 장목화는 더욱더 신중한 얼굴을 보였다.

“전에 흰 늑대를 따랐던 유적 사냥꾼들에 대한 꿈을 꿨어. 검은 황원과 폐허 도시를 좀비처럼 맴돌고 있더라고. 근데 꿈에서 깨어나니까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어. 수치가 안 맞아.”

“무슨 수치요?”

용여홍은 청중의 본분에 충실했다. 물론 진짜 몰라서 묻는 거였지만.

장목화는 기억을 찬찬히 더듬었다.

“최근 두 달간 흰 늑대가 하루에 사람을 한 명씩 먹었다고 쳐도, 계산해 보면 기껏해야 61명이야.”

이번엔 백새벽이 말했다.

“근데 생존자들은 늑대가 사람을 매일 먹지는 않았다고 했어요. 정기적으로 2, 3일에 한 번씩 먹었다고 했죠.”

“응, 근데 난 최대치를 잡아서 계산한 거야. 우리 손에 죽은 유적 사냥꾼과 생존자들을 합하면 35명이야. 또 길드 통계로 최근 두 달간 북안 뭇 산에서 실종된 유적 사냥꾼과 황야유랑자는 거의 170~180명 정도 된다고 했고.”

용여홍은 팀장의 말뜻을 단박에 알아차렸다. 사람 숫자가 맞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결국 일부 실종자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사냥을 하는 거니까 탐색이나 뭐 다른 일을 하다가 실종된 사람들을 참작해도 흰 늑대에 영향을 받은 사람은 120~130명 정도 돼. 그러니까 대략 30명은 흰 늑대 곁을 따르지도, 아직 늑대에게 잡아먹히지도 않았다는 거지. 그 사람들은 과연 어디로 갔을까?”

장목화의 진중한 눈빛에, 백새벽도 깊이 생각하다 덧붙였다.

“생존자들 설명을 들어보면 흰 늑대한테 먹힌 사람은 고작 24, 5명 정도에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사람은 60명 이상일 거예요. 이건 길드에서 자체적으로 내린 통계이니 파악되지 않은 실종자도 있을 거고요.”

흰 늑대 임무가 공개되기 전까지 북안 뭇 산의 상황은 파악되지 않았을 터였다. 여기엔 통일된 조직도, 강한 통제권을 가진 세력도 없었다.

“그러니까 최근 두 달간 흰 늑대에 영향받은 사람 중에 거의 절반이 행방불명됐다는 거죠?”

용여홍은 도저히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이어, 성건우는 뭔가 깨달았다는 듯 말했다.

“예비용 먹이로 어디에 저장해뒀나?”

장목화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옆에 데리고 다닌 사람들도 예비용 먹이였어. 일단 두 조로 나눠서 생존자들 한번 탐문해 보자. 혹시 이거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는지, 또 흰 늑대한테 영향받은 구체적인 시간도 기록해둬. 물론 당시 정신이 없었을 테니까 세부적인 것들은 놓쳤을 수도 있겠지.”

누구도 꾸물거리지 않았다. 바로 성건우, 장목화, 그리고 용여홍, 백새벽, 게네바로 조를 나눈 구조팀은 생존자들을 찾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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