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400화 (400/649)

400화. 도는 전기 안에 있다

‘재수가 없어도 이렇게까지 없을 수가. 분명 산에 들어가기만 했지, 동북쪽으로 향하지는 않았는데.’

용여홍은 비밀 기지를 찾았으니 이제 가치 있는 정보와 물건을 찾을 수 있으리라 믿었다. 전자는 회사에 보고해 공헌 점수로 보상받고, 후자는 빚을 탕감하는 데 쓸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런데 웬걸, 팀이 발견한 폐허는 분명 비밀이긴 했지만 지나친 비밀이었고, 그 위험도도 수직으로 상승했다.

이때, 게네바가 스피커를 통해 수신한 내용을 틀어주었다.

- 여러분, 오늘 주제는 냉장고의 수리와 도의 음양 변화입니다.

귀에 익은 매력적인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장목화는 두피가 약간 저릿해졌다. 그래서 황급히 게네바를 쳐다보았다.

“위치를 바꿔 다시 감청해보면서, 도와 전자 제품 수리 방송국과 우리가 어느 정도 떨어져 있는지 확인해줘.”

도와 전자 제품 수리?

양범구 일행의 의혹이 깊어졌다. 하나하나의 단어는 다 아는 것들이었지만, 그 말이 한데 모여 있으니 좀처럼 이해가 가지 않았다.

혼란스러웠지만, 그들은 신중하게도 모든 행동을 멈췄다. 공원으로 냅다 달려가거나 폐허 도시를 탐색하지도 않았다.

장목화의 표정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 진중한 표정이 이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다는 걸 소리없이 전하고 있었다.

이들은 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었다. 이런 상황에는 기회를 놓치게 되더라도 절대 위험을 감수하려 해서는 안 됐다.

잠시 후, 위치를 바꿨던 게네바가 돌아왔다.

“그 방송국과 지금 거리는 2킬로미터도 채 안 된다.”

용여홍은 이러한 답을 듣게 될 것을 어느 정도 생각하고 있었는데도 절로 눈꺼풀이 꿈틀거렸다. 심장도 덩달아 빠르게 박동하기 시작했다.

‘정말로 불모지 13호 유적에 들어왔다니! 게다가 도와 전자 제품 수리 방송국 근처에 이르러 있다니!’

이내 장목화는 무의식중에 성건우를 바라보다 한숨을 내쉬었다. 성건우는 두렵긴커녕 매우 신난 듯 보였다.

장목화가 입을 열었다.

“철수하자. 천천히 신중하게 논의해야 해.”

천천히 신중하게 논의하자는 건 일단 전진 캠프로 돌아가 이곳 상황을 회사에 보고하고 회사가 불모지 13호 유적에 대해 뭘 알고,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보고 다시 계획을 세우자는 뜻이었다.

만약 이곳으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면 그때는 더 제대로 된 준비를 마치고 주변이 밝을 때 탐색해야 했다. 물론, 이 또한 실제적인 위험이 크다면 바로 행동을 중단한 뒤 회사에 인력 파견을 요청할 것이었다.

“철수라⋯⋯.”

작게 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양범구는 공기 중에 조용히 흐르는 위험의 냄새를 예리하게 감지해냈다. 이어, 그가 구조팀을 향해 물었다.

“이곳에 무슨 문제라도 있는 거야?”

장목화도 양범구가 줄곧 보여온 호의와 선의를 생각해 이들에게도 몇 마디 경고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고작 몇 마디 한다고 딱히 구조팀에 해가 될 것도 없었다.

“음, 불모지 13호 유적에 대해 들어봤으려나 모르겠네?”

양범구 옆, 추위를 잘 타는 그레이가 흠칫 놀란 듯 입을 열었다.

“여기가 불모지 13호 유적이라고?”

그레이는 보통 퍼스트 시티 주위 구역에서만 활동하는 독행 사냥꾼인지라, 불모지 13호 유적에 관한 갖가지 소문을 익히 들은 바 있었다.

장목화가 신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보아하니 그 흰 늑대는 이곳을 통해 달아난 것 같아.”

이는 북안 뭇 산 내에 왜 갑자기 그런 특별한 능력이 있는 변이 생물이 나타났는지를 설명하기도 했다.

양범구 일행도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세상에 아무 이유도 없이 나타나는 문제는 없었다. 그들은 흰 늑대와 불모지 13호 유적이 관련돼 있다는 이야기도 무리 없이 이해했다. 여태까지 이동한 방향과 거리를 떠올려봐도, 이곳이 불모지 13호 유적이 맞다는 결론이 섰다.

“여기가 얼마나 위험한지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겠지? 모험하고 싶다 해도 일단은 돌아갔다가 제대로 준비한 뒤에 다시 돌아오는 게 좋을 거야.”

장목화는 쓸데없는 말을 줄줄 늘어놓는 대신 의견 제시만 했다. 독행 사냥꾼들이 이 말을 따를지 말지는 그들이 결정할 몫일 뿐, 경고를 해준 것만 해도 구조팀은 이미 최대한의 인정을 베푼 거였다.

잠시 고민하던 양범구가 일행을 돌아보았다.

“내 생각에도 무턱대고 덤벼드는 것보다 일단 돌아가서 다시 얘기해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렇게 큰 폐허 도시가 제 발로 달아날 리는 없잖아.”

일행은 조금 주춤거렸다. 불모지 13호 유적에는 물자와 어마어마한 가치의 정보가 풍족하게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또한 여태까지 이곳에 대한 유적 사냥꾼들의 탐색을 저지한 건 무시무시한 소문이 아닌, 이 구역을 봉쇄하고 있는 퍼스트 시티의 정규군이었다.

이때, 성건우가 돌연 웃으며 중얼거렸다.

“퍼스트 시티 장교들, 멍청하네. 여길 지킬 사람을 보내진 않은 걸 보면.”

순간 다들 안색이 변했다. 정말 퍼스트 시티 정규군이 이 폐허 도시를 제대로 통제하고 있다면, 이 출입구를 지킬 부대를 파견하지 않았을 리 없었다.

그런데 그런 이들이 없다는 건 그들이 해둔 봉쇄가 외부에 국한돼 있을 뿐이라는 뜻이었다. 그들 역시도 불모지 13호 유적에 대한 탐색을 그렇게 심층적으로 해보진 않은 모양이었다.

“좋아, 일단 돌아가자고.”

웨트가 곧장 양범구의 제안에 응했다. 그레이를 비롯한 이들도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그렇게 두 팀 전체가 돌아서서 통로의 입구로 향했다.

* * *

그제야 모두가 이 통로 입구에 금속 짝문이 달려 있던 것을 발견했다.

심지어 문은 열려 있었다. 혹시 누군가 이곳에 있었던 것일까?

“아까 들은 그 방송도 여기랑 관련돼 있어?”

걸음을 옮기던 중에, 양범구가 물었다.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주 위험한 방송이야. 그 방송국이 여기 있어.”

“그 방송은 듣는 사람들 모두한테 영향을 미쳐.”

흡사 귀신 얘기를 하는 듯 성건우가 덧붙인 말에, 양범구 일행의 눈이 커다래졌다. 여태 한 번도 들어본 적 없거나, 비슷한 소문을 듣기는 했어도 실제 경험은 없던 일이었다. 방송국 주인이 그렇게 신비롭고도 강력하다니,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졌다.

다시 두 팀이 묵묵히 앞으로 나아가던 그때, 성건우의 전술 배낭에서 갑자기 음악이 흘러나왔다.

- 헤이, 네가 정말 보고 싶어⋯⋯.

감동적이면서도 슬픈 노랫소리였다.

황당한 얼굴로 옆의 성건우를 돌아본 용여홍이 멍하게 물었다.

“갑자기 노래는 왜 틀어?”

‘이런 분위기에 그게 정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

제게로 모든 시선이 쏠리고 있는데도 성건우는 민망해하긴커녕 환히 웃었다.

“내 스피커가 살아났어! 알아서 노래하다니!”

동시에 그는 전술 배낭을 풀려고 했다.

그 순간, 장목화의 안색이 살짝 변했다. 성건우는 절대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뭔가가 퍼뜩 생각난 그녀가 곧장 게네바를 쳐다보았다.

게네바는 눈에 붉은빛을 번득이며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

별빛이 반짝이는 밤하늘 아래, 잡초만 무성히 있는 황량한 땅에 선 그가 천천히 입을 벌리더니 약간 웃음기 어린 목소리를 냈다.

“도는 회로, 회로판, 전자 제품 안에 있다.”

원래 게네바의 중저음과는 확연히 다른 목소리였다. 매력적이고, 묵직하고, 또렷한 감정이 담겨 있는 그 목소리.

마치 라디오를 통해 직접적으로 송출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용여홍도 휘둥그레진 눈으로 게네바를 돌아보았다. 어딘가 좀 이상해진 게네바를 보고 있자니, 머릿속에 떠오르는 건 한 가지밖에 없었다.

‘도와 전자 제품 수리 방송국 주인……, 오하명!’

순간 용여홍은 온몸이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한여름 밤이 아닌, 엄동설한이 된 것만 같았다. 불어오는 바람마저 이상하리만치 싸늘했다.

양범구 일행도 상황은 잘 파악되지 않았지만, 게네바가 이상해졌다는 것만은 분명하게 알아차렸다.

그들은 동시에 옆으로 한두 걸음 이동하면서 구조팀과 거리를 벌렸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에서 멀어져야만 했다.

장목화는 한 손에 손전등을, 한 손에는 아이스모스를 쥐고 있었지만, 총을 쏘지는 못하고 머뭇댔다.

총알로는 게네바에게 위해를 끼치기 어렵기도 했으며, 애초에 이건 총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었다.

현재 게네바는 당시 디마르코에게 빙의된 사람처럼 오하명에게 정보 침입을 받은 상태가 분명했다.

그래도 지금 이 상황을 방관하지 않는 건 장목화와 성건우뿐이었다.

조금 전 스피커를 꺼낼 것처럼 보였던 성건우는 확성기를 꺼냈다. 이것으로 추리 광대의 영향 범위를 확장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장목화는 곧장 왼손을 들어 손바닥으로 게네바를 겨눴다.

게네바는 계속해서 강철로 이루어진 입을 열었다 닫기를 반복하며 오하명의 매력적인 목소리를 전달했다.

“위험할수록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 반전하는 게 도의 움직임이라⋯⋯.”

게네바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 장목화의 왼손바닥에서 대량의 은백색 아크가 방출됐다. 급격하게 부풀어 오른 아크는 게네바를 감싸며 밝고도 위험한 전광 그물을 형성했다.

그러자 양범구 일행의 눈이 전보다 더 커졌다. 한층 커진 그 눈동자 속엔 전광이 가득 흐르고 있었다.

동시에 게네바의 확성기에서 기계 합성음이 흘러나왔다.

“알 수 없는 신호가 강제적으로 침입했습니다. 알 수 없는 신호가 강제적으로 침입했습니다. 격리 프로그램을 실행합니다⋯⋯.”

파직-

장목화가 방출한 아크가 소리를 내며 미친 듯 춤을 추기 시작했다. 주위에 비정상적으로 난잡한 전자장을 형성하는 움직임이었다.

그에 따라 게네바의 눈에서 번득이던 붉은빛도 점차 안정을 찾았다.

장목화가 곧장 외쳤다.

“라디오 모드 취소! 가자!”

그녀는 곧장 몸을 돌려 동굴 입구로 돌진할 준비를 했다.

“좋아!”

바로 정상적인 상태를 회복한 게네바는 전류가 흩어져 사라지는 사이 은백색 전광 그물에서 튀어나왔다.

성건우도 전술 배낭을 뒤로 내던지며 성큼 걸음을 디뎠고, 용여홍과 백새벽도 재빠르게 묵직한 나무 상자를 하나씩 짊어진 채 입구로 돌진했다.

경험이 풍부한 유적 사냥꾼 양범구 일행 역시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장목화가 내뿜던 아크에 대한 충격도 잠시 뒤로 미뤘다.

그들 역시 방향을 홱, 틀고선 구조팀을 따라 사력을 다해 내달렸다.

달려가는 사람들 뒤로, 별이 총총히 박힌 밤하늘과 따스한 밤바람에 응답하는 인공 호수가 잔잔히 출렁였다.

너무도 조용하고 안정적인, 위험 같은 건 상상할 수 없는 풍광이었다. 심지어 살아있는 생물 하나 보이지 않는, 지극히 고요한 분위기였다.

* * *

원래부터 동굴 입구 근처에 있던 구조팀은 단 몇 걸음 만에 열려 있는 금속 대문을 통과했다.

장목화는 그제야 걸음을 살짝 늦추며 게네바, 성건우에게 눈짓했다.

이내 의혹과 경계심을 잔뜩 안은 양범구 일행이 동굴로 들어오자마자 셋은 금속 대문으로 직행했다.

쾅!

게네바, 그리고 장목화, 성건우가 대문 한 쪽씩 맡아 힘껏 문을 닫았다.

작업을 마친 뒤엔 재깍 뒤돌아 속도를 높이며, 앞선 일행을 따라 달렸다.

구조팀이 계속해서 질주를 멈추지 않자, 양범구 일행도 위험이 아직 제거되지 않았음을 직감하고 사력을 다해 달렸다.

손전등 빛줄기가 어지럽게 얽혀드는 가운데, 다들 질주를 멈추지 않았다. 머지않아 신체의 한계에 부딪힐 것만 같았다.

그때, 이상하리만치 또렷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던 장목화는 돌연 뒤를 돌아보며 멈추라고 지시했다.

“헉, 헉…….”

용여홍과 백새벽이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군용 외골격 장치 착용해.”

장목화가 빠르게 분부했다.

이는 구조팀이 세워둔 여러 철수 방안 중 하나라, 부연 설명은 필요 없었다. 용여홍과 백새벽은 바로 짊어진 나무 상자를 내려놓고 안에 든 신형 군용 외골격 장치 두 개를 꺼냈다.

착용은 성건우와 게네바가 빠르게 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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