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397화 (397/649)

397화. 기이한 발견

한차례 소동 후, 신음과 자동차 흔들림도 적잖게 줄어들었다.

경보가 완전히 해제되자 장목화는 그제야 목소리를 잔뜩 낮췄다.

“늑대 울음소리는 갑자기 왜 낸 건데?”

성건우가 진지하게 답했다.

“늑대 포효를 흉내 내면 가위 말을 유인할 수 있을까 하고요.”

순간 표정이 굳어진 장목화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두어 번 경련했다.

“너, 매혹 능력 있어?”

“아뇨.”

“…….”

장목화는 이제 짜증 낼 힘도 없어서, 고개를 바로 틀어버렸다.

시간이 흐르며 달은 점차 높이 떠올랐고 인기척도 차츰 잦아졌다.

마침내 찾아온 적막에, 장목화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았다.

‘……적막?’

갑자기 그녀의 미간이 구겨졌다.

전진 캠프 각 유적 사냥꾼 팀엔 불침번을 서는 이들이 있었다. 이곳에 주둔하는 퍼스트 시티 정규군도 순찰하며 생명체의 침입을 막았다. 그러니 아무리 심야라도 이렇게까지 적막할 수는 없었다.

‘무슨 일이 났나?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데? 설마 나한테 문제가 생겼나? 이, 이거 혹시 꿈인가? 진짜 가위 말이 나타난 거야? 아냐, 가위 말은 꿈을 사실적으로 만드는 거지, 누군가를 잠재울 순 없어. 그렇다면 수면 고양이? 가위 말의 동료인 수면 고양이도 같이 온 거야?’

장목화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자신을 어떻게 깨울지 고민했다.

동시에 그녀는 대지가 흔들리는 걸 느꼈다. 온 산을 뒤흔들 듯 격렬한 떨림이었다. 마치 종말이 재차 강림한 것만 같았다.

거칠게 흔들리던 와중, 장목화의 귀에 주변의 소리가 닿았다.

시야엔 성건우의 얼굴이 가득 찼다.

성건우는 매우 상기된 얼굴로 장목화의 어깨를 잡고 소리치고 있었다.

“가위 말과 유령 고양이가 모두 다 왔어요!”

장목화도 황급히 냉정을 찾았다.

“어디에 있는지 느껴져?”

뭇 산에는 체형이 일정 정도에 달하고 전기 신호를 방출하는 생물이 너무 많아서, 가위 말과 수면 고양이의 전기 신호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장목화는 곧바로 자신이 멍청한 질문을 했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성건우라도 인간이 아닌 변이 생물의 의식을 감지할 수 있단 보장이 없었다.

성건우는 이내 장목화의 어깨를 잡은 손을 뗀 뒤 왼쪽 손목에 맹목의 고리를 찼다. 그 후 전술 배낭을 내려놓고는 안에서 확성기를 꺼냈다.

확성기를 켜고, 입가에 갖다 댄 성건우는 검은 머리카락으로 짠 장신구가 불에 타오르는 듯한 빛을 내도록 했다.

장목화도 기대감을 안고 상황을 지켜보았다.

순간 시간이 다 멈춘 듯했다.

그로부터 몇 초가 지났을 때 성건우의 목소리가 캠프 밖 특정 구역으로부터 시작해 그 주위로 울려 퍼졌다.

“너희 둘 다 알겠지. 난 수종이 친구야. 난 수종이랑 같이 게임을 하고 싶어. 그러니까⋯⋯.”

‘추리 광대를 쓰려는 거네. 건우는 지금 가위 말이랑 수면 고양이 의식을 감지할 수 있는 건가?’

장목화는 천천히 시선을 돌리며 캠프 상황을 눈에 담았다. 적잖은 사람이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깨거나 하던 일을 멈춘 상태였다.

그중엔 용여홍, 백새벽, 게네바도 있었다.

* * *

성 본채 4층, 여관방.

양범구는 들려오는 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이다가 미간을 찌푸린 채 창가로 다가갔다. 가로등 불빛 아래, 구조팀 일원들이 있었다.

그러다 양범구는 성건우와 그가 든 확성기를 보고 혼란에 빠졌다.

성건우가 대체 누구와 얘기하는지, 지금 한 말이 무슨 의미인지, 수종은 또 어떤 존재인지 알 수가 없었다.

이에 양범구는 성건우가 확성기를 든 쪽으로 시선을 옮겨서, 높은 곳에서 아래를 조망하는 듯한 자세로 바깥을 살폈다.

하지만 달빛 아래엔 어룽거리는 어둠뿐, 정말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 * *

성건우는 한참을 기다리며 했던 말을 두 번이나 반복한 후에야 확성기를 내려놓았다. 얼굴엔 짙은 아쉬움이 담겨 있었다.

“녀석들 지능에 문제가 있나 봐요, 제 말뜻을 못 알아들은 것 같네요.”

‘걔들이 말뜻을 알아듣기를 바라는 네 머리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고? 넌 성건우지, 수종이가 아니잖아.’

속으로만 타박한 장목화가 이내 차 문을 열고 내려온 백새벽, 용여홍, 게네바를 쳐다보았다.

장목화는 다시 성건우에게 물었다.

“너, 녀석들 의식을 감지할 수 있어?”

성건우가 왼손을 들어 손목에 찬 맹목의 고리를 보여주었다.

“정상적으론 불가능한데, 이걸 쓰면 가능해요. 저쪽으로 대략 3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인간은 아닌데 인간과 비교적 가까운 의식 두 갈래가 있어요. 다른 생물의 의식도 아니에요. 다른 생물한테는 감지가 가능할 정도로 또렷한 의식이 없으니까요.”

물론 성건우의 양손 동작 불능 능력은 30미터 떨어진 곳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었지만, 맹목의 고리가 아니면 애초에 그 목표를 발견할 수가 없었다.

‘심령의 복도 급에 이르면 변이 생물의 의식도 감지할 수 있다는 건가?’

또 하나 깨달음을 얻은 장목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흰 늑대를 노리며 매복했을 당시 장목화는 성건우에게 맹목의 고리를 이용해 멀리 떨어진 곳의 상황을 감지하게 했었지만, 그건 뜻밖의 사고를 예방하기 위함이었지 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리고 그 뜻밖의 사고란 대개 인간으로부터 기인했다.

다만 장목화 역시도 맹목의 고리로 변이 생물의 의식을 감지할 수 있는지 확인해볼 생각은 당연히 있었다.

“지금은? 아직도 거기 있어?”

성건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두 번째로 외쳤을 때 30미터 밖으로 벗어났습니다. 휴, 녀석들은 어느 게 손이고 발인지도 구분 못 하나 봐요. 양손 동작 불능도 효력이 없었어요.”

“그걸 왜 이제 말한 거야? 진작 말하지.”

사실 장목화는 마음 같아서는 왜 쫓아가지 않았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이 일은 겐에게 맡기는 게 좋을 것 같아 입을 다물었다.

이내 성건우가 솔직하게 답했다.

“수종이에게 알리러 가는 건 줄 알았거든요. 하지만 아닌 것 같네요.”

‘수종이는 도시 안에서 게임 중이겠지.’

장목화가 느릿하게 숨을 토해냈다.

“작은 빨강이랑 작은 흰둥이는 외골격 장치 두 대 꺼내. 야랑 겐이랑 내가 추적할게. 아, 때맞춰 녀석들을 가로막을 수 있으면 좋겠네.”

뭇 산에서 이 정도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는 상황에 외골격 장치 없이 두 변이 생물을 따라잡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럼 내가 먼저 갈게.”

게네바는 일단 시간을 낭비하지 않으려 했다.

“좋아.”

장목화도 그런 생각이었던지라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곧이어 성건우가 장소를 설명해주자, 게네바는 그대로 성벽을 향해 돌진하더니 한 손으로 땅을 짚고 붕 떠올랐다.

순찰 중이던 군인들이 넋을 놓고 쳐다보는 가운데, 가볍게 성벽을 뛰어넘은 로봇은 목표 구역을 향해 달려 나갔다.

전진 캠프 대문은 꽉 닫혀 있었지만, 게네바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 * *

성 본채 4층.

양범구는 이 광경을 보고 한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로봇이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구나.”

넋을 잃은 틈으로도 부러움은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계속해서 달빛 아래 게네바를 지켜보던 양범구는 로봇이 뭔가를 찾는 듯 수십 미터 밖에 멈춰 선 것을 보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발견할 수가 없어서 양범구는 다시 구조팀이 차를 세워둔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성건우와 장목화는 막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뒤 팔다리를 움직여보며 장치에 적응 중이었다.

“저건⋯⋯!”

양범구의 눈은 튀어나올 듯 휘둥그레졌다.

구조팀에 든든한 배경과 강력한 실력, 많은 장비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장비가 저렇게까지 많을 줄은 몰랐다.

‘둘 다 지나치게 오래된 모델도 아닌데? 저 녀석들 대체 뭐지?’

그리고 양범구는 장목화와 성건우가 성벽을 향해 돌진한 뒤 한 손으로 땅을 짚고 훌쩍 몸을 날리는 것을 보았다.

인간인데도 로봇과 다름이 없었다. 그들은 무려 4미터가 넘는 벽을 그대로 뛰어넘었다.

순찰하던 군인들은 그들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뿐 감히 저지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차마 무엇으로도 표현하진 못했지만, 그들이 느끼기엔 이는 분명 성벽에 대한 어마어마한 모욕이었다.

* * *

장목화와 성건우는 빠른 속도로 게네바 옆에 이르렀다.

“말발굽 자국이 있어. 근데 저쪽 숲에서 끊겨버려.”

게네바가 울창한 숲을 가리켰다. 잡초가 무성하고 환경도 복잡한 곳이라 단서를 찾기는 굉장히 힘겨울 것 같았다.

장목화가 한숨을 토해냈다.

“됐어.”

게네바가 있으니 흔적 추적은 충분히 할 수 있었다. 다만 시간이 얼마나 들지는 가늠도 할 수 없었다.

가위 말과 수면 고양이도 줄곧 한곳에 머무르진 않을 터였다. 시간이 흐르면 이미 탐색 가능한 범위에서 벗어나 있을 게 분명했다.

주위를 한 번 둘러보던 장목화가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가위 말이 정말 네가 흉내 낸 흰 늑대 울음소리를 듣고 온 건 아니겠지?”

사람이 흉내 낸 늑대 울음과 진짜와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했다.

가위 말이 정말로 성건우에게 속아서 이끌려온 것이라면, 녀석은 변이 생물계의 수치라 불려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다른 가능성은 없잖아요.”

성건우가 자부심 넘치는 표정으로 대꾸했다.

장목화는 다시 또 생각에 잠겼다.

“음, 근데 왜 녀석은 수면 고양이로 나를 처리한 걸까? 네가 아니고.”

거짓말을, 아니, 거짓 울음을 낸 건 분명 성건우였다.

성건우는 잠시 고민하다가 언제나처럼 진지하게 대꾸했다.

“팀장님한테 더 매력을 느꼈나 보죠.”

“뭐?”

장목화가 아무리 눈치가 빠르다 한들 성건우가 한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는 없었다. 게네바도 마찬가지였다.

이에 성건우가 친절하게 설명했다.

“가위 말은 흰 늑대 울음을 듣고 달려왔지만, 늑대를 발견하진 못한 거죠. 그러다 녀석은 소리 근원지에서 가장 매력적인 팀장님이 흰 늑대를 납치해 사랑을 방해한 거라 오해하고 팀장님을 노린 거예요. 팀장님도 아시다시피 녀석 머리가 딱히 좋은 편이 아니에요. 어쨌거나 말은 말인 거니까요.”

“⋯⋯.”

장목화는 어처구니없어하면서도 또 한편으론 이게 진상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 이제 돌아가자. 네가 수종이 친구라는 말을 녀석들도 잘 알아들은 거면 좋겠네.”

다시 전진 캠프 성벽 앞으로 돌아간 장목화, 성건우, 게네바는 각자 한 손으로 땅을 짚고 가볍게 성벽을 뛰어넘었다.

순찰 중인 군인들은 이제 이들을 아예 못 본 척했다.

그리고 용여홍, 백새벽에게 상황을 알린 장목화, 성건우는 외골격 장치를 벗고 계속해서 불침번을 섰다.

* * *

몇 차례 교대 끝에 하늘 끄트머리가 희끄무레하게 밝아오기 시작했다.

아침을 먹은 구조팀은 조를 나눠 흩어진 채, 전진 캠프에 있는 사람들에게 가위 말과 비슷한 생물을 본 적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때 질문받은 사람들 모두가 너무도 공손하고 친절한 태도였다.

한 바퀴를 돈 성건우가 이번에 캠프 여관 주인에게 물었다.

“혹시 말을 본 적 있으십니까? 검은색이고 저보다는 키가 좀 작아요. 갈기와 꼬리 색은 굳은 지 아주 오래된 피 같은 색이고, 눈동자 색깔도 비슷해요.”

사실 구조팀도 실제로 가위 말을 본 적은 없어서, 전에 차으뜸에게서 들은 이야기로 묘사 중이었다.

적잖은 나이로 귀밑머리가 하얗게 센 사장이 조금 의아한 얼굴을 했다.

“봤지. 자네들이 잃어버린 말인가?”

“어디서요?”

흥분한 성건우가 캐물었다. 장목화도 눈을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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