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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야여화-383화 (383/649)

383화. 새로운 이미지

레드울프 구역, 스턴 스트리트 25호.

시커먼 다기능 기계 팔을 보고, 테렌스의 얼굴이 굳었다.

“담보를 이걸로 바꿔도 되겠지?”

장목화가 물었다.

그제야 기계 팔에서 시선을 뗀 테렌스가 몰래 숨을 들이마셨다.

“그럼, 문제없지!”

이 순간 그의 머릿속엔 오직 한 생각밖에 없었다.

‘……이 녀석들, 대체 얼마나 무시무시한 녀석들인 거지? 각성자도 있고, 군용 외골격 장치에 기계 팔까지 턱턱 내놓는다고? 이걸 담보로 빌려 간 돈으론 또 뭘 사려는 거지?’

이런 팀이라면 정규군 엘리트 팀에 비할 순 없어도, 유적 사냥꾼이나 암흑가 조직 앞에서는 절대적인 우세를 보일 것이었다.

잠시 뜸을 들이던 테렌스는 애써 웃음을 짜내며 떠보듯 물었다.

“혹시 이 두 개, 팔 생각이야?”

블랙셔츠파도, 초월 영성 교단도 이러한 장비를 무척 갈망하고 있었다.

“어떨 것 같아?”

장목화가 웃으며 되물었다.

테렌스는 한숨을 한번 토해냈다.

“알아, 이런 관제 물품 얻기가 엄청 힘들다는 거. 정 방법이 없는 상황이 아니면 그 누구도 이걸 팔려고 하진 않지.”

잠시 생각하던 장목화가 대꾸했다.

“아 참, 네가 도와줬으면 하는 일이 더 있어.”

“뭔데?”

순간 테렌스의 경계심이 높이 치솟았다.

‘설마 돈을 또 빌려달라는 건 아니겠지?’

장목화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너희를 통해 염색약을 좀 사고 싶어서.”

뒤이어 그녀는 여러 제품의 이름을 줄줄 늘어놓았다. 격투장에 갈 때 평범한 레드리버인처럼 꾸며 남들 눈에 띄지 않으려는 의도였다.

이내 성건우는 멍한 표정의 테렌스를 보고 웃으며 덧붙였다.

“걱정하지 마, 이번에는 돈 낼 거야.”

그는 퍽 흥분한 듯 보였다.

* * *

사흘 뒤, 레드울프 구역 구조팀 안전 가옥.

자리에서 일어난 성건우가 방에 있던 금 간 전신 거울 앞으로 갔다.

거울 속 남자의 모습이 조금 낯설게 보였다.

갈색 머리칼, 짙은 눈은 퍽 깊어졌고, 파우더를 바른 얼굴 윤곽도 원래보다 훨씬 더 입체적으로 변했다. 완전히 순혈 레드리버인 같은 생김새였다.

장목화의 훌륭한 위장술 덕분이었다.

하지만 이제 더 이상 그렇게 빛나던 미남 성건우는 없었다. 귀족석에 앉은 사람들의 과한 관심을 끌거나 의심을 사지 않으려는 조치였다.

물론 성건우의 큰 키와 남성스러운 분위기까진 가리지 못했지만, 퍼스트 시티 귀족은 무예를 숭상했기에 딱히 눈에 띄지는 않을 터였다.

장목화가 알기론 매해 반고 바이오에서 수출하는 유전자 개량액과 약물 대부분은 퍼스트 시티로 향했다. 그 최종 정착지가 바로 귀족들이었다.

귀족들은 구세계 파괴가 금기된 실험에서 비롯됐다며 부자연스러운 유전자 기술을 절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남몰래 자신의 유전자를 개량했다.

이를 통해 피통치자들에게 귀족들은 나름의 혈통이 있다는 걸, 하늘의 총아임을 당당하게 내세웠다.

그래서 퍼스트 시티의 귀족 집단에서 키가 180센티미터 이상에, 체격이 건장하고, 외모가 준수한 이는 꽤 많은 편이었다.

이내 거울을 보던 성건우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왜 그래, 너무 못생겼어?”

장목화가 농담을 건넸다.

‘에이, 건우가 그런 걸로 한숨을 쉴 리가.’

용여홍은 속으로 부정하면서도, 친구가 왜 한숨을 쉬는지 추측하지 못했다.

성건우는 거울에서 눈을 떼고 아쉬움을 표했다.

“너무 평범한데요? 모처럼 염색하는 건데 왜 한 색깔만 해야 하죠?”

장목화가 실소했다.

“일곱 색깔 무지개라도 만들고 싶었던 거야?”

성건우는 또 진지하게 생각하다가 입을 뗐다.

“그건 너무 눈에 띄고, 삼원색이면 충분했을 거예요.”

‘그게 무지개랑 뭐가 다른데.’

용여홍이 인상을 쓰고 성건우를 위아래로 훑어내렸다.

장목화도 더는 성건우를 신경 쓰지 않고, 거울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검은 머리에 굉장히 만족해서 염색은 하지 않았다. 레드리버인 중에도 검은 머리를 가진 사람은 있으니 문제는 없었다. 그들은 아크슨 지대에서 온, 퍼스트 시티를 건립한 주류 집단이기도 했다.

전에 구조팀이 휴고 여관 근처에서 찾은 한 식당 주인이 아크슨인이었는데, 그의 머리칼도 애쉬랜드인처럼 새카맸었다.

대신 장목화는 항상 묶던 머리를 풀고 살짝 웨이브를 줬다.

구조팀엔 또 하나 비장의 무기가 있었다. 블랙셔츠파를 통해 어렵사리 얻은 콘택트렌즈였다. 이는 구세계에서 나온 오래된 물건으로, 도수가 없는 렌즈였다.

포장 상태는 완벽했지만, 솔직히 사용이 가능한 건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장목화는 그저 선택받은 자의 탁월한 체질만 믿어보기로 했다. 어쨌든 두세 시간만 버티면 될 일 아니던가.

장목화는 천천히 순서에 따라 콘택트렌즈를 착용했다.

파랗게 변한 눈동자엔 햇빛 아래 잔잔한 바다가 고여있는 듯했다.

여기에 장목화는 이목구비 윤곽과 얼굴선에도 음영을 추가해 더더욱 아크슨인에 가깝게 분장했다. 사실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모습이었다.

오늘 장목화는 격투 시합 관람객 성건우의 파트너가 될 예정이었다. 맡은 역할에 충실히 분한 장목화는 끝으로 머리를 만지며 백새벽을 쳐다보았다.

“작은 흰둥이 너는 작은 빨강이랑 같이 계속 애쉬랜드인 모습 그대로 유지하는 게 어때? 이 렌즈가 하나뿐이라서. 대신에 반 지성교 사람들이 못 알아보게 어느 정도 위장하기는 해야겠지? 퍼스트 시티 귀족 중에 애쉬랜드인 노예가 없는 이들이 몇이나 되겠어.”

백새벽은 2초간 침묵하다가 대꾸했다.

“전 격투장에 안 들어갈래요. 겐이랑 밖에서 기다리는 게 낫겠어요.”

중무기에 속하는 겐은 귀족석은커녕 격투장에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장목화는 모종의 생각에 잠긴 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이유를 물을 생각은 없는 듯했다.

뒤이어 그녀가 용여홍에게 물었다.

“넌 염색할래, 아니면 지금 이대로 유지할래?”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용여홍은 염색에 대해 살짝 거부감을 느꼈다. 원래 반고 바이오 직원 중에서도 염색한 이가 없었기에 더더욱 그러했다.

“알겠어, 앉아 봐. 내가 코랑 눈썹이랑 아이라인 좀 손봐줄게. 그렇게만 해도 넌 아예 다른 사람처럼 보일 거야.”

장목화의 말이 아니었다. 그녀를 흉내 낸 성건우의 목소리였다.

용여홍은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성건우의 장난감이 될 생각은 없었다.

“됐어, 나 여장시키려고 그러는 거지? 그것도 끔찍하게!”

성건우가 웃었다.

“나쁠 거 없잖아? 그거보다 완벽한 위장이 어딨어?”

결국 장목화가 또 성건우를 한번 노려보곤 용여홍을 향해 웃었다.

“앉아봐, 내가 해줄게. 사실 이쪽 방면에 제일 뛰어난 건 겐인데. 관련 프로그램만 내려받으면 전문가 뺨칠걸? 내 보조칩은 그만큼 강하지도, 지능인처럼 정확도가 뛰어나지도 않으니까.”

게네바가 금속 목을 위아래로 움직였다.

“신장과 체형, 이목구비 특징으로 보면 작은 빨강이는 레드리버인 귀족보다 여자로 위장하는 게 훨씬 더 좋을 것 같다.”

용여홍도 잘 알았다. 겐이 눈치는 없어도, 없는 말을 하진 않는다는 걸.

이내 긴 한숨을 쉰 용여홍이 장목화를 쳐다보았다.

“애쉬랜드인 노예가 될게요.”

장목화는 애써 웃음을 참으며 화장을 시작했다.

그 사이 용여홍이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팀장님, 건우는 왜 귀족이에요? 쟤도 노예 하면 되잖아요.”

성건우를 질투해서 그런 게 아니었다. 성건우가 혹여 또 기이한 행동으로 귀족석에서 문제를 일으킬까 걱정이 돼서였다. 실제로 퍼스트 시티에는 장신의 애쉬랜드인 노예를 거느린 레드리버인 여자 귀족이 흔하기도 했다.

장목화가 열심히 화장하며 답했다.

“그럼 너무 눈에 띄잖아. 첫 번째 관람인 만큼 우리는 최대한 자세를 낮춰야 해. 그 누구의 시선도 끌면 안 돼. 또 혹시나 기회가 생긴다면 건우가 귀족이어야만 목표에게 말을 걸고 추리 광대 능력을 발휘하기도 쉽잖아.

그래, 혼란의 시대를 거치고 총기 사용이 활발해지며 남녀 간 체격 차도 많이 줄긴 했지. 그래서 퍼스트 시티 내 소위 상류 사회에선 여자 귀족의 지위도 절대 낮지 않고 인원도 꽤 있어. 그렇다고 해도 남자 파트너 없이 여자 귀족이 격투장에 혼자 오면 아무래도 시선이 집중될 거잖아.”

곁에 있던 성건우도 웃으며 입을 열었다.

“사실 작은 빨강이한테 귀족 역할을 맡기고 저랑 팀장님이 노예가 돼도 되긴 하죠. 그렇지만 여홍이가 그 모든 상황을 혼자 끌고 가야 한단 걸 깨달았을 때 겁먹어서 울면 어떡해요.”

“그럴 리가⋯⋯.”

용여홍은 무의식적으로 반박하려 했지만, 끝내 할 말을 잃고 말았다.

* * *

위장을 마친 구조팀은 시간에 맞춰 움직였다.

이번에도 두 조로 나뉘었다. 게네바와 백새벽은 개조된 지프에, 장목화, 성건우, 용여홍은 새로 빌린, 제법 점잖아 보이는 검은색 세단에 올랐다.

에이펙스 격투장은 골든애플에서 멀지 않은 레드울프 구역에 있었다. 주위 건물은 비교적 적은 편이었고, 지대는 탁 트여 있었다.

차를 세운 성건우는 귀족석으로 통하는 별도의 입구로 직행했다.

그때, 장목화가 성건우를 붙잡고 예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에게 팔짱까지 끼며 누가 봐도 손색이 없는 파트너 연기에 들어간 것이었다.

용여홍 역시 권총이 든 가방을 쥐고 하인 겸 경호원 역할에 충실했다.

* * *

격투장 입구.

뚱뚱한 보안요원은 표를 검사한 뒤, 장목화, 성건우의 옷에 중무기를 숨길법한 공간이 없다는 걸 확인했다. 뒤이어 보안요원이 안으로 들어가도 좋다는 공손한 손짓을 취했다.

하지만 용여홍은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샅샅이 수색을 받아야 했다.

VIP 귀족석은 격투장 남쪽 관람석 중에서도 각도로 보나 거리로 보나 가장 좋은 자리였다. 하늘 아래 그대로 드러난 주위 자리와 비교한다면 비와 햇빛을 가려줄 지붕도 있고, 방탄유리로 이루어진 벽도 있었으며, 반쯤 밀폐된 투명한 칸도 구획돼 있었다.

성건우, 장목화, 용여홍도 각자 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러나 용여홍은 부드러운 의자에 엉덩이를 대자마자 눈동자가 스르륵, 돌아갔다.

근처 다른 칸에 있는 하인 중에 앉아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심지어 그들 몫의 표가 있는데도 그랬다.

잠시 멍한 얼굴이 된 용여홍은 억지로 자리에서 일어나 성건우, 장목화의 뒤쪽에 섰다. 나름 전문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때, 한 무리가 귀족석으로 들어왔다. 자연스레 그쪽으로 시선이 돌아간 구조팀 셋은 뜻밖에도 너무 익숙한 한 사람을 발견했다.

‘사자 같은 포카스 장군! 저 사람이 여긴 왜……?’

용여홍은 간담이 서늘해졌다.

* * *

안타나 스트리트 근처, 밀주를 파는 작은 가게.

한명호를 안으로 데려온 장기매매 업자 엄준모가 웃으며 말했다.

“진짜 운 좋은데? 단번에 적합성 테스트를 통과하다니! 애쉬랜드 속담에 이런 말이 있잖아. 착하게 살면 복을 받는다! 하하, 난 애쉬랜드인이긴 해도 사실 내내 퍼스트 시티에서 자라서 애쉬랜드 문화는 잘 모르지만.”

오늘도 엄준모의 말은 끝을 모르고 이어졌지만, 한명호는 그의 말에는 신경 쓰지 않고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저번에 네가 말했던 그 여자의 심장이야?”

안으로 들어온 엄준모가 가게 구석 부스로 들어가 맞은편을 가리켰다.

“맞아, 좀 앉아. 조금 있으면 여자를 만나게 될 거야. 15분만 기다려.”

“시간을 칼 같이 지키는 성격인 줄 알았는데.”

한명호가 덤덤하게 대꾸했다.

‘이런 암거래는 반드시 정확한 시간에 이루어져야 하는 거 아닌가?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엄준모가 웃었다.

“뭘 걱정해? 치안관을 맞닥뜨린다 한들 두려워해야 할 건 여기 사장이지 우리가 아니야. 주선자가 남녀를 만나게 해줬다고 누가 트집을 잡던가?”

한명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앉았다. 솔직히 지금 엄준모의 말에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 몰라서 그저 침묵만 유지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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