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화. 나를 찾고 있나?
감시실 안.
당직을 맡은 경비 대원들은 여러 개 화면에 떠오른 영상을 진지하게 살폈다. 지난 15분이 그랬듯, 여전히 아무런 문제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던 그때, 이들은 갑자기 급작스러운 공포에 사로잡혔다. 주위에 갑자기 셀 수 없는 귀신이 나타난 것만 같았다. 더불어 믿음직스러운 동료도 자신을 곧 죽일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빠른 속도로 담력이 고갈된 이들은 약속이나 한 듯 각자 자리를 떠나 몸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내달렸다.
쿵쿵쿵!
그 시각, 구조팀 다섯은 지하 6층 C 구역을 향해 질주했다.
작전을 시작한 순간부터 겨우 40여 초 정도 지난 때였다.
* * *
지하 6층, C 구역.
군용 외골격 장치를 착용한 두 경비 대원이 가장 먼저 도주하기 시작했다. 구조팀의 눈앞에 보이는 건 대원들의 뒷모습밖에 없었다.
각성자로 의심되는 두 중년 남자 역시 놀란 새처럼 자리를 이탈했다.
사실 저들은 황녹색 야명주 능력 범위 밖에 있었지만, 인간 의식을 감지하기도 전에 황급히 안전 통로로 파고들어 허겁지겁 계단을 탔다.
나머지 사람들 역시 빠른 속도로 흩어졌다.
여태 지하 방주가 자랑해 마지않았던 방어력은 단 3초도 버티지 못했다.
“방 안에 한 사람뿐이야!”
장목화가 달리며 외쳤다.
여기까지 온 이상, 더 이상 자신들의 기척을 숨길 필요는 없었다.
겁쟁이 능력의 주요 목표는 본래 방에 있는 사람이었다. 그 하나를 위해 앞장서 달려온 성건우는 이 순간에도 끝까지 방심하지 않았다.
쿵쿵쿵!
남회색 제복을 입은 성건우가 디마르코의 방 앞으로 돌진한 뒤 그 문을 힘차게 걷어찼다. 그러자 암적색 나무 문이 그대로 넘어가듯 열렸다.
성건우는 곧장 안으로 달려들지는 못하고, 발차기의 반작용으로 뒤로 살짝 물러났다가 다시 전진했다.
그 뒤를 바짝 쫓던 장목화는 순간 멈춰서더니, 사신 바주카포로 새카만 문 안쪽에 있을 목표를 겨눴다.
이윽고 그녀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바주카포를 발사했다.
콰릉!
요란한 소리가 지하 6층을 뒤흔드는 가운데 작열하는 불빛이 일어났다.
장목화는 일찍이 옆으로 몸을 날려 폭발의 여파에서 안전하게 벗어났고, 게네바와 용여홍은 그 여파가 흩어지자마자 문 앞으로 가, 방 안쪽을 향해 유탄을 날렸다.
각기 다른 곳에 떨어진 유탄 네 발의 위력이 방안 곳곳을 집어삼켰다.
콰광! 콰광!
연거푸 울리는 폭발음과 함께 구조팀 첫 번째 참수 작전이 완료되었다.
황녹색 야명주의 도움 아래, 구조팀 참수 작전이 이상할 정도로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들은 거의 어떠한 저지도 받지 않고 디마르코의 방 앞에 달려들어 두 차례의 공격을 퍼부었다.
거친 화염 폭풍 속, 방은 그야말로 엉망진창이 됐다.
장목화는 한동안 미약한 전기 신호조차 감지할 수 없었다.
사실 이 정도까지 타격을 가했다면 상식적으로 결과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안에 있던 사람이 디마르코의 분신이 아닌 이상, 지하 방주의 주인은 결코 무사하기 어려울 것이었다.
하지만 장목화는 경계심을 더 높였다. 그녀가 예상한 디마르코는 심령이 복도 급 강자로, 타르난의 그 고등 무심자에 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이렇게 소리소문없이 허무하게 끝날 리는 없었다.
잠시 후, 폭발로 인한 여파가 사그라들었을 무렵, 곧장 몸을 일으킨 장목화가 험하게 망가진 디마르코의 방으로 달려들었다.
쿵쿵쿵!
그러나 그보다 앞서 남회색 제복을 입은 누군가가 장목화보다 한발 먼저 뛰어들었다.
성건우였다.
그는 언제나처럼 가장 먼저 앞장을 섰다.
그때, C 구역 복도 끝에서 갑자기 유탄 두 발이 날아들었다.
일찍이 이를 감지한 장목화는 방 내부 전기 신호 감지를 포기한 채 냅다 앞으로 달려 그 안으로 구르듯 들어가 유탄의 기습을 피했다.
게네바와 용여홍 역시도 종합 경보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 적의 접근을 미리 알아차렸다.
이에 게네바는 위로 훌쩍 뛰어올라 4~5마터 높이의 천장을 움켜쥔 채 다리를 웅크렸고, 용여홍은 정보가 없을 동료부터 챙겼다.
용여홍은 즉각 백새벽을 밀어주며, 장목화를 뒤따라 디마르코의 방으로 몸을 피할 수 있게 해주고, 자신도 얼른 그 뒤로 바짝 붙었다.
용여홍은 늘 그렇듯 잔뜩 긴장했지만, 절대 허둥거리지는 않았다.
콰르릉!
유탄 두 발이 성건우와 장목화가 있던 자리에 떨어졌다.
지능 로봇 게네바는 직접 명중당한 게 아니면 단순한 여파만으론 아무 피해도 입지 않았다. 기껏해야 물자를 교환하고 칠을 하면 될 일이었다. 그 때문에 천장에 매달린 그는 폭발의 여파에 몸만 몇 번 흔들렸다.
그리고 그는 이 순간 습격자의 모습을 확인했다.
상대는 붉은 눈빛을 번득이는 새카만 로봇이었다.
레드스톤 마켓이라는 밀수품 거래처를 오래도록 지배해온 지하 방주는 축적한 재산도 상당했고, 숨겨놓은 방어력도 어마어마했다.
게네바는 눈 깜짝할 사이 각종 특징을 대비해, 습격자가 상대적으로 약간 오래된 지능 로봇임을 파악해냈다.
구세계 기준에 따르면 지능형 로봇으로 구분되기는 했지만, 머신 헤븐에서 생산된 지능인은 아니었다.
게네바가 보기에 인간화 모듈이 없는 로봇은 단순한 도구에 불과했다. 타르난에 있는 자동차로 변신 가능한 로봇이나 전투형 비 지능 로봇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았다. 그는 상대를 지능 로봇으로 인정할 수 없었다.
“밖은 나한테 맡겨!”
게네바는 데이터베이스 안의 자료를 바탕으로, 지금 이 상황에 본인이 해야 할 일에 뛰어들었다.
그네처럼 몸을 앞뒤로 흔들던 게네바는 앞으로 몸을 날리며 적잖은 거리를 단숨에 뛰어넘었다. 그리고 게네바는 검은 로봇으로부터 약간 옆으로 치우쳐진 전방에 착지했다.
현재 검은 로봇은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고자 디마르코의 방으로 뛰어들려 하고 있었다.
게네바는 방향을 살짝 틀면서 그 검은 로봇과 충돌했다.
그 사이 게네바가 손바닥 방향을 조정했다.
쾅!
청아한 충돌음이 지하 6층을 울리고, 검은 로봇의 등이 그대로 녹아내리며 빨간 레이저 한 줄기를 드러냈다. 아름답지만, 위험한 붉은빛이었다.
거의 동시에 부풀어 올라 갈라진 로봇의 등에선 전광에 휩싸인 금속 구슬이 중요 부품 여러 개를 관통해 먼 곳으로 날아갔다.
이 틈을 타, 게네바가 쏜 레이저 무기와 전자파 무기의 위력이었다.
이미 각종 로봇의 구조도를 다운로드 해 일정한 연구를 거친 게네바는 상대의 치명적인 위치가 어디인지도 매우 또렷하게 파악한 상태였다.
펑! 펑! 펑!
쿵……!
연달아 울린 폭발음 속에, 검은 로봇이 모든 동력을 잃고 쓰러졌다.
게네바는 시간 낭비 따위 하지 않고, 곧장 돌아서 디마르코의 방으로 달려갔다. 이 작전에서 인간의 의식이 없는 그는 후반부 전력의 중점이었다.
한편, 게네바가 검은 로봇을 덮치던 그때 이미 몸을 굴려 방으로 들어간 장목화는 바주카포를 발사하기 전에 조금 더 신중함을 기했다.
먼저 손전등을 켜 인간의 존재가 느껴졌던 곳을 비춰보았다.
그곳에 산산이 조각난 침대가 있었다. 그리고 아직 불씨가 남아 있는 침대 파편 가장자리엔 실크 잠옷 차림의 남자 한 명이 누워있었다.
검은 바탕에 흰색 무늬가 들어간 남루한 가면을 쓴 남자는 살점이 다 뭉그러진 상처가 여러 개 나 있었다.
성건우 역시 남자에게 더 이상 인간의 의식을 감지할 수 없었다.
이는 그가 이미 죽었다는 뜻이었다.
쓰고 있는 가면도, 린넨색 머리카락도 분명 남자가 디마르코라 말하고 있었지만, 장목화는 조금도 기뻐하지 않았다. 외려 흠칫 놀라고 말았다.
지금 디마르코의 위치로 보자면 그는 첫 번째로 가해진 바주카포의 공격도 피하지 않았다. 사신 역시 죽은 자의 육신을 온전히 내버려 두진 않았다.
‘이게 심령의 복도 급에 이른 강자라고? 우리가 가진 무기가 그렇게 강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강한 사람이 그 위력을 견뎌내지 못한 거라고?’
한 손에 바주카포, 한 손에 손전등을 쥔 장목화는 빠른 걸음으로 디마르코의 시체 앞으로 달려가 그의 가면을 벗겼다.
노르스름한 불빛 속, 장년 남자의 얼굴이 비쳤다.
린넨색 짧은 머리카락 아래, 날렵하고 높은 콧대, 채 감기지 못한 눈 속에 옅은 파란색 눈동자가 있었고, 이마 가장자리에는 파란색 모반…….
파란색 모반?
순간 그에게서 왠지 모를 익숙함이 느껴졌다.
잠시 멍해졌던 장목화는 머지않아 그 익숙함의 출처를 기억해냈다.
남자는 리만의 연인 라르스였다.
일찍이 실종돼 지하 방주에 들어간 것으로 확인됐던 유적 사냥꾼이 바로 여기 시체가 되어 누워있었다.
파란 모반의 위치도 리만이 보여준 사진과 똑같았다.
‘……뭐? 죽은 게 라르스라고? 디마르코는 라르스를 자기 대역으로 세워놓고 본인은 처음부터 이 방에서 자지도 않았던 건가? 왜? 뭘 경계해서? 그 정도의 권위와 실력을 가진 사람이 왜 굳이 그런 짓을 하는 거지?
아니면, 디마르코는 우리가 접근했단 걸 감지하자마자 라르스만 남겨두고 미리 여길 떠난 건가? 그렇다면 라르스는 왜 남겨둔 거지?’
순간적으로 장목화의 머릿속에 수많은 물음표가 폭발하듯 떠올랐다.
그때였다.
장목화는 갑자기 방이 미약하고 기이한 전기장으로 뒤덮이는 걸 느꼈다.
휙-
동시에 바람 소리와 함께 장목화, 용여홍, 백새벽, 성건우의 손에 들린 손전등 불빛이 극도로 어두워졌다.
주위 환경은 어디선가 어둠을 주입받은 듯 컴컴하고 싸늘해졌다.
그리고 다음 순간, 출처 모를 음성 하나가 귓가를 두드렸다.
뭔가 감정을 잔뜩 억누르고 있는 듯한 목소리였다.
“이런 식으로 나를 죽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나? 다른 심령의 복도 급 각성자였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느껴지는 분노와 답답함에 죽어버렸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자네들이 마주한 건 나야⋯⋯.”
여기까지 듣고서야 마침내 목소리의 주인공을 파악한 성건우는 즉각 고개를 돌려 한쪽을 응시했다.
어스름한 노란 불빛 속, 친한 친구 용여홍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었다.
용여홍은 돌연 입꼬리를 조금씩 말아 올리더니, 눈동자도 극도로 짙어져 있었다. 뒤이어 그에게선 공허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를 찾고 있나?”
원숭이 가면 속에서 성건우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곧이어 백새벽도 성건우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가면을 벗은 그녀는 손에 쥔 손전등으로 본인의 얼굴을 일부 비췄다. 그녀 역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묘한 웃음을 지으며 공허한, 성별을 구분할 수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나를 찾고 있나?”
성건우는 왼손을 홱, 들어 올려 황녹색 야명주를 드러냈다.
동시에 시체 옆에 쪼그려 앉아있던 장목화 역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이쪽을 돌아보았다. 그녀 역시 이미 가면을 벗고 있었다.
“나를 찾고 있나?”
장목화가 낮게 웃으며 물었다. 턱을 살짝 쳐든 그녀의 얼굴이 뒤섞인 빛과 그림자에 뒤덮여 몹시도 기이하게 느껴졌다.
쿵! 쿵! 쿵!
그때, 게네바가 디마르코의 방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의 시야로, 낯선 성건우의 모습이 담겼다. 그의 두 눈동자가 암녹색으로 변해 이상하리만치 짙은 색을 띠고 있었다.
* * *
기원의 바다, 산과 물이 있고 밝은 햇볕이 내리쬐는 섬 위.
구세계 검은색 사제복을 입고 구식 모자를 쓴 한 인영이 나타났다.
40대로 보이는 그는 키는 180센티미터에 린넨색 짧은 머리카락과 옅은 파란색 눈동자, 약간 구부러진 매부리코를 가지고 있었으나 이마 가장자리에 파란색 모반 같은 것은 없었다.
인영은 자신과 함께 이곳에 떠오른, 원숭이 가면을 쓰지 않은 성건우를 훑어보더니 입꼬리를 씩, 말아 올리며 웃음기 어린 말투로 물었다.
“이게 자네의 심령의 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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