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279화 (279/649)

279화. 약정

고기랑 반찬은 금세 바닥을 보였다. 사람들은 다음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한담을 나누기 시작했다.

장목화가 임단아를 보며 말했다.

“수확이 적지 않겠는데? 사라진 로봇의 행방을 찾았으니까 비 지능 로봇 열 대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거 아냐.”

“맞아, 괜찮은 편이지. 퍼스트 시티로 가져가면 꽤 많은 물자와 교환할 수 있을 거야. 문제는 그걸 어떻게 가져가느냐지.”

임단아가 겸손하게 대꾸했다.

그녀의 말을 듣고, 순간 백새벽이 끼어들었다.

“퍼스트 시티에서 온 거야?”

“맞아.”

이번엔 오른눈에 자홍색 빛을 번득이고 있는 백용명이 답했다. 그가 등에 메고 있던 칼은 어느새 옆쪽에 얌전히 놓여있었다.

“우린 유적 사냥꾼이라고는 하지만 사실은 연구팀이야. 퍼스트 시티를 위해 일하는 연구팀.”

임단아가 웃으며 덧붙였다.

‘우린 유적 사냥꾼이라곤 해도 사실 구세계 파괴 원인 조사팀인데.’

속으로 중얼거리던 장목화가 뭔가 생각에 잠겨 물었다.

“생물 영역?”

임단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난 주로 유전자와 신경 영역을 연구해. 이번에 치랄 산에 온 건 변이 생물인 번개 담비 한 마리를 잡아 신경 변이 상황을 연구하고 싶어서였어.”

그때, 시종일관 온화한 웃음을 머금고 있던 레이가 작게 중얼거렸다.

“왜 꼭 겨울에 움직여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말이야.”

순간 임단아의 표정이 엄숙해졌다.

“그야 겨울 외근비가 더 높게 책정되잖아.”

구조팀 네 사람은 임단아에게 갑자기 친근감을 느꼈다.

‘역시 대형 세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떻게든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하는 게 일종의 본능 같은 거구나.’

이윽고 성건우가 갑자기 백용명을 향해 부럽다는 듯 물었다.

“네가 받은 기계 개조도 퍼스트 시티에서 한 거야?”

“그때 퍼스트 시티에 있었던 게 다행이었지.”

백용명은 간접적으로 성건우의 물음에 답했다.

“적에게 습격을 받아 아주 심각한 부상을 입었었거든. 개조를 받지 않으면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정도였어.”

덧붙여 임단아가 설명을 도왔다.

“복수는 했어?”

상대에게 갑작스러운 동질감을 느낀 장목화가 웃으며 물었다.

“이게 아직 복수하지 못했다는 증거지.”

백용명이 이마에 박힌 불규칙한 모양의 파편을 가리키며 말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개조를 받았는지는 비밀일 터였다. 그래서 장목화는 대화를 이쯤에서 마무리 지은 후, 서둘러 화제를 전환했다.

잠시 후, 채이훈이 두 가지 음식을 가지고 왔다. 하나는 새콤달콤하게 양념한 고기였고, 다른 하나는 쪄서 익힌 소시지였다.

“한잔할래? 내가 대접할게. 과실주밖에 없어서 취하지는 않을 거야.”

이 두 사냥꾼 팀 모두 강력한 팀이라는 걸 알기에, 채이훈은 이들 모두에게 의도적으로 친절하게 굴었다.

“좋지!”

일단 답부터 한 임단아가 백용명, 레이, 장세붕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조금만 마실게, 조금만.”

그 광경을 보고, 장목화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뭔가 좀 예감이 좋지 않은데?’

10여 분 후, 임단아가 술이 아주 약간 남은 잔을 쥐고 말했다.

“혹시 기회가 되면 퍼스트 시티로 와. 내가 한턱낼게!”

빨개진 얼굴에 휘청거리는 몸까지, 임단아는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장목화는 백용명 팀의 세 남자를 돌아보았다. 세 남자 모두 익숙한 광경인 듯, 하나같이 못 말리겠단 얼굴을 하고 있었다.

“좋아!”

그 사이 성건우는 기쁘게 임단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여덟 명 모두 배불리 먹고 마셨다. 두 팀은 손을 흔들며 작별을 고한 뒤,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

* * *

장목화는 샤워를 마치고 거실로 가, 등받이 의자에 앉아 있는 성건우를 발견했다. 그의 표정만 봐선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낼 수가 없었다.

“왜 그래?”

장목화가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닦으며 물었다.

성건우는 아쉽다는 표정으로 답했다.

“임무가 너무 일찍 끝나서 신선한 식재료를 얻을 구석이 없네요.”

고등 무심자 관련 임무를 맡았을 때, 게네바는 신선한 식재료를 약속했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언제까지나 임무를 진행 중일 때만 유효할 터였다.

“그렇네.”

컴퓨터를 하던 용여홍도 그제야 생각난 듯 안타깝게 맞장구쳤다.

“괜찮아. 어쨌든 여기 오래 머물진 않을 거니까.”

장목화가 말했다.

“용광로 교파의 세례 의식은 언제쯤 다시 시작되려나.”

성건우는 여전히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혼잣말을 했다.

고등 무심자 사건으로, 용광로 교파의 입교 의식은 조금 미뤄졌다.

“가서 한 번 물어봐봐. 우리가 떠나기 전에 진행되면 좋을 텐데 말이야.”

솔직히 말해, 장목화도 그 사우나 세례에 참가해보고 싶은 마음이 아예 없는 건 아니었다.

고개를 살짝 끄덕이던 성건우가 돌연 화제를 전환했다.

“그 섬과 몇 차례 소통해봤는데, 효과는 없었어요.”

“뭐?”

갑작스럽게 달라진 대화 주제에 장목화, 용여홍, 백새벽 중 누구 하나 제대로 반응한 사람이 없었다.

‘그런 자세로 한동안 헛소리한 게 이 얘기를 하려고 그런 거였어? 지금 성건우는 도대체 뭔데? 수줍음 많은 부끄럼쟁이 성건우?’

장목화가 말했다.

“그 섬이 어떤 두려움을 대표하는지 알아내기 위해선 너 스스로 심층적인 자아 분석을 해야 하는 건지도 몰라. 우리는 일정한 의견밖에 줄 수 없잖아. 우리가 널 직접 대체할 순 없으니까.”

뒤이어 그녀와 용여홍, 백새벽이 각자 추측을 제시했다.

* * *

모두가 잠든 깊은 밤, 성건우가 일어나 침대 헤드에 기대앉았다.

그리고 가로등 불빛만 밝혀진 창밖을 한참 응시하다가, 천천히 손을 들어 양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미약한 빛이 번득이는 기원의 바다 안, 성건우는 재차 눈 부신 햇살과 싱그러운 풀밭이 어우러진 섬 위에 올랐다.

그는 모래사장에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가만히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고개를 숙인 성건우가 오른손을 뻗어 노란 모래 위에 한 단어를 썼다.

「고독」

몇 초간 그 단어를 응시하던 그는, 손을 뻗어 지우고 다른 글자를 썼다.

「의미 없음에 대한 두려움?」

마지막에 붙은 물음표는 비뚤면서도 거대했다.

그것을 지켜보던 성건우가 재차 문장을 지웠다.

그렇게 그는 몇 개의 문장을 썼다 지우길 반복했다.

시간이 1분, 1초 흘러가던 그때, 꽤 오랫동안 멍하니 있던 성건우는 또 한 번 들어 올린 손가락으로 모래 위에 다음과 같이 썼다.

「가지고 있는 모든 걸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

성건우는 모래사장 위의 글을 잠시 응시하다가 고개를 돌려 햇빛과 나무, 풀밭 등 자연 산물뿐인 섬을 바라보았다.

뒤이어 다시 고개를 숙인 그는 원래 적혀 있던 글에 문장을 더했다.

「목표가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

문장의 작성을 마친 성건우가 자리에서 일어나 섰다.

이후 그의 육신이 분열되는가 싶더니, 무려 여덟 명의 성건우로 갈라졌다.

총 아홉 명의 성건우는 섬에서 바쁘게 움직이며 나무를 자르고, 돌을 옮기고, 풀을 깎고, 바닥을 파면서 기이하고 조악한 집을 한 채 만들었다.

집짓기를 마치자마자 아홉 명의 성건우 모두 피로감이 밀려들었고, 다시 하나의 성건우로 합쳐진 채 천천히 기원의 바다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했다.

성건우는 완전히 현실 세계로 돌아오기 전, 자신이 만들어낸 아슬아슬한 집이 소리 없이 붕괴하며 마디마디 와해 되는 것을 보았다.

결국 섬 위의 모든 것이 원상태로 복구됐다.

성건우는 곧 침대 머리맡에서 눈을 번쩍 떴다. 그러자 고요한 어둠과 창밖에서 새어 들어오는 어스름한 빛이 시야에 들어왔다.

뭔가를 생각하는 듯 성건우의 미간이 살짝 구겨졌다. 그는 길고 긴 고민 끝에 그제야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 * *

다음 날.

성건우는 아침 식사를 하며 동료에게 어젯밤 자신의 시도를 이야기했다.

용여홍은 그것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순 없었지만, 그래도 친구를 격려해주기 위해 말을 건넸다.

“좋은 일인 것 같아. 여태 아무 변화도 없던 섬에서 반응이 나타났잖아.”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백새벽과 장목화도 연이어 동조했다.

긍정적인 반응을 얻은 용여홍은 순간 과분한 호의에 감개무량하면서도 좀 걱정스러워졌다. 자신의 오판으로 친구가 잘못되진 않을지 겁이 났기 때문이다.

그때, 장목화가 생각에 잠긴 얼굴로 말했다.

“난 네가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상황’을 두려워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 그 모든 희생을 치르고 대가를 들였는데도, 여전히 이전의 모습을 유지하는 세상을 말이야.”

“그런 것 같아요.”

성건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론 그런 방향으로 더 많이 시도해봐. 우린 네 피드백을 듣고 더 유효한 방법을 모색해볼게. 어쩌면 현실과 연동해서 생각해야 하는지도 몰라.”

장목화가 웃으며 성건우를 격려했다.

그녀가 아는 바론, 보통 각성자들은 기원의 바다 끝에 이르러 자아를 찾는 데까지 수년, 심지어는 수십 년의 시간을 들이곤 했다.

산속에 있는 적을 무찌르긴 쉬워도, 내 안에 있는 문제를 해결하긴 어려운 법이었다. 급기야 평생 특정 섬에 갇혀 돌파하지 못하는 각성자도 있었다.

성건우처럼 단 몇 달 만에 두 개의 섬을 극복한 이는 소수 중의 소수였다.

그러니 조바심을 내는 건 너무도 시기상조였다.

* * *

이틀 뒤, 게네바는 로봇 경비대원 일부를 이끌고 치랄 산 구역으로 가 동료들의 잔해를 가지고 돌아왔다.

그 후 구조팀은 소스 브레인과 통화가 가능하다는 통지를 받았다.

시청 건물 밖.

차례로 지프에서 내린 구조팀 네 사람은 보조 로봇의 안내를 따라, 시청 꼭대기 층에 소형 회의실 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방엔 큰 테이블 하나와 의자 열 개, 문서와 책들이 꽂힌 책장이 하나 놓여있었고, 벽엔 초대형 액정 패널이 하나 걸려 있었다.

곧 검푸른 군복을 입은 게네바가 패널 맞은편 의자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앉아. 난 너희와 소스 브레인의 대화를 듣기가 좀 그래서.”

네 사람은 고개를 끄덕인 뒤 각자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게네바는 즉각 회의실 밖으로 나가 문을 닫았다.

그가 나가자마자 성건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음향 설비를 보거나 회로 방향 등을 관찰하다가, 책장에서 한 책을 꺼내 자리로 돌아왔다.

“뭔데?”

장목화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성건우는 자리에 앉으며 작은 책자의 표지를 보여주었다.

0과 1이 대량으로 그려진 주황색 표지엔 제목이 애쉬랜드 문자와 레드리버 문자로 병기돼 있었다.

《지능 로봇 파견 근무 매뉴얼》

촤라락-

성건우가 책을 대충 넘겨보았다.

곁에서 장목화도 목을 쑥 빼고, 성건우가 넘기는 책장 내용을 대충 살피며 시간을 때웠다.

「⋯⋯인간의 음식을 먹는 행위는 금지돼 있음⋯⋯」

「⋯⋯오래된 부품은 재활용할 것⋯⋯」

「⋯⋯인간화 정도는 30~70% 사이 유지⋯⋯」

「⋯⋯동료들 행위에 주의하고 필요할 때는 바로잡을 것⋯⋯」

내용을 보던 장목화가 웃으며 중얼거렸다.

“이상하네⋯⋯.”

“인간과 친구가 되지 말라는 이야기는 없네요.”

성건우가 안심된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때, 용여홍이 두 사람을 보며 약간 불안한 듯 몸을 움직였다.

“긴장도 안 되세요?”

비밀스러운 소스 브레인과의 대화를 앞둔 상황이었다. 상대는 대형 세력 안에서 상당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내 성건우가 대꾸했다.

“그래, 긴장해야지. 무슨 말실수라도 하면 소스 브레인은 타르난 로봇 경비대에게 우리를 인류의 더러운 행위 박물관에 전시하라고 명할지도 몰라.”

‘그건 또 어디에서 배운 말이냐⋯⋯.’

최근 성건우의 단어 제작 실력은 갈수록 발전하고 있었다. 솔직히 용여홍도 차마 이 사실을 부정할 수 없었다.

성건우의 이야기도 용여홍의 걱정과 매우 근접했다. 구조팀은 그렇게나 많은 지능 로봇의 공격을 당해내지 못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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