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8화. 고향 풍습
221호.
용여홍이 장목화가 꺼낸 무선 통신기를 보며 물었다.
“팀장님, 회사에 보고는 소스 브레인과 통화하고 하실 것 아니었나요?”
전에 게네바는 고등 무심자 관련 사건이 마무리되고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는 지능 로봇과 보조 로봇을 회수하면 소스 브레인과의 통화를 진행하겠다고 말했었다. 통화가 성사되기까진 2, 3일 정도는 걸릴 것이다.
장목화가 전보를 작성하며 웃었다.
“신룡교가 사람을 죽여 그 입을 다물게 할 그런 조직 같지는 않다고 해도, 손 놓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잖아.”
“네, 맹목적으로 믿어서는 안 되니까요.”
성건우도 곁에서 경계 교파 명예 회원인 양 대꾸했다.
“그건⋯⋯.”
용여홍은 순간 밀려드는 긴장감에 휩싸였다.
곧이어 빠르게 전보 작성을 마친 뒤, 장목화가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
“이런 일은 자고로 만일에 대비해야 해. 그래서 이 틈에 회사에 보고하려는 거야. 그러면 이후에 갑자기 연락이 끊기더라도 회사에서는 최소한 어느 쪽을 수색해야 할지는 알 수 있잖아. 안 그래?”
말을 마침과 동시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성건우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는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평소와 똑같아 보였다.
“흠⋯⋯. 이렇게 썼는데, 혹시 뭔가 좀 이상한 것 같아?”
장목화가 목을 가다듬고, 전보 초안을 빠르게 한 번 읽어보았다.
“너무 짧지 않나요?”
백새벽이 미간을 살짝 구기며 말했다.
장목화가 작성한 초안에는 고등 무심자의 내력, 경험, 결말과 강소월이 투신자살하는 환각만 언급됐지, 구조팀의 추측과 판단, 검증, 그리고 이 사건에서 그들의 역할 같은 건 없었다.
물론 내용에는 5, 0, 3도 포함돼 있었다. 다만 그에 대응하는 해석을 덧붙이지 않았을 뿐이었다.
또 전보 마지막 부분엔 앞으로 2, 3일 정도만 더 있으면 소스 브레인과 통화가 가능하다는 이야기도 덧붙여 놓았다.
“전보에 얼마나 많은 내용을 넣을 수 있다고? 회사에 돌아가면 임무 보고서에 더 자세히 기록할 거야.”
이미 이 방면에 베테랑인 장목화는 타르난에 도착해 보고할 때도 상인단을 구하고 컴퓨터를 얻었다는 이야기는 언급하지 않았었다.
“연재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이어진 성건우의 제안에 장목화가 빠르게 답했다.
“그쪽이 원치 않을걸.”
‘그쪽’은 안전부 통신소 직원들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이내 장목화는 작성한 전보를 발송했다.
* * *
아침 겸 점심을 먹은 구조팀이 이제 막 잠을 좀 보충하려는데, 반고 바이오에서 전보 한 통이 도착했다.
“⋯⋯잘했음. 소스 브레인과 통화 후엔 회사로 돌아와 쉬어도 됨.”
장목화가 전보 마지막 부분을 읽었을 때, 용여홍은 순간 감격한 나머지 기쁨의 눈물이 차올랐다.
늦가을부터 한겨울까지였다. 무려 한 계절을 지상에서 보낸 것이다.
여정에 소요될 시간까지 더한다면 네 사람은 반고 바이오 1년 중 가장 성대하고 즐거운 명절인 새해맞이를 놓치게 될지도 몰랐다.
용여홍은 그 어느 때보다 집이 더 그리워지고 있었다.
용여홍이 막 ‘드디어’라고 말하려는데, 성건우가 입을 열었다.
“좀 불길하게 들리는데요.”
장목화도 동의했다. 순간 그사이에 뜻밖의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백새벽은 조용히 용여홍을 바라보다 빠르게 시선을 거둔 뒤, 본인 입술을 살짝 내리쳤다.
“왜 그래?”
장목화가 물었다.
“황야유랑자 시절의 습관이에요. 불길한 이야기를 하거나 들었을 때 자기 입을 때려서 그 일을 없던 일로 만드는 거죠.”
백새벽이 간단히 설명했다.
“그래?”
용여홍은 곧장 백새벽의 행동을 흉내 내려 했다.
“근데 왜 지금까진 그렇게 안 한 건데?”
장목화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구조팀 안에서 불길한 이야기가 나온 건 지금이 처음은 아니었다.
백새벽이 한 2초간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지금까진 불길한 느낌이나 징조 같은 건 별로 믿지 않았거든요.”
“⋯⋯.”
용여홍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 * *
저녁 무렵까지 잠들었던 구조팀은 밖으로 나와 식사할 곳을 찾았다.
그렇게 조용한 골목길을 지나쳐, 리버프톤트 애비뉴에 도착했다.
간격이 좁은 가로등이 벌써 다 밝혀져 있어, 거리는 대낮처럼 환했다.
그 불빛 아래, 차례로 펼쳐진 좌판들 위엔 구세계 폐허 도시에서 찾아온 물건들이 널려 있었다.
거기에 같은 교파끼리 모여 설교하고, 노래하고, 춤을 추고, 평형 능력을 선보이는 이들 덕분에 리버프론트 애비뉴는 한층 더 북적북적했다.
구조팀이 타르난에 도착한 첫날 밤과 같은 모습이었다.
근 이틀간 텅 빈 거리를 떠올리자, 용여홍은 지금이 매우 감개무량했다.
“이제야 우리가 하는 일의 의미를 알 것 같네요.”
“훌륭해.”
장목화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백새벽의 눈동자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 사이 고개를 튼 성건우가 용여홍을 바라보며 웃었다.
“그래서, 너도 같이 인류를 구하지 않을래?”
용여홍은 전처럼 성건우의 말을 바로 무시하는 대신 좀 머뭇거렸다.
고민을 마친 그가 입을 떼려는데, 성건우는 벌써 영광의 저울 교도들이 있는 곳으로 이동해 공연을 관람하고 있었다. 참 많이도 상기된 얼굴이었다.
영광의 저울 교도들은 긴 장대를 밟고 이리저리 오가며 균형 능력을 뽐냈다. 거기에 텀블링, 외발자전거 등등, 각양각색의 방식으로 교리를 선보였다.
“무슨 서커스단 같은데⋯⋯.”
장목화가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성건우도 이 공연을 오래 관람하진 않았다. 애초에 구조팀이 밖으로 나온 건 식사를 위해서였다. 다른 누구도 아닌 그가 허기를 참을 리 없었다.
* * *
산비둘기 술집에 이른 구조팀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단골손님들 대부분이 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까닭에 술집 안이 꽤 싸늘했다. 몇몇 사람들만 모여 함께 카드 게임을 하는 중이었다.
그때, 사장 채이훈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예 문 앞까지 마중을 나왔다. 용여홍은 그 과분한 열정과 겸손에 좀체 적응할 수가 없었다.
“사장, 그럴 필요 없어.”
장목화도 비슷하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채이훈은 다시 또 열심히 손바닥을 마주 비볐다.
“그래야지! 그래야지! 자네들이 아니었으면 술집을 여는 건 고사하고 목숨도 부지하지 못했을 텐데! 오늘은 뭘 먹고 싶나? 내가 다 대접할게!”
“통조림과 압축 비스킷, 에너지 바만 아니면 뭐든 좋아.”
성건우의 답에, 채이훈이 호탕하게 웃었다.
“문제없지! 집에 있는 냉동육을 꺼내서 솜씨 좀 발휘해볼게. 아, 참! 고 회장님이 앞으로 이틀간 모든 주민이 모은 물자를 돼지 한 마리랑 바꿀 거래. 남가관에서 그 돼지를 잡아 자네들에게 감사의 뜻을 표할 거라 하시더군.”
네 사람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입에 군침이 돌았다.
“좋아. 근데 남가관에서 싫어하지 않을까?”
장목화는 막상 승낙은 했어도 걱정이 됐다. 그 신성하고 장엄한 종교시설에서 술판을 벌이고 돼지를 잡아도 되는 걸까?
하지만 채이훈은 시원하게 웃으며 답했다.
“응, 주 관주도 이미 응했어. 빠를수록 좋다던데?”
순간 구조팀원들 머릿속엔 똑같은 문장이 각인됐다.
‘모든 게 허상이고 꿈인데, 굳이 진지하게 임할 필요 있을까?’
네 사람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채이훈은 이들이 돼지를 잡는다는 말뜻을 몰라 그러는 줄 알고 얼른 설명을 덧붙였다.
“고 회장의 고향 풍습이래. 구세계가 파괴되기 전에 북쪽 지역에 그런 풍습이 있었다더라고.
여기 사는 주민 대부분은 임해 연맹 출신인데, 고 회장처럼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어. 그래서 그들 풍습도 다 여기 융합됐어.
간단히 말해서, 명절이 되면 돼지를 죽여서 축하하고, 각 부위로 여러 가지 즐겨 먹어. 부위별로 구워서도 먹고, 반찬이랑도 먹고. 하하. 고기랑 같이 먹으면 그야말로 일품인 반찬도 많아.”
채이훈의 설명을 들으며, 구조팀 네 사람은 동시에 침을 꼴깍 삼켰다.
그때, 장목화가 계속해서 설명을 이어가려는 사장을 저지했다.
“그만, 그만. 우리 아직 밥 먹기도 전이야. 설명은 고마워, 충분해. 그러니까 이제 방금 말한 음식 좀 먼저 가져다주면 안 될까?”
“아, 그래. 알겠어. 근데 냉동육이라 맛이 좀 떨어질 거야.”
채이훈이 시원시원하게 말했다.
“상관없어.”
성건우가 바로 숨도 쉬지 않고 대답했다.
채이훈이 음식을 하는 동안 구조팀은 당구를 쳤다. 전과 달리 성건우와 용여홍이 당구를 좀 익힌 덕분에 게임이 어느 정도 꽤 이어졌다.
냉동육이 많지 않았던 관계로 채이훈은 일단 밥과 고기, 채소 반찬부터 몇 그릇 내놓았다. 이것으로 일단 배를 좀 채우고 있으면, 다른 음식을 조금 더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냄새가 너무 좋은데⋯⋯.”
장목화는 고기를 한 조각 집어 입에 넣더니 꼭꼭 씹어 삼켰다.
“이거 이 새콤한 게 기름기를 싹 잡아주네. 조화가 기가 막힌데?”
백새벽은 고기와 밥을 함께 먹으며, 잠시 두 사람에게 시선을 돌렸다. 성건우와 용여홍은 고개를 거의 그릇에 처박고 있다시피 하고 있었다.
그녀는 다시 시선을 돌려, 장목화에게 응답했다.
“고기만 먹어도 맛있네요. 야생 동물론 흉내도 못 낼 정도로 훌륭해요.”
황야유랑자에게 향신료 따위가 있었을 리 없었다. 심지어 소금도 없을 때가 있었다. 그래서 어쩌다 운 좋게 고기를 한 덩이 얻으면 따로 보관할 방법도 없어, 그냥 물에 넣고 푹 삶아 기름기만 떼고 그 자리에서 다 먹곤 했다.
“맞아.”
성건우가 입에 음식을 한가득 머금고 웅얼거리며 동조했다.
그때, 술집 문이 열리고 네 사람이 들어왔다. 구조팀과도 안면이 있는 백용명 팀이었다.
제일 먼저 임단아가 코를 벌름거리며 중얼거렸다.
“맛있는 냄새⋯⋯.”
그녀의 시선은 자연스레 그 냄새의 근원지로 향했다. 원인을 찾은 임단아는 아주 능숙하게 구조팀 쪽으로 걸어갔다.
“이 술집에서 새로운 음식도 주문할 수 있는 거야?”
장목화가 웃으며 답했다.
“우리가 전에 사장을 구해 준 적이 있거든. 보답으로 대접받은 거야.”
“그렇구나.”
임단아의 얼굴에 또렷한 실망의 빛이 어렸다.
“같이 먹을래?”
장목화가 권했다.
“그래도 돼? 사장은 너희한테만 대접한 건데.”
말과는 달리 임단아는 조금도 망설임 없이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장목화가 다시 웃으며 말했다.
“상관없어. 사장이 우리 몫만 만들어주긴 해도, 여기다 통조림까지 다 까서 먹으면 다 같이 나눠 먹을 수 있잖아.”
“그럼 우리 통조림을 깔게.”
임단아는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 냉큼 자리를 차지하고 앉았다.
백용명, 레비, 장세붕도 그녀를 따라 앉았다.
곧이어 성건우와 용여홍이 재빨리 주방으로 향했다. 새로운 사람들에게 그릇과 식기를 가져다주기 위해서였다.
기다리는 동안, 임단아가 진심인지 인사치레일지 모를 칭찬을 건넸다.
“타르난의 유명인사가 됐던데? 그렇게 강한 고등 무심자를 처리하다니.”
머리 절반이 금속으로 이루어진 백용명도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도 여러 방법을 생각해보고, 계획도 세워봤는데 확신은 없었어.”
‘너희도 본인들 실력을 꽤 자신하는 모양이네. 길을 잃고 환각에 빠졌으면서도 상대를 처리할 생각을 했다니.’
속으로 중얼거리던 장목화가 웃으며 대꾸했다.
“신룡교 덕분에 가능했어. 우린 그냥 몇 가지 추측만 했을 뿐이고.”
“아냐, 아냐. 난 무력보다 뇌, 그러니까 생각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거든.”
임단아가 고개를 흔들며 다시 칭찬했다.
이내 밥 한 그릇씩 받은 백용명 팀은 동시에 약속이나 한 듯 말을 멈추고 젓가락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