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250화 (250/649)

250화. 이철

‘멘탈 붕괴가 극에 달해 미쳐버린 건가?’

인파 안쪽으로 조금 더 파고들려 했던 장목화는 모여 있던 사람들이 한순간에 흩어져 버리는 것을 확인했다.

맞은편에 어느새 검푸른 제복을 입은 로봇 경비대원 둘이 나타나 있었다.

키는 게네바와 비슷했고, 눈에서 발산되는 빛도 파란색이었다. 세상의 모든 얼굴을 알아차릴 수 있다 자만했던 장목화도 그들이 누구인지 구분할 수는 없었다. 가장 큰 차이일 부가 모듈이 옷에 가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두 로봇 경비대원은 빠른 속도로 길 중앙에 있던 한 남자를 데리고 거리의 반대편 끝으로 향했다.

파란색과 흰색이 어우러진, 품이 넉넉한 옷을 입은 남자의 검은 머리칼은 엉망으로 축 처져 있었다. 그리고 입가엔 방금 막 자라난 듯 수염 자국이 퍼렇게 남아 있었다.

그의 눈에서는 연신 히스테릭한 빛이 번득였다. 남자는 로봇 경비대원에게 끌려가는 와중에도 끊임없이 큰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전부 죽었어! 전부 죽었다고!”

시끌벅적했던 거리가 고요해졌다.

남자가 로봇 경비대원에게 끌려간 이후, 이곳에 있던 이들도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산 서남쪽 구역의 고등 무심자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산 서남쪽 구역은 사실 타르난을 기준으로 보면 동북쪽이었지만, 이곳 사람들은 치랄 산맥 주봉을 기준으로 이야기하는 데 습관이 돼 있었다.

장목화는 주위를 한 번 슥, 훑어보았다. 거리 행인들 표정에 두려움이나 걱정 따위는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이깟 작은 일 정도야 로봇 경비대원들이 가볍게 해결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머신 헤븐은 저들에게 어마어마한 안정감을 주고 있나 보네.’

속으로 중얼거리던 장목화는 계속해서 전방의 성건우를 몰래 쫓았다.

* * *

밤 10시, 세린 드림 여관 221호.

외부 활동을 마치고 돌아온 구조팀 네 사람이 다시 모였다.

“훌륭해, 다들 돌아왔네.”

팀원들을 돌아보던 장목화가 웃으며 말했다.

이는 용여홍을 향한 칭찬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용여홍이 겸손 떨 기회도 주지 않고 곧장 본론에 들어갔다.

“파악한 정보를 공유해볼까? 음, 작은 흰둥이부터.”

백새벽은 계속 용여홍을 미행했음에도 자체적인 관찰력과 용여홍이 질문 대상을 찾는 사이의 틈을 이용해 벌써 몇 가지 정보를 파악해왔다.

“타르난에 술집이 두 곳 있는데 과일주만 팔고 양도 제한돼 있어요. 그 안쪽 상황은 회사 활동 센터랑 정말 비슷했고요. 주로 농한기를 맞은 현지 주민, 겨울이라 감히 나가지 못하는 유적 사냥꾼, 각종 상인단 내 휴식 시간을 받은 이들이 모여 카드 게임도 하고, 한담하며, 노래를 부르고, 춤도 췄어요.”

타르난의 곡식 생산량으론 양주 사업을 뒷받침할 수 없었다. 설령 잉여 곡식이 있더라도 이곳에서는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또한 보다 더 돈이 되는 거래를 하고 싶어 하는 상인단 중 열 개, 혹은 스무 개에 달하는 술통을 가지고 산과 고개를 넘어 이곳에 오려 하는 이들도 없었다.

사실 애쉬랜드 대부분 지역이 식량 부족 상황에 시달렸기 때문에, 위드 시티처럼 여러 종류의 술이 갖춰져 있는 곳은 거의 없는 편이었다. 그러니 타르난 주민으로선 치랄 산 구역에서 나는, 별맛도 없고 보존 기간도 짧은 제철 야생 과일로 그저 술을 소량 담그는 수밖에 없었다.

이내 장목화가 눈을 번득이는 성건우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이곳에는 놀거리가 많은 모양이야. 근데 안타깝게도 라디오 프로그램은 없나 봐.”

반고 바이오 내부에서는 휴일마다 활동 센터에서 각종 활동이 이뤄졌다. 직원들이 조금이라도 더 풍부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하는 활동인데, 사교댄스, 농구, 줄다리기 시합 등이 포함돼 있었다.

이야기를 듣던 용여홍이 덧붙였다.

“하지만 구세계의 즐길 거리가 있잖아요. 여기 주민들 상당수가 휴대용 컴퓨터를 들고 다니던데요? 그 안에 많건 적건 구세계의 즐길 거리가 들어 있고요.”

반고 바이오 내 일반 직원 중에선 일반 컴퓨터를 가진 이도 거의 없었다. 이는 반고 바이오 내부에서는 상상조차 못 할 상황이었다.

“이곳에서 파는 전자기기는 확실히 저렴한 편이야. 위드 시티에서는 귀족 중에도 휴대용 컴퓨터가 없는 사람이 있을 텐데.”

장목화가 평가를 내렸다. 물론 위드 시티와 머신 헤븐의 관계를 감안하면, 그 귀족들에게 컴퓨터가 없는 이유는 그다지 쓸모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터였다. 컴퓨터가 있다고 경작에 도움이 되는 건 아니었다.

백새벽이 보고를 마치자, 장목화는 이제 성건우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건우, 넌 무슨 수확이 있었어?”

‘제발 즐겁게 춤추고, 실컷 노래 부르고, 맛있는 닭 날개 튀김을 먹었다고는 하지 마라⋯⋯.’

장목화가 속으로 중얼거리는 사이, 성건우가 진지하게 답했다.

“길가에 모여 노래를 부르던 교파는 신룡교였습니다. 11월의 달지기, 깨진 거울을 숭배하는 사람들이죠.

그들은 지금의 세상은 달지기 깨진 거울이 인류를 시험하기 위해 만들어낸 거대한 환각일 뿐이라고 믿어요.

그 환각의 신의 실체는 오랜 전설 속의 신룡이고, 갖가지 방식으로 그를 즐겁게 해야만 이 고통스러운 환각에서 벗어나고 아름다운 실제 세상을 볼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바로 신세계고요. 또 그들은 깨진 거울의 총애를 받은 신도를 용의 후예라고 불렀어요.”

‘오? 아무 생각 없이 노래 부르고, 춤추고, 닭 날개 튀김을 먹은 건 아닌가 보네. 그 와중에도 임무는 잊지 않았어.’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장목화가 질문을 이었다.

“신룡교 성찬이 뭔지에 대해서는 관심 없었어?”

성건우가 솔직하게 답했다.

“망설여질까 봐 걱정돼서요.”

장목화가 혀를 한번 찼다.

“쯧, 사실 그렇게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 생각해봐, 현실이 거대한 환각이라고 믿는 자들한테 무슨 성찬이 필요해? 다 거짓이고 환각인데.”

성건우도 장목화의 말에 설득당한 듯했다.

“하긴⋯⋯. 그럼 그들은 밥을 먹을 필요도 없는 걸까요? 지독한 배고픔에 꿈에서 깨어나 버리면 오히려 잘된 일이라고 생각할 것 같은데요.”

하마터면 이 질문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할뻔했던 장목화는 다행히 풍부한 상상력에 근거해 답을 내놓았다.

“가위 말 안 겪어봤어? 꿈속에서 굶어 죽으면 실제로도 죽게 되잖아.”

성건우가 주먹 쥔 오른손으로 왼손을 내리치며 감탄했다.

“그렇구나.”

뒤이어 그는 영광의 저울과 관련한 이야기도 전했다.

용광로 교파 같은 경우는 다들 민스와 만나 그의 이야기를 들어본 경험이 있으니 굳이 한 번 더 반복할 필요는 없었다.

성건우 다음으론 용여홍이 나섰다. 그는 현지 노인들에게서 들은 이야기를 하나하나 전했다.

“맥시미언? 머신헤븐에서 한 사람을 잡겠다고 몇 년 동안이나 현상 수배를 했단 말이야? 대체 무슨 짓을 한 사람일까? 아니면 구세계의 어느 중요한 연구에 연루된 인물일까?”

장목화는 맥시미언이 과학자일 수 있다는 사실에 근거해 추측해보았다.

“그럴 수도요. 팀장님, 저는 내일 사냥꾼 길드에 가서 현지 회장인 고부겸을 만나보고 싶습니다. 그라면 많은 것들을 알고 있을 거예요.”

용여홍이 자발적으로 제안했다. 그도 아직 고부겸의 집이 어디인지는 알아내지 못한 상태였다.

장목화가 칭찬했다.

“좋아. 잘했어. 갈수록 적극성과 자발성이 높아지는 것 같네. 네 자신감이 커지고 있다는 뜻이지. 음, 그럼 넌 내일 새벽이랑 고부겸 회장을 만나고 와. 난 건우랑 용광로 교파 교회당에 가서 공헌자 이철을 만나볼게.”

민스의 편지가 있으니 그 기회와 연을 이용해 상대로부터 얻을 수 있는 정보를 최대한 얻어내야 했다.

마지막으로 나선 장목화는 미쳐버린 생존자와 그 외에 목격한 것들을 팀원들에게 공유해주었다.

* * *

다음 날 이른 아침,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해결한 구조팀은 두 조로 나뉘어 각자의 목적지로 향했다.

용광로 교파의 교회당은 어젯밤 그 거리의 최남단에 자리해 있었다. 구세계의 소형 공장을 개조한 것 같았다.

독채인 이 건물 외벽은 철흑색이었고 대문은 새빨간 색이라, 언뜻 보면 기이한 형상의 용광로 같았다.

장목화와 성건우는 그 근처에 이른 후에야 표지판을 볼 수 있었다. 얼룩덜룩하게 페인트칠 된 표지판 표면엔 이 거리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리버프론트 애비뉴]

용광로 교회당의 문은 누구의 진입도 허락하지 않겠다는 듯 단단히 닫혀 있었다. 하지만 장목화와 성건우는 민스를 통해 이는 용광로를 흉내 내려는 것일 뿐, 실제로 사람들의 진입을 막으려는 건 아님을 알고 있었다.

장목화가 왼손으로 대문을 밀자, 문 사이로 열기가 훅, 끼쳤다. 외부의 싸늘한 바람과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느낌이었다.

이내 그녀는 고개를 들어, 굉장히 높은 돔형 천장, 기둥이나 벽을 따라 각기 다른 곳을 향해 뻗은 회백색, 검은색 파이프들을 마주했다.

“열이 나네요.”

성건우가 문 근처의 한 검은 파이프에 손을 대며 말했다.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곧 판단을 내렸다.

“파이프 안에는 뜨거운 물이 흐르고 있을 거야. 정말 사치스럽네!”

그녀가 보기엔 이는 구세계 난방 시스템을 흉내 낸 장치인 듯했다. 이를 통해 추측하자면, 교회당 뒤엔 큰 보일러와 석탄이 쌓여있을 것 같았다.

교회당과 이러한 장치의 연계는 아무래도 좀 이상했지만, 교파의 이름이 용광로이니만큼 어느 정도 받아들일 수는 있었다.

“문을 닫아주십시오.”

갑자기 예배당 전방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렸다.

‘그래, 이 안의 열기가 밖으로 너무 많이 흘러나가면 안 되지. 에너지가 그만큼 낭비될 테니까.’

장목화는 새삼 용광로 교파가 항상 문을 꼭 닫아놓는 이유를 깨달았다.

성건우가 문을 닫으며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여름에도 난방이 가동될까요?”

장목화는 그 광경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후끈해지는 것 같았다.

“그러지는 않습니다. 이 건물은 여름 열기를 내부에 머무르게 해 그것만으로도 용광로 느낌을 내도록 설계돼 있죠.”

다시 예배당 전방의 그 사람이 설명했다.

붉은 가운을 걸친 남자는 나이는 한 40살 정도로, 전형적인 애쉬랜드인이었다. 피부는 약간 검었으며, 얼굴에서 광대뼈가 살짝 두드러져 보였다. 그리고 이마는 땀에 젖어 머리까지 축축하게 젖어 있었다.

장목화는 그쪽으로 다가가며 예의 바르게 물었다.

“실례합니다. 이철이라는 분을 만나러 왔는데요.”

곧이어 붉은 가운을 입은 남자가 숨을 내쉬며 대답했다.

“제가 바로 교회당의 공헌자, 이철입니다.”

“더우세요?”

성건우의 물음에, 이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무척 덥습니다. 하지만 편안하고 가뿐해요. 체내의 불순물이 용광로에 의해 전부 제거되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요.”

장목화와 성건우 모두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얼굴에 이철은 옆쪽 문을 가리키며 설명했다.

“막 미사를 드리고 나오는 길입니다. 저쪽이 저희 미사실입니다.”

“미사를 드리는 방도 따로 정해져 있나요?”

장목화는 의혹과 호기심을 숨기지 않았다.

그러자 이철이 웃었다.

“그렇습니다. 저희 미사 의식에는 필요한 조건이 있습니다. 반드시 밀폐된 방에서 빨갛게 달아오른 돌에 끓는 물을 끼얹으며 피어오르는 수증기를 봐야 하죠. 그게 신령의 기운이거든요. 그분은 그 기운에 저희를 푹 빠뜨리십니다.

신령의 기운은 저희 옷을 적시고 저희의 피부로 스며들어, 체내의 불결한 것과 피로를 배출시켜 주지요. 매번 미사를 마친 후 옷을 갈아입고 나면 몸이 한결 가뿐해진 것을 느낄 수 있어요. 정신도 번쩍 들고요. 그건 신령의 은혜입니다. 여름날 성찬을 먹은 후의 느낌과 같지요.”

이철의 말이 이어질수록 장목화의 표정은 점점 이상해졌다. 마음속엔 묻고 싶은 질문만 공허하게 메아리치고 있었다.

‘……혹시 구세계에 용광로 교파의 성소가 있나요? 있다면 혹시 그 성소의 이름이 사우나는 아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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