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9화. 만물의 균형
‘고부겸⋯⋯.’
용여홍은 이 이름 역시 머릿속에 새겨넣고 다른 질문을 했다. 그렇게 한동안 이야기 나눈 뒤, 노부인에게 예의를 갖춰 작별을 고했다.
이제 용여홍은 다른 질문 대상 물색에 나섰다.
* * *
용여홍으로부터 2~30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백새벽이 있었다.
옷을 갈아입은 그녀는 스카프까지 두른 채 그림자와 행인들 사이에 조용히 그를 뒤따르고 있었다.
이는 장목화의 특별 지시였다.
구조팀에서 개인행동 경험이 필요한 건 성건우와 용여홍이었다. 그중에서도 더 말썽을 일으키지 않게 신경 써서 살펴야 하는 인물은 성건우였다.
이에 장목화는 백새벽에게 몰래 용여홍을 미행하며 그를 보호하라고 지시하고, 본인은 성건우를 맡았다.
타르난의 주민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게 하기 위함이었다.
* * *
한편, 인생 최대의 갈림길에 선 성건우는 연신 오른쪽, 왼쪽, 전방을 번갈아 살폈다. 정말 극심한 내적 갈등 중인 것 같았다.
한참이 지나, 그는 드디어 걸음을 뗐다. 오른쪽 용광로 교파 쪽이었다.
멀찍이 떨어져 성건우를 관찰하던 장목화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용광로 교파에선 춤도 추고 성찬인 훠궈를 먹을 수 있잖아. 다른 교단보다 더 유혹적으로 느껴지겠지.’
뒤이어 춤을 추고 있는 교도들 사이에 끼어든 성건우는 북소리에 맞춰 몸을 흔들며 이따금 큰소리로 외쳤다.
“찬미합니다, 신세계의 대문이여!”
‘아주 신실하네.’
그쪽으로 조금 더 다가간 장목화는 튀긴 닭 날개의 유혹적인 냄새를 맡았다. 동시에 머릿속에선 의혹이 떠올랐다.
‘타르난에는 식재료가 워낙 부족해 현지 주민을 제외한 다른 이들은 오직 통조림과 압축 비스킷, 에너지 바만 먹고 살아가는 거 아니었나? 영광의 저울에서는 전도를 위해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 현지 주민들에게 닭을 키우게 한 건가? 손 한번 엄청나게 크네.’
그 사이, 용광로 교파의 춤은 일단락됐다. 그리고 이 의식을 주관한 한 남자는 검은 커버의 책을 들고, 신세계의 아름다움과 작열하는 문의 위대함을 설교하기 시작했다.
그 설교에 수십 초 정도 귀를 기울이는가 싶던 성건우가 돌연 전술 배낭에서 의기양양해 보이는 원숭이 가면을 꺼내 썼다.
가면을 쓴 그는 홱, 돌아서더니 맞은편으로 당당하게 길을 건넜다. 그리곤 노래 부르는 무리에 슬쩍 가담해, 깨진 거울을 믿는 그들과 성가를 불렀다. 조금 전 길 한가운데에서 세 교파의 모습을 한동안 지켜봤었던 터라, 깨진 거울 교파가 부르는 성가의 가사도, 박자도 척척 맞췄다.
‘……가면을 쓰면 다른 사람이 되기라도 한다고 생각하는 거냐?’
장목화가 한심한 눈빛으로 그 광경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또 이런 생각을 하자마자 성건우가 정말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진짜 최선을 다하고 있잖아⋯⋯?’
한 곡을 완창한 뒤 성직자가 설교를 시작하자 성건우는 이번에도 살금살금 무리에서 벗어나 길 한가운데로 돌아왔다.
그 자리에서 빠르게 원숭이 가면을 벗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던 그는 재차 전술 배낭을 열어 다른 가면을 꺼냈다. 콧구멍이 큼직한 돼지 가면이었다.
계속 그를 몰래 지켜보던 장목화는 그야말로 넋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쟤는 또 언제 여홍이 가면까지 챙긴 거야? 준비성 한번 철저하네.’
그렇게 또 가면을 바꿔 쓴 성건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맛있는 닭 날개를 튀기고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러니까, 닭 날개를 먹으러 가는 건 네가 아니라 여홍이란 거냐?’
장목화는 나름 성건우의 생각을 추측해보려 애쓰고 있었다.
사람이 밟고 선 얇은 기둥을 빙 둘러 옆으로 다가간 성건우는 기다리고 있는 인파 속을 열심히 비집고 들어갔다.
닭 날개를 튀기는 사람은 하얀 수염을 기른 노인이었다. 키는 170센티미터 정도, 레드리버인에다 눈동자가 파란 남자는 붉은 앞치마를 두르고 있었다.
“이쪽은 영광의 저울 교파입니까?”
성건우가 레드리버어로 물었다. 레드스톤 마켓에 한동안 머문 덕분에 그의 레드리버어 실력이 점점 좋아지고 있었다.
“맞아.”
하얀 수염을 기른 노인은 요리에 집중을 멈추지 않고 웃으며 답했다. 그는 오늘 밤만 해도 벌써 셀 수 없을 만큼의 닭 날개를 튀기고 있었다.
“당신들이 숭배하는 건 어떤 달지기죠? 이름이 어떻게 되십니까?”
성건우는 교파에 가입하고 싶다는 듯한 뜻을 비치며 예의 바르게 물었다.
노인은 다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마이크라고 부르게. 우리가 믿는 건 6월의 달지기, 황금 저울이라네. 1년의 균형점을 관장하시는 그분은 대칭과 균형의 상징이지. 구세계가 파괴된 건 특정 사건으로 인해 균형을 잃었기 때문이야.”
믿는 신의 권능과 권위를 간단하고 깔끔하게 설명하는 걸 보면, 그는 전도 경험이 꽤 있는 듯 보였다.
말을 마친 그가 마침내 고개를 들고 성건우를 힐긋 바라보았다.
“레드스톤 마켓에서 왔나?”
경계 교파가 관장하는 거점을 제외하면 가면을 쓰고 활동하는 걸 좋아하는 곳은 없었다. 거기다 그런 거점 중 타르난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곳은 레드스톤 마켓 뿐이었다.
“어떻게 알아차리셨어요?”
성건우가 놀란 듯 물었다.
마이크는 잠시 당황했다. 상대가 정말로 감쪽같이 위장했다고 생각하는 건지, 아니면 농담하는 건지 순간 판단이 서지 않은 것이다.
이내 마이크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가리켰다.
“뻔한 거 아닌가?”
“예, 전 레드스톤 마켓에서 온 고지용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에이돌른의 신도는 아니에요.”
성건우는 솔직하게 자신의 출신을 인정한 뒤 덧붙였다.
‘당연하잖아, 에이돌른의 신도가 닭 날개 튀김에 홀릴 리는 없으니까.’
바로 맞은편 인파 속에 끼어있는 장목화가 속으로 중얼거렸다. 동시에 그녀는 조금 전 추측을 확신했다.
성건우는 닭 날개 튀김에 홀려 영광의 저울을 선택한 건 본인이 아닌, 용여홍이라 주장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고지용은 바로 어머니 성인 고에 아버지의 이름 중 하나인 용을 따서 만든 용여홍의 가명이었다.
이 가명을 처음으로 들었을 때 장목화는 비웃고 싶은 충동을 참기 위해 사력을 다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래? 우리 교파에 흥미가 있나?”
마이크는 당연하게도 전도의 기회를 놓치려 하지 않았다.
성건우 역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이 닭 날개는 어디에서 난 겁니까? 타르난에서도 이렇게나 많은 닭을 기를 수 있나요?”
순간 마이크의 눈빛이 진지해졌다. 그는 일단 능숙하게 튀겨진 닭 날개들을 건져 올려 망 위에 올려놓았다. 완성된 튀김에선 혼을 쏙 빼놓을 정도로 유혹적인 냄새가 더 짙게 풍겼다.
“자네들 차례야.”
마이크가 왼쪽에 선 한 무리에게 말했다. 그러자 기둥 앞에 줄을 선 이들이 순서대로 적당히 식은 닭 날개를 가져갔다.
“다른 사람들도 조금만 기다리게. 순서대로 다 돌아갈 거니까.”
마이크는 성건우를 비롯한 다른 이들을 달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닭 날개를 위해 줄을 선 이들 대부분이 양팔을 활짝 펼치며 기도했다. 기도는 대개 ‘만물의 균형’과 ‘저울의 영광’, 이 두 종류로 나뉘었다.
그렇게 튀겨진 닭 날개들을 한 차례 분배한 마이크는 허리를 굽혀 다시 새로운 닭 날개들을 기름에 넣었다.
그제야 고개를 돌린 그가 성건우의 조금 전 질문에 대답했다.
“이것들은 전부 외부에서 들여온 거야. 우리 교파에는 전문 냉동차도 있고 자체적인 양계장도 있거든.”
이 말을 듣고, 장목화의 입꼬리가 살짝 뒤틀렸다.
‘양계장? 그건 좀 과한 거 아냐? 신도들의 성찬을 위해 양계장까지 만든 교파가 있다니! 하긴, 인간에게 해가 될 건 없네. 닭만 죽어나는 거지.’
다시 마이크의 설명이 이어졌다.
“사실 우리한테도 자원이 그렇게 많은 건 아냐. 신도들은 대 미사가 거행되는 매달 보름에만 성찬을 즐길 수 있지. 자네는 운이 좋았어. 어제가 딱 우리 교파의 대 미사였고, 이 닭 날개가 마지막으로 남은 거거든. 전도를 위해 쓸 수 있도록 특별히 준비된 거라네.”
“오오. 이 교파의 교리는 뭐죠?”
돼지 가면을 쓴 성건우는 고개를 연신 끄덕이다가 화제를 전환했다. 전도 대상을 연기하는 데 있어 그의 연기력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마이크의 표정이 사뭇 진지해졌다.
“우리 교파 교리의 핵심은 아까도 언급되었던 딱 두 가지야. 대칭과 균형. 우린 모든 일에 있어 균형을 유지하려 해.
작게는 몸 상태의 균형, 체액의 균형, 감정의 균형, 자네와 가족 간의 균형부터 시작해서 크게는 인간과 자연 사이의 균형, 인류 집단 사이의 균형, 인간과 아류인 사이의 균형, 인간과 달지기 사이의 균형까지 포함된다네. 대칭은 세상 가장 아름다운 현상이야. 대칭이 아닌 사물은 더럽고 추하지.”
마이크가 영광의 저울의 이념을 이야기하는 동안 성건우도 최선을 다해 집중하며 이따금 맞장구도 쳤다.
그렇게 한참이 지났을 때, 성건우가 마이크에게 알렸다.
“닭 날개가 다 익었습니다.”
“아, 그래.”
마이크는 얼른 닭 날개를 건진 뒤, 성건우 쪽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자, 이제 자네들 차례야.”
성건우는 누구보다 앞장서 줄을 섰다. 빠르고도 깔끔한 움직임이었다.
이윽고 황금빛으로 빛나는 닭 날개 한쪽을 받아든 그가 빠르게 한 입 베어 물었다. 성건우의 입술은 금세 기름으로 번들거렸다.
“맛있다⋯⋯.”
이 광경을 지켜보는 장목화의 표정은 매우 복잡해졌다.
금세 닭 날개 한쪽을 뚝딱 해치운 성건우가 또 예의 바르게 물었다.
“신도들이 다른 달지기를 신봉하는 것에 신경을 쓰는 편인가요?”
“그건 당연히 안 되지!”
마이크가 단호하게 대꾸했다.
성건우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좀 더 고민해보겠습니다.”
말을 마친 그는 그대로 돌아서 다시 길 한가운데로 오더니 빠른 속도로 돼지 가면을 벗었다.
길의 반대편으로 향하는 성건우를 보고, 장목화는 방금 막 건져낸 닭 날개에서 간신히 시선을 떼고 사람들 틈을 빠져나왔다.
* * *
성건우와 그를 따라가는 장목화가 한참을 걸었을 그때, 전방이 갑자기 시끄러워졌다. 무슨 일인지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길 중앙에 모여 있었다.
장목화는 성건우가 그곳으로 달려가는 걸 보았다. 마찬가지로 호기심을 느낀 그녀도 큰 키를 이용해 까치발까지 들어가며 인파 속을 들여다보았다.
모여 있는 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 있었다.
“저게 누군데?”
장목화가 앞쪽에 있는 사람에게 묻자 그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답했다.
“오늘 오후에 산 서남쪽 구역에서 돌아온 생존자. 병원에서 뛰쳐나왔어.”
순간 깨달음을 얻은 장목화가 물었다.
“그 고등 무심자와 관련한 일이야?”
“맞아.”
앞쪽의 사람이 답을 마친 그 순간, 인파 가운데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누군가가 물었다.
“장아홉, 너희 팀의 다른 사람들은?”
짧은 침묵 후, 몹시도 두려워하는 거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죽었어! 전부 죽었다고!”
조금 전 질문을 했던 이는 다른 질문을 이었다.
“누가 죽였는데? 그 고등 무심자가?”
거친 목소리는 또 한동안 침묵하다가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