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6화. 목자 부이용
다시 장목화의 질문이 이어졌다.
“장로? 너희 교파 내의 직급은 어떻게 구분되지?”
곽정수는 숨을 한번 들이마시고 느릿하게 내뱉었다.
“교파의 수장은 교황이지만 난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들리는 말에 따르면 이미 신세계로 가서 주님을 모시는 한편, 그의 뒤를 이어 신의 선택을 받은 자들을 인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더라고.
교황 아래에는 8인 회의가 있어. 장로 8명으로 구성돼 있는데, 각자 다른 구역을 관할해. 장로 아래에 자리한 주교는 여러 가지 구체적인 사무를 담당하고, 주교 아래의 목사는 계획의 집행과 교리의 전파를 맡고 있어.”
장목화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신부는 어느 직급인데?”
“나는 주교인데, 그는⋯⋯. 모르겠어.”
곽정수는 기억을 떠올리는 데 약간의 고통을 느끼는 듯했다.
이 틈을 타, 장목화가 다시금 물었다.
“너한테 최면을 걸었던 게 누구인지 기억해? 어떻게 생겼는지?”
곽정수의 미간이 재차 구겨졌다.
“그는, 그는, 그는 남자야. 아니, 그는 여자야. 아니, 그는 굉장히 잘생겼어. 아니, 그는 대머리야⋯⋯. 아니, 아니⋯⋯.”
순간 곽정수의 눈빛에 광기와 두려움이 어리더니,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그가 내 기억을 조작했어!”
“기억을 조작했다고?”
장목화는 성건우를 돌아보며 상대의 말을 반복했다.
그녀도 조금은 놀랐다. 곽정수의 히스테릭한 모습에 놀랐다기보단, 지극히 귀하고 개인적인 기억마저도 남에게 조작당할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정말 그런 일이 가능하다면 진실 여부는 구분할 수 없어졌다. 그럼 저도 모르는 사이 자발적으로 승려 교단에 가입해, 매일같이 세상의 모든 건 공허하고, 모든 현상이 다 허망하다는 말을 외우게 될지도 몰랐다.
반면 성건우는 조금도 겁먹지 않은 얼굴로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신부의 능력이 다 파악됐네요.”
“그건 그렇네⋯⋯.”
장목화도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한숨을 토해냈다.
현재까지 얻은 정보로 볼 때, 진짜 신부가 가진 각성자 능력은 최면, 기억 곡해, 공동 환각 제작 이 세 가지였다.
가짜 신부에 비하면 신체 통제도 못 하고, 격투에 능하지도 않지만 훨씬 더 무시무시하고 신비로운 능력이었다.
이때 곽정수도 고함을 다 지르고 안정을 찾았는지 자리에 앉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성건우는 화면 너머의 그를 바라보다가 불쑥 웃었다.
“그러면 여기서 문제, 진짜 신부가 정말 다른 사람의 기억을 조작할 수 있다면 왜 네가 스스로를 진짜 신부로 여기도록 조작하진 않았을까? 그럼 다른 사람 때문에 최면 효과가 해제될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됐을 텐데.”
그랬다면 조금 전 장목화가 했던 심리적 방어선에 대한 공격도, 거짓된 인지를 까발리는 행위도 아무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을 것이었다.
침묵하던 곽정수는 10여 초 후에야 입을 열었다.
“가짜 신부를 진짜 신부로 만들고 싶지는 않았나 보지. 내가 나 자신을 진짜 신부라고 착각하게 되는 것도 싫었던 모양이야. 진짜 신부는 하나뿐이며 그건 자기밖에 될 수 없다, 뭐 이런 거 아니겠어?”
누군가가 자기 자신을 진짜 신부로 기억한다면, 어떤 고문을 받더라도 그는 진짜 신부일 수밖에 없었다. 장목화도 그건 좀 위험하고 광기 어린 발상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성건우가 언제나처럼 진지하게 말했다.
“그런 이유라면 이해가 되네.”
장목화는 조용히 눈동자를 위쪽으로 굴리다가 다시금 물었다.
“조작된 기억 말고 진짜 신부와 관련된 세세한 게 떠오르지는 않아? 예를 들면 그가 지불한 대가라든가, 하는 것들?”
곽정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는 건 우리가 같은 시기에 각성했을 거란 거야.”
장목화는 우딕도 꿈 조종 능력으로 같은 질문을 했으리라 추측했다. 그런데도 의형제 성건우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건, 애초부터 곽정수에게 그와 관련된 기억은 존재하지 않거나, 있었어도 문제가 생긴 상태라는 뜻일 터였다. 이에 그녀는 계속 이 문제에 매달리는 대신 화제를 전환했다.
“네가 아는 반 지성교의 장로는 몇이나 돼?”
교황 아래 8인 회의를 구성하고 있는 것이 장로들이었다.
그래도 진짜 신부에 대한 주제를 벗어나니 곽정수의 상태도 꽤 좋아졌다.
“내가 접촉한 장로는 한 명뿐이야. 우리의 각성 의식을 주관했던 그 장로. 후에 내게 명령을 내린 것도 그 장로였어. 레드리버인이야. 이름은 부이용, 퍼스트 시티 지구를 담당해. 근데 그 도시랑 주위 구역만 관장하지, 퍼스트 시티의 온 세력 범위를 다 관장하는 건 아냐.”
퍼스트 시티 세력의 수도이자 현재 애쉬랜드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로 인정받는 퍼스트 시티는 갈망의 도시라고도 불렸다.
이내 장목화는 눈을 번득였다. 부이용이라는 장로는 엄청난 대어였다. 물론 그런 상대를 구조팀만으로 대적할 순 없을 것이었다. 이두형의 말을 참고하면 부이용은 이미 심령의 복도에 진입했을 가능성이 컸다. 그는 능력 범위로 보나,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목표의 수로 보나 어마어마한 강자일 터였다.
“어떻게 생겼어? 어떤 각성자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수많은 이들의 기억을 다 읽어낼 수 있다는 건, 그중 특정 능력을 응용한 형태일 거 아냐.”
곽정수가 자조하듯 웃었다.
“내가 생김새를 기억할 거라 생각해? 그 사람의 별칭은 목자야. 좀 듣기 불편한 목소리를 갖고 있지. 꼭 목구멍에 영영 고칠 수 없는 상처가 난 것처럼.”
머리를 굴리던 장목화는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는 한 부분을 찾아냈다.
“목자 부이용이 퍼스트 시티 지구를 담당한다면, 왜 굳이 널 위드 시티로 보낸 거지? 단순히 허양원을 암살하기 위해서?”
“위드 시티는 교파가 장악한 지역이 아냐. 누구든 선점한 자가 관할해. 아무튼 허양원을 죽이긴 해야 해. 그래야 전도하기 수월해지니까.”
곽정수는 간단히 설명했다.
곧이어 장목화는 곽정수 아래에 속한 목사들은 누군지, 신도를 얼마나 거느렸는지, 평소에 쓰는 물자는 어디서 구하는지 등을 물었다.
그러자 곽정수는 옅은 웃음만 보였다.
“우딕은 이미 꿈을 통해 그런 상황을 파악했을 거야. 허양원에게 보고서를 요구하기만 하면 모든 걸 알 수 있을 텐데 왜 굳이 또 묻는 거야?”
“절차야.”
이는 장목화가 아니라 그녀의 목소리를 흉내 낸 성건우의 대답이었다.
하지만 장목화는 말없이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속으로 칭찬을 건넸다.
‘훌륭한데.’
곽정수가 이에 관한 답을 끝내자, 성건우가 틈을 놓치지 않고 물었다.
“심령의 복도에 대해 알고 있는 게 있나? 교황이 진입했다는 신세계는 뭐야? 거긴 어디지?”
곽정수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전부 기밀 중의 기밀이야. 나는 물론이고 진짜 신부도 그것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를걸.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건 부이용 장로에게 신기한 물건이 몇 개 있었다는 거야. 그 사람은 그걸 달지기의 은혜라고 하더군.
하하, 난 아직 기원의 바다 안에서 내면의 두려움과 직면하고 있어. 심령의 복도에 이르기에는 갈 길이 구만리라고. 어쩐지⋯⋯. 어쩐지 그 섬을 넘을 수가 없더라니. 최면에 걸린 사람은 절대 성공할 수가 없지⋯⋯.”
곽정수는 조용한 혼잣말로 이야기를 마무리 지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 고개를 끄덕이던 장목화가 다시금 화제를 바꿨다.
“배윤수 일행이 반고 바이오 사람인 건 언제 알았어? 우딕이 치른 대가는 어떻게 안 거야? 사냥꾼 길드 부회장 크리스티나한테 얻은 정보야?”
곽정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사람이 아니고 벙어리…… 어쩌면 진짜 신부가 내게 준 정보인지도 모르지. 처음에는 교파와 무관한, 그래서 언제든 버릴 수 있는 도우미를 찾을 생각이었어. 그런데 벙어리가 나한테 그들의 정보를 주더라고. 그들에게 모든 죄를 뒤집어씌울 계획을 세운 건 그 이후의 일이었지.”
장목화는 속으로만 조용히 중얼거렸다.
‘진짜 신부는 배윤수 구조팀이 허양원을 만나려 했기 때문에 그들의 기억을 뒤져 배경을 파악한 건가? 그리고 적당한 타이밍을 잡아 가짜 신부와 맞닥뜨리게 한 거고?’
심문이 거의 마무리될 때쯤, 성건우가 약간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 반 지성교는 어떻게 기도하고 어떻게 경례해?”
간단한 질문 앞에, 곽정수는 한숨과 함께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답했다.
“기도는 밥 먹기 전 고개를 젓는 거야. 사고할 필요 없다는 뜻이지. 구체적으로 몇 번을 젓는지는 상관없어. 경례할 때는 양손을 들어 두 눈을 가리고. 이건 보지도, 듣지도, 알아차리지도 않겠다는 표현이야.
우린 ‘그대들 역시 지능을 잃기를’이란 말로 서로를 축복하고, 달지기를 언급할 때는 ‘온몸과 마음으로 신을 믿으시길’, 전도할 때는 주로 ‘모든 걸 의심하라, 진리는 없다.’, ‘사고는 함정이고 지식은 독약이다.’라고 해.”
성건우는 어느새 작은 수첩을 꺼내 그의 말을 받아적고 있었다.
“상징은 이목구비가 없는 사람인가? 미사는 어떤 식으로 해?”
곽정수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그래, 이목구비가 없는 사람이야. 우리 미사는 아주 간단해. 일단 설교를 통해 지식과 사고의 나쁜 점을 듣고, 그 후에는 목사를 따라 구호를 외쳐. 구체적으로 무엇을 외치는지, 몇 번을 외치는지는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달라. 때로는 박수로 대체하기도 하고.”
이때 장목화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
“전도는 어떤 식으로 해? 전도 당하면 어떻게 그런 믿음을 갖게 되는데?”
곽정수는 전방의 화면을 바라보며 힘없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처음에는 음식으로 유혹해. 그 후에는 신도들의 고민을 깊이 파악하고 고민 일부를 해결해주지. 그렇게 우리에게 완전히 의지하게 되면, 결국 그들은 사고를 철저하게 포기하게 돼.”
장목화가 살짝 입을 비죽였다.
“전반부는 그나마 정상적인 작업처럼 보이지만 후반부는⋯⋯. 난 너희들이 전도할 때도 최면 능력을 사용하는 줄 알았는데.”
곽정수의 웃음에서는 약간 복잡한 감정이 느껴졌다.
“그럴 필요는 없어. 미사할 때만 그런 조치를 취해도 효과를 강화할 수 있거든. 애쉬랜드에 사는 사람 대부분에게 삶은 고통이야. 우리가 그들 대신 고민하고 계획하면서 안정된 생활을 선사하다 보면, 그들은 우리 교리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더라도 스스로를 속이고 종교를 믿길 택해.”
장목화는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자신의 노트를 덮었다.
* * *
윤복 총포사 2층 복도.
용여홍은 양손을 주머니에 찔러넣고, 축축하고 어두운 복도를 걸어 계단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 방을 지나치는 순간, 음식 냄새가 끼쳐왔다.
그때, 문 앞에 딸린 석탄 풍로(風爐)로 뭔가를 끓이던 남자가 코를 벌름거리는 용여홍을 보고 친절하게 말했다.
“맛 좀 볼래요? 그쪽이 말한 대로 남은 음식을 가지고 잡탕이라는 것을 한 번 끓여보고 있는데.”
남자의 말투는 퍽 친근했다. 용여홍도 집을 지키기 위한 전투를 한 차례 치르고 나니, 이 뜰에 딸린 건물 사람들과 매우 친해져 있었다.
“아뇨, 아뇨, 괜찮습니다. 방금 막 밥을 먹었거든요.”
용여홍은 손사래를 쳤다. 차마 음식을 먹을 염치가 없었다. 지금은 누구라도 구제를 받아야만 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힘겨운 때였다. 그렇게 용여홍은 웃음을 머금은 채 남자를 지나쳐 계단에 이르렀다.
쿵쿵쿵-
이때 1층에서 17~8살 정도 되어 보이는 소녀가 뛰어 올라왔다. 쪼글쪼글한 흰색 솜옷을 걸친 예쁘장한 소녀는 입에 노란 옥수수빵을 물고 있었다.
“어?”
용여홍은 이 시간에 등장한 상대에게 놀란 듯 짧은 탄성을 내질렀다.
소녀도 입에 물고 있던 옥수수빵을 손으로 쥐고 웃으며 인사했다.
“안녕. 장사가 잘 안되는 때잖아. 구제령이 떨어지기도 했고. 안 선생님이 할인된 가격에 수업을 몇 번 더 해주시겠다고 해서 이 시간에 온 거야.”
소녀는 알아서 연유를 설명하곤, 다시 옥수수빵을 입에 문 채 명랑하게 손을 흔들며 위층으로 올라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