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175화 (175/649)

175화. 심문

잠시 침묵하던 허양원이 말했다.

“당신들, 반고 바이오 사람인가?”

“맞습니다. 아직 많이 발달하지 않은 유전자 개조에 비해, 생체 공학 의수 기술은 이미 상당히 믿을만한 수준에 이르러 있죠.”

장목화가 답했다.

허양원은 그녀를 10여 초 동안 가만히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

“원하는 게 뭐지?”

장목화가 가볍게 웃었다.

“저희가 원하는 건 별거 아닙니다. 성주님은 아직 살아계시고, 아직 위드 시티를 장악하고 계시는 데다 위드 시티의 자유를 유지하고 계시죠. 저희는 그거면 충분합니다. 만약 저희에게 이곳에서 일반적인 무역을 통해선 살 수 없는 물건을 구매할 수 있도록 해 주신다면 더욱 감사할 테고요.

성주님, 추를 저울 한쪽에만 올려놓아서는 균형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허양원은 잠시 고민했지만, 곧장 답하지는 않았다.

“고민해보겠네.”

* * *

가짜 신부가 갇힌 곳으로 향하는 동안 성건우가 말했다.

“거짓말에 능하네요. 이미 마음이 동했는데도 고민해보겠다니.”

위드 시티의 성주 허양원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러자 장목화가 성건우를 힐긋 바라보았다.

“정상적인 반응이야. 지나치게 빨리 내뱉은 답을 믿을 수 있을 리 없잖아.”

“형제간에는 무엇보다 진심이 중요한 법인데요.”

성건우의 반박에, 장목화도 그의 논리에 따라 대꾸했다.

“너와 그 사람이 형제라고 해서, 회사까지 그 사람과 형제인 건 아니잖아.”

‘왜, 능력 있으면 이사회 이사들까지 전부 네 형제로 만들어보시지? 그럼 회사랑 허양원도 형제가 될 거잖아.’

장목화는 덧붙이고 싶던 말은 그냥 속으로 삼켜버렸다. 성건우의 행동력을 고려할 때 차마 입 밖으로 낼 수 없는 말이었다.

대화를 나누는 사이, 두 사람은 유치장에 이르러 담당자를 만났다.

담당자에게 허양원이 준 영장을 전달하니, 두 사람은 크지 않은 방을 안내받았다.

방에서 가장 주가 되는 것은 콘솔이었다. 콘솔 위에는 모니터 여러 대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모든 모니터가 비추고 있는 건 한 방 안의 광경이었다. 침대 하나와 의자 하나뿐인, 아주 작은 방이었다.

그 방에 비실비실해 보이는 가짜 신부가 있었다. 그는 의자에 앉아 맞은편 벽을 가만히 응시하고 있었다. 그곳에도 대형 스크린이 설치돼있는 듯했다.

곧이어 담당자가 이러한 처리를 해둔 이유를 간단히 설명했다.

“강력한 최면 능력이 있는 자이니 가까이 접근하지는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전자기기로 소통하는 편이 안전할 거예요.”

성건우도 가짜 신부와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는 각성자였다. 그러나 당연히 이 사실을 밝힐 수는 없기에, 장목화는 그냥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편이 낫겠네요.”

그녀와 성건우가 자리에 앉자, 담당자는 콘솔을 이리저리 조작하며 각 모니터에 떠오른 화면을 연결했다. 그러자 각각의 화면이 한 덩어리로 합쳐졌다. 이로 인해 꼭 유리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조그만 방에 혼자 있는 가짜 신부와 마주한 듯한 광경이 연출됐다.

이후 은회색 금속 로봇이 작은 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 가짜 신부 맞은편의 스크린을 조정했다.

역시 아무리 최면 능력을 가진 자라도 기계에 최면을 걸 수는 없었다.

“과학기술의 힘이란⋯⋯.”

장목화가 중얼거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짜 신부도 화면으로 감시실 안 상황을 보게 되었다. 비실비실한 남자는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너희들이었군.”

장목화는 웃으며 말을 받았다.

“침착하네.”

가짜 신부가 고개를 살짝 들었다.

“신부라는 별칭을 가진 사람이라면 언제든 주님을 위해 순교할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지 않겠어?”

그의 말투는 아주 덤덤했다. 갇혀 있는 사람이 그가 아니라 맞은편에 자리한 장목화와 성건우인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장목화는 이런 유형의 인간은 자신만의 논리를 가지고 있단 걸 알고 있었다. 그들의 박자에 끌려가다 그 논리에 휩쓸리게 되면, 마음을 꿰뚫고 더 가치 있는 정보를 캐내기가 어려워졌다.

물론 정 안 되겠다 싶으면 성건우 형제회 회원인 우딕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면 일이 좀 번거로워졌다. 지향성이 강한 꿈 유도 능력은 그다지 넓은 범위를 아우를 수 없어서, 원하는 답을 얻어내기까지 계속 반복적으로 시도해야만 했다.

그래서 장목화는 곧장 고개를 틀어 성건우에게 먼저 물어보라는 신호를 보냈다. 사고의 흐름을 예상할 수 없는 성건우를 먼저 나서게 해, 상대의 박자를 깨뜨리는 것이 바로 그녀의 계획이었다.

성건우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입을 열었다.

“너희 반 지성교의 성찬은 뭐지?”

그는 매우 중요한 질문이라는 듯 대단히 진지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뜻밖의 질문에 가짜 신부가 흠칫했다. 자신이 여태껏 잡아놓았던 분위기가 단박에 무너져 내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 상당히 가치 없는 질문에, 가짜 신부도 그냥 순순히 대답해주었다.

“미음, 연근 가루, 달걀찜, 비교적 소화가 잘되는 음식들이다.”

성건우는 즉각 말을 받았다.

“너희는 전부 스스로를 갓난아기로 여기는 거냐?”

또 한 번 흠칫 놀란 가짜 신부는 잠시 고민하다가 답했다.

“인간의 본능은 태어났을 때부터 갖춰져 있던 거야. 우리 목표는 인간 대부분이 본능과 경험만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지.”

“그런 성찬이라면 애들은 괜찮을지 몰라도, 성인은 포만감을 느낄 수 없겠는데? 가끔만 즐기는 수밖에 없겠어. 정말이지, 너희는 달지기 사명을 믿는 교단과 좀 교류를 해야 할 것 같다.”

성건우는 상대의 답을 듣는 시늉도 하지 않고 혼잣말만 이어나갔다.

가짜 신부 역시 그의 사고 흐름을 쫓아가길 포기한 건지 그냥 침묵했다.

“내가 보기엔 말이야. 너희 같은 종교 조직은 제자리걸음만 하는 것 같아. 서로 교류하고 부딪히면서 상대의 장점을 흡수한다면 더 많은 신도를 끌어들일 수 있을 텐데. 나라면 적어도 한 번은 고려해볼걸?”

가짜 신부의 이마에 핏줄이 돋아났다. 그는 당장이라도 성건우에게 반박하고 싶었지만, 간신히 그 충동을 억누르고 있었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너희 교파 사람들 다 좀 모자란 것 같지 않아? 너만 해도 그래, 그렇게 온갖 애를 썼는데 결국 실패하고 거기 갇혀 있잖아.”

성건우는 아무래도 가짜 신부와 반지성 교육의 실패에 관한 심층적인 토론을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이내 가짜 신부의 호흡이 살짝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결국 그도 인내심에 한계가 온 듯 묵직한 목소리로 운을 뗐다.

“운이 너무 나빴을 뿐이다. 너희와 우딕을 동시에 맞닥뜨리다니.”

이 기회를 틈타, 장목화가 웃으며 끼어들었다.

“운? 배윤수 일행이 반고 바이오의 직원이란 거 알았잖아. 그들을 모든 죄를 뒤집어쓸 희생양으로 골랐을 때부터 알고 있었을 거 아냐. 반고 바이오에선 반드시 다른 직원을 보내 그들의 연락이 끊긴 이유를 조사할 거란 거.

새로 파견된 직원들은 당연히 그들보다 훨씬 더 강한 자들 아니겠어? 그럼 당연히, 최대한 빨리 계획을 실행했어야 하는 거 아냐?

그 계획을 무려 한 달 반이 넘도록, 우리가 이곳에 도착해 정식으로 조사를 시작할 때까지 질질 끌 줄 누가 알았겠어?

혹시 일을 최대한 나중으로 미루는 버릇이라도 있나? 아니면, 사실은 자살하고 싶었어? 그것도 아니면 너희들이 달지기 말인에게 이미 뇌를 바친 모양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 같은데.”

거칠게 심호흡하던 가짜 신부가 묵직하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날씨가 조금 더 추워질 때까지, 대량의 황야유랑자들이 모여들 때까지 기다리기 위해서였다.”

“계획을 충분히 바꿀 수 있었는데도 곧이곧대로 끌고 나간 이유는? 너희들 목적은 허양원을 죽이는 거였지, 위드 시티를 어지럽히는 게 아니었잖아. 누군가가 너한테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주입한 거 아냐?”

자연스럽게 화제를 전환한 장목화가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지금 그녀는 꼭 매서운 기세로 학생의 기를 꺾는 능수능란한 교관 같았다.

순간 가짜 신부의 몸이 미약하게 떨리며, 눈도 따라서 커다래졌다.

하지만 장목화는 가짜 신부에게 이유를 찾을 기회도 주지 않은 채, 계속 웃으며 압박을 이어나갔다.

“네가 우딕과 대적하고 있을 때 허양원은 기습을 받아 죽을 뻔했어. 아직도 그걸 모르고 있는 건 아니지?”

“뭐?”

가짜 신부의 표정이 급변했다.

장목화는 여전히 웃음을 머금고, 진짜 신부의 기습 경과와 그의 목적을 친절하게 설명한 뒤 질문을 덧붙였다.

“공교로운 우연이 아니었다면 위드 시티의 모든 대귀족은 폭발과 함께 다 같이 목숨을 잃었을 거야. 그 후 퍼스트 시티의 정규군은 소요 사태를 안정시키겠다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핑계로 위드 시티에 쳐들어왔을 거고.

이거야말로 네 계획보다 훨씬 짙은 광기와 풍부한 상상력이 어린, 거기다 성공 가능성까지 더 큰 계획 아닌가?”

낯빛이 어두워진 가짜 신부는 고개를 살짝 숙인 채,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동안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는 그 사람보다는 네가 더 가짜 신부 같은데.”

하나하나 포석을 깔아놓은 장목화가 마침내 치명타를 날렸다.

그 말에 가짜 신부의 눈빛이 굳어지더니 몸이 전보다 더 강하게 떨렸다.

장목화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 사람은 벙어리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을지 몰라. 어쩌면 다른 것일 수도 있지. 혹시 너한테 앞으론 네가 신부라고 말했던 사람이 있지는 않았어? 음, 그와 비슷한 말을 했던 사람이라도.”

가짜 신부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의 이마 역시 식은땀으로 번들번들했다.

몇 초 후, 야수처럼 낮게 포효하던 그가 양손을 들고 얼굴을 감싸 쥐었다. 뒤이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그는 매우 겁에 질린 얼굴을 하고 있었다.

“있었어, 있었어, 있었어!”

그는 점점 더 우렁차고 큰 목소리로 같은 답을 연거푸 세 번이나 내뱉었다.

장목화는 소리 없이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이제 너 자신이 누구인지 알겠지?”

거짓된 오만에서 완전히 깨어난 가짜 신부는 더 이상 심리적인 방어를 이어나가지 못했다. 그는 곧 탈진한 듯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곽정수, 내 이름은 곽정수야. 난 반 지성교의 신도로, 선택을 받아 신의 은혜를 입게 되면서 각성자가 됐어.”

“너희는 달지기 말인에 의지해 각성한 거야?”

장목화가 즉각 끼어들었다. 이는 무엇보다 중요한 질문이었다.

곽정수는 숨을 헐떡였다.

“그래, 우린 선택받은 후 어두운 동굴에 들어갔어. 분부에 따라 각자 자리에 똑바로 누워 잠들었지. 그리고 잠든 지 얼마 안 돼서 난 뭇별 홀을 봤어.”

장목화가 계속해서 물었다.

“같이 선택받은 자는 몇 명이었고, 그중 몇 명이 각성했는데?”

“선택받은 자는 아주 많았어. 구체적인 수까지는 모르겠지만 아마 백 명은 넘었을 거야. 근데 각성에 성공한 자는 네다섯 명이었어.”

기억을 더듬던 곽정수는 일순 고통스럽다는 듯 미간을 팩 구겼다.

잠시 고민하던 장목화가 물었다.

“각성하지 못한 사람에게는 어떤 후유증이 남았는데?”

이 질문에, 곽정수는 한동안 생각에 잠겨 있었다.

“더러는 미쳤고, 더러는 그 자리에서 죽었고, 또 어떤 누군가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사실 아무 일도 없던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

고개를 돌려 성건우를 보던 장목화가 다시 미소 지으며 물었다.

“아무 일도 없거나 미친 사람들이 각성한 게 아니라 확신하는 이유는?”

“당시 그 작업을 주관하던 교파 장로가 한 명 있었어. 그 사람은 수많은 이들의 기억을 하나하나 읽어낼 수 있지.”

곽정수의 표정에는 짙은 두려움이 어려 있었다.

‘역시 반 지성교의 능력은 기억과 최면 영역에 속해 있네.’

장목화와 성건우는 동시에 시선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눈에 떠오른 흥분의 빛을 확인했다. 차차 사건의 윤곽이 드러나니 절로 마음이 달뜨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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