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2화. 예측을 벗어난 패
재차 홀 안에 울리기 시작한 신부의 목소리에선 조금 비웃음이 묻어났다.
- 허양원과 머신헤븐의 관계가 꽤 깊다는 사실을 알게 된 마당에 제가 어떻게 아무 준비도 안 하겠습니까. 전자기 차단은 진즉에 해뒀죠.
이 말에, 성건우가 매우 아쉬워하며 주먹 쥔 오른손으로 왼손바닥을 쳤다.
“이런.”
장목화는 그가 무엇을 아쉬워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상대가 영향 범위 밖에 있어, 그에게 추리 광대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성건우는 지금 당장 저 수다스러운 신부를 무릎 꿇리고 단박에 아버지를 부르짖게 할 수 있었다.
신부의 비웃음에도 우딕의 얼굴은 표정 변화 없이 덤덤했다. 그는 그냥 들고 있던 전자기기를 주머니에 쑤셔 넣은 후 다른 물건을 꺼냈다. 검은 수류탄이었다.
우딕은 곧장 수류탄의 핀을 뽑아 허리와 등을 굽히고 팔을 휘두르면서 수류탄을 대문 옆 유리창으로 던졌다.
청아한 파열음과 함께 유리창 밖으로 날아간 수류탄은 굉음과 함께 화염 한 덩어리를 피워냈다.
허공에 뜬 채 시종일관 우딕을 쫓아다니던 머신헤븐산 드론은 묵묵히 이 광경을 찍으며, 조종자에게 실시간으로 우딕의 상황을 알렸다.
홀 안의 우딕이 수류탄을 던짐과 동시에 장목화와 성건우는 냅다 달려 기둥 뒤에 각자 몸을 숨겼다.
폭발음이 잦아들자 벽에 기대있던 우딕이 외쳤다.
“두 사람이 접근 중이야! 복도 양 끝에서! 그중에 신부가 포함되어 있는지는 모르겠다!”
장목화는 빠르게 머리를 굴리며 상황을 파악했다.
‘우딕은 각성자 능력에 의지해 접근자 둘의 의식을 감지하긴 했지만, 상대편 각성자의 위장과 방해 능력 때문에 둘 중에 신부가 있는지는 확인하지 못한 건가?
신부는 자신을 숨긴 채 몰래 접근할 수도, 아니면 그 반대로 동료 속에 숨어 일반인인 척 위장하고 있을 수도 있어.
우딕은 목표를 강제로 잠들게 한 뒤 하나하나씩 처리할 수 있어. 근데 그러지 못한다는 건 상대가 강제 입면 능력의 영향 범위 밖에 있기 때문이겠지. 그들은 꿈 조종이나 다른 능력의 영향 범위 안에만 들어와 있는 거야.’
뒤이어 그녀가 성건우를 바라보았다. 성건우는 고개를 힘껏 끄덕이며 우딕의 말이 맞다는 뜻을 표했다.
그러자 장목화는 낭비할 시간 따위 없다는 듯 아이스모스 권총을 쥔 채 자세를 조정했다. 반대편 손으로는 벨트에 걸린 암녹색 수류탄을 움켜쥐었다.
탕! 탕!
복도 양쪽에서 총성이 울리자, 총알을 맞은 벽에서는 불꽃이 튀었다.
상대방은 우딕의 능력에 상당히 신경 쓰고 있는 듯 감히 그 이상 접근하지는 못한 채 원거리 사격만 하고 있었다.
우딕은 어쩔 수 없이 자세를 고치며 권총으로 반격에 나섰다.
그러던 그때, 텅 빈 우딕의 왼손이 저절로 스스로의 뺨을 강타했다. 손과 뺨 사이에서 울린 소리는 굉장히 깔끔하고 부드러웠다.
하지만 성건우의 귀엔 바로 옆에 떨어진 천둥처럼 크게 느껴졌다. 귀가 웅웅대는 느낌과 함께 현기증까지 덮쳐 하마터면 몸의 균형도 잃을 뻔했다.
복도 양 끝에서 울리던 총성도 그대로 멎어버렸다. 그들도 이 소리에 영향을 받아, 격하게 흔들리는 땅 위에 선 듯 비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장목화는 고개만 살짝 기울였다. 그녀에게도 이 소리는 갑자기 허공에서 일어난 폭발처럼 좀 크게 들렸다. 그러나 단지 그뿐이었다. 그 외의 이상 증세를 보이지는 않았다. 그녀는 본래 청각 장애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는 우딕의 또 다른 각성자 능력, 청각 장악이었다. 그는 일정 범위 내 모든 인간의 청력을 극단적으로 민감하게 만들거나 장애가 있는 수준으로 청각을 감퇴시킬 수 있었다.
방금 그가 사용한 것은 청력을 극도로 민감하게 만드는 기술이었다. 이 능력의 유일한 문제는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오직 자기 자신만 그러한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웠다.
이 틈을 타 몸을 한 번 굴린 우딕은 적 두 명 중 한 명과 거리를 좁혔다.
바로 그때, 장목화가 손을 쳐들고 우딕과 멀지 않은 계단 입구 안쪽으로 총을 한 발 쐈다.
탕!
낭랑한 총성과 함께 위쪽에서 숨어 내려오던 인영 하나가 다급히 옆쪽으로 몸을 날렸다. 장목화가 손을 들어 올린 순간 반응을 보인 그는 다행히 날아든 총알을 피할 수 있었다.
상당히 협소한 계단 안에서 몸을 날리느라 벽에 부딪힌 그는 그 반동을 이용해 몸을 굴리며 방향을 바꿨다.
그제야 장목화는 상대의 모습을 제대로 살필 수 있었다.
한쪽 손으로 땅을 짚고서, 반쯤 엎드리고 반쯤은 쪼그려 앉듯 착지한 남자는 검은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었다. 약간 헝클어진 짧은 머리와 중병에 걸린 것처럼 창백한 안색도 눈에 띄는 특징이었다.
특별한 말 없이도 알 수 있었다. 그는 반 지성교의 위험인물, 신부였다.
장목화를 향한 신부의 눈에는 약간 놀란 빛이 어려 있었다. 상대가 자신을 발견하리라곤 전혀 예상치 못한 눈치였다.
여태까지 그가 생각했던 주요 적수, 자신에게 대적할 만한 자격이 있다고 여겼던 적수는 우딕 뿐이었다.
그런데 평범한 사냥꾼이리라 믿었던 우딕의 두 조수 중, 남자는 괴상한 사고방식을 가진 분위기 파괴자고, 여자는 자신의 접근을 미리 알아챌 수 있을 만큼 뛰어난 감지력의 소유자였다.
우딕은 그제야 계단 입구 안쪽에도 적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아직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목표도 잠들게 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윽고 신부가 공격을 피한 것을 확인한 장목화는 망설이지 않고 준비해 둔 수류탄을 내던졌다. 핀을 뽑을 시간조차 없었다.
그때, 성건우는 권총을 들고 수류탄을 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계단 입구가 반쯤 막혀 있으니, 수류탄이 그 안에서 폭발한다면 신부로서는 그 여파를 피할 수가 없었다. 때맞춰 아래층 계단으로 몸을 날린 뒤 잔뜩 웅크리지 않는 이상, 죽지는 않더라도 최소 중상을 입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장목화가 수류탄을 던지기 직전, 그녀의 왼손이 멋대로 들어 올려졌다. 당장이라도 그녀의 뺨을 후려치려는 것 같았다.
안여향이 스스로를 찔렀을 때와 똑같은 상황이었다.
이는 신체 자동 능력의 결과였다.
탕!
수류탄이 그리는 호는 예정된 것보다 훨씬 더 높게 치우쳐져 있었다.
틀어진 호를 따라 다른 곳으로 향하는 수류탄에, 성건우가 쏜 총도 그저 허공을 가르기만 했다.
하지만 성건우는 이 결과를 보고도 실망하거나 낙담하지 않았다.
핀이 뽑히지 않은 수류탄이 바닥에 떨어지기 직전, 몸을 숨겼던 기둥에서 튀어나온 성건우가 미친 듯 달리기 시작했다. 그 후 앞쪽으로 몸을 날리면서 연달아 몇 바퀴를 구르며 신부와의 사이를 대폭 좁혔다.
멈춰선 자리에서 고개를 든 순간, 성건우의 시야에 숲속 호수처럼 깊은 상대의 눈동자가 들어왔다.
성건우는 그 상태에서 씩, 웃으며 신부를 향해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와 동시에 손을 들고 상대를 겨냥해 방아쇠를 당겼다.
최면을 진행하려 했던 신부는 흠칫 놀랐다. 상대가 우스꽝스러운 표정을 지을 거라곤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성건우도 자신이 그런 반응을 할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
신부는 잠시 놀랐지만, 이내 민첩하게 옆쪽으로 몸을 날렸다.
탕!
성건우는 총성이 울려 퍼지는 사이, 두 손으로 쥔 권총의 총구를 안정적으로 이동시키려 했다. 연달아 총을 쏘며 신부가 도망칠 수 있을 만한 범위를 총알로 모조리 뒤덮기 위해서였다.
그 순간, 저도 모르게 성건우의 양손이 들어 올려졌다. 총구는 어느새 자신의 머리를 겨냥하고 있었다. 신체 자동 능력이었다.
하지만 성건우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웃고 있었다. 완전히 새로운 경험이기 때문이었다.
방아쇠로 향한 그의 손가락은 금방이라도 당겨질 듯했으나, 동시에 손가락은 해당 동작을 잊은 듯 그대로 멈춰버렸다.
성건우가 스스로에게 양손 동작 불능 능력을 발휘했기 때문이었다.
여유롭게 참사를 피한 그는 이제 네 차례라는 듯 고개를 틀어 우딕을 바라보았다.
사실 그도 조금 전 쏜 총알이 신부에게 명중하리라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원래부터 그 총알은 신부를 우딕 쪽으로 몰아내어 두 사람의 거리를 좁히는 데에 목적을 두고 발사된 것이었다.
성건우와 따로 얘기하진 않았지만 장목화도 암묵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급박한 상황에서도 굳이 신부의 왼쪽을 향해 총을 쏜 건, 상대가 총알을 피해 멀리 떨어진 우딕 쪽으로 도망치게 유도하려는 목적 때문이었다.
역시 신부는 우딕이 있는 복도 쪽으로 몸을 날리는 수밖에 없었다.
노리고 있던 목표를 포기하고 몸을 반쯤 튼 우딕은 벽에 찰싹 달라붙은 채 신부에게 집중했다.
날린 몸을 한 번 더 굴리기 전, 신부는 일순 눈의 초점을 잃었다. 남자의 눈꺼풀은 저도 모르게 스르륵 내려왔다. 격렬한 전쟁터에서 그대로 잠든 그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했다.
성건우와 장목화는 당연하게도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두 손이 자유로워지자마자 총구를 돌린 그들은 휘청거리는 신부를 겨냥하려 했다.
그 순간, 우딕의 반대편 복도에서 총알 한 발이 날아들었다. 각도로 볼 때 우딕을 명중시키기는 불가능한 총알이었지만 그와 함께 울려 퍼진 소리까지 무시할 수는 없었다.
탕-!
고막을 진동시키는 소리에 금방이라도 잠들 듯했던 신부가 번쩍 깨어났다. 그는 상황을 파악할 새도 없이 그대로 쓰러지면서 몸을 연달아 굴리는 한편 아무런 목표나 골라 상대가 쥔 총의 총구를 돌렸다.
탕! 탕!
장목화의 총에서 튀어 나간 총알이 천장 등을 맞혔다.
부서진 등에서 대량의 유리 조각이 우수수 떨어져 내렸고, 빛을 잃은 부근은 조금 더 어두워졌다.
그리고 성건우의 총알은 신부가 조금 전 서 있던 곳으로부터 살짝 치우쳐진 곳을 때리며 불꽃을 튀겼다.
신부는 텅 비어있는 공간으로 굴러간 후에야 멈추더니, 주머니에서 그리 크지 않은 유리병 하나를 꺼내 우딕에게 던졌다.
우딕은 곧장 손을 휘둘러 날아들던 유리병을 깨뜨렸다.
순간, 강한 신 냄새가 확 퍼져나갔다.
급변한 표정을 드러낸 우딕은 다른 생각을 할 틈 따위 없이 깨진 유리병을 피해 복도에서 벗어나 홀 중앙으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겨우 두 발 옮겼을 무렵, 그는 격한 재채기를 시작했다. 심하고 잦은 재채기에 우딕은 저도 모르게 멈춰서 허리를 굽혔다. 도저히 다른 동작을 취할 수가 없었다. 급속도로 붉게 변한 코끝은 우스꽝스러워 보일 정도였다.
이 광경을 보고, 장목화는 단박에 한 가지 사실을 알아차렸다. 우딕이 지불한 대가는 어쩌면 코나 후각과 관련돼있는 건지도 몰랐다. 그래서 신 냄새에 저렇게 과민하게 반응하는 것이 아닐까.
동시에 장목화는 처음으로 우딕을 봤을 당시를 떠올렸다. 진지하고 엄숙해 보였던 남자의 코끝은 마치 광대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성건우는 찬 바람 때문에 그럴 거라며 코가 높은 것도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말했었다.
하지만 이제 보니 그날도 우딕은 사우스 스트리트를 지나면서 신 냄새를 맡는 바람에 한동안 재채기로 고생을 한 모양이었다.
한편, 신부는 우딕이 치른 대가를 정확하게 파악한 모양이었다. 이에 관한 준비를 해뒀다가, 중요한 순간에 일대일 상황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을 강력한 사냥꾼을 무력화시켜 버렸다.
미리 홀 안에 식초를 뿌려두지 않은 건, 우딕이 아예 홀에 들어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일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