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장야여화-153화 (153/649)

153화. 삼중 효과

도서관에 들어선 두 사람은 각자 흩어졌다.

성건우가 관리인에게 화장실이 어디 있느냐고 묻는 사이, 장목화는 그동안 유유자적하게 서가 구역으로 향했다.

이제 그녀는 예전에 건드린 적도 없는 책들을 수시로 꺼내 몇 번 넘겨보기도 하면서 지식의 바다에 풍덩 빠진 듯한 모습을 연출했다.

그렇게 한동안 시간을 보낸 뒤에야 익숙한 장소로 향한 장목화는 늘 같은 곳에 꽂혀 있는 ‘국내 소득 법전’을 뽑아 안에 끼워진 쪽지를 바로 펼쳤다.

「회사에서 보내온 자료입니다.

반 지성교는 바보 중생 교단, 진리 허무교와 마찬가지로 3월의 달지기 말인을 믿는 종교 조직이다. 하지만 구체적인 이념은 서로 약간씩 다르며 주요 전파 구역 역시 일부 겹치는 곳도 있으나 대부분 다르다.

구세계 파괴 원인이 인류의 사고와 지식에 대한 추구 때문이라고 여기는 이 교파에서는 근본적으로 해당 문제를 해결하기를 바라고 있다.

내부엔 일정 정도의 각성자가 존재하며 그들이 가진 능력은 매우 복잡하다. 하지만 대부분 최면과 기억에 관련된 능력임이 확인된다.

2년 전, 퍼스트 시티에서 공교육을 주도하는 원로원 장로 소르스를 죽이면서 이 교파는 어마어마한 타격을 받고 오랜 시간 자취를 감추었다.

알려진 바론 해당 살인 사건을 주도한 교도는 아직 살아있는데, 그 남자는 굉장히 위험하고 매우 극단적인 성격의 인물이다. 남자의 외양과 키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고, ‘신부(神父)’라는 별칭으로 불린다.」

‘신부, 최면 기억⋯⋯.’

장목화는 진지한 얼굴로 중요 단어들을 되뇌어 보았다. 이 정보로 인해 배윤수 팀이 보인 이상에 대해서도 완전히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잠시 후 장목화는 쪽지를 챙겨 도서관을 한 바퀴 더 거닐고는, 일찍이 볼일을 다 보고 나와 있던 성건우와 합류했다.

그녀는 성건우와 함께 윤복 총포사 2층으로 돌아갈 때까지 쪽지 내용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 * *

윤복 총포사 2층.

장목화는 방문을 꼭 닫고서야 쪽지를 꺼내 성건우에게 내밀었다.

“일단 봐봐.”

날씨가 약간 흐리기도 했고 방의 조명 상태도 좋지 못해서, 성건우는 창가로 다가가 쪽지를 펼쳐보았다.

장목화는 그가 쪽지를 다 읽기를 기다렸다가 운을 뗐다.

“어때?”

“그 신부라는 사람을 때려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네요.”

성건우의 진지한 답이 이어졌다.

이런 표현에는 이미 면역이 된 터라, 장목화도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다.

“그 사람이 꼭 이곳에 와있을 거란 보장은 없어.”

“하지만 그럴 가능성이 크죠.”

장목화도 성건우의 주장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그렇다면 배윤수 구조팀은 최면에 걸렸거나 누군가에게 주입된 기억에 따라 움직이고 있을 가능성이 커. 그러니까 자유롭게 움직이면서도 회사에는 연락하지 않고 있는 거지.

문제는 나머지 세 명이 어디에 있느냐는 건데……. 왜 그들의 흔적은 여태 발견된 게 없을까? 반 지성교가 그들에게 최면을 건 목적은 뭐지? 단순히 저격수가 필요했기 때문은 아닐 거 아냐.”

성건우는 그녀의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들의 지능을 보자면 그럴 수도 있죠.”

장목화의 얼굴에 난감한 표정이 떠올랐다.

“골치 아프네. 그런 사람들 생각은 도통 짐작할 수가 없으니⋯⋯. 하지만 현재 상황으로 보면 반 지성교는 일반 교도들에게만 사고의 포기를 요구해. 그들을 이끄는 신이 선택한 자들은 마냥 멍청하진 않을 거야.”

그때, 장목화는 한 가지 사건이 떠올랐다.

“너, 저번에 회사에서 누군가에게 습격당할 뻔했던 사건 기억해?”

“네, 설마 그자도 말인 교파에서 사명 교단에 꽂아 넣은 첩자였을까요?”

성건우가 의욕적인 목소리로 답했다.

장목화는 생각에 빠진 채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글쎄⋯⋯. 보니까 모든 종교 조직 내부의 각성자들은 대부분 그들이 믿는 달지기와 관련된 능력을 갖추고 있는 편이지만 예외도 많은 것 같아. 각성은 유도되기만 하고, 정확하게 통제될 순 없는 걸까?

아니면 능력이 너무 한쪽 영역에만 집중되면 적대 세력에게 제압당할 수 있으니 그러지 않도록 고위층에서 의도한 걸까?

아, 아무튼 새벽이랑 여홍이한테도 최면이나 기억과 관련된 능력에 대비하라고 해둬야겠어.”

* * *

백새벽과 용여홍은 점심을 먹을 때가 다 되어서야 돌아왔다.

두 사람은 곧장 오전에 얻은 각종 소식을 전달했다.

“현재 유진 실종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는 세 명이에요. 첫 번째는 노스 스트리트 조씨 저택의 가주 조기정이에요. 그 사람은 위드 시티 귀족 의사회의 일원이기도 해요.

조기정이 조직한 노예 포획대가 유진의 경쟁 상대였다나 봐요. 둘 사이에 일어난 갈등도 많았다고 하네요.

두 번째 용의자는 지하 시장 지도자 손영배의 동생 손경배예요. 손경배는 와일드울프 앨리에서 술집 하나, 나이트클럽 하나를 운영하는데, 휘하에 갱단도 하나 거느리고 있는 어마어마한 세력가죠.

손경배가 용의선상에 오른 건 딸 때문이에요. 엄청나게 사랑하던 딸인데 2년 전쯤 실종됐대요. 납치범이 유진 쪽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얘기가 있다네요.

마지막 세 번째 용의자는 귀족 의사회의 특정 일원들이에요. 사람들은 그들이 의도적으로 유진을 실종시켰다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이걸 구실삼아 유진의 노예 포획대와 퍼스트 시티 군대를 위드 시티 안으로 들이면서 남들에게 알릴 수 없는 목적을 달성하려 한다고요.”

장목화가 피식 웃었다.

“정말 설득력 넘치네. 우리가 진범이 아니었다면 깜빡 속을 뻔했어.”

성건우도 곧장 동조하며 허벅지를 내리쳤다.

“맞아요, 하마터면 우리가 진범이 아닌 줄 알았다니까.”

성건우의 반응을 보고, 용여홍은 저도 모르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지가 유진을 습격해 노예로 만들어 데려와 놓고선.’

물론 그는 정신질환이 있는 친구랑 굳이 사실 여부를 따지며 아웅다웅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봤자 어차피 성건우는 또 같은 말만 반복할 것이다.

‘휴, 나는 유전자 개량을 했는데도 키가 175센티미터 밖에 안 되고.’

용여홍도 예측할 수 있을 정도로 성건우가 그를 놀리려 하는 말은 늘 한결같았다. 또한 이미 그 역시 성건우에게 유진을 어떻게 습격했는지를 물은 바 있었다. 이야기를 통해서라도 뭔가를 배우기 위해서였다.

장목화는 성건우는 무시한 채 웃으며 말했다.

“아주 좋은 상황이야. 기본적으로 우리를 의심하는 사람은 없잖아. 이 일이 지나치게 커지고 시끄러워질까 봐 좀 걱정스럽긴 하지만.

도시에 각기 다른 세력이 혼란한 틈을 타서 한몫 보기 위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고 하면, 위드 시티는 금방이라도 폭발할 화약통이 될 거야.”

말을 마친 장목화가 백새벽을 바라보았다.

“방금 받은 20오레이론 식량을 사자. 먹을 게 있어야 마음도 편해져.”

“네.”

스툴에 앉아있던 백새벽이 고개를 끄덕였다.

뒤이어 장목화는 진병욱으로부터 받은 종이를 백새벽에게 건넸다.

“일단 이것 좀 봐봐.”

용여홍은 곧장 스툴을 가지고 백새벽 곁으로 와 종이를 함께 살폈다.

“최면, 기억⋯⋯. 어쩐지⋯⋯.”

내용을 다 읽고, 용여홍은 그제야 알겠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도 최면이라는 게 무엇인지 배운 적이 있었다.

곁의 백새벽은 전과 달리 조금 더 주동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다.

“그렇다면 임보경을 비롯한 그 사람들은 반 지성교에 통제당하고 있는 모양이네요. 누군가의 모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요.”

장목화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그럴 가능성은 매우 낮아졌다고 봐야지. 반 지성교의 행동 스타일을 보면 극단적이고 큰일을 만들어내길 좋아해.

그럼 위드 시티 내에서 그들이 점점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는 건 전도 목적도 있지만, 뭔가 큰 사건을 준비하고 있다고 볼 수 있지도 않을까?

이건 반고 바이오 출신의 배윤수나 임보경을 비롯한 이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었을 거야. 원래대로라면 그랬겠지. 만약⋯⋯.”

장목화가 말을 멈춘 이때, 용여홍이 외쳤다.

“만약 그들이 아주 우연히도 반 지성교 모략을 방해하지 않은 이상은요!”

“구조팀도 중간에 위드 시티의 어떤 교집합 때문에 그들과 얽혀서 휘말려 들어가게 된 것일 수도 있죠.”

백새벽까지 나름의 추측을 하자, 성건우도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이럴 가능성도 있어요. 전단지를 나눠주던 반 지성교랑 배윤수 구조팀이 충돌하다 싸움까지 붙은 거예요. 부끄러운 나머지 화가 난 반 지성교는 끝장을 보기 위해 교파 내 강자에게 도움을 청한 거고요.”

장목화가 완곡하게 부정했다.

“그건 너무 과한 것 같은데? 물론 반 지성교가 멍청하긴 해도, 신이 선택한 자는 나름 똑똑한 편이야. 필요도 없는 일을 크게 벌이진 않을 거야.”

이내 그녀는 주위를 한번 둘러보며 말했다.

“일단은 배윤수 구조팀이 반 지성교의 음모를 방해했거나 다른 사건으로 인해 그들에게 휘말렸을 가능성에 중점을 두고 조사해보자.”

“예, 팀장님!”

용여홍은 성건우와 달리 제 생각을 인정받았다는 기쁨에 가슴을 쫙 폈다.

곧이어 장목화가 주의사항을 일러주었다.

“이제 우리는 이 반 지성교랑 마주해야 해. 최대한 빨리 그들을 찾아내길 바라자고. 이 과정에서는 누구도 안전을 보장할 수가 없어. 그러니 너희도 최대한 준비를 해두는 게 좋을 거야. 저도 모르는 사이 최면에 걸리거나 중요한 기억을 잃거나, 원래는 없었던 기억을 주입 당하지 않게.”

용여홍이 황급히 물었다.

“어떻게 하면 좋죠?”

장목화가 웃었다.

“그렇게 긴장할 건 없어. 봐봐, 유진처럼 강력한 세력을 거느린 자도 빠르게 처리됐잖아?”

그때, 갑자기 용여홍이 작은 소리로 중얼거렸다.

“……팀장님,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순간 추리 광대의 영향을 받아 팀장님을 건우로, 건우를 팀장님으로 여기게 되는 줄 알았어요.”

장목화가 금속 와우를 만지작거렸다.

“뭐? 내가 아직도 장목화로 보여?”

“…….”

그녀가 금세 환하게 웃었다.

“하하하, 농담이야. 긴장 좀 풀자고. 자, 일단은 몸에 항상 지닐 수 있는 쪽지를 준비해서 오직 자신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중요한 기억 몇 개는 적어두자. 그리고 그걸 기준으로 삼는다는 주석을 밑에 다는 거야. 이제 일정 시간마다 그 쪽지를 한 번씩 확인하면서 자기 상태를 확인하는 거지.”

백새벽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장목화는 그녀를 보고 뭔가 번뜩 떠오른 듯 물었다.

“참, 심문은 우딕이 했지? 어떻게 했어? 꿈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네, 어느새 잠들었는데 제가 꿈을 꾸고 있더라고요. 그래도 건우가 준 종이별 덕분에 바로 정신을 차릴 수 있었어요.”

백새벽이 간단하게 설명했다.

“쉽지 않은 일이야.”

성건우의 짧은 평이 이어졌다. 하지만 뭘 가리키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잠시 생각 끝에 장목화가 그의 말을 대신했다.

“건우 말은 여태 우리가 마주한 상황 중 추리 광대를 응용하기가 가장 어려운 상황이었다는 거야. 그 능력은 네 잠재의식 속에 주머니에 종이로 접은 별이 하나 있다고 믿게 하고, 꿈에 그 믿음을 반영해. 하지만 현실에서까지 그 믿음이 반영되지는 않으니까 실제로는 종이별을 만질 수가 없어.”

“현실에 존재하는 종이별이 없다는 것을 알았는데도 어떻게 추리 광대의 효과가 계속 남아있었는지, 그게 제일 궁금했어요.”

백새벽의 의문에, 성건우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간단해. 내가 부가한 건 이중 효과가 아니라 삼중 효과였거든. 주머니에 종이별이 있다고 생각했을 때, 내가 했던 말 기억해? 그것도 추리였어.”

백새벽은 가만히 기억을 떠올려 보였다.

“그건 아주 신비로운, 초자연적인 힘과 연루돼 있다고, 아직은 그걸 만질 수 없고, 만져서도 안 된다고 했던 거 말이야?”

성건우는 손뼉을 치며 조금 더 흥분했다.

“첫 번째 효과는 나랑 팀장님을 낯선 사람으로 믿게 하고, 그와 관련된 기억을 잊게 하는 거였어. 두 번째는 네가 그 낯선 사람의 영향 아래 네 주머니 속에 종이별이 들어있다고 믿게 하는 거였고.

마지막 세 번째가 현실에서 만져지는 종이별은 없다는 결론을 내리게 하는 거였지. 그렇게 하면 현실에서 종이별을 찾아내지 못하더라도 꿈에선 그것에 대한 믿음이 반영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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